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스트레이독스] 그대의 마지막이 억울하지 않도록
[문호스트레이독스] 그들과 고양이와 사건과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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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오랜만에 비번인가 했더니."
란포는 입술을 비죽이 내밀고는 창고에 들어섰다. 아츠시의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 쿠니키다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란포, 그리고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 덕분에 좁은 창고는 금세 가득찼다. 시체에게 다가간 란포는 조심스럽게 조의를 표하고는 바닥에 누워있는 시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체는 외상이 거의 없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사인은 질식사였다. 그것도 독한 연기로 인한 질식사. 이 정도의 좁은 공간에, 이 습도와 온도, 그리고 열리지도 않는 작은 창문. 사람을 독성이 가득한 연기로 질식시켜 죽이기엔 충분한 조건이었다.
"자네들이 발견하기 전엔 다른 인기척은 없었고?"
"네, 가게 문이 잠겨있었습니다. 지나치게 조용했죠."
"열고 들어와서도 아무도 없어서 찾아다니던 중에 발견한 거예요."
어떻게 문을 열었는지에 대한 말은 묻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래, 아무도 없었단 말이지. 하지만 창고까지 접근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주변으로 탐문조사를 나갔던 경찰관이 가지고 왔다. 사장은 두 명의 아르바이트를 두고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의 남자와 다소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고 있는 여자였다. 편의상 남자는 A씨, 여자는 B씨라고 부르기로 하자. 둘 다 사장하고는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갈등은 없었다. 하지만 사장의 사망 소식에도 둘 다 놀라운 기색은 없었다고 한다.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는 것 처럼.
"피해자는 평소에 호흡기 질환이 있었다는 것 같습니다."
"용케도 그 상태로 펫숍을 했네요. 호흡기면 동물을 키우기 힘든 거 아닌가요?"
"뭐, 처음부터 있었던 병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으니까 말이지?"
"그럼 나중에 생겼다는 건가요?"
"체질은 바뀌기도 하는 법이니까. 천식은 아닌 것 같고. 호흡기는 못 봤거든."
"…그렇군요."
"뭐, 그건 그렇고, 두 사람은 데려왔어?"
경찰의 얘기를 듣고서 서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던 그들의 말을 끊고 란포가 물었다. 그 말에 경찰은 일단 주요 참고인으로써 두 사람을 데려왔다고 했다. 곧 경찰의 뒤에서 머쓱한 표정으로 두 사람이 나타났다. 이걸로 필요한 요소는 전부 모인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란포는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안경을 장착하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능력
━ 『 초추리 』
머릿속에서 온갖 정보를 조합한 란포는 손가락을 범인에게 향했다. 란포가 지목한 범인은 A씨였다. 으레 범인들이 그렇듯, A씨는 범행을 부인했다. 자기는 사장을 죽일 이유가 없다면서 역성을 내는 그에게 란포는 설명을 시작했다. 피해자의 사인은 질식사. 입가에 있는 거품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사용한 물건은 락스와 세정제. 어디에서나 흔히 구할 수 있는 청소 도구이며, 이 가게에도 있고 청소하기엔 좋으나 잘못 섞으면 치명적인 연기를 발생시키는 것이었다.
"그, 그런 거라면 제가 아니라 B씨도 충분히 가능하다고요!"
"뭐, 단순히 질식사만 시킬거라면 말이지."
"…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그냥 질식사한 게 아니야. 처음에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았거든."
자기 관자놀이의 조금 윗부분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면서 그는 말했다. 그제야 눈에 띈 것이지만, 사장의 관자놀이 근처에 아주 약간 피가 흘러 굳어있었다. 난 미처 몰랐었는데. 다자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란포의 말을 마저 들었다.
"여기쯤 말이야. 알겠어? 그리고 사장은 이 좁은 공간에 방치된 거야. 범행시각은 오픈시간이 조금 지나서. 열기도 전부터 불이 켜있다면 누구나 의심을 하게 될 테니까. 자네는 쓰러진 사장을 창고에 방치하고 세제와 락스를 한번에 뿌리고는 문을 닫았어. 틈새를 메울 필요는 없었겠지. 이미 문에 문풍지가 붙어있었으니까. 사장의 꼼꼼한 성격 덕분에 완벽한 밀실이 생겨버린 거야. 자네에게는 천운과 같았겠지."
