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무민 2016. 7. 12. 00:21

[문호스트레이독스]


뱀파이어 AU


망향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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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남아서 그곳 하늘에 뜨고 

구름 멀리서 고요히 눈을감고 

보낸뒤에도 남은 서러움 

살아도 눈을 감아도 또 너를 묻게하고 


자우림, 망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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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침이 되었네요…."

"밤새 고생했다. 돌아가면 씻고 좀 쉬어."

"그럼, 난 먼저 자러 갈테니까. 아침은 질색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지 않는 사이에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갑자기 눈 앞에서 일어난 일에 아츠시는 가만히 눈을 끔벅거렸다. 켄지와 쿠니키다는 이미 익숙한 지 어깨를 으쓱이고는 아직 넋을 놓고 있는 아츠시를 데리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온갖 피로가 몰린 기분에 아츠시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속은 아직도 울렁거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눈을 감고 차분히 가라앉히니 버틸 만은 했다. 그 사이에 잠들었는지, 기내방송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비행기가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 이 비행기는 하네다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아츠시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몰려드는 잠을 겨우겨우 깨고 있었다. 켄지도, 쿠니키다도 그새 잠이 들었었는지 다소 몽롱한 표정으로 착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살기는 매우 익숙한 감각이었기에 아츠시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일어난 그에게 승무원이 다가와 제지하는 순간 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쿠니키다의 핀잔에 조용히 사과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은 아츠시는 주먹을 꼭 쥐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무슨 일이냐, 아츠시."

"…살기를 느꼈어요."

"살기?"

"…뱀파이어가 이 비행기 안에 타고 있어요."


아츠시의 말에 쿠니키다는 재차 확인을 했다. 확실히 있는 거냐는 물음에 아츠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장 착륙하는 비행기에서는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는 동안, 세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뱀파이어인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인파에 섞여들었다가는 그들이 위험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어쩌면 다자이는 직감적으로 이 사실을 눈치채고 먼저 돌아가버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전부 내릴 때까지 살기는 다시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결국 그들은 커다란 수확이 없이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다.


"정말로 있던 게 맞나?"

"정말이에요. 제가 잘못 느낄리가 없어요."

"그렇겠지. 나도 반쪽짜리의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거든."

"?!"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들려온 소리에 아츠시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자리에는 검은 레이스 양산을 들고 화려한 체인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쓴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우산의 그늘 아래서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다 싱긋 웃었다. 부드러운 웃음이 오히려 위화감을 더했다.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세 사람을 한 번씩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잔뜩 긴장한 그들을 보던 남자는 피식 웃고는 손을 내저었다.


"아침은 별로 상태가 안 좋아서. 너희들하고 지금 여기서 싸울 생각은 없어."

"그럼 일부러 얼굴을 비친 이유가 뭐지?"

"음, 보고 싶은 얼굴이 있어서 말이야."

"…이 녀석인가?"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고. 뭐, 녀석은 없네."


그럼 다음에 보자.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지루하단 표정으로 뒤를 돌아서 사람들 틈에 섞여 들어갔다.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던 아츠시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오듯 땀을 흘리는 아츠시를 본 켄지는 가만히 그를 부축해 차로 데리고 갔다. 뒷좌석에 가만히 그를 앉히고는 차를 몰고 가며 쿠니키다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수도원에 도착하자마자 겨우 정신을 차린 아츠시를 데리고 쿠니키다는 추기경의 집무실로 향했다. 똑똑, 짧은 노크소리에 안에서 이어지던 대화소리가 끊겼다.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이야, 쿠니키다군. 좀 늦었네?"

"…있었나."

"뭐, 내가 달리 갈 곳이 어디 있다고. 안 그래, 란포씨?"


어깨를 으쓱이고는 빙긋이 웃으며 말하는 다자이를 잠시 노려본 쿠니키다는 시선을 돌려 란포에게 그간의 일을 보고했다. 대량발생한 구울은 뱀파이어, 카지이 모토지로의 소행이었으며 그를 처치한 것은 다자이였다는 보고에 란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고를 하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쿠니키다는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뱀파이어가 하나 타고 있었습니다."

"…뱀파이어가?"

"주홍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였습니다."

"흐음…."

"…화장품 냄새가 났어요."


갑자기 끼어든 아츠시의 말에 표정이 가장 먼저 변한 건 다자이였다. 주황색 머리카락, 푸른색 눈, 그리고 화장품 냄새. 그 세 단어에서 떠오르는 존재는 딱 하나 뿐이었다. 다자이의 눈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에게서 피어나오는 무시무시한 살기에 쿠니키다와 아츠시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란포는 팔꿈치로 다자이를 가볍게 건드리며 두 사람에게는 나가보라고 손짓을 했다. 고개를 꾸벅이고 나가는 두 사람을 보던 란포는 그대로 다자이에게 곁눈질을 했다.


"아아, 미안해, 란포씨. 나도 모르게 그만."

"…엄청 흥분했네. 누군데 그래?"

"음, 오래된 친구지. 아주 오래된."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는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새로 우려낸 홍차에 각설탕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하나, 둘…. 퐁, 퐁. 가볍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찻잔을 바라보던 다자이는 티스푼을 들어 어느새 가득차버린 각설탕을 녹여내기 시작했다. 란포는 턱을 괴고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조용히 깃펜을 들어 서류에 서명을 하기 시작했다. 묘하게 고요한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