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스트레이독스'에 해당되는 글 145건

  1. 2017.04.11 [다자란] 꽃놀이 1
  2. 2017.04.05 별이 떨어진 날
  3. 2017.04.02 [다자란/R18] 시나브로. 下
  4. 2017.04.02 [다자란/R18] 시나브로. 上
  5. 2017.03.31 [다자란] The other Live : prologue
  6. 2017.03.30 [다자란/R18] 0401 (2)
  7. 2017.03.29 [다자란/R18] 0401 (1)
  8. 2017.03.27 [다자란/R18] 100.
  9. 2017.03.26 [다자란/R18] KAREN 2.
  10. 2017.03.24 [다자란/R18] KAREN 1.
2017. 4. 11. 00:23

[다자란]

꽃놀이

------------------


란포는 의자에 푹 기대어 앉아 가만히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젖혔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다. 이따금씩 블라인드를 흔들어대는 바람이, 이제 봄이라는 것을 몸소 나타내고 있었다. 제법 따뜻해진 공기에 늘어지게 하품을 한 란포는 모자를 벗어 제 얼굴을 덮었다. 오늘따라 사무실이 조용하다. 전화조차 울리지 않는 고요함에 란포는 아마,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책상에 다리를 얹은 채 모자를 덮고 잠에 들어버린 명탐정을 깨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란하게 들어온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웅성거리는 목소리에 란포는 미간을 찌푸리며 슬며시 눈을 떴다. 아니나 다를까, 물에 푹 젖은 채로 들어온 남자가 수건을 뒤집어 쓰고 잔소리를 들으며 멋쩍게 웃고 있었다.


"아하하."

"웃음이 나오냐, 네놈은!? 너 때문에, 또, 일이! 내 일정이!!!"


쿠니키다도 참 매번 대단하지. 적당히 포기해버리면 될 것을. 적당히라는 개념의 정의가 어딘가 남다른 쿠니키다는 신경질적으로 다자이를 집어던지고는 자리에 앉아서 수첩을 펼쳤다. 저 수첩에는 온갖 종류의 계획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던가. 참 재미없는 삶이라고, 란포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 책상에 날아와 부딪친 채 일어날 줄을 모르는 남자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다자이는 물기가 채 닦이지 않은 모습으로 시선만 올려 란포와 눈을 마주치고는 웃었다.


"좋은 오후에요, 란포씨."

"오늘도 어디 매력적인 장소를 발견한 모양이네."

"네, 정말 끝내주더라고요. 같이 가보실래요?"


다자이의 말에 미간을 찌푸린 채 타자를 치던 쿠니키다가 란포씨에게 그런 것을 권유하다니 제정신이냐며 버럭댔지만, 란포는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러지 뭐. 그 말에 사무실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설마, 라는 생각들이 도는 표정들에 란포는 어깨를 으쓱이곤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며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다자이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카락에 달라붙어있는 벚꽃잎을 떼어냈다. 과연, 그런 거였군.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자판으로 손을 가져가던 쿠니키다는 란포의 다음 말에 행동을 멈췄다.


"그런고로, 다녀올게!"

"라, 란포씨?"

"왜, 뭔가 문제라도 있어?"

"아니, 그, 업무시간인데요…."

"에에, 오늘은 파업―. 명탐정님은 쉴 거야."

"네!?"

"어차피 지금 들어온 의뢰라고는 아츠시군이나 켄지, 타니자키정도면 처리할 수 있잖아? 가자, 다자이."

"어라, 저도 함께인가요?"

"감기 핑계를 대고 재채기를 할 심산이라면 길 안내를 하는 쪽이 낫지 않아?"

"…역시 란포씨."


못 당하겠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고 제게 내밀어진 작은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킨 다자이는 자연스럽게 란포를 문으로 안내하며 쿠니키다에게 윙크를 날렸다. 닫힌 문 너머로 무언가가 쓰러지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두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하늘은 푸르렀고, 하얀 구름은 유유자적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지만 춥지는 않았다. 란포는 다자이의 옷자락을 잡은 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 그를 보던 다자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란포를 끌어당겨 손을 강하게 잡았다. 란포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 작게 혀를 차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 젖잖아."

