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5. 01:00

소년 스가와라의 평범하지 않은 하루와

소녀 코요미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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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ed Rider Wiz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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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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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와라를 태운 여형사의 차는 부드럽게 길 위를 달렸다. 처음 보는 여성의 차에 탄 스가와라는 딱히 할 말이 없어 밀려오는 어색한 침묵 속에 바깥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아까 있던 일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화로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핸들을 잡고 운전하던 여형사는 퍼뜩 잊어버렸던 것을 떠올린 듯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둘 것이 있다며 제법 긴장감을 조성한 그녀 탓에 스가와라는 덩달아 긴장해버렸다. 그녀는 자기가 너무 분위기를 잡은 모양이라며 긴장을 풀라고 어깨를 토닥여주곤 말을 이었다.

 

"음, 사실은 말야. 스가와라군이 기절한 게 만 하루 전이거든."

"…그래요?"

"응, 그래서 아마 진짜 다들 걱정 많이 했을거야."

"그렇…겠네요. 하루나 지났었다니."

 

고작 몇 시간이 흘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기 직전의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눈을 떴을 때도 아직은 밝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루토들도 '아까'라는 말에 반응했었고.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어제든, 몇 시간 전이든 과거의 일이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시 차 안은 조용해졌다. 하지만 형사는 생각보다 조용한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는지,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참, 내 소개를 안했지? 난 다이몬 린코, 형사야. 국가안전국 0과에서 일하고 있어."

"제로(0)과요?"

"응, 괴사건 전문이지. 주로 팬텀이 그 대상이지만."

"아..."

"혹시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전화해도 돼. 지금 물어봐도 좋고."

 

그녀는 쾌활하게 웃으며 자기 번호를 말해주었다. 스가와라는 얼결에 핸드폰에 그녀의 번호를 저장했다. 그녀, 다이몬 린코는 합숙소를 향해 차를 몰면서도 자기 얘기를 계속 했다. 형사들은 꽤 과묵한 이미지가 많았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라고 스가와라는 생각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도 처음에는 게이트였다고 했다. 아버지를 상징하는 물건이 부서지면서 그대로 절망했었다고 한다. 하루토가 없었으면 자기도 팬텀이 됐을거라고. 스가와라는 가만히 그녀의 얘기를 듣다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그, 마력을 갖고 계세요?"

"아니, 지금은 전혀."

"없어지기도 하는 건가요?"

"음, 목숨을 구한 대가로?"

"…만약, 만약에요."

 

만약에 절망에 빠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스가와라는 조금 머뭇거리다 질문을 던졌다. 다이몬은 그 말을 듣고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스가와라를 잠시 보았다. 핸들을 잡았던 손이 느슨해졌다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코너를 돌자, 합숙장소가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조용히 차를 몰던 다이몬은 화려하게 광고를 하듯 합숙소의 주차장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요란하게 크랙션을 울렸고, 그 소리에 모두가 뛰어나왔다. 그 모습을 기분이 좋은 듯 함박미소를 지으며 보던 그녀는 스가와라가 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만약, 정말 소중한 걸 잃고도 그 절망을 버텨낸다면 너도 마법사가 될 수 있어."

"그럼 하루토씨는…."

"응, 그렇지. 그럼 내려서 인사나 할까?"

"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서 내렸다. 스가와라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모두가 그의 주변으로 몰려왔다. 갑작스럽게 모두에게 둘러싸인 스가와라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이몬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스가와라는 푸스스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5. 5. 20. 01:38

소년 스가와라의 평범하지 않은 하루와

소녀 코요미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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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스가와라는 돌아온대요?"

"네, 지금 형사님이 데려다 주신다고 했어요."

"다행이다. 무사했군요."

"정말로 걱정했으니까요. 모두가."


전화를 끊은 타케다의 표정은 한결 안정된 표정이었다. 그 전화를 받기 전 까지만 해도 울상이었던 표정이 안정을 찾자 주변에서도 안심한 모양인지 웃음이 나왔다. 스가와라가 모습을 감춘 건 어제-본인은 그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였다. 패널티가 끝나고 돌아와서는 여느 때처럼 다시 시합을 시작했을 때였다. 먼저 이상을 발견한 건 키요코였다. 벤치에 있어야 할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벤치멤버들에게도 물어봤지만 그들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느냐는 반응 뿐이었다. 왠지 모르게 싸한 기분이 든 그녀는 방금 전까지 부원들이 패널티를 받아 돌고 온 산으로 향했다.


