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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03.08 [다자란] 석류 #Prologue
2017. 3. 13. 01:06

[다자란]

석류. #1

연령반전, 공상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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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의 도발에 아쿠타가와는 입술을 짓씹고는 손을 공중에서 휘저어 다자이의 주변을 감싸듯 창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다자이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각이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촘촘히 자신을 둘러싼 창을 보던 다자이는 작게 감탄사를 뱉고는 해보라는 듯 아쿠타가와를 보며 웃었다. 그의 웃음에 미간을 더 좁힌 아쿠타가와는 그대로 주먹을 쥐어 창을 다자이에게 내리꽂았지만, 그 어떤 것도 다자이에게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바닥으로 부서져내린 조각들을 발로 흩어 치우면서 다자이는 애석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아아, 자네의 공격으로는 역시 죽을 수 없구나."

"다자이씨. …새 프로젝트가 시작될 겁니다."

"응, 알고 있어."

"…모리 박사님이, 돌아오시라고."

"나를?"

"…란포씨도."

"으음, 그건 무리네. 둘 다 돌아가지 않을거야."


돌아갈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애초에 그 곳을 빠져나오지 않았겠지.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는 아쿠타가와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아쿠타가와는 몇 발짝 물러나며 다시 그에게 창을 겨누었지만 창을 내려꽂지는 않았다. 다자이는 그런 아쿠타가와를 보다가 가볍게 그를 스쳐가면서 어깨를 두드렸다. 다자이의 손이 아쿠타가와의 어깨에 닿은 것과 동시에 창은 다시금 부서져내렸다. 아쿠타가와는 다급하게 손을 뻗어 다자이의 소매를 잡았지만, 그는 그저 무심하게 손을 들어서 그의 손을 떼어놓고는 나중에 또 보자고 인사를 하며 등을 돌린 채 철책을 빠져나갔다. 아쿠타가와는 한숨을 쉰 채 이어폰을 꽂고는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짧은 신호 뒤에 전화를 받은 상대에게 아쿠타가와는 간단한 말로 실패를 전했다. 전화 상대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그만 철수하라고 말했다.


한편, 다자이를 뒤로 하고 먼저 집으로 향했던 란포는 문 앞에서 익숙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언밸런스하게 잘린 앞머리에 검은색 브릿지가 인상적인 청년은 다소 어색한 몸짓으로 란포에게 인사를 건넸다. 란포는 그를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문을 열고 그를 집안으로 들였다. 란포를 따라 들어온 청년은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란포가 자리를 권하자 그제서야 소파에 앉았다. 냉장고를 열어서 주스를 따라온 란포는 청년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그의 앞에 잔을 내려놓고 청년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래서, 여기까진 무슨 일이야, 아츠시?"

"말 안해도 아시죠…?"

"그 얘기라면 거절할건데. 나도, 다자이씨도 돌아가진 않아."

"하지만, 모리 박사님이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응, 알고 있어."

"이번에도 많은 아이들이 고통받을 거예요!"

"그래서?"

"그 아이들을 도와주세요!"

"네가 하면 되잖아."

"저 혼자로는 무리예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츠시를 녹색의 눈동자로 지긋이 훑은 란포는 무심하게 유리잔을 들어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내려놓으며 아츠시와 시선을 마주했다. 자신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란포의 눈빛에 잠시 움찔한 아츠시는 곧 고개를 내젓고는 주먹을 꾹 쥔 채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고 했다. 그 행동을 막은 것은 란포였다. 란포는 소파에 몸을 푹 묻고 앉아서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상당히 이기적인 주문이네. 모리 박사에게 너 혼자 힘으로 대항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건 칭찬해줄게.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너는 그 자리에 있기를 선택했잖아? 그러면 더 이상 나간 사람에게 매달리지 마. 그 안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도 다하든가. 나나 다자이씨는 박애주의자가 아니라서 네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거든."

"…모리 박사님은."

"안 되면 힘으로라도 데려오라고 했겠지."

"…네."

"한 판 붙을래?"

"그, 그런 생각으로 온 건 아니에요!"

"말로도 설득 실패, 힘을 쓸 생각도 없고. 협상자로는 형편없네, 아츠시."

"…윽, 그, 그렇지만!"

"얘기는 이미 끝났어. 다자이씨가 오기 전에 가는 게 좋아. 난 얼마든지 이 상황을 네게 불리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알겠어요."

"멀리 나가진 않을게. 츄야씨도 있던 것 같은데 안부 전해주고."

"…네."


아츠시는 떨떠름하게 답하고는 일어나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문을 향해 걸어갔지만, 먼저 움직인 것은 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란포의 뒷목을 잡았다. 목을 압박해 들어오는 느낌에 란포는 콜록거리며 남자의 손을 때렸지만, 그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란포의 목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남자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조금 뒤 남자는 자신의 명치께에 닿는 총구에 혀를 차고 란포의 목을 놓았다. 란포는 총을 거두지 않은 채 몸을 틀어 남자를 보며 졸렸던 목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소중한 피부에 멍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래요, 츄야씨? 보기보다 잔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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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란] 석류 #Prologue  (0) 2017.03.08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7. 3. 8. 00:58

[다자란]

석류. 프롤로그

연령반전 + 공상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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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정부기관 산하의 연구소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이미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 인명피해는 없었다. 뉴스에서는 지반이 약해서 지진에 무너진 것이라고 했지만, 그날 지진계가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은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오래된 약품들 때문에 주변이 오염될 우려가 있으니 향후 십 년 간은 사람의 출입을 금지한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연구소 주변에는 높은 철책이 세워졌고, 그 앞의 문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걸렸지만 그 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명목상 달아둔 감시카메라가 전부였지만 그조차도 점검을 한 지 오래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런 폐허 속으로 숨어든 사람이 둘 있었다.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빠른 걸음으로 철책을 넘어 들어갔다. 절그럭, 가볍게 흔들린 철책 너머에서 콘크리트 파편이 걷어차이는 소리가 났다.



