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 10.
[문호스트레이독스]
뱀파이어 AU
망향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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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남아서 그곳 하늘에 뜨고
구름 멀리서 고요히 눈을감고
보낸뒤에도 남은 서러움
살아도 눈을 감아도 또 너를 묻게하고
자우림, 망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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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신거리는 어깨를 감싼 채 비틀거리며 의무실에 도착한 아츠시는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나온 요사노는 아츠시의 상태에 당황하며 그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침대에 앉힌 아츠시의 옷을 내려본 요사노는 생각보다 심한 상처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츠시의 목덜미 근처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으며, 어깨의 한 가운데에는 화상을 입었는지 피부가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요사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약품들을 가져와 아츠시의 상처에 적절한 처치를 하고 거즈를 얹고는 붕대를 감아주었다.
"란포가 그랬구나."
"…네."
"…잠시 자리를 비우마. 편히 쉬고 있거라."
"요사노 선생님?"
의문에 찬 아츠시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요사노는 거칠게 의무실의 문을 열고 나섰다. 란포가 뱀파이어를 적대시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평소에 조금 더 강하게 말했어야 했다. 란포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알고 있어서 그 공격적인 성향만 보여주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차마 함부로 그의 상처를 헤집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지 않느냐. 아무리 이종족의 피가 섞여 있어도 저항할 수 없는 어린애의 어깨를 그토록 무자비하게 짓이기다니. 요사노는 아무 말 없이 란포의 집무실 문을 열었다.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있었는지 이마가 벌개진 란포가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음, 아키? 무슨 일로…."
"란포, 그대…. 아츠시에게 무엇을 했는가?"
"아츠시군? 으음, 조금 훈계…려나."
훈계? 그게 훈계라고? 분노에 차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란포는 멀뚱히 요사노를 쳐다보았다. 다자이가 말릴 틈은 없었다. 높이 올라간 요사노의 손은 그대로 란포의 뺨을 후려쳤다. 짝, 강렬한 소리와 함께 란포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뒤를 돌아 나갔다. 란포는 얻어맞은 뺨을 가만히 문지르며 다자이를 물끄러미 보았다.
"뭐야, 뭔가 잘못된건가?"
"…뭐, 요사노 선생님이라면 화낼 만 한 일이었지."
"그런가…. 오늘은 꽤 아픈데."
"아, 많이 화나 보였으니까."
세게 닫힌 문을 바라보던 란포는 가만히 다자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닌 듯, 그는 익숙하게 얼음주머니를 건넸다. 란포는 유난히 그녀에게 약했다. 약했다고 해야할까, 무슨 훈계를 들어도 반항을 하지 않았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과는 달랐다. 분명히 그녀의 말을 신경쓰고는 있었다. 하지만 쉽게 고쳐지지는 않는 듯, 종종 요사노는 란포에게 이렇게 크게 화를 내곤 했다. 얼음주머니를 베개삼아 다시 책상에 엎드린 란포는 시선을 돌려 다자이를 쳐다보았다.
"음? 왜?"
"아니. 여자애 말인데, 본능이 나오진 않을까?"
"전투훈련 정도로 내 암시는 풀리지 않아."
"…그러면 좋겠지만. 저항하기 시작하면 아츠시가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야."
"잘 알고 있어."
"좋은 사람인 척 하는 거, 도와줬으니까 마무리도 잘 하라고."
"네, 네."
여유롭게 대답하는 다자이를 보며 란포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의 일로 기분은 완전히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이제 더 이상 일할 의욕도 없어. 그렇게 중얼거리는 란포를 보던 다자이는 그를 토닥여주었다. 한편, 요사노는 분노를 다 삭이지 못한 채 거칠게 의무실의 문을 열었다. 아츠시는 그녀를 기다리다 그새 잠들었었는지,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다. 요사노는 그대로 냉장고로 직행해 커다란 볼에 얼음을 털어넣고는 맥주를 따서 한가득 부어 절반 정도를 비우고서야 캬하, 하는 소리를 내며 잔을 내려놓고는 아츠시를 보았다.
"오야, 그새 잠든 걸 깨워버린 모양이구나."
"아, 오셨어요?"
"많이 피곤했을텐데 좀 더 자도 괜찮단다."
"아뇨, 란포씨랑 무슨 일 있으셨나요?"
"늘 있던 일이지."
그렇게 말하며 요사노는 잔을 마저 비우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는 아츠시를 침대에 앉히고는 그대로 꼭 끌어안아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길은 곧 그의 등을 토닥였다. 부드러운 온기가 닿아오는 것이 기분이 좋아 아츠시는 가만히 눈을 끔벅거렸다. 요사노는 그대로 아츠시를 다시 눕히고는 옆에 앉아 이불을 덮어주며 씁쓸하게 웃었다.
"내 능력이 별로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 같아서 미안하구나."
"아, 아녜요, 지금도 충분히 감사한걸요!"
"내 힘이 네게 역효과만 불러올 것이라 쓰지 못하는 걸 이해해다오."
"그럼요, 전 괜찮아요. 금방 나을 거예요! 하루 정도 자면!"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듯 누워서도 손짓발짓을 하며 설명하는 아츠시를 보던 요사노는 유쾌하게 웃고는 이불을 토닥여주며 알았으니 조금 더 자두라고 말했다. 아츠시는 조금 전의 행동이 제법 머쓱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대답을 하곤 눈을 감았다. 아츠시가 잠드는 모습을 본 요사노는 조용히 냉장고에서 맥주를 더 꺼내서 하늘을 벗삼아 술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