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4. 00:59

[문호스트레이독스] 그대의 마지막이 억울하지 않도록


[문호스트레이독스] 그들과 고양이와 사건과 에서 이어집니다.

 ▷ http://eprisdelle.tistory.com/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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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오랜만에 비번인가 했더니."


란포는 입술을 비죽이 내밀고는 창고에 들어섰다. 아츠시의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 쿠니키다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란포, 그리고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 덕분에 좁은 창고는 금세 가득찼다. 시체에게 다가간 란포는 조심스럽게 조의를 표하고는 바닥에 누워있는 시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체는 외상이 거의 없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사인은 질식사였다. 그것도 독한 연기로 인한 질식사. 이 정도의 좁은 공간에, 이 습도와 온도, 그리고 열리지도 않는 작은 창문. 사람을 독성이 가득한 연기로 질식시켜 죽이기엔 충분한 조건이었다.


"자네들이 발견하기 전엔 다른 인기척은 없었고?"

"네, 가게 문이 잠겨있었습니다. 지나치게 조용했죠."

"열고 들어와서도 아무도 없어서 찾아다니던 중에 발견한 거예요."


어떻게 문을 열었는지에 대한 말은 묻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래, 아무도 없었단 말이지. 하지만 창고까지 접근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주변으로 탐문조사를 나갔던 경찰관이 가지고 왔다. 사장은 두 명의 아르바이트를 두고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의 남자와 다소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고 있는 여자였다. 편의상 남자는 A씨, 여자는 B씨라고 부르기로 하자. 둘 다 사장하고는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갈등은 없었다. 하지만 사장의 사망 소식에도 둘 다 놀라운 기색은 없었다고 한다.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는 것 처럼.


"피해자는 평소에 호흡기 질환이 있었다는 것 같습니다."

"용케도 그 상태로 펫숍을 했네요. 호흡기면 동물을 키우기 힘든 거 아닌가요?"

"뭐, 처음부터 있었던 병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으니까 말이지?"

"그럼 나중에 생겼다는 건가요?"

"체질은 바뀌기도 하는 법이니까. 천식은 아닌 것 같고. 호흡기는 못 봤거든."

"…그렇군요."

"뭐, 그건 그렇고, 두 사람은 데려왔어?"


경찰의 얘기를 듣고서 서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던 그들의 말을 끊고 란포가 물었다. 그 말에 경찰은 일단 주요 참고인으로써 두 사람을 데려왔다고 했다. 곧 경찰의 뒤에서 머쓱한 표정으로 두 사람이 나타났다. 이걸로 필요한 요소는 전부 모인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란포는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안경을 장착하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능력

          ━ 『 초추리 』


머릿속에서 온갖 정보를 조합한 란포는 손가락을 범인에게 향했다. 란포가 지목한 범인은 A씨였다. 으레 범인들이 그렇듯, A씨는 범행을 부인했다. 자기는 사장을 죽일 이유가 없다면서 역성을 내는 그에게 란포는 설명을 시작했다. 피해자의 사인은 질식사. 입가에 있는 거품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사용한 물건은 락스와 세정제. 어디에서나 흔히 구할 수 있는 청소 도구이며, 이 가게에도 있고 청소하기엔 좋으나 잘못 섞으면 치명적인 연기를 발생시키는 것이었다.


"그, 그런 거라면 제가 아니라 B씨도 충분히 가능하다고요!"

"뭐, 단순히 질식사만 시킬거라면 말이지."

"…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그냥 질식사한 게 아니야. 처음에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았거든."


자기 관자놀이의 조금 윗부분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면서 그는 말했다. 그제야 눈에 띈 것이지만, 사장의 관자놀이 근처에 아주 약간 피가 흘러 굳어있었다. 난 미처 몰랐었는데. 다자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란포의 말을 마저 들었다. 


"여기쯤 말이야. 알겠어? 그리고 사장은 이 좁은 공간에 방치된 거야. 범행시각은 오픈시간이 조금 지나서. 열기도 전부터 불이 켜있다면 누구나 의심을 하게 될 테니까. 자네는 쓰러진 사장을 창고에 방치하고 세제와 락스를 한번에 뿌리고는 문을 닫았어. 틈새를 메울 필요는 없었겠지. 이미 문에 문풍지가 붙어있었으니까. 사장의 꼼꼼한 성격 덕분에 완벽한 밀실이 생겨버린 거야. 자네에게는 천운과 같았겠지."

