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무민 2016. 6. 17. 00:44

[문호스트레이독스]


뱀파이어 AU


망향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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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남아서 그곳 하늘에 뜨고 

구름 멀리서 고요히 눈을감고 

보낸뒤에도 남은 서러움 

살아도 눈을 감아도 또 너를 묻게하고 


자우림, 망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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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노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똑같은 모양의 옷들이 죽 늘어서 걸려있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의상실인 모양이었다. 쿄카의 손을 꼭 잡은 아츠시는 늘어서있는 옷들을 지나 테이블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카탈로그들이 한쪽에 잔뜩 쌓여있는 테이블 위의 벨을 요사노가 누르자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요사노는 가만히 팔짱을 낀 채 안에서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오셨어요, 선생님?!"

"오오, 오늘은 좀 빨리 나왔구만."

"언제까지고 기다리게 해드릴 순 없죠~."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요사노에게 인사를 건넨 여성은 곧 커다란 검은 눈을 깜박이며 아츠시와 쿄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요사노를 잠깐 보았다가, 다시 그 둘을 쳐다본 그녀는 마지막으로 확인을 하듯 요사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행동에 요사노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대뜸 달려들어 두 사람을 끌어안았다. 굉장히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녀의 스킨십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아, 그, 저기…."

"아, 어머! 내 정신 좀 봐. 너무 반가워서 인사도 잊었네. 타니자키 나오미라고 해요. 여기 의상실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나오미, 오라비는 어디에 갔는가?"

"아, 오라버니는 축성을 받으러 잠깐 외출했어요."

"그렇구만, 이 아이들은 오늘 막 온 아이들이라네. 어차피 이 곳에 오래 머무를테니 튼튼한 옷을 준비해주게."

"그건 걱정마세요♡."

"아, 그리고…."


나오미를 가만히 손짓으로 부른 요사노는 그녀에게 내의는 축성을 받지 않은 것으로 준비해달라고 속삭였다. 나오미는 곁눈질로 아이들을 보더니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사노가 건넨 차트를 본 나오미는 두 사람을 불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카탈로그를 펼쳐 두 사람 앞에 두고는 원하는 옷을 고르도록 했다. 대개 그 디자인에 맞춰서 제작한다고 말하는 그녀는 어쩐지 신나보였다.


"신입은 잘 오지 않거든요, 요즘. 그래서 엄청 기뻐요."

"…네에."

"쿠니키다 신부님은 만나셨나요?"

"아, 네. 인사라면…."

"좀 무섭죠? 그래도 나쁜 분은 아니에요."

"하하…."


그녀는 쉴새없이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면서 여러가지 천을 골라왔다. 짙은 붉은색, 자주색, 검은색, 흰색의 천들을 늘어놓은 그녀는 마음에 드는 색을 고르도록 했다. 아츠시는 망설임 없이 검은색을 골랐고, 쿄카는 한참 고민 끝에 짙은 붉은색을 골랐다.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까지 고르자, 나오미는 두 사람을 방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앞장섰다. 복도를 걷는 내내 그녀는 친절하게 비상구의 위치라던가, 중요한 방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었다. 마침내 그들이 배정받은 방에 다다르자, 나오미는 그들의 어깨를 한 번씩 토닥여주곤 웃었다.


"옷은 일주일정도 걸릴 거예요. 그 사이엔 임시로 지급된 옷을 입으시면 돼요. 방에 있을테니까."

"…아, 감사합니다."

"음, 그리고 방 벽에 붙어있는 규칙은 가능하면 지키도록 노력하세요. 안 그러면 쿠니키다 신부님, 엄청 화내시거든요."

"…역시 그런가요?"

"네, 그런 점은 엄격하셔서…. 그럼, 옷은 완성되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편히 쉬세요."


웃으면서 그들에게 인사를 한 나오미가 뒤를 돌아 계단을 내려가고서야 두 사람은 각자의 방에 들어갔다. 어쩐지 엄청난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평소보다 더 지친 기분이었다. 사실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에, 그리고 뭔가 굉장한 곳에 들어와버렸다는 것에 기분이 얼떨떨했다. 침대맡에는 나오미의 말대로 임시로 지급된 옷이 놓여있었다. 아츠시는 엉망이 된 옷을 새 것으로 갈아입으며 벽에 붙은 규칙을 가만히 보았다.


[규칙]


1. 기상시간은 오전 6시, 취침시간은 오후 10시

2. 외박시에는 사감에게 절대 보고할 것

3. 외출 허가는 하루 전에 받아둘 것

4.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는 즉각 의무실을 찾을 것

5. 반드시 때와 장소에 맞는 복장을 갖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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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소 빡빡해보이는 규칙이었지만 여기에서 살려면 이것도 필요한 일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규칙을 읽어내려가던 아츠시의 눈에 띈 마지막 줄은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쉽지 않은 곳에 들어온 것이 다시 한 번 실감나는 말이었다. 마지막 줄은 가장 크고, 붉은 글씨로 이렇게 인쇄되어 있었다.


[반드시 살아남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