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스트레이독스]
뱀파이어 AU
망향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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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남아서 그곳 하늘에 뜨고
구름 멀리서 고요히 눈을 감고
보낸뒤에도 남은 서러움
살아도 눈을 감아도 또 너를 묻게하고
자우림, 망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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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카! 쿄카!!"
아츠시는 쿄카의 이름을 부르며 감옥 문을 흔들었다. 하지만 감옥 문은 잠깐 덜컹거리기만 했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쾅! 거칠게 창살을 내리치는 소리에 쿄카가 겨우 눈을 떴다. 그녀는 눈을 두어번 깜박이다 창살 너머로 보이는 아츠시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라는 생각이 표정에 전부 드러나 있었다. 아츠시는 자물쇠를 부술만한 물건을 찾아 주변을 살폈지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구색을 갖춰둔 감시용 책상 하나와 접이식 의자 뿐이었다. 저 의자라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아츠시는 의자를 덥썩 집어 철로 된 골조 부분을 자물쇠를 향해 내리쳤다. 쾅, 쾅! 연이어 커다란 소리가 아무도 없는 복도에 울렸다. 쿄카는 아츠시에게 거듭 그만두라고 얘기했지만 아츠시는 멈추지 않았다. 덜그럭, 얼마 안 가 내리치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망가진 자물쇠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간 아츠시는 쿄카를 묶어둔 사슬을 풀려고 했지만 사슬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이미 자물쇠를 부수느라 반쯤 망가져버린 의자는 곧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젠장, 어째서…!"
"아츠시…. 안 돼. 도망쳐!"
"무슨 말이야, 쿄카? 내가 어떻게 너를 두고 가."
"나한테서…. 나한테서 도망쳐!"
"못 가."
"지금 떨어지지 않으면, 내가 널 죽일지도 몰라…!"
쿄카의 눈빛은 공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에게서 보이는 공포는 전에 느꼈던 동질감이 있는 막연한 두려움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아츠시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슬을 끊어낼 수 없다면 통째로 뜯어내자고 생각한 아츠시는 벽과 사슬의 이음매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땀이 비오듯 흘렀지만 아츠시는 멈출 줄을 몰랐다. 단단한 벽돌을 공략하던 손에는 어느새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아츠시의 피 냄새에 쿄카는 혀를 깨물어서라도 정신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피냄새에 깨어나기 시작한 본능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슬에 매인 손을 뻗어 아츠시의 목을 움켜쥔 쿄카는 고통스러운 그의 숨소리를 무시한 채 고개를 움직여 그의 어깨를 물려고 했다. 아츠시는 반사적으로 있는 힘을 다해 쿄카의 이마를 누르며 버텼고, 쿄카의 날카로운 손톱은 아츠시의 목과 어깨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정신…차려, 쿄카!"
"…크르르르…."
아츠시의 목소리는 쿄카에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이미 광기에 물들어있었다. 피부를 파고 드는 손톱에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힘을 뺄 수는 없었다. 그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은 죽음이라는 것을 아츠시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이고 느꼈던 살기가 지금 눈 앞에 있는 쿄카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쿄카의 힘은 평소보다도 엄청났다. 몇 번인가 훈련을 할 때 검을 마주한 적은 있고, 힘을 뺀 적도 없지만 지금의 그녀의 힘은 그 때의 배 이상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뱀파이어의 각성이란 이런 건가? 이런 피가 내게도 흐르고 있어서 나는 그렇게 보통 인간들보다 강한 거였나?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나 싶더니, 곧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상처로 흘러드는 물에 아츠시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곧이어 다시 한 번,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 뒤에 이어지는 건 쿄카의 비명소리였다.
"아아아악!!!!"
"쿄카…!!"
"캬아아악!!"
절그럭거리는 사슬의 소리와 함께 쿄카는 괴로운 듯 비명을 질렀다. 물을 정통으로 맞은 피부는 희멀건 연기가 피어오르며 조금씩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쿄카에게 다가가려는 아츠시를 저지한 것은 낯익은 지팡이였다. 아츠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저지한 이를 쳐다보았다. 란포는 지팡이를 거두지 않은 채 주변의 상황을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가 이 곳을 알려줬는 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아키겠지. 얼굴을 감싼 채 비명을 내지르며 뒹굴던 쿄카를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보던 란포는 아츠시의 팔을 잡아서 일으키고는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진 침대에 데리고 가서 앉혔다. 얼마 안 가 쿄카의 숨소리는 안정되었고, 그녀는 푹 젖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미안해, 아츠시."