"어디까지나 그건 추측일 뿐이잖아요? 증거를 대세요!"

"증거? 증거라."


A의 말에 란포는 살짝 모자를 고쳐쓰고는 웃음을 멈추고 그를 마주보았다. 란포의 눈빛에 A가 움찔하자 그는 그게 기분이 좋은 듯 샐쭉 웃었다. 그리고는 A의 앞으로 걸어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A는 갑작스런 란포의 행동에 갈피를 못 잡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란포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A를 채근했다.


"왜 그래, 악수 몰라?"

"아, 악수요…."


그리고 그가 내민 손은 왼손이었다. 란포는 그 손을 잡지 않은 채 자신의 손도 거두지 않고 그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악수는 상대방과 같은 쪽 손을 내밀어야 할 수 있는 게 상식인데 어째서 그는 구태여 반대쪽 손을 내밀었는가?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란포가 오른손을 내밀기를 요구하자 A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오른손을 강제로 잡아챈 것은 돗포였다. 그의 힘에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온 A의 오른손 바닥은 약간 붉게 부어올라 있으며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는 얼룩이 져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네. 사장을 죽이려고 작업을 할 때 세제가 튀었겠지. 티가 안 날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작업했던 데 근처의 벽면에는 얼룩이 있었거든. 가렵지? 병원에 가기도 전에 불려왔을테니까."

"이, 이건… 습진입니다!"


A는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란포는 그런 그를 보며 포기할 줄을 모른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란포가 지적한 증거를 본 A는 무너져 내렸다. 란포는 사장이 입고 있던 앞치마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게 했다. 경찰이 그의 지시에 따라 꺼낸 것은 살짝 울어버린 가죽 수첩과 적금통장이었다. 가죽 수첩은 가게의 매출내역이 적혀있는 것이었다. 매일 조금씩 차이나는 금액이 붉은 펜으로 적혀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A씨는 평소에 조금씩 가게의 돈을 횡령하고 있었고, 그걸 사장이 눈치챘던 것 같다. 다만 그가 알지 못했던 것은 사장이 자신을 불러낸 이유였다.


"…이 통장은…."

"보는대로 적금 통장이지. A씨 앞으로 되어있고."

"…사장님은…이걸…주시려고?"

"뭐, 주기도 전에 잠복해있던 당신에게 얻어맞고 쓰러졌지만 말이야."

"…흑, 흐흑."


아마도 두 사람에겐 말하지 않고 나중을 위해 돈을 조금씩 모아뒀던 것 이겠지. 퇴직할 때 줄 생각이었던 거야. 좋은 사장님이었네. 란포의 말을 들은 A는 바닥에 쓰러져 오열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를 체포해 간 경찰에게 들은 바로는 A씨는 도박을 즐겨 하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적은 금액만 하던 것이 맛을 들리니 월급을 전부 털어넣게 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가게의 돈을 조금씩 빼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사장은 그것을 눈치챘고, 이제 그만 그를 도박에서 손을 떼게 도와주고 싶었지만 잘릴 것이라고 오해를 한 그에게 역습을 당했던 것이다.


"참…안타까운 일이네요."

"뭐, 오해는 언제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니까."

"그.것.보.다. 나를 여기까지 불렀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접은 하겠지? 난 비싸다고?"

"뭘 원하십니까?"

"흠, 아까부터 고양이를 안고 있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 맛있는 게 좋겠어."

"그거라면 근처에 괜찮은 불고기집을 알고 있습니다."

"오호, 불고기. 괜찮네."


쿠니키다의 말에 만족한 듯 란포는 가게로 안내하라며 쿠니키다의 등을 밀었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떠밀려 길을 안내하는 그의 뒤로 란포가 따라붙었고, 아츠시와 다자이는 조금 뒤에서 그들을 따라갔다. 여전히 참고도 안 될 정도로 놀라운 란포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거리를 걸어가는 그들의 뒤로 하늘이 조금씩 붉게 번지고 있었다.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5. 23. 02:09

[문호스트레이독스] 그들과 고양이와 사건과


[문호스트레이독스] 에도가와 란포와 소동물 에서 이어집니다.