"…맙소사."


패널티 코스를 절반정도 걸었을 때였을까. 키요코의 발에 채이는 물건이 있었다. 그녀는 몸을 숙여 그것을 주워들었다. 액정이 전부 금이 가고 바닥에 가장자리가 전부 긁혔지만 그것은 분명히 스가와라의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을 손에 든 그녀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 자리 주변의 풀은 전부 이지러져 있고, 신발 뒷축으로 짓이긴듯한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스가와라가 일부러 풀을 짓밟을 만한 성격은 아니니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서둘러 체육관으로 돌아왔다.


"타케다 선생님."

"무슨 일인가요, 시미즈 양?"

"…이걸 발견했어요. 그리고 스가와라는 지금 없고요."

"뭐라고요!?"


엉망이 된 스가와라의 핸드폰을 건네받으면서 키요코에게 얘기를 들은 타케다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제법 커서 체육관 내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여기저기서 찰고무창이 마룻바닥에 비벼지는 소리가 나며 움직임이 멈췄다. 타케다의 목소리에 네코마타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타케다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스가와라가…. 스가와라 코우시군이 없어졌어요."

"뭐야?!"


타케다가 전한 소식과 키요코가 가져온 증거품에 체육관은 그야말로 패닉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가와라를 찾으러 가겠다며 카라스노 부원들이 뛰쳐나갔다. 뒤이어 다른 몇 명도 찾으러 나가 해가 질 때 까지 숲을 샅샅이 뒤졌지만 스가와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연습을 요령껏 빼먹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겠지'같은 마냥 낙관적인 생각보다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핸드폰이라도 그와 함께 있었다면 전화를 해보련만, 그는 주인을 잃은 채 타케다의 손에 붙들려있었다. 아이들은 일단 달래서 재웠지만, 타케다는 혹시라도 올 지 모르는 연락을 기다리기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록 연락은 오지 않았고, 스케줄을 무작정 미룰 수는 없어서 다시 연습시합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스가와라가 신경이 쓰이는지 모두의 움직임은 꽤나 둔했다. 그렇게 한참 오전을 텐션이 낮은 상태로 보내던 때였다.


「지잉-」


타케다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렇게 큰 소리가 아닌데도, 모두의 이목이 다시금 집중되었다. 타케다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는 어떤 여성에게서 온 전화였다. 자신을 경찰이라고 밝힌 그녀는 잠시 후 놀랄만한 소식을 말했다. 스가와라가 사정이 있어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말이었다. 스가와라의 소재를 알리는 소식에 타케다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가와라는 무사한가요?!"

"네, 네. 일단 믿을 만한 사람이 보호해줬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타케다의 감사인사가 끝남과 동시에, 카라스노 부원들이 연습하던 코트를 내팽개치고 타케다 쪽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스가와라의 안부를 물으며 점점 소리를 높였다. 그 성화에 못 이긴 타케다는 조용히 그녀에게 스가와라를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뒤,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스가와라였다. 그의 무사를 확인한 부원들은 환호를 질렀고, 타케다는 그에게 돌아올 것이냐고 물었다. 스가와라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곧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 망설임이 조금 신경쓰이는 타케다였지만, 일단은 스가와라가 무사하고 그가 곧 다시 올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했으므로 자세한 얘기는 그가 오면 듣기로 마음먹었다. 타케다는 웅성거리는 부원들을 보다가 작게 헛기침을 해 시선을 모으고는 뒷짐을 진 채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스가와라군이 올 때 까지 마저 힘내주세요."

"네!!"


부원들의 대답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힘찼다.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5. 5. 17. 02:36

소년 스가와라의 평범하지 않은 하루와

소녀 코요미의 평범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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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와라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제법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 상황에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던 스가와라는 얼마 못 가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는 뒤통수를 감싸며 고통스런 소리를 냈다. 그 바람에 정신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새삼 자신이 처했던 상황이 생각났다. 패널티를 받던 중에 이상한 괴물들한테 습격을 받았고, 그 괴물들이 자신을 게이트라고 불렀고, 죽일 생각으로 찾아왔었다. 하마터면 자신만이 아니라 친구들이 모두 죽을 판이었다. 그리고 그걸 구해준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눈 앞에 있으므로 스가와라는 일단 고개를 꾸벅 숙였다.


