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0. 01:36

문호스트레이독스 : 어느 오후의 의미없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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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세상이 한 번쯤 뒤집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음악이 나오지 않는 헤드폰을 목에 걸고 있던 다자이가 천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타닥, 타닥. 헤드폰과 귀의 비어버린 틈새로 규칙적인 타자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내는 사람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쿠니키다 돗포. 사소한 것까지 철저하게 계획적인 자신의 파트너. 물론, 조금 쓸데없이 열을 내는 경향은 있다. 다자이는 그의 '몰두'를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몰두 중인 그의 파트너에게 다시 한 번 대답을 요구했다.


"어떻게 생각해, 쿠니키다 군?"

"어엉?"


집중하느라 한 박자 늦게 나온 반문에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곤 곧 속사포로 말을 내뱉는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다니, 우리 사이가 그 정도 밖에 안 됐어? 그렇게 말하며 노트북 너머로 쿠니키다를 바라보자 짜증이 섞인 한숨이 들리고 시선이 그를 잠시 향했다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탁, 타닥. 신경질적인 타자소리가 잠시 정적을 채웠다. 그 끝에 나온 말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저번 사건의 보고서나 쓰지 그래."

"…네이, 네이."


한 치의 예상도 빗나가지 않는 완벽함이었다. 언제나 예정이 빗나간다고 투덜거리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남자가 할 일을 하지 못한 적은 없다. 어떻게든 끝내고 만다. 예외가 있으면 그 예외를 넘어서 해낸다. 완벽에 대한 집착도 이 정도면 병이었다. 뭐,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깨끗한 자살을 신조로 삼는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조금 늘어진 대답에 바로 이어 날아오는 날카로운 시선에 다자이는 자세를 고쳐앉고 노트북을 열었다. 하지만 딱히 의욕 없는 사람이 화면에 쓰는 것이라 곤 아까 내뱉었던 시답잖은 문장이었다.


[이 세상이 한 번쯤 뒤집어진다면 어떨까.]


산 사람은 죽고, 죽은 사람이 산다 수준의 천지개벽까진 아니어도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돌아버린다면 그로 인한 자신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따위의 의미없는 생각이 시간과 함께 다자이의 머릿 속을 지나갔다. 조금 뒤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란포가 자신의 문장을 발견할 때 까지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호오, 다자이. 갑자기 감상에 빠지기라도 한 거야?"

"아, 란포씨."


어떻게 생각해요? 말은 하지 않은 채 다자이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란포는 흠? 하고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는 이내 빈 책상에 걸터올라 라무네에서 빼낸 구슬에 햇빛을 투과시키며 말을 덧붙였다.


"그런 가정은 나한테는 별로 의미가 없는걸?"

"하하, 그런가요?'

"탐정이 하는 일은 진상을 밝히는 거잖아?"

"그렇죠."


그러니 나한테는 의미 없는 가정이라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란포는 느긋하게 구슬 감상에 빠졌다. 란포의 말을 듣고 가만히 화면을 보던 다자이는 손가락을 들어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빠른 속도로 한 자씩 사라지는 노트북의 화면을 보고 있자니 쓸데없이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 처음부터 의미 없는 가정이었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니까. 하얗게 비워진 화면을 보던 다자이는 그대로 손을 들어 노트북을 덮었다. 참, 나른하고 조용한 오후다.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