 ▷ http://eprisdelle.tistory.com/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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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정신없이 접시에 얼굴을 박고 우유를 핥고 있는 사이, 다자이가 돌아왔다. 그는 고양이를 보며 반색했지만 이내 쿠니키다에게 멱살을 잡혀 허공에 들리고 말았다. 조금 괴로운 숨을 뱉으며 다자이가 쿠니키다의 팔을 풀려고 노력하는 사이 고양이는 식사를 끝내고 사무실 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후두둑, 하고 종이가 떨어지는 소리에 쿠니키다가 다자이를 추궁하기를 멈추고 돌아본 때는 이미 늦어, 녀석은 사무실을 잔뜩 어지럽혀놓고 책상 위에 앉아있던 란포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이 녀석이…."


바닥에 흩어진 책과 종이를 보고 화를 내려는 쿠니키다를 막은 건 다자이였다. 저 작은 생물을 지금 다그쳐봤자 어차피 난장판이 된 사무실은 원래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침 타니자키 남매가 온 덕분에 사무실 정리는 좀 더 쉽게 할 수 있었다. 모두가 책을 옮기고 서류를 원위치 시켜놓을 때도 가만히 소동물을 쓰다듬던 란포는 혼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저기, 저기. 쿠니키다군."

"네?"

"이 아이가 먹을 것 좀 사다주지 않을래?"

"…먹을 것…을요?"

"그래, 아무리 임시라고는 해도 우유만 먹이면 탈 난다고? 그 정도도 모르는거야?"

"아뇨, 다녀오겠습니다."

"아, 제가 갈게요!"

"그럼 나도 따라갈까나♪"


그날따라 한가했던 탓인지, 두 사람이나 더 따라나가 버렸지만 란포에겐 크게 상관없었다. 그는 생각보다 촉감이 좋은 소동물의 털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한가로운 오후시간 보내기에 들어갔다. 애옹, 애옹. 고양이는 란포의 손길이 기분 좋은지 작은 울음소리를 내다 그의 품에서 잠들었다.


"너희들까지 따라 올 필요는 없었는데."


쿠니키다는 작게 혀를 차고 자연스럽게 따라붙은 두 사람을 보았다. 혼자 가는 편이 훨씬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길이었다. 애초에 다자이는 아무때나 강에 뛰어들어버리곤 하는 비상식적인 자살 매니아고, 아츠시는 특별히 문제는 없지만 혼자 가는 것 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이미 따라온 걸 돌려보낼 셈이냐고 따지는 다자이의 말에 돗포는 한숨을 내쉬고 펫숍으로 걸음을 향했다.


"이야, 오늘도 자살하기 좋은 날씨네~."

"다리에서 뛰어내리면 이번엔 절대 구하러 가지 않을거다. 일도 아니고."

"아아, 참으로 매정한 그대여~."

"…시끄러워."


한참 짜증을 내며 펫숍에 도착한 쿠니키다는 묘한 위화감에 문을 열기 직전에 손을 멈췄다. 이상하게 기척이 없었다. 불은 켜져있음에도 안이 지나치게 고요했다. 쿠니키다는 그대로 잠시 안을 살피다가 문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왼쪽으로 당겼다. 하지만 걸쇠가 걸려있는지 문은 열리지 않고 덜걱거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뭐야, 자리에 없는 건가?"

"…단순히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화장실이라도 간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그렇게 말하며 쿠니키다는 문을 몇번 더 움직여보았으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고 쿠니키다를 슥 밀어내더니 주머니에서 락픽을 꺼냈다. 이 녀석-사람-은 도대체 언제 이런 걸 갖추고 있었단 말이야? 라는 두 사람의 시선을 뒤로 한 채 다자이는 능숙하게 락픽을 이용해 문을 열었다. 펫숍 안에 머무는 것은 미묘한 정적이었다. 그들은 서로 흩어져서 펫숍의 주인을 찾기로 했다. 펫숍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정갈하게 정리 된 품목별 코너를 지나면 공용이긴 하지만 화장실이 있었고, 카운터의 뒤에는 창고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문은 조금 열려있었다.


"…저기요. 다자이씨, 쿠니키다씨."

"응? 뭐냐, 애송이."

"여기, 열려있어요."

