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七夕)
[문호스트레이독스]
칠석(七夕)
나카지마 아츠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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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읏차, 들어갑니다!"
아침부터 사무실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쳐다본 아츠시는 커다란 화분을 들고오는 타니자키에 놀랐다. 타니자키가 들고 온 화분에는 풍성한 대나무가 꽂혀있었다. 응접실의 옆에 화분을 내려놓은 타니자키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위치를 다시 한 번 체크했다. 그런데 웬 대나무?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오미가 준비해 온 종이와 끈을 옆에 내려놓고서야 아츠시는 며칠 뒤가 칠석이라는 걸 깨달았다.
"…칠석이구나."
"응, 맞아요. 해본 적 있어요?"
나오미의 질문에 아츠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칠석에 대한 건 동화책을 잠깐 본 정도고, 말로만 들었었다. 고아원에서 이런 걸 했던 기억은 없었다. 이런 걸 한다더라, 하고 어렴풋이 얘기야 들어본 적 있지만 그런 행사를 해 줄 정도로 그 사람들은 인정이 많지 않았다. 나오미는 아츠시에게 길게 자른 종이와 펜을 건넸다. 그가 영문을 몰라 그걸 물끄러미 보자 나오미는 배시시 웃곤 말했다.
"소원을 적으시면 돼요. 그리고 그 종이를 나무에 묶는 거랍니다?"
"그렇군요…."
"아츠시씨는 어떤 소원을 빌 건가요?"
"나오미, 소원은 비밀이잖아?"
"에에, 어쨌든 달고 나면 다 보이게 되는 걸요?"
입술을 비죽이 내밀며 투덜거리던 나오미는 금세 타니자키와 둘만의 대화에 빠져버렸다. 이미 그들의 기행(?)에도 익숙해진 아츠시는 그들을 뒤로 하고 종이를 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소원, 소원이라. 뭘 빌어야 하지? 지금까지 사는 것에만 급급해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되고 싶은지 따위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갑작스럽게 그걸 종이에 적으라고 하니 머릿속은 점점 새하얘져갔다. 뭐, 칠석날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좀 더 생각해봐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츠시는 잠시 적기를 미뤄두었다.
"아, 그렇지. 근처 강가에서 칠석 축제도 할 거예요. 칠석이 가까운 주말엔 항상 하거든요."
"헤에, 재미있겠네요."
"다 같이 놀러갈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라,버,니?"
"어? 응, 괘, 괜찮지 않을까…? 허락만 받으면 말이야."
곤란한 웃음을 짓던 타니자키는 곧 슬쩍 시선을 돌려서 쿠니키다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일을 하면서도 얘기를 다 듣고 있던 쿠니키다는 머리를 긁적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주말이고 하니 괜찮겠지. 그렇게 말하자 작은 환호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쿠니키다는 그런 사람들을 보다 물론 일은 하고 가야한다며 강조했지만, 이미 들뜬 사람들은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결국 그들은 일은 잠시 미뤄둔 채 강가로 조금 빠른 걸음을 했다. 축제를 하는 강가는 준비로 떠들썩했다. 간이무대에서는 사람들이 음향을 확인하고 있었고, 축제장소의 시작임을 알리는 현수막은 이미 걸려있었다. 그 너머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준비해 온 즐길 거리를 매대에 전시해놓고 자기들끼리 분주하게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츠시는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우와-, 굉장하네요, 축제라는 거!"
"…축제도 가본 적 없는거냐? 아츠시."
"에, 뭐…, 딱히 그런 걸 보여주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니까요."
그것 참 팍팍한 시설이었군 그래. 축제만의 각종 즐길거리에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아츠시를 보며 쿠니키다는 어깨를 으쓱였다. 오늘 하루 정도는 하고 싶은대로 하게 둬도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쿠니키다는 또 한 명의 어린이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칠석 축제라 구색을 갖춰 입은 것 같은 기모노의 소녀의 눈은 새로운 것을 발견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니 조심해라."
"…네."
"아츠시는 바보니까 네가 잘 챙겨주고."
그렇게 말하자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츠시의 손을 덥썩 잡고 인파 속으로 향했다. 쿠니키다는 조금 뒤에서 느긋하게 그들을 따라가며 그 나름의 방법으로 축제를 즐겼다. 란포는 과일사탕을 잔뜩 사서 천천히 설탕조림의 달콤함과 과일의 새콤함을 즐기고 있었고, 사장님과 요사노는 어느새 언덕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간단한 안주거리와 함께 맥주를 잔뜩 마시고 있었다. 조금 뒤에 간이무대 근처에서 물에 빠져있는 지금까지 어디있는지 알 수 없던 자살매니아도 약 1명 구조했으며, 아츠시와 쿄카는 어느새 금붕어 건지기에 열중하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건진 건 한 마리도 없었다. 나오미는 타니자키가 사격으로 따낸 커다란 곰인형을 안은 채 걸어다니고 있었다. 땅거미가 지고 하늘에 별이 잔뜩 뜰 때까지 그들은 축제를 즐겼다.
"사람이 정말 많긴 하네요."
"뭐, 축제니까."
사장님과 요사노가 잡아둔 자리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탐정사의 인원은 제법 많았다. 노느라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먹거리 장터에서 음식들을 사와 늘어놓자, 너나 할 것 없이 그 주변에 빙 둘러앉았다. 타이밍 좋게도 그들이 둘러앉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폭탄인가 싶어 놀랐던 아츠시와 쿄카도 어느새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새를 못참고 선심을 써서 쿄카에게 건넨 과일사탕을 다시 먹어버린 란포는 나오미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비죽이 내밀었고, 나중에야 사탕이 없어진 걸 본 쿄카는 나오미가 새로 사 온 사탕을 받았다. 달달한 설탕과 함께 포도알을 가만히 입안에서 굴리던 쿄카는 그 단맛이 기분좋은지 배시시 웃었고, 그 웃음을 본 나오미는 쿄카를 와락 끌어안아버렸다. 갑작스런 스킨십에 당황하던 쿄카는 곧 적응했는지 가만히 포도알만을 입에서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불꽃놀이도, 다같이 먹는 저녁식사도 끝나고 정리를 하고 기숙사에 돌아온 아츠시는 씻고 자리에 누워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다 쿄카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지문 너머에서 이부자리를 펴고 있던 쿄카는 아츠시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아츠시는 볼을 긁적이다가 아침의 일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응접실 옆에 놓인 탄자쿠(短冊)에 소원을 쓰면 된대. 쿄카는 어떤 걸 쓰고싶어? 그렇게 말하자 쿄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곧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답하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아츠시는 닫힌 장지문을 보다가 너무 갑작스럽게 물었나 싶어 머리를 긁적이고는 천장을 바라보고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사무실에 놓인 대나무에는 이미 몇 장의 종이가 걸려있었다. 언제 쓴 거지, 이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며 아츠시는 종이를 들고 펜을 잡아서 글씨를 써내려갔다. [여기에 오래 있을 수 있게 해주세요.] 조금은 애틋한 소원이었지만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그것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에 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사람들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동료였다. 그래서 더 오래 함께 하고 싶었다. 그 소원을 담아 아츠시는 탄자쿠를 가만히 대나무 줄기에 묶었다.
오래, 오래.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