"어디까지나 그건 추측일 뿐이잖아요? 증거를 대세요!"
"증거? 증거라."
A의 말에 란포는 살짝 모자를 고쳐쓰고는 웃음을 멈추고 그를 마주보았다. 란포의 눈빛에 A가 움찔하자 그는 그게 기분이 좋은 듯 샐쭉 웃었다. 그리고는 A의 앞으로 걸어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A는 갑작스런 란포의 행동에 갈피를 못 잡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란포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A를 채근했다.
"왜 그래, 악수 몰라?"
"아, 악수요…."
그리고 그가 내민 손은 왼손이었다. 란포는 그 손을 잡지 않은 채 자신의 손도 거두지 않고 그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악수는 상대방과 같은 쪽 손을 내밀어야 할 수 있는 게 상식인데 어째서 그는 구태여 반대쪽 손을 내밀었는가?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란포가 오른손을 내밀기를 요구하자 A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오른손을 강제로 잡아챈 것은 돗포였다. 그의 힘에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온 A의 오른손 바닥은 약간 붉게 부어올라 있으며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는 얼룩이 져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네. 사장을 죽이려고 작업을 할 때 세제가 튀었겠지. 티가 안 날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작업했던 데 근처의 벽면에는 얼룩이 있었거든. 가렵지? 병원에 가기도 전에 불려왔을테니까."
"이, 이건… 습진입니다!"
A는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란포는 그런 그를 보며 포기할 줄을 모른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란포가 지적한 증거를 본 A는 무너져 내렸다. 란포는 사장이 입고 있던 앞치마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게 했다. 경찰이 그의 지시에 따라 꺼낸 것은 살짝 울어버린 가죽 수첩과 적금통장이었다. 가죽 수첩은 가게의 매출내역이 적혀있는 것이었다. 매일 조금씩 차이나는 금액이 붉은 펜으로 적혀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A씨는 평소에 조금씩 가게의 돈을 횡령하고 있었고, 그걸 사장이 눈치챘던 것 같다. 다만 그가 알지 못했던 것은 사장이 자신을 불러낸 이유였다.
"…이 통장은…."
"보는대로 적금 통장이지. A씨 앞으로 되어있고."
"…사장님은…이걸…주시려고?"
"뭐, 주기도 전에 잠복해있던 당신에게 얻어맞고 쓰러졌지만 말이야."
"…흑, 흐흑."
아마도 두 사람에겐 말하지 않고 나중을 위해 돈을 조금씩 모아뒀던 것 이겠지. 퇴직할 때 줄 생각이었던 거야. 좋은 사장님이었네. 란포의 말을 들은 A는 바닥에 쓰러져 오열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를 체포해 간 경찰에게 들은 바로는 A씨는 도박을 즐겨 하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적은 금액만 하던 것이 맛을 들리니 월급을 전부 털어넣게 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가게의 돈을 조금씩 빼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사장은 그것을 눈치챘고, 이제 그만 그를 도박에서 손을 떼게 도와주고 싶었지만 잘릴 것이라고 오해를 한 그에게 역습을 당했던 것이다.
"참…안타까운 일이네요."
"뭐, 오해는 언제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니까."
"그.것.보.다. 나를 여기까지 불렀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접은 하겠지? 난 비싸다고?"
"뭘 원하십니까?"
"흠, 아까부터 고양이를 안고 있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 맛있는 게 좋겠어."
"그거라면 근처에 괜찮은 불고기집을 알고 있습니다."
"오호, 불고기. 괜찮네."
쿠니키다의 말에 만족한 듯 란포는 가게로 안내하라며 쿠니키다의 등을 밀었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떠밀려 길을 안내하는 그의 뒤로 란포가 따라붙었고, 아츠시와 다자이는 조금 뒤에서 그들을 따라갔다. 여전히 참고도 안 될 정도로 놀라운 란포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거리를 걸어가는 그들의 뒤로 하늘이 조금씩 붉게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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