"…좋아, 가보자."


창고로 가는 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간 창고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조금 더 창고를 뒤져보자고 결론을 내린 그들은 한 걸음씩 움직였다. 바스락, 바스락. 잔뜩 쌓여있는 물품과 상자들을 한참 뒤지고 있을 때, 아츠시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창고를 가득 채운 비명소리에 달려간 다자이와 쿠니키다가 본 것은 싸늘하게 식은 주검이었다. 오, 신이시여. 쿠니키다는 아츠시에게 경찰을 부르라고 지시하면서 란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쿠니키다군?"

"네, 란포씨. 잠깐 이쪽에 와주셔야겠습니다."

"뭐야, 사건이라도 일어난거야?"

"…네."


백주대낮에 사건이라니. 아니, 뭐 원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게 사건인 법이지만. 란포는 품에서 잠들어있던 고양이를 가만히 두고 일어나 책상에서 내려왔다. 옷에 묻은 털을 툭툭 털어 정리하면서 타니자키 남매에게 고양이를 돌봐줄 것을 부탁하며 란포는 다시 한 번 그 녀석을 쳐다보고는 중얼거렸다.


"넌 무슨 마네키네코냐…."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5. 22. 23:27

[문호스트레이독스] 에도가와 란포와 소동물


[문호스트레이독스] 나카지마 아츠시와 고양이 에서 이어집니다.

 ▷ http://eprisdelle.tistory.co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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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주변에서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탐정사 안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손에 꼽으라고 하면 에도가와 란포일 것이다. 그건 본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느긋하게 의자에 걸터앉아 흥미로운 일이 없는가 사탕을 입에 물고 인터넷을 뒤졌다. 하지만 가끔은 인터넷 상의 소문보다 현실이 더 재미있는 법이다. 요란한 소리가 문 밖에서 들렸다. 란포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관심을 가졌을 즈음엔 그 정체는 이미 눈 앞에 나타나 있었다. 나카지마 아츠시와 그의 손에 들려있는 난동을 부리고 있는 작은 생물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야, 화려한 몰골이네."


란포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문자 그대로였다. 아츠시의 얼굴에는 몇 개의 손톱자국이 나 있었으며, 고양이는 그의 손에 들린 지금도 벗어나려고 그를 깨물고 할퀴고 있었다. 손이 가장 엉망임에도 그는 그 고양이를 놓지 않았다. 미련하긴, 나라면 벌써 버렸을텐데. 작은 동물의 보기보다 센 공격에 미간을 찌푸리고 인상을 쓰면서도 그걸 그대로 갖고 들어온 아츠시는 곧 쿠니키다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어이, 애송이. 그건 왜 들고 온 거냐. 아니, 질문을 바꾸지. 어떻게 들고 온 거냐?"

"어떻게고 자시고…아얏. 다자이씨가 멋대로 얘를 제 방에 뒀다고요."

"…다자이 놈."


짜증이 섞인 쿠니키다의 목소리는 지금은 잠시 나가있는 예의 자살매니아에게 향했다. 그 와중에도 고양이는 끊임없이 아츠시를 공격해 결국 그는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고양이를 놓쳤다. 그의 손에서 빠져나간 고양이는 구석으로 도망가 꼬리를 잔뜩 세우고 하악질을 해댔다.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아츠시의 안에 있는 그것 때문이겠지. 그것, 호랑이. 여러가지로 시선을 모으고 있는 호랑이니까. 게다가 제법 대단한 놈인 것 같고. 저런 소동물이 떠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나저나 어떡하죠? 얘가 너무 겁을 먹어서 전 손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다시 돌려놓으라고 했는데."

"위치를 모른다고 하시잖아요…."

"…퍽이나 모르겠군."

"…파고 들어보기나 할 걸 그랬네요."

"이제 와서 떠올려도 이미 늦었지. 이걸 어쩌나."

"…누구 맡아줄 분 없을까요?"

"지금은 하루노씨 밖에 떠오르지 않는데…사장님과 함께 출장중이다."


쿠니키다의 말에 화색을 보였던 아츠시가 금방 처진다. 알기 쉽다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며 구석의 고양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연한 갈색 줄무늬가 있는 녀석은 그리 나이가 많아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작은 녹색 눈으로 아츠시쪽을 쳐다보다가 주변을 살펴보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고양이가 란포와 눈을 마주치기 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연히 마주친 눈은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옹, 애옹.