"아, 그럼 이따 제 방에서 말리고 가실래요?"

"…속셈이 너무 빤히 보여."

"그럼 안돼요?"

"안 된다고 한 적은 없어."

"후후."


가벼운 웃음소리에 란포는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늦췄다. 다리가 아프다는 무언의 신호에 다자이도 걸음을 늦추고 보폭을 맞췄다. 안아주겠다고 제안은 했지만, 란포는 그랬다간 옷이 전부 푹 젖어버릴 거라며 거절했다. 지쳐가는 란포에게 솜사탕을 하나 사서 들려주고 조금 더 걸어가자,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 붉은 목조다리가 보였다. 그 다리 위에는 바람에 흩날린 벚꽃잎이 만개했다. 강변을 따라 심어둔 벚꽃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한들거리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란포는 가장 가까운 벤치에 걸터앉아 남은 솜사탕을 천천히 뜯어냈다. 꽃잎의 색을 닮은 분홍빛이 코 끝을 간지럽혔다. 엣츄, 설탕꼬리에 가벼운 재채기를 하자 다자이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지 마."

"하지만 겨우 그거에 재채기라니. 란포씨도 귀여운 구석이 있네요."

"하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던 란포의 손을 가져와 그가 뜯어낸 솜사탕을 한 입 문 다자이는 입 안에 녹아드는 폭신한 실낱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저 설탕일 뿐인데, 예쁘고 달았다. 설탕을 쥐고 있다 불만을 표하며 비죽이 입술을 내민 란포를 보던 다자이는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맞댔다. 쪽, 벚꽃을 너머에 둔 입맞춤은 조금 끈적하고 달콤했다.

'문호스트레이독스 > 가벼운 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이 떨어진 날  (0) 2017.04.05
[다자란/R18] 시나브로. 下  (0) 2017.04.02
[다자란/R18] 시나브로. 上  (0) 2017.04.02
[다자란/R18] 0401 (2)  (0) 2017.03.30
[다자란/R18] 0401 (1)  (0) 2017.03.29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7. 4. 5. 22:41

별이 떨어진 날

*사망네타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그 날 따라 사무실도 고요했다. 처음부터 그랬다는 것 처럼, 조용히, 조용히 스쳐지나가는 하루였다. 드문드문 울리는 전화는 별 것 아닌 전화들이라 길게 이어지지 않고 끊어졌다. 빗소리에 차단된 공기가 전화소리를 더 쓸쓸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사장실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려퍼질 때까지, 사무실은 그저 종이를 넘기는 소리와 의미없는 타자를 치는 소리만이 가득찼다. 여름 장마철의 공기보다도 숨을 조여오는 답답함이었다.


"찾았다고?"


사무실의 정적을 깬 건, 후쿠자와의 한 마디였다. 찾았다. 그 말에 사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사장실 문 앞에 모여 귀를 곤두세웠다. 전화기 너머의 소리는 들릴 턱이 없었지만, 후쿠자와의 짧은 대답으로라도 뭔가를 유추해 볼 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단한 수확은 없었다. 그저 분주하게 후쿠자와가 옷을 챙겨입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후쿠자와가 나오는 소리에 급하게 제자리로 돌아간 사원들은 저마다 일을 하는 척 하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후쿠자와는 사원들의 모습을 보다 눈을 지그시 감고 요사노와 쿠니키다를 불렀다. 좋지 않은 예감이 사무실을 훑고 지나갔다.


"…요사노, 쿠니키다."

"네."

"다자이가 란포의 소재를 파악했다고 한다."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나도 간다."


란포가 나를 찾는다고 하더군. 짧지만 강한 말이었다. 란포가 후쿠자와를 찾는 게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그저 단순히 칭찬을 위해 찾는 게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찾아 나섰어야 했다. 언제나와 같은 변덕이라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 위협도 없는 상황이라 했어도 란포를 혼자 보내서는 안됐다. 전화를 받았어야 했다. 후쿠자와는 뒷좌석에 앉아 핸드폰에 남은 부재중 전화, 그리고 문자를 보다 상념에 잠겼다. 왜 진작에 신호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왜. 왜. 단단하게 쥐어진 주먹에 하오리가 구겨졌지만, 그런 건 지금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쿠니키다는 흘끗 리어뷰미러를 쳐다보다 속력을 높였다. 평소라면 철저하게 신호를 지켰겠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이렇게 움직여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자이의 품에 안긴 란포에게 달려갔다.