"덕분에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뭘 이런걸로."


스가와라의 인사에 사내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그리고 사내 대신에 옆에서 조금 긴 앞머리가 없는 단발머리의 여자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뭐니? 나이는? 학교는 어디야? 그녀의 속사포같은 질문에 약간 취조당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스가와라는 질문에 하나씩 대답했다. 이름은 스가와라 코우시, 나이는 19살이에요. 그리고 학교는 카라스노입니다. 스가와라의 대답에 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펜으로 스가와라의 대답을 적어내려가던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다 멋쩍게 웃으며 되물었다.


"카라스노? 들어본 적 없는데… 어디에 있는 학교야?"

"아, 미야기현이에요."

"미야기? 거기서 도쿄까진 무슨 일로 왔는데?"

"아…그, 합숙이 있어서…."

"오, 합숙? 그럼 운동부야?"

"네…배구를 하고 있어요."

"오호, 배구라. 멋진데? 배구소년…. 어디, 보호자 분 성함하고 연락처는?"


그녀의 말에 스가와라는 고문인 타케다 선생님의 이름과 번호를 댔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이름과 번호를 메모한 그녀는 바로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는지, 여성은 곧 타케다 선생님에게 스가와라의 소재를 알렸다. 스피커폰 상태가 아닌데도 휴대폰 너머로 제법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다들 스가와라를 찾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 시끄러움이 익숙치 않은 듯 일부러 귀에서 휴대폰을 뗀 여성은 스가와라에게 전화를 바꿔주었다.


"네, 스가와라입니다."

「 스가와라, 괜찮니? 」

"아, 선생님, 전 괜찮아요. 죄송해요, 걱정 끼쳐서."

「 아냐, 일단 네가 무사하다니 다행이다. 다들 많이 걱정하고 있어. 어디 다친 덴 없고?」

"네, 정말 괜찮아요. 좋은 분들이 도와주셔서요."

「 응, 그렇구나. 정말 고마운 분들이네. 합숙소로 돌아올 수는 있겠니? 」

"일단 돌아갈 생각…이긴 한데."


스가와라는 그 말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살폈다. 그런 스가와라의 행동을 눈치 챈 하루토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무언의 대답에 스가와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장을 제대로 끝맺었다. 돌아갈게요, 라고. 그 말에 타케다는 기다린다고 답했고, 전화기 너머에서는 환호성이 들렸다. 유난히 시끄러운 반응에 아까 자신에게 전화기를 건네준 그녀처럼 귀에서 떨어트린 채 통화를 끝내고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그녀는 휴대폰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는 활짝 웃어보였다. 그녀의 웃음에 스가와라는 저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사랑받는구나? 스가와라 군."

"네?"

"네 이름을 그 선생님이 말하자마자 전화기 너머에서 난리가 났다고?"

"하하…."


다들 그렇게 보고싶어해주니 다행이었지만, 사실 숙소로 그냥 돌아가기에는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무슨 잘못을 한 것이 아님에도 그런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까의 괴물이 또 습격할지도 모른다는 것.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 괴물이 뭔지 알고 있는 걸까? 과연 그 괴물은 또 나를 찾아올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치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처음에 자신의 곁에 있던 작은 소녀가 내내 다물고 있던 작은 입을 열었다.


"하루토, 정말 괜찮은 거야? 돌려보내도."

"응? 일단 지금 당장은 습격할 것 같지 않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코요미가 뭘 걱정하는 지 알아. 그래도 계속 여기에 둘 순 없으니까. 그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


코요미는 하루토의 말에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하루토는 그런 코요미를 보며 웃다가 스가와라를 보았다. 그리곤 볼을 긁적이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며 운을 뗐다. 스가와라군, 너는 게이트야. 그 말은 아까 봤던 긴 검은 머리의 여성이 했던 말이었다. 게이트란 무엇인가, 하루토의 설명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됐다. 게이트란 높은 마력을 가진 사람들이며, 팬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이다. 이미 태어난 팬텀들은 그 게이트를 절망에 빠트려 자신의 새로운 동료를 늘리려고 한단다. 그리고 아까의 둘은 그 팬텀을 통솔하는 간부들이었다고 했다. 여기까지의 얘기를 들은 스가와라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현실감에 머리를 긁적였다. 마력이라니, 판타지 소설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런 걸 갖고 있다고? 그것도 노려질 정도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에 스가와라는 한숨을 내쉬고는 천장을 힘없이 쳐다보다 하루토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하루토씨…맞죠?"

