2016. 10. 8. 02:21

[문호스트레이독스]

노라가미 AU


銘名하다.


오다 사쿠, 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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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두게 해주세요."

"어째서?"

"―다자이님이 부르는 이름이 싫어요."

"뭐?"


다자이는 의외의 대답에 멍하니 눈 앞에 있는 여자를 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부르는 이름이 싫다니. 차라리 신사가 없어서 힘들다던가, 의식주라도 제대로 해결하게 해달라고 하던가 하는 이유라면 어느 정도 납득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볼을 부풀린 채 자신에게 빨리 그만두게 해달라고 채근하듯 손을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다자이는 눈물이 그렁한 그녀를 본 채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울고 싶은 건 이쪽이라고. 지금 당장 해방하라고 하면 말이지―. 머리를 긁적인 채 눈 앞에 있는 여성을 빤히 보던 다자이는 손가락을 허공에 들어 그녀의 손목에 있는 것과 같은 글자를 적으며 말했다.


"쵸우키(朝器), 너를 해방한다."


다자이의 말과 함께 사라진 이름을 보던 여자는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웃음을 지으며 자기의 손목을 만지작거리다 석별의 인사도 없이 등을 돌려 사라졌다. 아니, 석별의 인사라면 있었다. 다음부터는 여자한테는 그런 이름은 주지 마세요!! 였던가. 그래도 반 년은 함께 했었는데. 그녀가 떠난 골목을 보며 멍하니 담벼락 위에 앉아있던 다자이는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몸을 튕기듯 내려오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늘 밤은 어쩌지."


해가 지기 전에 묵을 곳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었다. 지금 그는 신기가 없는 상태였다. 아무리 뛰어난 신이라고 해도 신기가 없으면 신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요컨대, 지금 다자이는 발가벗은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일단 가까운 역으로 달려간 그는 '관광안내도'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곳에서 지도를 하나 가져와 펼쳤다. 당장 갈 수 있는 곳은, 곳은―. 한참을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지도를 보던 다자이는 곧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쉬며 지도를 구겨 던졌다. 이 넓은 땅에 잠시 신세를 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니. 조금 있으면 해가 져버리는데.


"정말 곤란하게 됐네."


딱히 잠을 자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몸을 의탁할 곳은 필요했다. 신기가 없는 신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 근처는 유독 안 좋은 기운이 넘쳤다. 아마도 병원이 있어서겠지. 병원은 온갖 잡귀들의 서식지이다. 어차피 차안의 존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나마 빌릴 수 있는 신기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조차도 오늘은 힘들 것 같았다. 얼른 새 신기를 찾지 않으면 안 되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던 다자이는 얼핏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그 목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던 그는 곧 생각할 틈도 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돌아보지 말 걸.


[좋…은, 냄―새¿]

"―젠장!!!"


앞뒤를 가릴 틈은 없었다. 신기도 없는 지금, 아야카시에 먹히면 살아남지 못할 게 뻔했다. 다자이는 사람들 틈을 달리며 뒤쫓아오는 아야카시를 피해 도망갔다. 가끔 부딪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몇 개의 골목을 지났고 몇 개의 빌딩을 지났는지 기억도 안 날 때였다. 사람들 틈에 섞여있는, 유난히 띄는 붉은 갈색 머리카락의 사내가 보였다. 옷차림은 조금 시대가 동떨어진 느낌이었기에 다자이는 내달려서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는 갑작스럽게 불러세워진 것에 의문을 표하며 다자이를 보았다.


"무슨 일이지?"

"자, 자네―. 사령, 이지?"

"―그런데."

"내, 신기가 되어주지 않겠나?"


다자이의 제안에 사내는 곤란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누구도 손을 대지 않은 걸 발견할 걸 그랬나. 사내의 표정을 보던 다자이는 가볍게 혀를 찼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미 신들과 신기들 사이에 좋지 않은 쪽으로 얼굴이 알려졌기에 거절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려나 싶어 적당히 포기를 하려던 때, 사내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그리고 그는 주변을 살피다가 조금 먼 곳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했다.


"쫓기고 있지?"

"―어, 일단은."

"뭐, 어차피 나도 맨몸이라 오래는 못 버티고."

"해 주는 건가!?"

"그러지."


사내의 대답에 다자이는 걸음을 멈추고 허공에 글자를 쓰기 직전에 잠깐 그를 쳐다보았다. 사내는 왜 뜸을 들이냐는 표정으로 다자이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섬칫한 기운은 점점 자신을 조여오고 있었다. 아까의 일로 고민할 틈은 없었다. 다자이는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이면서 허공에 유려하게 글자를 써내려가며 주문을 읊었다. 「돌아갈 곳도, 갈 곳도 여의치 않은 너에게 머물 곳을 부여한다. 내 이름은 다자이. 시호를 쥐고 여기에 머물러라. 가명을 지녀 내 종복이 되리니, 이름은 뜻으로 그릇은 소리로, 내 명으로 신기가 되어라. 이름은 츠쿠, 그릇은 사쿠(作).」


"와라, 츳키."

"―이름 짓는 솜씨가 형편없네."

"불평은 나중에 해 줘."


사쿠의 말에 씁쓸하게 웃은 다자이는 곧 허공에서 라이플로 변한 그를 잡고 몸을 빙글 돌려 아야카시를 조준했다. 라이플이라, 보기 드문 형태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개머리판을 어깨에 댄 다자이는 가늠쇠로 아야카시를 조준한 채 그대로 영창을 이어가면서 벽에 기대어 손가락을 움직여 방아쇠를 당겼다. 영창이 끝남과 동시에 쏘아져 나간 총알은 정확히 아야카시의 본체에 박히더니, 곧 제멋대로 부풀어오르며 아야카시를 터뜨려버렸다. 불꽃놀이처럼 허공에서 터져버리는 아야카시를 보던 다자이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손에 쥐고 있는 라이플을 보다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돌아와, 사쿠노스케."

"그게 돌림자냐?"

"뭐, 그렇지."

"아까 머뭇거린 건 이름 때문이고?"

"아침에 그것때문에 한 소리 들었거든. 작명이 형편없대."

"뭐라고 불렀길래?"

"아사노스케."


다자이의 대답에 사쿠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혼자 뭔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 반응에 울컥한 다자이는 괜히 그의 발을 툭툭 치며 불평을 표시했다. 사쿠는 미동도 없이 다자이를 보다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자이는 입술을 비죽이다가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말해두는데, 나랑 같이 있는 게 쉽진 않을거야. 일단 잘 곳도 없거든. 어깨가 욱신거리는지 가만히 주무르면서 덤덤하게 말하는 다자이를 보던 사쿠는 어깨를 으쓱이고 그를 따라 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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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