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란]
석류. #1
연령반전, 공상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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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의 도발에 아쿠타가와는 입술을 짓씹고는 손을 공중에서 휘저어 다자이의 주변을 감싸듯 창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다자이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각이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촘촘히 자신을 둘러싼 창을 보던 다자이는 작게 감탄사를 뱉고는 해보라는 듯 아쿠타가와를 보며 웃었다. 그의 웃음에 미간을 더 좁힌 아쿠타가와는 그대로 주먹을 쥐어 창을 다자이에게 내리꽂았지만, 그 어떤 것도 다자이에게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바닥으로 부서져내린 조각들을 발로 흩어 치우면서 다자이는 애석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아아, 자네의 공격으로는 역시 죽을 수 없구나."
"다자이씨. …새 프로젝트가 시작될 겁니다."
"응, 알고 있어."
"…모리 박사님이, 돌아오시라고."
"나를?"
"…란포씨도."
"으음, 그건 무리네. 둘 다 돌아가지 않을거야."
돌아갈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애초에 그 곳을 빠져나오지 않았겠지.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는 아쿠타가와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아쿠타가와는 몇 발짝 물러나며 다시 그에게 창을 겨누었지만 창을 내려꽂지는 않았다. 다자이는 그런 아쿠타가와를 보다가 가볍게 그를 스쳐가면서 어깨를 두드렸다. 다자이의 손이 아쿠타가와의 어깨에 닿은 것과 동시에 창은 다시금 부서져내렸다. 아쿠타가와는 다급하게 손을 뻗어 다자이의 소매를 잡았지만, 그는 그저 무심하게 손을 들어서 그의 손을 떼어놓고는 나중에 또 보자고 인사를 하며 등을 돌린 채 철책을 빠져나갔다. 아쿠타가와는 한숨을 쉰 채 이어폰을 꽂고는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짧은 신호 뒤에 전화를 받은 상대에게 아쿠타가와는 간단한 말로 실패를 전했다. 전화 상대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그만 철수하라고 말했다.
한편, 다자이를 뒤로 하고 먼저 집으로 향했던 란포는 문 앞에서 익숙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언밸런스하게 잘린 앞머리에 검은색 브릿지가 인상적인 청년은 다소 어색한 몸짓으로 란포에게 인사를 건넸다. 란포는 그를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문을 열고 그를 집안으로 들였다. 란포를 따라 들어온 청년은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란포가 자리를 권하자 그제서야 소파에 앉았다. 냉장고를 열어서 주스를 따라온 란포는 청년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그의 앞에 잔을 내려놓고 청년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래서, 여기까진 무슨 일이야, 아츠시?"
"말 안해도 아시죠…?"
"그 얘기라면 거절할건데. 나도, 다자이씨도 돌아가진 않아."
"하지만, 모리 박사님이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응, 알고 있어."
"이번에도 많은 아이들이 고통받을 거예요!"
"그래서?"
"그 아이들을 도와주세요!"
"네가 하면 되잖아."
"저 혼자로는 무리예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츠시를 녹색의 눈동자로 지긋이 훑은 란포는 무심하게 유리잔을 들어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내려놓으며 아츠시와 시선을 마주했다. 자신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란포의 눈빛에 잠시 움찔한 아츠시는 곧 고개를 내젓고는 주먹을 꾹 쥔 채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고 했다. 그 행동을 막은 것은 란포였다. 란포는 소파에 몸을 푹 묻고 앉아서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상당히 이기적인 주문이네. 모리 박사에게 너 혼자 힘으로 대항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건 칭찬해줄게.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너는 그 자리에 있기를 선택했잖아? 그러면 더 이상 나간 사람에게 매달리지 마. 그 안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도 다하든가. 나나 다자이씨는 박애주의자가 아니라서 네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거든."
"…모리 박사님은."
"안 되면 힘으로라도 데려오라고 했겠지."
"…네."
"한 판 붙을래?"
"그, 그런 생각으로 온 건 아니에요!"
"말로도 설득 실패, 힘을 쓸 생각도 없고. 협상자로는 형편없네, 아츠시."
"…윽, 그, 그렇지만!"
"얘기는 이미 끝났어. 다자이씨가 오기 전에 가는 게 좋아. 난 얼마든지 이 상황을 네게 불리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알겠어요."
"멀리 나가진 않을게. 츄야씨도 있던 것 같은데 안부 전해주고."
"…네."
아츠시는 떨떠름하게 답하고는 일어나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문을 향해 걸어갔지만, 먼저 움직인 것은 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란포의 뒷목을 잡았다. 목을 압박해 들어오는 느낌에 란포는 콜록거리며 남자의 손을 때렸지만, 그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란포의 목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남자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조금 뒤 남자는 자신의 명치께에 닿는 총구에 혀를 차고 란포의 목을 놓았다. 란포는 총을 거두지 않은 채 몸을 틀어 남자를 보며 졸렸던 목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소중한 피부에 멍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래요, 츄야씨? 보기보다 잔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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