녀석이 애타게 울었다. 아츠시는 잔 상처를 치료하면서 고양이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어지간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고양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란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런 쪽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모든 생명체의 행동에는 의도가 있고 그것은 반드시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대개 그것은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이었기에 란포는 많은 의미없는 행동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소동물은 지금 그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앉아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던 란포는 턱을 문지르다 쿠니키다를 보았다.


"쿠니키다군. 얘한테 먹을 것 좀 주지 않을래?"

"…네?"

"아니, 뭐. 빗속에서 주웠다고 했잖아? 그 다자이가 뭐 제대로 된 음식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고."

"…아, 네."


일단 배고파보였으니까. 나도 참 이득없는 행동을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쿠니키다가 접시에 우유를 받아오는 사이에 란포는 그 소동물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달각, 바닥에 가볍게 내려진 접시에 담긴 하얀 것을 경계하듯 쳐다보다가 이내 혀를 내어 맛을 보는 모습이 의외로 귀여웠다.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5. 22. 19:12

[문호스트레이독스] 나카지마 아츠시와 고양이


▷ [문호스트레이독스] 쿠니키다 돗포의 '그것' 에서 이어집니다.

    http://eprisdelle.tistory.com/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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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아침 해. 오늘도 어쨌든 푹신한 이불 위에서 눈을 떴습니다. 안녕, 세상아. 나카지마 아츠시는 오늘도 느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기숙사는 아주 쾌적했다. 그, 작은 생물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생물은 처음엔 아무 기척이 없어서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느긋하게 하품을 하며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옷을 갈아입으려던 순간이었다. 분명히 혼자 지내고 있는 기숙사였는데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애옹.


아츠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어디서 들린 거지? 신경을 곤두세운 그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작은 생물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인 모양이었다. 옆엔 익숙한 글씨체로 '잘 부탁한다'고 써 있었다. 그 글씨체를 보는 순간 아츠시는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오~ 아츠시군."

"오, 가 아니예요! 이거 뭡니까!"

"이거? 아, 그거 말이지?"


전화기 너머에서 돌려온 유쾌한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젯밤에 비를 맞고 있는 작은 생명을 구해서 일단은 씻겨주고 말리긴 했는데 회사에 데려갔더니 쿠니키다는 다시 갖다 두라고 하고, 하지만 어제 너무 어두운 곳에서 주워서 기억도 잘 안 나고, 이 작은 생명을 버릴 수는 없어서 일단 회사에 둘까 했는데 쿠니키다가 절대 안된다고 강조를 해서 데려다 놓았단다. 이 사람이 진짜. 다자이의 말을 들은 아츠시는 짧게 한숨을 쉬고 물었다.


"그런데 왜 제 방이냐고요."

"그거 말야? 내가 고양이 알러지가 있어서, 무리야. 내 방에서 키우는 건."


절대 거짓말이다. 거짓말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확신하면서도 아츠시는 딱히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다자이는 사람이 약아서 웬만한 질문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버린다. 그래서 이 녀석을 어떻게 한담? 전화기를 끊고 아츠시는 한참을 꼬물거리는 녀석 앞에서 고민했다. 막 잠에서 깬 녀석이 수건에 볼을 부비적대고 몸을 일으키는 건 제법 귀여웠다.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 잠깐이라면 키워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눈을 뜬 녀석은 아츠시를 보자마자 털을 곤두세우고 구석으로 도망갔다.


"응? 왜 그래?"


몸을 낮추고 경계하듯 목을 울리는 작은 녀석의 앞에 아츠시는 양 손을 들고 쪼그려 앉았다. 지나친 경계 탓에 일단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고양이는 작은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아츠시를 노려보았다. 그리곤 몸을 움직이려는 듯 가만히 움찔거렸다. 그 모습에 다자이에게 쌓였던 불만은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애옹!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손톱이 자신에게 달려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5. 22. 01:27

[문호스트레이독스] 쿠니키다 돗포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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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키다 돗포의 아침은 규칙적이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일정한 시간 동안 샤워를 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내에 단장을 마치고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 단장의 마지막은 언제나 안경이었다. 시력이 썩 심각하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안경을 벗어도 어느 정도 거리까지는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의 시야는 언제나 '가정'의 상황처럼 흐릿하기만 할 뿐이었다. 쿠니키다 돗포는 자신의 안경을 좋아한다. 안경은 시야를 명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이상을 바라는 그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물건이었다.


