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4. 01:32

[문호스트레이독스]


뱀파이어 AU


망향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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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남아서 그곳 하늘에 뜨고 

구름 멀리서 고요히 눈을감고 

보낸뒤에도 남은 서러움 

살아도 눈을 감아도 또 너를 묻게하고 


자우림, 망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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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여기인가."


붉은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땋아내린 소녀는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다 란포의 집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노크도 없이 열린 문에 란포는 가만히 시선을 올려 문을 쳐다보았다. 소녀는 한 손에는 낡은 레트로풍의 여행가방을 든 채 활짝 웃었다. 란포는 그녀를 마주보며 웃어주고는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소녀는 달그락거리는 가방을 끌고 들어와 문을 닫았다. 소녀를 보고 놀란 건 다자이 쪽이었다.


"…란포씨?"

"응, 왜?"

"새로 온다는 게 루시였어?"

"응."

"어라, 다자이씨한테는 비밀로 했던 거예요?"

"아니, 그냥 누가 오는지 말을 안 했지."

"…올 거라면 미리 언질이나 주지."

"아니, 뭐, 놀래키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라."


란포와 루시가 서로를 마주보며 웃자, 다자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소파에 앉았다. 루시라, 확실히 대 뱀파이어전 훈련에는 딱 맞는 전투조교였다. 그녀 또한 뱀파이어였으니까. 다만, 그녀의 정체는 교회에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란포가 철저하게 기록을 숨겨버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루시는 그저 어느 시골의 교회에 소속되어있는 한 사람의 수녀일 뿐이었다. 그녀는 다자이가 건넨 엑소시스트 명부를 받아서 소파에 앉아 한 장씩 서류를 넘겼다. 마지막 두 장을 손에 쥔 채 번갈아가며 보던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애들이 이번에 집중해야 하는 애들인가요?"

"음, 둘 다 하프거든."

"헤에, 하프가 둘이나 왔어요? 별 일이네."

"곤란해하고 있길래 주웠지."

"…흐응."


작게 콧소리를 낸 루시는 종이를 다시 파일 안에 넣고는 파일을 갈무리해서 일어났다. 이번 일에 대한 위험수당은 확실하게 챙겨달라는 그녀의 말에 란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고, 그녀는 만족한 듯 인사를 하곤 짐을 풀러 떠났다. 문이 닫히자 마자 다자이는 란포를 빤히 쳐다보았다. 란포는 일부러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서류에 서명을 해 나갔다. 다자이는 일부러 조금 시끄럽게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란포씨."

"응?"

"…상대가 진짜면 나도 그게 안 풀린다고는 장담은 못 해."

"그럼 루시에게 주의를 주던가."

"하프라고 말해놓고?"

"그녀라면 금방 하프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눈치 채겠지."

"뭐, 몇 번 부딪쳐보면 눈치 채겠지만."


다자이는 턱을 괴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는 속으로 쿄카를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오래 붙잡아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저울질을 시작했다. 조금 뒤에 결론을 내린 그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녀오겠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나갔다. 다자이가 향한 곳을 어렵지 않게 짐작한 란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얘기하느라 잠시 멈췄던 펜을 다시 움직였다. 다자이는 쿄카의 방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투훈련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쿄카는 자신의 침대 위에 있는 남자에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지 않도록 입을 막고 문을 닫은 다자이는 그대로 시선을 낮춰 그녀를 쳐다보았다.


"쉿, 조용히 해 줄 거지?"


눈웃음을 지으며 하는 그의 말에 쿄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거스르는 건 좋지 않다.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쿄카의 답을 듣고서야 손을 뗀 다자이는 그녀를 옆에 앉힌 채 제법 일상적인 대화를 물었다. 전투 훈련은 어땠냐던가, 공부만 할 때보다 힘들겠다던가. 쿄카는 그럴 때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바닥을 쳐다보며 기계적으로 답했다. 한참을 겉도는 대화만 하던 다자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을 마주보았다. 붉어진 그의 눈을 얼떨결에 마주 본 쿄카는 얼마 안 가 그대로 쓰러지듯 잠들어버렸다. 잠이 든 그녀를 가만히 눕혀준 다자이는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조용히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쿄카의 방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아츠시였다. 그는 잠이 들어버린 쿄카를 보다가 피식 웃고는 그녀를 제대로 눕혀주곤 이불을 제대로 덮어주었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네. 푹 쉬어, 쿄카."


다음날 아침, 쿠니키다는 영 탐탁치 않은 얼굴로 훈련생들 앞에 루시를 데리고 나왔다. 훈련장은 처음 보는 여성의 등장에 웅성거렸다. 그런 그들을 손뼉을 쳐서 시선을 집중시킨 쿠니키다는 그녀를 훈련생들에게 소개해주었다. 이름은 루시 몽고메리이며, 다른 지역에서 수녀를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수도원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다. 그녀가 전투훈련에 참여할 것이라는 말에 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루시는 그에 아랑곳 않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 루시 몽고메리예요. 오늘부터 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호오, 기합이 좋네. 그럼 쿠니키다 신부님, 지금부터 시작해도 되죠?"

"…좋을대로."

"네, 네. 그럼 먼저 기초 실력을 테스트해볼까요?"


쿠니키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미 기초는 충분히 닦아두었다. 문제는 없을 것이다. 루시는 그렇게 생각하는 쿠니키다를 비웃듯 훈련생들의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갔다. 테스트를 한다며 나선 그녀의 행동에 영문을 모르던 훈련생들은 루시가 가볍게 손가락을 까닥이며 도발하자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자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말했다.


"뭐야, 여태껏 일대일 훈련만 한 거예요? 덤벼봐요."

"…하, 하지만 어떻게."

"음, 그럼 명분을 만들어주죠."


그녀는 생긋 웃고는 허벅지에 달린 홀스터에서 단도를 꺼내더니 옆에 있던 아츠시를 순식간에 낚아채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대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아츠시는 그녀에게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루시는 오히려 팔에 힘을 더 주고 목에 바짝 칼을 대며 웃었다. 그순간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살기에 훈련생들은 살짝 얼었고, 아츠시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루시는 아까와는 다른 섬뜩한 미소를 띤 채 훈련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이 덤비지 않으면 이 친구는 구할 수 없어요. 그래도 보고만 있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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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