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른 전력 60분
[오이스가]
주제 :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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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 토오루의 산책 코스는 언제나 똑같다. 오후에 거리로 나서 가까운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잠시 마른 목을 축이며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에서 쉬었다가 공원 입구의 꽃집에서 꽃을 한 다발 사갖고 들어간다. 마치 프로그램이라도 입력된 듯, 오이카와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했다. 아주 드물게 공원이 아니라 조금 멀리 있는 바다에 다녀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는 깨끗한 모래와 작은 조개껍질들을 병에 한가득 담아왔다. 바닷물도 같이. 그리고 매일 저녁 그는 언덕 위에 세워진 병원으로 향했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그 곳에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은 어떤가요?"
병원을 들어서면서 오이카와는 조금 부푼 마음을 안고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아직'이라는 말 뿐이었다. 아직, 아직. 얼마나 됐는지 세는 것도 지겨워 이제는 셈을 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언젠가, 그래 언젠가 돌아오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도 전향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가 깨어나는 순간을 회사 일에 매여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아직 싱싱한 꽃다발을 들고 병실로 향했다.
[613호/스가와라 코우시님]
그의 이름이 붙어있는 병실은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과 같았다. 오이카와는 이것이 매우 불쾌했다. 왜 하필 숫자가 겹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병실에 노크를 했다. 들어갈게, 코우시. 여전히 돌아오는 답이 없는 말을 하며 오이카와는 방문을 열었다. 생명유지장치가 달린 제 연인이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눈은 뜨지 못한 채로. 교통사고였다고 한다. 빗길에 미끄러져 인도로 돌진하는 차에 치였다. 즉사하지 않은게 다행일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어떻게 수술은 끝났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전부 현실이었다. 그래도 그는 언젠가 돌아오리라고 믿었다. 오이카와는 간이의자에 걸터앉아 링거가 꽂혀있는 스가와라의 손을 잡았다.
"거기 있지? 언제쯤 돌아올거야? 있잖아, 스가와라. 오늘도 그 공원에 갔었어. 다른 곳에 들리고 싶긴 했지만 역시 너한테 오는 시간을 일분도 지체하기가 싫더라. 전에 사둔 꽃이 시들어가길래 오늘은 새로운 걸 사왔어. 매일 사오고 있지만 말야, 그래도 역시 너한텐 가장 예쁜 꽃이 활짝 핀 순간을 보여주고 싶거든. 올 여름에는 천문대도 갈거야. 카메라를 새로 한 대 장만했거든."
그 다음 말은 차마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밝은 목소리로 말하던 오이카와는 조용히 고개를 들고는 눈을 서너 번 깜박였다. 나 혼자 그 곳에 보낼거야? 정말로? 네가 나보다 더 보고싶어했는데. 조리개를 열어서 카메라가 하늘을 잔뜩 담게 두고, 나랑 너는 그 별들을 보다가 텐트 안에서 쪽잠을 자겠지. 아주 편한 건 아니겠지만 둘이 있으니까 분명히 즐거울텐데. 그 하늘의 별만큼 너를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싶은데. 나한테서 기회를 앗아가지 말아줘. 이 모든 말들을 삼킨 채 그는 눈물 젖은 목소리로 웃음을 지었다.
"아, 내 정신 좀 봐. 슬픈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는데. 아무튼 있지, 그러다 토비오를 만났어. 네 얘기를 묻더라고. 그래서 난 그냥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해줬어. 그 곳은 즐거워? 거기가 저세상이 아니라는 건 알아, 요즘은 동화책을 읽어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 그러면 네가 있는 세상이 좀 더 아름답지 않을까? 사후세계라던가, 다른 세계를 믿는 건 아니었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 넌 그저 잠깐 여행을 떠난 거라는 생각 말야."
그렇게 말한 오이카와는 잠깐 말을 멈추고 스가와라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어제였나, 사실은 어제가 일년 째였던 것 같다. 의사가 냉정한 목소리로-사실 그도 엄청 고민을 했겠지만- 말했다. 더는 소용이 없으니 몇 달만 더 지켜보다 그래도 깨어나지 않으면 유지장치를 떼자고. 이미 스가와라씨는 뇌사상태니까 가능성이 낮은 일에 너무 매달릴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마음이 괴롭지만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제 손으로 어떻게 연인의 죽음을 감히 정하겠는가. 그저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빨리, 하루 빨리 돌아와달라고. 그래서 오늘은 조금 용기를 내어 말해보기로 했다.
"스가와라. 스가. 코우시. 오늘은 말야, 이제 그만 거기서 돌아와주면 안될까? 네가 없는 건 너무 힘들고. 외로워. 나 많이 기다린 것 같은데. 네가 여행을 간지도 일 년이 됐대. 돌아와서 이 기계 말고 나한테 키스해주면 좋겠어. 너를 더 멀리 보내는 거 나 자신 없어. 오이카와씨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정말 돌아와주지 않을거야?"
북받치는 감정에 오이카와의 목소리에는 다시 물기가 서렸고, 눈가가 빨개졌다. 눈물이 주체가 되지 않았는지 볼을 타고 흘렀다. 엄지로 눈가를 꾹 눌러 눈물을 닦아내서 옷에 대충 손을 닦아버리고 그는 스가와라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손이 따뜻했다. 마음 같아서는 옆에서 함께 잠들어 있고 싶었지만, 병원의 규칙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이카와는 아쉬운 목소리로 그의 손을 한참을 잡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 또 올게."
그러니까 오늘은 안녕. 오이카와는 작은 목소리로 제 연인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아쉬운 손을 떼지 못한 채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갔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안녕, 이라고 말하고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스가와라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이카와는 움직임을 멈추고 자기가 잘못 본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가와라는 그의 손가락을 강하게 잡았다. 오이카와의 눈에선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떨리는 손으로 너스콜을 부른 오이카와는 그대로 스가와라의 옆에 다시 앉았다. 손가락은 여전히 놓지 않은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