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란
The Other Live : Prologue
용족 란포와 고등학생 다자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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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산에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람들은 저마다 작살이니 창이니 하는 흉흉한 날붙이들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던져놓은 횃불은 곧 젖은 짚을 태웠다. 매캐한 연기가 동굴 안으로 들어찰 즈음, 동굴 안에서 강한 바람이 날아와 연기를 반대로 내보냈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콜록거리며 바람이 불어온 곳을 보았다. 연기 너머에서는 흉흉한 녹색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의 입은 성인 인간 정도는 간단히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로 컸고, 이어서 드러난 몸은 웬만한 성채를 웃도는 크기였다. 날카로운 두 개의 뿔과 검은 비늘, 가시가 박힌 꼬리, 그리고 펼치면 숲을 절반은 덮을 정도로 커다란 날개. 위용을 드러낸 블랙드래곤의 모습에 사람들은 긴장한 채 침을 삼켰다. 드래곤은 낮게 목을 울리며 동굴 앞에 놓인 짚단을 꼬리를 휘둘러 날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 온 날붙이를 전부 쏟았지만, 제대로 꽂히는 것은 없었다.
"정말 귀찮게 구네. 다 죽여버린다?"
"…히, 히익!!"
"셋을 세지. 그 동안 안 도망가면 전부 눌러 죽일거야."
"그럴 필요는 없어."
"…성기사놈."
드래곤은 그르릉, 하고 적개심을 드러내며 자기 눈 앞으로 걸어오는 유백색의 갑옷을 입은 사내를 보았다. 키는 6피트 정도에, 목을 덮을 듯 말 듯한 길이의 짙은 갈색의 굽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저를 노려보고 있는 녹색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먼저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단칼에 목이 날아갈 것이다. 서로의 실력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칼을 맞댄 사이였기 때문에. 스산한 바람이 둘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바람이 잠시 멈춘 것과 동시에 드래곤은 브레스를 내뿜었으며, 성기사는 보호마법을 몸에 두른 채 손에 든 투핸디드소드를 강하게 그러쥐고는 드래곤을 향해 휘둘렀다. 단단한 비늘의 틈새를 파고 든 칼날은 드래곤에게 상처를 남겼다. 괴로운 포효가 숲을 뒤흔들었다. 가시가 달린 꼬리가 성기사를 향해 맹렬히 날아들었고, 성기사는 제 옆구리를 내준 채 꼬리를 붙잡고 스펠을 읊었다.
"…어디서 그런 걸 배운거냐, 성기사놈."
지긋지긋한 놈, 죽일 놈. 온갖 저주의 언어와 욕설이 성기사를 향해 쏟아졌지만, 성기사는 스펠을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심장이 멈추고 만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드래곤은 망설임 없이 그가 잡고 있는 꼬리를 끊어버리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중으로 올라가면 인간들의 작살이 자신을 향할 것을 알지만 지금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 자리를 벗어나는 동안, 몇 개의 작살이 몸에 날아와 박혔다. 하지만 드래곤은 비틀거리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아, 죽을 것 같아. 두고 보자. 속으로 인간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드래곤은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성기사는 주인을 잃고도 독으로 땅을 물들여가는 드래곤의 꼬리를 보다가 슬픈 표정으로 칼을 집어넣고는 중얼거렸다.
"내게 이걸 가르쳐 준 건, 너야. 정말 다 잊어버렸을 줄은 몰랐는데."
*
그 날은 하루종일 되는 게 없는 날이었다. 친구는 여전히 시끄러웠고, 후배들은 계속 끈질기게 자신을 찾았다. 적당히 둘러대고 빠져나올 틈조차 없어, 결국은 강제로 착실하게 공부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나마 진작 집에서 나와 혼자 살고 있어서, 집에 돌아가면 혼자 있을 예정이라는 게 작은 위안이었다. 그는 저녁을 챙겨 먹는 것도 귀찮아서 적당히 학교 근처의 만두집에서 고기만두를 몇 개 사서 지름길을 통해 가자며 오솔길로 들어섰다. 오솔길을 절반정도 걸었을까, 괴로운 목소리가 들려와 다자이는 걸음을 멈췄다.
"거기 누가 있어요?"
그냥 지나가도 될텐데. 왜 고개를 들이민 걸까? 다자이는 제 눈 앞에 나타난 생물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어디로 봐도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영화 촬영이라도 하는데 내가 방해한 걸까? 그런 거야? 아니, 영화라고 해도 보통 이런 크리처를 스케일로 만드나? 이거 드래곤이지? 검은 비늘은 숲의 어둠과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고, 녹색의 눈만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어쩌지. 다자이는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한 채 멍하니 그 눈을 마주보는데, 조금 뒤 그 드래곤이 자신에게 고개를 들이밀더니 눈을 감고 냄새를 맡다가 고개를 돌렸다.
"너, 기분 나쁜 냄새가 나."
"…네??"
"맛있는 냄새도 나고."
"…혹시 배고파요?"
심장마비에 걸릴 뻔 했네. 그나저나 기분 나쁜 냄새는 뭘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자이는 품에 있는 봉투에서 만두를 꺼내서 내밀었다. 그러자 커다란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마치 먹여달라는 듯한 태도에 잠깐 고민하던 다자이는 이미 한 김 식은 녀석을 가만히 입에 던져넣었다. 드래곤은 입을 닫고 입 안에 들어온 만두를 한참을 오물거리다 삼켰다. 아, 맛있네. 이거 이름이 뭐야? 다자이는 눈을 깜박이며 그를 보다 애써 태연하게 답했다. 고기만두인데요. 드래곤은 한참 혼자서 고기만두라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손-이라고 봐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앞발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라고, 다자이는 생각했다. -을 내밀고는 말했다.
"그걸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줄게."
"…네? 아니, 이건 제 저녁인데."
"나도 배고파."
"많이 배고파요?? 전부 줄 수는 없지만, 같이 먹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는 수풀 너머로 들어갔다. 어느새 떠오른 달이 공터를 가만히 비추었다. 그 달빛으로 안 거지만, 드래곤은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등에는 몇 개의 작살이 꽂혀있었고, 꼬리도 뭉툭한 것이 잘려나간 것 같았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에 다자이는 고기만두를 건네며 괜찮으냐고 물었다. 드래곤은 입을 벌려 그가 건넨 만두를 받아먹고는 제 등을 흘끗 보다 만사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죽진 않았으니 됐다고 말했다. 그 느낌이 어딘가 쓸쓸해보여 다자이는 손을 들어 가만히 드래곤의 콧등을 쓸어주었다.
"건방진 인간놈, 잡아먹어버린다."
"어라, 사람도 먹어요?"
"맛 없어서 안 먹어."
아, 맛 없구나. 드래곤의 말에 허탈한 웃음을 지은 다자이는 하나 남은 고기만두를 드래곤에게 건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꽤 지나서 돌아가봐야 한다는 말에, 드래곤은 눈을 깜박이다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다자이, 다자이 오사무예요. 당신은? 다자이의 물음에 드래곤은 란포, 라고 답하고는 이 은혜는 조만간 갚으러 가겠다며 몸을 일으켜 고기만두를 조심스레 집어서 입에 넣었다. 덩치에 비해 꽤 귀여운 행동을 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어버린 다자이는 무엇에 홀린 것 마냥 또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란포는 멀어져가는 다자이를 한참 지켜보다가 턱을 괴고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냄새는 당장 갈아죽여도 시원찮을 놈이랑 똑같은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