"란포!"

"란포씨!"

"…오셨군요."


젖은 옷에 잔뜩 번진 피를 담은 채 다자이가 그들을 맞았다. 그게 본인의 피가 아니라는 것은 금세 알 수 있었다. 다자이의 담담한 갈색 눈동자에는 깊은 후회가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아마, 후쿠자와와 같은 종류의 것일 테다. 요사노는 급히 맥박을 잡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녀의 시선이 조용히 바닥을 향했다. 란포의 가녀린 손목이 엉망으로 번졌다. 아, 아아, 아아아. 짙은 슬픔만이 목울대를 긁으며 소리를 냈다. 의사의 확실한 사망선고였다. 쿠니키다는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다자이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렸다. 그 바람에 란포의 몸이 흔들려, 다자이의 품에서 무릎으로 내려갔다. 다자이는 그런 란포를 단단히 붙잡은 채 쿠니키다를 쳐다보았다. 안경 너머의 눈에는 이미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넘치고 있었다.


"왜 네가 있었으면서도 이 꼴이 된거냐! 제대로 설명해라!"

"…아니야."

"뭐?"

"내가 발견했을 때, 란포씨는 이미…."


살아날 수 없는 상처였어.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당장이라도 요사노를 부르겠다는 말에 란포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대로. 작별인사는, 어떻게든 했으니까. 끊어지는 숨을 뱉으며 말하던 그는 그렇게 생을 포기했다. 살기를 포기했다. 왜죠, 왜. 다자이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 채로 그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자이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고, 란포를 이해하지 못했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란포의 죽음이라는 현상은, 이런 형태의 이별은 다시는 없을 줄 알았기에. 다자이는 왜 란포가 죽음을 택했는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아마, 평생을 가도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죽어서 다시 만나 그 이유를 물어보면 당신은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면서 설명이라도 해줄까.


[…나도, 이능력이 있었다면, 좋았을걸.]


꺼져가는 목소리로 란포는 그렇게 말했다. 그게 마지막으로 들은 언어가 될 지는 몰랐다. 그 뒤로 말이 더 이어졌어야했지만, 명탐정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울지 못했다. 다자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사무실에서 모두가 찾고 있는 이 사람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것 뿐이었다. 쿠니키다는 집어던지듯 다자이의 멱살을 놓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모질게 화도 내지 못하다니, 역시 착한 사람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다자이는 한참을 가만히 서있던 후쿠자와를 보았다. 사실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란포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은 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다자이는 란포를 안아들고 그 힘없이 굳어가는 몸을 후쿠자와에게 넘겼다. 후쿠자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느끼며 품에 란포를 안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랐다. 온갖 종류의 언어가 소용돌이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했다. 한참을 입만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던 후쿠자와는 란포를 끌어안은 채 조용히 늦은 사과를 전했다.


"미안하다, 란포."


너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네 말을 완전히 알아듣지 못해서. 나는 무엇을 위해 네 보호자가 되었던가. 무엇을 위해 너를 곁에 두고 지켜봤던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후회를 목구멍 너머로 슬픔과 함께 다시 삼킨 후쿠자와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올리고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천천히 슬픔을 흘려내다 못다 감은 란포의 눈을 커다란 손으로 덮어주었다. 그 손이 조심스럽게 떨리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후쿠자와는 편안히 눈을 감은 란포의 얼굴을 보다 머리를 쓸어주며 아주 약하게, 슬픈 미소를 지었다.


"거기선 편히 쉬어라. 누구도 널 괴롭히지 않을테니."


빗줄기가, 조금씩 약해져갔다.