―싫어하는 것.

  주사, 약, 실험, 쥐, 벌레, 생명.


―좋아하는 것.

   너

폐허가 된 연구소의 벽에 새겨진 작은 글씨를 발견한 남자는 쪼그리고 앉아서 카메라에 글씨를 담았다. 그리고는 주변의 파편을 대충 발로 걷고 있는 다른 청년에게 쪼르르 달려가 카메라에 담긴 화면을 보여주었다. 청년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남자가 사진을 찍은 벽으로 저벅저벅 걸어와 그 사이에 손에 집은 콘크리트 파편으로 벽을 내려찍었다. 청년의 행동에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냐며 청년을 뒤에서 끌어안았지만 곧 청년의 주먹에 턱을 얻어맞고는 두어 걸음 물러났다.


"다자이씨, 성희롱으로 고소할거야."

"…우리 사이에 이러기야?"

"응."

"아아, 란포군은 정말 냉정하네."

"그러니까 왜 그런 걸 가져와."

"하지만 어릴 때의 란포군이 귀엽잖아? 응?"

"퍽이나."


란포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자이를 슬쩍 밀어내고는 아직 건물의 형태가 남아있는 지하로 걸음을 옮겼다. 대부분의 중요 자료는 지하실에 보관하고 있었을 테니까. 더이상 전류도, 보안장치도 통하지 않는 철문을 보던 란포는 자신의 뒤를 따라 내려오는 다자이를 쳐다보다 문을 가리켰다. 그러자 다자이는 알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고는 살짝 숨을 들이마시고 발을 들어 철문을 걷어찼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나간 문을 가볍게 뛰어넘은 란포는 주변을 둘러보다 비상 전원을 발견하고는 스위치를 눌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은 전력이 돌아가며 마더컴퓨터에 빛이 들어왔다. 우우웅, 묵직한 팬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기동한 화면을 바라보던 란포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어 눈 앞에 보이는 카드 슬롯에 꽂았다. 철컥, 카드가 맞물리는 소리에 다자이가 몇 개의 커맨드를 입력하자, 화면에 하얀 글씨가 떠올랐다.


[자료를 전부 삭제하시겠습니까?]

yes.


다자이가 짧은 단어를 입력하고 엔터를 누르자, 마더컴퓨터에서 분주하게 데이터가 지워지는 소리가 났다. 이제 몇 군데 남았더라?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자이가 기지개를 켤 즈음, 란포가 그에게 기대서는 핸드폰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 광고를 하나 발견하고는 내밀었다. 국립 영재교육원. 그럴듯한 슬로건을 내걸고, 제법 번듯한 건물을 배경에 깔아둔 광고에 다자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더니. 다자이의 표정을 흘끗 살핀 란포는 가만히 그의 볼을 토닥이고는 핸드폰의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어떻게 할거야?"

"글쎄? 얼마나 갈 거라고 생각해?"

"억지로 버텨서 삼 년. 성과도 잘 안 나올거고."

"그럼 이번엔 자문위원으로만 들어갈까."

"하아? 목표는 달성했잖아?"

"란포군이 좀처럼 내가 원하는 걸 해주지 않는걸. 다자이씨는 슬퍼요."

"……그냥 죽어."

"그러니까, 자네가 해달라니까."

"그건 싫은데."


가벼운 말다툼을 하면서 데이터가 전부 지워지고 천천히 점멸되어가는 마더컴퓨터의 빛을 보던 두 사람은 마침내 모든 것이 암전되고서야 건물을 나섰다. 데이터가 전부 소멸되는 데 제법 긴 시간이 걸려, 빛을 보며 들어갔던 두 사람을 맞이한 것은 어두워지는 하늘이었다. 저녁은 어떻게 할래? 앞서가는 란포에게 묻던 다자이는 걸음을 멈추고 날아오는 날카로운 검은 창을 손으로 쳐냈다. 검은 창은 다자이의 손에 닿자마자 형체도 없이 부서져버렸다. 란포는 검은 창이 날아온 쪽을 보다가 가볍게 혀를 찼고, 다자이는 질린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놈의 인기는 도무지 사그라들지 않는단 말이야."

"그럼, 다자이씨, 열심히 해 봐."

"잠깐, 란포군. 어딜 가는거야?"

"집."

"나는?"

"저거 수습해야지. 저녁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하아, 냉정해, 정말로."

"내가 다자이씨한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이거든?"

"으응, 고마워서 눈물이 날 정도야, 란포군."

"그럼 뽀뽀라도 해줄까?"

"진짜로?"

"이기고 오면."


그렇게 말한 란포는 다자이가 입술을 비죽이 내민 것을 보다가 가볍게 손키스를 날리고는 여유롭게 걸어갔다. 그런 란포의 뒷모습을 보던 다자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검은 창을 날린 상대를 쳐다보았다. 다자이와 시선이 마주한 그 순간, 공중에서 늘어난 검은 창은 다시 다자이를 향해 쏟아졌지만 다자이는 아무 타격도 입지 않았다. 공중에서 부서져 내리는 파편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공터를 울렸다. 쳇.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혀를 차는 상대를 본 다자이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다가 피식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직도 이 정도 실력 밖에 안 되나, 아쿠타가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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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