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5. 22:41

별이 떨어진 날

*사망네타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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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그 날 따라 사무실도 고요했다. 처음부터 그랬다는 것 처럼, 조용히, 조용히 스쳐지나가는 하루였다. 드문드문 울리는 전화는 별 것 아닌 전화들이라 길게 이어지지 않고 끊어졌다. 빗소리에 차단된 공기가 전화소리를 더 쓸쓸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사장실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려퍼질 때까지, 사무실은 그저 종이를 넘기는 소리와 의미없는 타자를 치는 소리만이 가득찼다. 여름 장마철의 공기보다도 숨을 조여오는 답답함이었다.


"찾았다고?"


사무실의 정적을 깬 건, 후쿠자와의 한 마디였다. 찾았다. 그 말에 사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사장실 문 앞에 모여 귀를 곤두세웠다. 전화기 너머의 소리는 들릴 턱이 없었지만, 후쿠자와의 짧은 대답으로라도 뭔가를 유추해 볼 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단한 수확은 없었다. 그저 분주하게 후쿠자와가 옷을 챙겨입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후쿠자와가 나오는 소리에 급하게 제자리로 돌아간 사원들은 저마다 일을 하는 척 하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후쿠자와는 사원들의 모습을 보다 눈을 지그시 감고 요사노와 쿠니키다를 불렀다. 좋지 않은 예감이 사무실을 훑고 지나갔다.


"…요사노, 쿠니키다."

"네."

"다자이가 란포의 소재를 파악했다고 한다."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나도 간다."


란포가 나를 찾는다고 하더군. 짧지만 강한 말이었다. 란포가 후쿠자와를 찾는 게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그저 단순히 칭찬을 위해 찾는 게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찾아 나섰어야 했다. 언제나와 같은 변덕이라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 위협도 없는 상황이라 했어도 란포를 혼자 보내서는 안됐다. 전화를 받았어야 했다. 후쿠자와는 뒷좌석에 앉아 핸드폰에 남은 부재중 전화, 그리고 문자를 보다 상념에 잠겼다. 왜 진작에 신호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왜. 왜. 단단하게 쥐어진 주먹에 하오리가 구겨졌지만, 그런 건 지금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쿠니키다는 흘끗 리어뷰미러를 쳐다보다 속력을 높였다. 평소라면 철저하게 신호를 지켰겠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이렇게 움직여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자이의 품에 안긴 란포에게 달려갔다.


"란포!"

"란포씨!"

"…오셨군요."


젖은 옷에 잔뜩 번진 피를 담은 채 다자이가 그들을 맞았다. 그게 본인의 피가 아니라는 것은 금세 알 수 있었다. 다자이의 담담한 갈색 눈동자에는 깊은 후회가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아마, 후쿠자와와 같은 종류의 것일 테다. 요사노는 급히 맥박을 잡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녀의 시선이 조용히 바닥을 향했다. 란포의 가녀린 손목이 엉망으로 번졌다. 아, 아아, 아아아. 짙은 슬픔만이 목울대를 긁으며 소리를 냈다. 의사의 확실한 사망선고였다. 쿠니키다는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다자이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렸다. 그 바람에 란포의 몸이 흔들려, 다자이의 품에서 무릎으로 내려갔다. 다자이는 그런 란포를 단단히 붙잡은 채 쿠니키다를 쳐다보았다. 안경 너머의 눈에는 이미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넘치고 있었다.


"왜 네가 있었으면서도 이 꼴이 된거냐! 제대로 설명해라!"

"…아니야."

"뭐?"

"내가 발견했을 때, 란포씨는 이미…."


살아날 수 없는 상처였어.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당장이라도 요사노를 부르겠다는 말에 란포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대로. 작별인사는, 어떻게든 했으니까. 끊어지는 숨을 뱉으며 말하던 그는 그렇게 생을 포기했다. 살기를 포기했다. 왜죠, 왜. 다자이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 채로 그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자이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고, 란포를 이해하지 못했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란포의 죽음이라는 현상은, 이런 형태의 이별은 다시는 없을 줄 알았기에. 다자이는 왜 란포가 죽음을 택했는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아마, 평생을 가도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죽어서 다시 만나 그 이유를 물어보면 당신은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면서 설명이라도 해줄까.


[…나도, 이능력이 있었다면, 좋았을걸.]


꺼져가는 목소리로 란포는 그렇게 말했다. 그게 마지막으로 들은 언어가 될 지는 몰랐다. 그 뒤로 말이 더 이어졌어야했지만, 명탐정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울지 못했다. 다자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사무실에서 모두가 찾고 있는 이 사람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것 뿐이었다. 쿠니키다는 집어던지듯 다자이의 멱살을 놓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모질게 화도 내지 못하다니, 역시 착한 사람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다자이는 한참을 가만히 서있던 후쿠자와를 보았다. 사실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란포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은 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다자이는 란포를 안아들고 그 힘없이 굳어가는 몸을 후쿠자와에게 넘겼다. 후쿠자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느끼며 품에 란포를 안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랐다. 온갖 종류의 언어가 소용돌이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했다. 한참을 입만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던 후쿠자와는 란포를 끌어안은 채 조용히 늦은 사과를 전했다.


"미안하다, 란포."


너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네 말을 완전히 알아듣지 못해서. 나는 무엇을 위해 네 보호자가 되었던가. 무엇을 위해 너를 곁에 두고 지켜봤던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후회를 목구멍 너머로 슬픔과 함께 다시 삼킨 후쿠자와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올리고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천천히 슬픔을 흘려내다 못다 감은 란포의 눈을 커다란 손으로 덮어주었다. 그 손이 조심스럽게 떨리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후쿠자와는 편안히 눈을 감은 란포의 얼굴을 보다 머리를 쓸어주며 아주 약하게, 슬픈 미소를 지었다.


"거기선 편히 쉬어라. 누구도 널 괴롭히지 않을테니."


빗줄기가, 조금씩 약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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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