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달칵.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나이가 제법 있는 사람이었다. 스가와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격식 인사로 예를 갖췄다. 그가 자신의 추천인이었기 때문이다. 비어버린 갤러해드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상당히 먼 일본까지 와서 자신을 데리고 갔었다. 물론 면접-그걸 면접이라고 하기엔 많이 혹독했지만-과 주변인들의 좋지 못한 시선을 잔뜩 받았지만 말이다. 혼혈이라니, 그것도 한참 먼 존재이지 않습니까. 제대로 교육은 받았답니까? 따위의 말들을 한참 들었더랬다. 그 때 마다 스가와라는 자신감을 잃었었지만, 자신의 추천인은 말했었다. 쓸데없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고. 하고 싶다면 하면 되는 거라고. 매너는 나중에라도 익힐 수 있으니까. 그 말을 위안삼아 스가와라는 끝까지 면접을 버텨냈고, 결국 갤러해드의 칭호를 얻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판도가 제법 바뀌어서 몇 명의 혼혈이 추천을 받아 들어오기도 했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지만. 자신의 추천인에게 정확한 온도로 우려낸 첫물의 다즐링을 대접하며 스가와라는 자리에 앉았다. 다과는 마땅한 게 없습니다,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는 스가와라를 보며 그의 추천인은 빙긋이 웃었다. 괜찮네,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며 잔을 입에 가져간 그는 가만히 입에 머금은 홍차를 음미하다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웨지우드라. 아름답지. 자네도 보는 눈이 늘었군. 그의 칭찬에 스가와라는 빙긋이 웃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가웨인."
"하하, 자네를 추천한 보람이 있어."
"항상 너무 띄워주신다니까요. 그래서, 여기까진 무슨 일이십니까?"
"음, 슬슬 은퇴를 생각중이네."
"그 건이라면 아서에게 말씀하시지 않고요?"
"아서에겐 이미 얘기 해뒀네. 자네에게는 그간의 정을 봐서 미리 알려주러 온 거지."
"그건 영광입니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실테지요."
"…역시 자네 눈은 못 속이겠군."
"아니라면 아서의 전달만으로도 충분했겠지요. 후계자는 정하셨습니까?"
"음, 생각하긴 했는데…."
"말꼬리를 잡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만, 했는데. 라는 건….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도?"
스가와라가 그렇게 말하자 가웨인은 점잖게 난 그의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로 하는 것 보단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지. 움직임세. 스가와라는 가웨인의 뒤를 따라 나섰다. 택시에 올라 몇 시간을 이동했을까. 도회지보다는 슬럼가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에 그들은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들의 옷차림을 본 양아치들이 낮게 휘파람을 불며 그들을 도발했지만, 가웨인과 스가와라는 태연하게 그들의 목적지로 향했다. 슬럼가의 안쪽에 위치한 주차장에 들어서자, 여자들 사이에 둘러쌓인 짙은 갈색 머리의 청년이 눈에 띄었다. 가웨인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일세."
"…그렇군요."
"자네와 같은 혼혈이네."
"…아뇨, 같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교육이 필요해보이네요."
"…부탁해도 되겠나."
"…지금 저한테 부탁하시는겁니까?"
"곤란한가?"
"음, 아까부터 상당히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탓에 조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만."
"허허…."
둘이 저를 보며 대화를 하는 것이 거슬렸는지 갈색 머리의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들에게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입에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비뚤게 물고 있던 그는 둘의 앞에 서서 그들을 번갈아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 태도에 스가와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곧 그 청년이 멱살을 잡아 자신을 주차장의 기둥에 밀어붙였다. 청년의 키가 저보다 조금 컸던 탓에 밀린 스가와라는 콘크리트 기둥에 그대로 등을 부딪혔다. 조금 쓰린 느낌이 등을 타고 올라오자, 여기저기서 낮게 휘파람을 부는 소리가 들렸다. 청년은 물고 있던 담배를 뱉고 그에게 물었다. 싸한 맨솔의 향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저 할배가 데려온 걸 보니 댁도 그 양장점 직원이야?"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헤에, 제법 반반하게 생겼네."
"……."
"어때, 그런데서 일하는 것 보다 즐겁게 해줄 수 있는데."
"…어디까지 해도 됩니까?"