"응."

"그, 팬텀들은 제가 미야기로 돌아가도 저를 쫓아올까요?"

"…음, 아마 그건 아닐 거야. 그렇게 되기 전에 막을거고."

"…도쿄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위험해질까요?"

"높은 확률로 그렇겠지. 아까도 꽤 위험했고 말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런 비상식적인 핑계로 합숙을 일찍 끝내고 돌아갈 수는 없을거예요."


그래도 친구들은 지키고 싶다는 게 스가와라의 마음이었다. 모두가 함께 코트에서 공을 주고받는 순간이, 연결해가는 순간이 그에게는 너무도 소중했기에. 한 번이라도 더, 일 분 일 초라도 더 코트에 머무르기 위해선 모두가 있어야만 했다. 설령 코트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그 순간에 곁에 부원들이 아무도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그들을 지키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꾹 쥐는 스가와라를 본 하루토는 빙긋이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스가와라군."

"네?"

"우선, 마음을 단단히 먹어."

"…마음을…."

"그 녀석들은 게이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빼앗고 파괴함으로써 그들이 절망하기를 바라니까. 마음이 강해져야 해."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어. 만약 그럴 자신이 없다면…."

"없다면…?"

"그 땐 나를 믿어. 나는 너의 마지막 희망이 될 거니까."

"…하루토씨."


처음 보는 사람의 말인데도 그 말만은 퍽 마음이 놓여 스가와라는 그를 마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하루토는 스가와라의 웃음을 보다 머리를 가만히 쓸어주곤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왠지 마음 깊은 곳에서 안도감과 용기가 함께 올라오는 느낌에 스가와라는 가만히 심호흡을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가와라가 그렇게 말하자 내내 앉아서 그들의 얘기를 듣던 단발머리의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짤랑, 하는 가벼운 소리를 내며 차키를 손에 든 그녀는 스가와라를 데려다 주겠다며 차로 향했다. 스가와라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녀를 따라 차로 걸음을 옮겼다.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5. 5. 13. 02:16

소년 스가와라의 평범하지 않은 하루와

소녀 코요미의 평범한 하루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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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도쿄합숙이 있던 그 어느 해 여름이었다.


그 날도 카라스노는 한 번도 제대로 이기지 못한 채 벌칙을 받고 있었다. 주변 산을 한 바퀴 돌면서-사실 몇 바퀴 째인지 셀 수 없었지만- 더위에 지쳐서 처진 녀석들을 먼저 보내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조금 스산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 숲의 깊은 곳을 바라보던 스가와라는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음에 안도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고개를 돌려 체육관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런 그의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은 검은 긴 머리를 가진 묘령의 여인이었다. 놀라서 두어걸음 뒤로 물러나다 자빠진 스가와라에게 발소리도 거의 없이 다가온 그녀는 고개를 숙여 그를 마주보다가 빙긋이 웃었다.


"-게이트, 찾았다."

'게이트…? 문?'

"이제 네 차례야."


네 차례라니, 뭐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 그녀의 옆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검은 페도라를 눌러쓰고 있었고, 제법 화려한 스카프를 목에 걸고 있었다. 굉장히 가벼운 느낌이었지만 스가와라는 왠지 모를 위압감을 느껴 주저앉은 채 저도 모르게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곧 스가와라는 누군가와 부딪혀 움직임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고개를 들어 그 상대를 본 스가와라는 눈을 홉떴다. 조금 전에 눈 앞에 있던 사내가 어느샌가 자기 뒤로 왔기 때문에 그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하로~ 게이트쨩."


사내는 눈을 휘어 웃으며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게이트라니, 그거 내 이름이 아닌데. 아니, 그전에 도대체 게이트는 뭐고 이 사람들은 뭐지?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스가와라를 보던 사내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그는 자기 이름이 '소라'라고 했으며 옆에 있는 여인은 '미사'라고 했다. 그 말에 미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하게 자신을 보는 미사의 시선에 소라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고쳤다.


"미안, 미안, 메두사."

"…빨리 처리해. 그렘린."

"뭐…그럼 딱히 유감스럽진 않지만, 게이트쨩?"

"…네?"

