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고, 그리워서.
[문호스트레이독스]
그립고, 그리워서.
다자이 오사무의 이야기
※사망네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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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번의 죽음을 목도했다. 수많은 생명이 나를 흘러가도 이 손에 잡고 싶은 생명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내가 구원할 수 있어야 했던 것은 단 한 사람 뿐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나 나에게 불친절했다.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내가 생을 구가하게 하면서 모순되게도 내게 새로운 이별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됐다. 너는, 너는 그렇게 가지 말았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되는대로 내뱉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차마 빨아들이지는 못한다. 이 녀석이 꽤 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가 항상 피우던 그 연기다. 언제나 옆에서 흘러들어와 내 폐를 찌르던 녀석이었다. 그래서 섣불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입에 물고 있던 필터만을 잘근잘근 씹는다. 숨을 쉬지 못하겠다.
너는 조금 더 살아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에게 이렇게 미련을 남기지 말았어야했다. 나는 지금도 네가 너무도 밉다. 너무도 미워서 너무나 그립다. 이런 내 마음은 죽어버린 이에게는 닿지 않는다. 그것을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기에 다시는 미련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오만한가, 감히, 스스로가 죽음 앞에서 얼마나 무능한지 체험할 일이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우습게도 나는 너를 보내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너는 나를 떠나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직도 네 표정이 아른거린다. 그렇게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애초에 널 웃게 해줄 생각은 없었다. 너는 나로 인해 괴로워야 했고, 내가 너로 인해 즐거워야 했다. 우리는 그런 관계였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았고, 너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건 서로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너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렇게 웃고는 잘 있으라고 말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잘 있어라, 다자이.]
잘, 있어라.
잘.
있어라.
네 그 마지막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지 넌 모를거다. 참 얄궂은 일이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나를 흔들어 본 적이 없고 그럴 리가 없을 녀석이었던 주제에. 괜히 네 얼굴이 떠올라 타들어가던 담배를 난간에 비벼껐다. 아직도 너무나 혼란스럽다. 네가 내 눈앞에서 그런 식으로 사라져 버린 건 나에 대한 복수인건가? 언제나 버릇처럼 말하던 '열 배로 갚아준다'는 건 이런 것이었나? 차라리 살아서 갚았어야지. 살아서 진 빚을 죽어서 갚는 경우가 세상 천지 어느 곳에 있단 말이냐. 이 빌어먹을―.
짧은 욕지기와 함께 아무렇게나 바닥을 걷어찼다. 아프다, 아파. 발이 아픈지, 마음이 아픈지, 내 머리가 아픈건지 모르겠다. 몸을 있는 힘껏 숙여서 물에 닿을 만큼 난간에 매달려본다. 그리고 그대로 힘을 푼다. 오늘도 물이 한껏 나를 맞이한다. 머리부터 내리꽂히는 느낌이 제법 얼얼하다. 지독하게 아름다운 파란 하늘을 보다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잔뜩 튀어버린 물이 가만히 눈가를 타고 흐른다. 오늘따라 네 웃음이 자꾸 떠오른다. 의문을 가져본다. 네가 마지막으로 본 하늘은 무슨 색이었을까. 죽을 사람의 눈에 비치던 하늘은 오늘만큼 아름다웠을까.
차가운 물이 머리를 적시고, 몸을 적신다. 저려오는 감각에 몸을 맡기고는 천천히 떠내려간다. 지독한 미련도 같이 이 강물에 씻겨내려갔으면 좋겠다. 차라리 죽음이 나를 부르러 오기를 바라고 있다. 아직도 자살이 어쩌고 하고 있겠지, 하던 네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응, 맞아. 나는 아직도 자살을 원하고 있지. 언젠가 완벽한 자살을 하기를 꿈꾸며. 그리고 불친절한 죽음은 오늘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나는 오늘도 실패했다. 너를 기억하지 않기를, 이 세상을 떠나기를.
"아아…. 그 때, 너를 잡을 걸 그랬어."
의미없는 말을 허공에 뱉었다. 한숨을 내쉬고는 젖어버린 담배갑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넣고는 다시 너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부분부분 끊어진 기억들에 젖은 머리를 털어내곤 볼을 긁적이며 너를 마지막으로 만난 곳으로 걸음을 향한다. 괜히 꽃집에 들려서 꽃도 몇 송이 샀다. 네가 이걸 봤다면 기겁했을 텐데. 그 생각에 웃음이 새어나온다. 네가 마지막을 맞이한 곳은 오늘도 사람이 없었다. 이런 곳에서 마주쳤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할 정도의 날이었다.
너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날은 아마도 너와 내가 처음으로 같은 생각을 했을텐데. 하지만 먼저 저질러버린 건 너였고, 너는 나를 보며 웃었고, 나는 떠나는 너를 잡지 못했다. 그날의 내가 바보같고, 그 때 잡지 못한 손이 그립고, 그리워서 이렇게 청승을 떨며 너를 보러 온다. 이 모습을 본다면 아마 멱살을 잡고 돌아가라고 윽박지를지도 모르지만, 왜 여기에 있냐고, 왜 내게 왔냐고 그렇게 말할 너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그러니 조금만 더 그리워할게. 조금만 더.
네가 참 보고 싶은 날이다, 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