자신의 미래 계획이 전부 들어있는 수첩을 품에 넣고 쿠니키다는 집을 나섰다. 아직 찬 새벽의 공기가 제법 좋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길을 걸으면 생각이 좀 더 명확하게 정리가 된다. 코를 간질이는 습한 공기가 이제 이 시기도 곧 끝날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사무실의 문 앞에 도착하는 것은 정확히 8시. 문을 여는 시간에 오차는 필요 없다. 오늘도 사무실이 난장판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예정된 범위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 좋은 아침."


아직까진 별 일이 없는 사무실의 모습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 사람이 늘어날 수록 어수선해지는 날이 많았으니까. 돗포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전원을 켰다. 보고서를 써내려 가는 건 막힘이 없었다. 여유롭게 이어지는 타자소리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이 여유가 얼마나 갈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계획대로였다.


"야-옹."

"…뭐냐, 이건."

"고양이에요~. 귀엽지?"


눈 앞에 불쑥 들이밀어진 분홍색 젤리에 쿠니키다는 인상을 썼다. 작은 발이 안경을 꾹꾹 누른다. 물론 고양이 자신의 의지는 아니다. 뒤에서 붙잡고 있는 건 다자이였으니까. 저 인간을 그냥 확. 쿠니키다는 손을 뻗어 다자이의 얼굴을 최대한 자신에게서 멀리 떼어내고 안경을 벗었다. 젠장, 자국이 남았잖아. 어차피 닦으면 사라질 것이었지만, 작은 생물의 발자국은 안경에 확실하게 남아버렸다. 얼굴이 눌린 채 무어라 웅얼거리는 다자이를 지긋이 노려보다가 그를 밀어낸 돗포는 안경을 닦으며 말했다.


"그거, 당장 주워온 자리에 돌려놔."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5. 21. 00:43

[문호스트레이독스] 다자이 오사무의 '그것'


 ※ 다소 날조가 있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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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의 공기는 언제나 습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뜨뜻미지근한 바람을 느끼며 목과 팔에 둘둘 감았던 붕대를 끊었다. 그리고 새로운 녀석을 손에 쥐고 다자이 오사무는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안에는 창백한 혈색의 남자가 있었다. 이어서 약간 구불구불한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에, 그것보단 조금 밝은 색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오래된 상처들이 보였다. 거친 밧줄에 긁혀 이미 딱지가 앉은 낡은 상처를 감추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더라? 새 붕대로 천천히 목을 감아나가면서 다자이는 새삼 옛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언제부터 죽기로 결심했는 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애석하게도 자살시도를 계속하는 것은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삶을 계속 이어가게 했다. 가끔 이대로 붕대로 목을 졸라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부러지지 않는 목이 죄어오는 것은 그렇게 달갑지 않았다. 손가락을 천천히 옮겨 목에 감긴 붕대를 마무리 하고는 손으로 옮겨갔다. 손은 혼자서 하기에는 조금 버겁지만 이미 익숙해진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붕대낭비장치 녀석아!!]


언젠가 쿠니키다가 외쳤던 말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새로운 붕대의 비닐을 벗겨내며 다자이는 피식 웃었다. 그때는 다소 과장되게 받아치긴 했지만 새삼 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풀어낸 붕대만 얼추 세 뭉치, 새로 묶는 붕대가 세 뭉치. 합이 여섯 뭉치. 가끔 전투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몇 개는 더 썼던 것도 같다. 천천히 엄지손가락을 지나 꼼꼼히 팔꿈치까지 붕대를 둘렀다. 가만히 움직임을 체크하고는 반대쪽도 감아나갔다. 새로운 린넨의 촉감이 가만히 팔에 감겼다.


"음, 이 정도면 됐어. 좋아, 그럼 오늘도 활기차게 자살해볼까?"


바닥에 늘어있는 붕대를 모아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옷을 하나하나 걸쳤다. 붕대에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기분이 좋다. 이럴 때 만큼은 이 도시의 습한 공기도 기분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여가며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