"넌 어떻게 하면 절망할까?"


절망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래. 그렇게 생각하는데 소라, 아니 그렘린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쪼그리고 앉아 그를 마주보았다. 그의 눈에는 소위 말하는 광기라는 것이 서려 있는 느낌이라 스가와라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런 스가와라를 보던 그렘린은 해맑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러더니 곧 그의 모습이 인간이 아닌 것으로 바뀌었다. 전신이 녹색인, 마치 갑옷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봐야 하는 게 맞을까? 스가와라는 그 모습을 형용한 단어를 찾지 못한 채 사색이 되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재미있어. 딱히 절망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지만 이왕이면 해주면 좋겠는데. 네 희망을 알려주지 않을래? 게이트쨩-."


뭐라는 거야, 저 괴물은. 스가와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켜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건 체육관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합숙장소로 도망간다면 저 괴물을 모두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 모두는 패닉에 빠질 것이 뻔했다. 딱 봐도 상대가 안 되는 괴물이다. 마주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달리던 스가와라를 보던 그렘린은 갑자기 쫓아가는 걸 멈추고는 시선을 돌렸다.


"흐-음, 저쪽을 공격하면 무너지려나."


아차, 싶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 돌아본 걸까? 달리던 발걸음이 멈췄다. 그렘린은 그런 스가와라의 모습을 보더니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체육관 쪽으로 향했다. 스가와라는 필사적으로 그를 쫓아갔지만 그는 이미 인간의 힘을 뛰어넘은 존재였고, 스가와라의 달리기 속도로는 그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체육관 뒷편의 허공에 금방 도착한 그렘린은 손에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스가와라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때는 이미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며 그의 손에 상당한 에너지가 모아진 때였다. 스가와라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다리가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이대로 끝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데, 옆에서 불쑥 자신을 잡아끄는 손이 있었다.


"아직, 희망을 버리지 마."


그렇게 말한 그는 자신과 비슷한 키를 가진 사내였다. 그 사내는 빙긋이 웃어보이더니 곧 손에 든 묘한 물건을 들어 허공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사내의 물건에서 탄환이 나오자 그제서야 스가와라는 그가 들고 있는 물건이 총이라는 것을 알았다. 허공을 향해 쏘아진 탄환은 곧 그 궤도를 틀며 그렘린을 향했다. 그 낌새를 눈치챘는지 그렘린은 몸을 틀어 방어했고,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모아졌던 에너지는 사라졌다. 스가와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조금 먼 곳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메두사는 혀를 차며 또 다른 괴물이 되어 그를 공격했다.


"위험해!!"


스가와라의 외침과 동시에 메두사의 공격이 사내에게 꽂혔다. 아니, 꽂혔다고 생각했다. 눈을 질끈 감았던 스가와라의 귀에 들려온 것은 요란한 음성이었다. 샤바두비 터치 변신 ~ 마치 흥겨운 오락기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에 스가와라는 눈을 슬그머니 떴다. 그 사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아까 그 사내 대신 검은색의 히어로 슈트가 서 있었다. 그리고 상황은 조금 더 급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사내 덕분에 자신은 안전하게 피난해 있었지만, 두 괴물의 공격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누가 봐도 불리한 싸움인데도, 스가와라는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수적 열세에 몰린 사내는 제법 힘들어보였다. 이대로 가다간 당하겠어! 그렇게 생각하는데 수풀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사내와 함께 괴물들에게 맞섰다. 스가와라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더 이상 사고회로가 현실을 쫓아가지 못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에 한숨을 내쉰 스가와라는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자 차근차근히 상황을 정리해보았지만, 여전히 결론은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스가와라가 고민하던 사이 두 사람이 합세한 덕분에 조금씩 열세에 몰리기 시작하던 괴물들은 결국 그 자리를 떠버렸다.


그리고 그 뒤는 눈 앞이 흐려졌던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낯선 천장이 보였고, 시선을 돌리자 작은 여자아이가 보였다. 그 여자아이는 딱딱한 말투로 몸은 어때? 따위의 것을 물어왔고, 스가와라는 몽롱한 상태에서도 꼬박꼬박 그에 대답을 했다. 드르륵, 가만히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나더니 일어난 여자아이가 '하루토를 불러올게.'라고 말하고는 나갔다. 하루토는 누구지? 여긴 어디고? 합숙소에 연락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스가와라는 곧 다시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