그 말은 가웨인에게 한 질문이었지만 갈색 머리의 청년은 빙긋이 웃으며 태연히 스가와라의 엉덩이에 손을 올렸다. 꽤 대담한데? 그렇게 말하며 손이 엉덩이를 움켜쥐는 순간, 스가와라의 팔꿈치가 그의 턱을 가격했다. 큭, 괴로운 소리와 함께 두어걸음 뒤로 물러나자 그의 친구로 보이는 자들이 슬금슬금 저마다 무기를 쥐고 다가온다. 스가와라는 시선을 돌려 가웨인을 쳐다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어디까지 해도 됩니까?"
"…죽이지만 말게."
"…그 정도라면…뭐. 거기 청년, 이름이 뭡니까?"
턱을 문지르던 청년은 스가와라의 질문에 그를 마주보았다. 스가와라는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았고, 청년은 쳇, 하는 소리를 내더니 마지못해 자기 이름을 답했다. 오이카와 토오루. 너는? 그렇게 말하자 스가와라는 태연하게 걸음을 옮기면서 머리를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글쎄요, 그건 교육이 끝난 다음 가르쳐드리죠. 아무래도 매너의 ㅁ자도 모르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자 오이카와는 자존심을 긁힌 표정으로 스가와라를 보다가 턱짓을 했다. 그의 신호에 오이카와의 동료들이 달려들었다. 스가와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숙여 횡으로 그어진 나이프를 피하며 그의 명치를 찍고 그대로 팔꿈치를 올려 턱을 날렸다. 앞에서 달려드는 녀석에겐 선물로 기절한 놈을 던져주곤 그대로 발로 걷어차버렸다. 순식간에 둘이 나가 떨어지자 다들 주춤하는 분위기였다. 여자들은 일찌감치 비명을 지르며 내빼버렸으니 남은 건 사내놈들 뿐이군. 그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목운동을 한 스가와라는 빙긋이 웃었다.
"다음은 누굽니까."
그렇게 말하며 안경을 올려쓰자 마치 그것이 신호라도 된 양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스가와라에게 달려들었다. 감정적이 되면 역시 행동이 단순해지는군요. 그렇게 말하면서 스가와라는 여유롭게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 가볍게 손가락을 한 사람의 목에 갖다댔다. 그러자 손에 닿은 사람의 몸이 파르르 떨리더니 그대로 흰자위를 보이며 기절해버렸다. 쯧, 품위 없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계속해서 동료를 잃어도 달려들 수 밖에 없는 맹목적인 그들의 행동에 한탄하며 들고 있던 장우산으로 그들의 턱을 날려버렸다. 그의 일격에 두 사람이 나가 떨어지고 남은 것은 오이카와 하나였다. 스가와라는 조금 상쾌해진 듯 한결 편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오이카와를 보았다. 가웨인은 안경을 벗은 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당황한 듯 칼을 빼들자, 스가와라는 우산을 펼쳐들고 그 끝을 오이카와에게 향하며 말했다.
"당신의 칼과 제 총 중 어떤게 빠른지 승부할까요?"
"……."
"아, 죽이진 않습니다."
"…졌어, 졌다고. 당신들 대체 뭐야? 평범한 양장점 직원이 아니지?"
칼을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지고 양 손을 들어 항복의사를 표시한 오이카와를 보던 스가와라는 웃으면서 일단 관심이 있으면 우리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오이카와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그럼 안내하라며 입술을 비죽이 내밀고 투덜거렸다. 그 말에 가웨인이 먼저 몸을 돌려 택시에 올랐고, 뒤이어 오이카와와 스가와라가 탑승했다. 가웨인은 조용히 미간을 누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미스터 스가와라, 자네 생각보다 과격한 사내였군."
"음, 최대한 신사적으로 상대한 겁니다만."
"…저게 신사적이라고?"
"일단 피는 안 났습니다. 턱도 기절할 정도로만 때렸지 어디 부수지도 않았고요."
"…거짓말. 골이 띵하던데."
"아, 그건 원래 턱을 맞으면 누구라도 그런 겁니다. 하악에 전해진 충격이 뇌를 흔드는거죠."
"…진짜 수상해. 양장점 직원 맞아?"
질렸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하던 오이카와는 스가와라가 보조석에서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반사적으로 턱을 가리며 가웨인쪽으로 붙었다. 가웨인은 너털웃음을 웃었고, 스가와라는 오이카와를 보다가 어깨를 으쓱이곤 이런 좁은 공간에선 때리지 않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그 말에도 별로 안심이 되는 것은 아닌지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에게서 충분한 거리를 확보한 채 양장점에 도착하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