'문호스트레이독스 > 가벼운 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자란] 꽃놀이  (1) 2017.04.11
[다자란/R18] 시나브로. 下  (0) 2017.04.02
[다자란/R18] 시나브로. 上  (0) 2017.04.02
[다자란/R18] 0401 (2)  (0) 2017.03.30
[다자란/R18] 0401 (1)  (0) 2017.03.29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7. 4. 2. 23:54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7. 4. 2. 01:15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7. 3. 31. 01:04

다자란

The Other Live : Prologue

용족 란포와 고등학생 다자이의 이야기

====================

 

검은 산에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람들은 저마다 작살이니 창이니 하는 흉흉한 날붙이들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던져놓은 횃불은 곧 젖은 짚을 태웠다. 매캐한 연기가 동굴 안으로 들어찰 즈음, 동굴 안에서 강한 바람이 날아와 연기를 반대로 내보냈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콜록거리며 바람이 불어온 곳을 보았다. 연기 너머에서는 흉흉한 녹색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의 입은 성인 인간 정도는 간단히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로 컸고, 이어서 드러난 몸은 웬만한 성채를 웃도는 크기였다. 날카로운 두 개의 뿔과 검은 비늘, 가시가 박힌 꼬리, 그리고 펼치면 숲을 절반은 덮을 정도로 커다란 날개. 위용을 드러낸 블랙드래곤의 모습에 사람들은 긴장한 채 침을 삼켰다. 드래곤은 낮게 목을 울리며 동굴 앞에 놓인 짚단을 꼬리를 휘둘러 날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 온 날붙이를 전부 쏟았지만, 제대로 꽂히는 것은 없었다.

 

"정말 귀찮게 구네. 다 죽여버린다?"

"…히, 히익!!"

"셋을 세지. 그 동안 안 도망가면 전부 눌러 죽일거야."

"그럴 필요는 없어."

"…성기사놈."

 

드래곤은 그르릉, 하고 적개심을 드러내며 자기 눈 앞으로 걸어오는 유백색의 갑옷을 입은 사내를 보았다. 키는 6피트 정도에, 목을 덮을 듯 말 듯한 길이의 짙은 갈색의 굽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저를 노려보고 있는 녹색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먼저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단칼에 목이 날아갈 것이다. 서로의 실력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칼을 맞댄 사이였기 때문에. 스산한 바람이 둘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바람이 잠시 멈춘 것과 동시에 드래곤은 브레스를 내뿜었으며, 성기사는 보호마법을 몸에 두른 채 손에 든 투핸디드소드를 강하게 그러쥐고는 드래곤을 향해 휘둘렀다. 단단한 비늘의 틈새를 파고 든 칼날은 드래곤에게 상처를 남겼다. 괴로운 포효가 숲을 뒤흔들었다. 가시가 달린 꼬리가 성기사를 향해 맹렬히 날아들었고, 성기사는 제 옆구리를 내준 채 꼬리를 붙잡고 스펠을 읊었다.

 

"…어디서 그런 걸 배운거냐, 성기사놈."

 

지긋지긋한 놈, 죽일 놈. 온갖 저주의 언어와 욕설이 성기사를 향해 쏟아졌지만, 성기사는 스펠을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심장이 멈추고 만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드래곤은 망설임 없이 그가 잡고 있는 꼬리를 끊어버리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중으로 올라가면 인간들의 작살이 자신을 향할 것을 알지만 지금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 자리를 벗어나는 동안, 몇 개의 작살이 몸에 날아와 박혔다. 하지만 드래곤은 비틀거리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아, 죽을 것 같아. 두고 보자. 속으로 인간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드래곤은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성기사는 주인을 잃고도 독으로 땅을 물들여가는 드래곤의 꼬리를 보다가 슬픈 표정으로 칼을 집어넣고는 중얼거렸다.

 

"내게 이걸 가르쳐 준 건, 너야. 정말 다 잊어버렸을 줄은 몰랐는데."

