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란]
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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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포는 의자에 푹 기대어 앉아 가만히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젖혔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다. 이따금씩 블라인드를 흔들어대는 바람이, 이제 봄이라는 것을 몸소 나타내고 있었다. 제법 따뜻해진 공기에 늘어지게 하품을 한 란포는 모자를 벗어 제 얼굴을 덮었다. 오늘따라 사무실이 조용하다. 전화조차 울리지 않는 고요함에 란포는 아마,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책상에 다리를 얹은 채 모자를 덮고 잠에 들어버린 명탐정을 깨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란하게 들어온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웅성거리는 목소리에 란포는 미간을 찌푸리며 슬며시 눈을 떴다. 아니나 다를까, 물에 푹 젖은 채로 들어온 남자가 수건을 뒤집어 쓰고 잔소리를 들으며 멋쩍게 웃고 있었다.
"아하하."
"웃음이 나오냐, 네놈은!? 너 때문에, 또, 일이! 내 일정이!!!"
쿠니키다도 참 매번 대단하지. 적당히 포기해버리면 될 것을. 적당히라는 개념의 정의가 어딘가 남다른 쿠니키다는 신경질적으로 다자이를 집어던지고는 자리에 앉아서 수첩을 펼쳤다. 저 수첩에는 온갖 종류의 계획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던가. 참 재미없는 삶이라고, 란포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 책상에 날아와 부딪친 채 일어날 줄을 모르는 남자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다자이는 물기가 채 닦이지 않은 모습으로 시선만 올려 란포와 눈을 마주치고는 웃었다.
"좋은 오후에요, 란포씨."
"오늘도 어디 매력적인 장소를 발견한 모양이네."
"네, 정말 끝내주더라고요. 같이 가보실래요?"
다자이의 말에 미간을 찌푸린 채 타자를 치던 쿠니키다가 란포씨에게 그런 것을 권유하다니 제정신이냐며 버럭댔지만, 란포는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러지 뭐. 그 말에 사무실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설마, 라는 생각들이 도는 표정들에 란포는 어깨를 으쓱이곤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며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다자이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카락에 달라붙어있는 벚꽃잎을 떼어냈다. 과연, 그런 거였군.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자판으로 손을 가져가던 쿠니키다는 란포의 다음 말에 행동을 멈췄다.
"그런고로, 다녀올게!"
"라, 란포씨?"
"왜, 뭔가 문제라도 있어?"
"아니, 그, 업무시간인데요…."
"에에, 오늘은 파업―. 명탐정님은 쉴 거야."
"네!?"
"어차피 지금 들어온 의뢰라고는 아츠시군이나 켄지, 타니자키정도면 처리할 수 있잖아? 가자, 다자이."
"어라, 저도 함께인가요?"
"감기 핑계를 대고 재채기를 할 심산이라면 길 안내를 하는 쪽이 낫지 않아?"
"…역시 란포씨."
못 당하겠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고 제게 내밀어진 작은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킨 다자이는 자연스럽게 란포를 문으로 안내하며 쿠니키다에게 윙크를 날렸다. 닫힌 문 너머로 무언가가 쓰러지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두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하늘은 푸르렀고, 하얀 구름은 유유자적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지만 춥지는 않았다. 란포는 다자이의 옷자락을 잡은 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 그를 보던 다자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란포를 끌어당겨 손을 강하게 잡았다. 란포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 작게 혀를 차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 젖잖아."
"아, 그럼 이따 제 방에서 말리고 가실래요?"
"…속셈이 너무 빤히 보여."
"그럼 안돼요?"
"안 된다고 한 적은 없어."
"후후."
가벼운 웃음소리에 란포는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늦췄다. 다리가 아프다는 무언의 신호에 다자이도 걸음을 늦추고 보폭을 맞췄다. 안아주겠다고 제안은 했지만, 란포는 그랬다간 옷이 전부 푹 젖어버릴 거라며 거절했다. 지쳐가는 란포에게 솜사탕을 하나 사서 들려주고 조금 더 걸어가자,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 붉은 목조다리가 보였다. 그 다리 위에는 바람에 흩날린 벚꽃잎이 만개했다. 강변을 따라 심어둔 벚꽃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한들거리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란포는 가장 가까운 벤치에 걸터앉아 남은 솜사탕을 천천히 뜯어냈다. 꽃잎의 색을 닮은 분홍빛이 코 끝을 간지럽혔다. 엣츄, 설탕꼬리에 가벼운 재채기를 하자 다자이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지 마."
"하지만 겨우 그거에 재채기라니. 란포씨도 귀여운 구석이 있네요."
"하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던 란포의 손을 가져와 그가 뜯어낸 솜사탕을 한 입 문 다자이는 입 안에 녹아드는 폭신한 실낱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저 설탕일 뿐인데, 예쁘고 달았다. 설탕을 쥐고 있다 불만을 표하며 비죽이 입술을 내민 란포를 보던 다자이는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맞댔다. 쪽, 벚꽃을 너머에 둔 입맞춤은 조금 끈적하고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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