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Doctor, My Docto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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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은 전쟁의 시간이었다. 스가와라를 사이에 두고 다른 연구원과 토오루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토오루의 '정상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호르몬 주사가 필수였는데, 토오루는 이 주사를 끔찍히 싫어했다. 스가와라 또한 그런 토오루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기에-일단 주사기부터가 마취총 급이다.- 차마 그를 억지로 주사를 맞으라고 내몰지는 못했다. 결국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면 타협안은 토오루가 스가와라의 품에 안긴 채 팔에 주사를 맞는 걸로 귀결이 나지만 말이다. 스가와라는 토오루의 팔을 걷어올리고 그를 꼭 안아주었다. 알콜을 묻힌 솜이 팔에 닿는 느낌에 작은 몸이 움찔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곧 연구원은 토오루의 팔에 그 커다란 주사를 쏜다.
"으으…."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참자, 착하지?"
"…느낌 이상해. 아파, 박사님, 이거 싫어."
"조금만 참아줘, 토오루. 응?"
스가와라는 가만히 자기 옷을 그러쥐는 토오루의 등을 쓸며 토닥여주었다. 주사기에 들어있던 푸른 액체가 전부 그에게 들어가고 나서야 연구원은 다시 그 자리를 문질러주고 방을 떠났다. 토오루는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툭, 투둑. 굵은 눈물을 흘리며 토오루는 원망이 가득한 시선으로 스가와라를 올려다보았다. 스가와라는 손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주곤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딱히 줄만한 것이라곤 늘 그렇듯 주머니 한켠에 자리잡은 레몬맛 사탕이었다. 박사님, 아파, 아파. 호해줘요. 그렇게 칭얼거리는 토오루의 입에 레몬사탕을 까서 넣어준 그는 토오루를 안아들고 가만히 방 안을 돌아다녔다. 처음엔 칭얼거리던 그도 입에 사탕이 물리자 더 말은 못하고 입안에서 도록도록 사탕을 굴렸다. 그리고 곧 그는 주사의 여파로 잠들어버렸다. 스가와라는 제 품에서 잠든 그를 침대에 눕혀주곤 방을 나섰다.
"항상 토오루때문에 고생이 많네요."
"뭐, 제가 담당이니까요."
"토오루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좀 까탈스러운 면이 있어요. 영악하기도 하고요."
"…알고 있어요."
토오루를 데리고 있던 몇 달간 깨달은 것은 그가 생각보다 성능이 좋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실험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머리가 좋았다. 처음에 이름을 인식하지 못한 것도, 사실은 그런 '척'일 뿐이었다는 걸 스가와라는 오래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왜 그런 행동을 했냐고 묻자 토오루는 키득거리며 그냥-이라고 말했다. 박사님이 내 이름을 가르쳐 주는 게 어쩐지 기분이 좋아서, 라고 했던가. 물론 그 말을 듣자마자 스가와라는 당황해서 그에게 꿀밤을 먹였더랬다. 토오루의 카르타를 넘기며 스가와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까지 특별한 문제는 안 보이네요."
"그건 다행이네요. 일단 토오루는 가장 최근에 깨어난 아이니까 조금 주목받고 있거든요. 이상할 정도로 높은 두뇌회전도 포함해서요."
"…그래요?"
"어쩐지 떨떠름하신 것 같은데요?"
"아뇨, 음, 실감이 안 나서요."
사실 실감이 안 난다기보단 떨떠름한 게 맞았다. 토오루를 찾아오면 찾아올수록, 스가와라는 그가 단순한 실험대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보통의 아이들과 똑같은 반응, 똑같은 감정표현을 하는 아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미 깨어났을 때 부터 어느 정도 성장을 한 상태이며, 강제로 어른들의 지식까지 전부 주입되었다는 것일까? 도대체 이 아이는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거기에 생각이 미친 스가와라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사용이라니, 사용. 토오루를 물건과 같이 생각하는 자신에게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스가와라는 어렴풋이 타케다가 이 일을 그만 두고 오지로 내려간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조금 착잡한 기분이 된 스가와라에게, 연구원은 더 혼란스러운 정보를 던져주었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스가와라 박사님?"
"네…?"
"아, 토오루를 돌보느라 아직 못 들으셨나보네. 이번에 신물질이 발견된 덕분에 다음에 태어나는 애들은 토오루나 다른 애들처럼 호르몬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대요."
"…뭐…라고요?"
"성장도 훨씬 빠를거고, 뇌세포나 신체능력도 좀 더 발달될 거라고 하네요."
"…그럼 토오루는, 그 앞의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에, 아직 그건 결정이 내려오지 않은 모양이던데…. '신세대'가 나오면 아무래도…. 뭐, 죽일 수는 없으니 입양이라도 보내겠죠."
"……아직 정확한 건 모르는 거죠?"
"네, 그래도…음. 마음의 준비는 해두셔야 할 것 같아요."
스가와라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마음 속으론 내키지 않았지만 그걸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토오루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찜찜한 기분을 덤덤한 얼굴 뒤에 숨긴 채 그는 자신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거운 걸음을 끌고 집에 돌아온 그는 옷을 대충 벗어서 옷걸이에 던져 걸고는 소파에 몸을 뉘었다. 신물질에, 신세대. 그들이 나오면 구세대가 되어버릴 토오루들과 강제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복잡해진 생각 덕분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지긋이 누른 스가와라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냉장고에 있던 맥주 캔을 비우고는 침실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