"…쿄카."
"나 참,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건만."
"왜, 이런 짓을 한 겁니까?"
"왜냐고?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란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분노에 찬 아츠시의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이즈미 쿄카는 지금 위험한 상태야. 각성이 진행 중이라고? 그 과정에서 훈련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하지? 란포는 기관의 책임자로써 자신이 져야할 많은 생명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츠시는 납득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 생명을 이렇게 잔인하게 묶어두어야 하는가? 웬만한 힘으로는 풀리지도 않는 사슬이었다. 란포는 다른 생명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쿄카를 감금했다. 이 상황을 참고 넘겨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아츠시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란포는 아츠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자신이 할 말을 할 뿐이었다.
"이즈미 쿄카는 각성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여기에 있을 거야."
"네? 그 각성이란 건 언제 끝나는데요?"
"나도 모르지. 문헌에서는 길면 일 년 정도 간다고 하는데."
"그럼, 일 년 내내 쿄카를 가두겠다고요?"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왜 말이 안 되지? 실제로 조금 전에 죽을 뻔 했으면서."
"…그건."
확실히 그랬다. 란포의 말에 반박을 할 수는 없었다. 란포가 오지 않았다면 자신은 벌써 죽었을 지도 모른다. 쿄카의 힘은 무서울 정도로 강했다. 란포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고 조금 피 냄새를 맡은 것만으로도 그 정도라고 말하며 쿄카를 쳐다보았다. 쿄카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깨가 작게 떨리는 걸로 보아 아마도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란포는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가볍게 톡톡 누르면서 아츠시를 곁눈질로 흘끗 보고 얘기를 꺼냈다. 이대로 쿄카의 곁에 있다가 그녀의 손에 죽던지, 그녀의 각성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던지. 그 말을 들은 아츠시는 심장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죽고 싶지 않아서 지금까지 함께 버텨왔건만, 지금은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녀의 손에 죽을 판이고, 각성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자니 그 전에 쿄카는 죽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은 뱀파이어에 대해 아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츠시는 주먹을 꾹 쥔채 물었다.
"…각성이 빨리 끝나는 방법은 없나요? 제가 읽었던 책에는 진정시키는 방법 정도 뿐이었어요."
"…그 책은 어디서 봤지?"
"예전에…. 도망치다가 우연히 들어간 폐가에서요."
"그래? 흠, 그렇단 말이지."
란포는 아츠시가 던진 질문에는 답을 주지 않은 채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통화버튼을 누른 그는 가만히 휴대폰의 통화가 연결될 때까지 생각에 잠겼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루시였다. 란포는 그녀에게 튼튼한 자물쇠를 하나 가져오라고 말하면서 아츠시를 보았다. 루시의 대답을 듣고 통화를 끊은 그는 아츠시에게 걸어가 가만히 그의 머리에 손을 얹어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맞췄다. 란포의 녹색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아츠시를 쳐다보았다. 아츠시는 왠지 모를 위압감에 마른 침을 삼켰다. 그 모습을 본 란포는 이내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난 그 방법을 다자이를 만나기 전까진 몰랐는데 말이야."
"…네, 네에."
"그 집의 위치는 기억하고 있나?"
"…아뇨, 그, 급하게 들어갔던 거라…."
"그럼 특징이라도 기억하고 있다면 말해보게."
"…녹색 지붕의 집이었어요. 담벼락엔 마른 담쟁이가 있었고…."
"다른 특징은?"
"아, 그 근처에…커다란 신사가 있었던 것 같아요."
"호오, 신사."
"…아마도, 이름이…센…소지."
아츠시의 대답을 들은 란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금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아까보다 빠르게 연결된 통화에 란포는 핸드폰을 귀에서 조금 떼고는 한참동안 쏟아지는 잔소리를 흘려 넘겼다.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기 시작한 잔소리의 주인공은 요사노였다. 잔소리를 쏟아내던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말을 멈추자 란포는 그제야 핸드폰을 가까이 대고 아츠시를 치료해주라는 말만을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아츠시에게 곧 아키가 이곳에 올테니 적절한 치료를 받으라고 하고는 쏜살같이 나가버렸다. 어디로 향하는 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지만, 그를 딱히 쫓을 생각은 없었다. 아츠시는 가만히 벽에 기대서 여전히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쿄카를 애처롭게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