 

 

그 날은 하루종일 되는 게 없는 날이었다. 친구는 여전히 시끄러웠고, 후배들은 계속 끈질기게 자신을 찾았다. 적당히 둘러대고 빠져나올 틈조차 없어, 결국은 강제로 착실하게 공부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나마 진작 집에서 나와 혼자 살고 있어서, 집에 돌아가면 혼자 있을 예정이라는 게 작은 위안이었다. 그는 저녁을 챙겨 먹는 것도 귀찮아서 적당히 학교 근처의 만두집에서 고기만두를 몇 개 사서 지름길을 통해 가자며 오솔길로 들어섰다. 오솔길을 절반정도 걸었을까, 괴로운 목소리가 들려와 다자이는 걸음을 멈췄다.

 

"거기 누가 있어요?"

 

그냥 지나가도 될텐데. 왜 고개를 들이민 걸까? 다자이는 제 눈 앞에 나타난 생물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어디로 봐도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영화 촬영이라도 하는데 내가 방해한 걸까? 그런 거야? 아니, 영화라고 해도 보통 이런 크리처를 스케일로 만드나? 이거 드래곤이지? 검은 비늘은 숲의 어둠과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고, 녹색의 눈만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어쩌지. 다자이는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한 채 멍하니 그 눈을 마주보는데, 조금 뒤 그 드래곤이 자신에게 고개를 들이밀더니 눈을 감고 냄새를 맡다가 고개를 돌렸다.

 

"너, 기분 나쁜 냄새가 나."

"…네??"

"맛있는 냄새도 나고."

"…혹시 배고파요?"

 

심장마비에 걸릴 뻔 했네. 그나저나 기분 나쁜 냄새는 뭘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자이는 품에 있는 봉투에서 만두를 꺼내서 내밀었다. 그러자 커다란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마치 먹여달라는 듯한 태도에 잠깐 고민하던 다자이는 이미 한 김 식은 녀석을 가만히 입에 던져넣었다. 드래곤은 입을 닫고 입 안에 들어온 만두를 한참을 오물거리다 삼켰다. 아, 맛있네. 이거 이름이 뭐야? 다자이는 눈을 깜박이며 그를 보다 애써 태연하게 답했다. 고기만두인데요. 드래곤은 한참 혼자서 고기만두라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손-이라고 봐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앞발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라고, 다자이는 생각했다. -을 내밀고는 말했다.

 

"그걸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줄게."

"…네? 아니, 이건 제 저녁인데."

"나도 배고파."

"많이 배고파요?? 전부 줄 수는 없지만, 같이 먹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는 수풀 너머로 들어갔다. 어느새 떠오른 달이 공터를 가만히 비추었다. 그 달빛으로 안 거지만, 드래곤은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등에는 몇 개의 작살이 꽂혀있었고, 꼬리도 뭉툭한 것이 잘려나간 것 같았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에 다자이는 고기만두를 건네며 괜찮으냐고 물었다. 드래곤은 입을 벌려 그가 건넨 만두를 받아먹고는 제 등을 흘끗 보다 만사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죽진 않았으니 됐다고 말했다. 그 느낌이 어딘가 쓸쓸해보여 다자이는 손을 들어 가만히 드래곤의 콧등을 쓸어주었다.

 

"건방진 인간놈, 잡아먹어버린다."

"어라, 사람도 먹어요?"

"맛 없어서 안 먹어."

 

아, 맛 없구나. 드래곤의 말에 허탈한 웃음을 지은 다자이는 하나 남은 고기만두를 드래곤에게 건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꽤 지나서 돌아가봐야 한다는 말에, 드래곤은 눈을 깜박이다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다자이, 다자이 오사무예요. 당신은? 다자이의 물음에 드래곤은 란포, 라고 답하고는 이 은혜는 조만간 갚으러 가겠다며 몸을 일으켜 고기만두를 조심스레 집어서 입에 넣었다. 덩치에 비해 꽤 귀여운 행동을 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어버린 다자이는 무엇에 홀린 것 마냥 또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란포는 멀어져가는 다자이를 한참 지켜보다가 턱을 괴고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냄새는 당장 갈아죽여도 시원찮을 놈이랑 똑같은데 말이지."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7. 3. 30. 00:14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7. 3. 29. 02:00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7. 3. 27. 01:23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7. 3. 26. 02:19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7. 3. 24. 01:18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