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11. 00:41

[문호스트레이독스]
뱀파이어 AU
망향 24.

=========================

별은 남아서 그곳 하늘에 뜨고
구름 멀리서 고요히 눈을 감고
보낸뒤에도 남은 서러움
살아도 눈을 감아도 또 너를 묻게하고

자우림, 망향 中

=========================

쿠니키다의 부름에 서둘러 도착한 다른 엑소시스트들이 발견한 것은 사육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의 기둥에 그려진 붉은 마법진이었다. 사람의 발길도 잘 닿지 않는 곳이라 더욱 알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 마법진의 모양을 베껴 그린 뒤 원래 있던 마법진을 지워버린 엑소시스트들은 수도원에 다시 한 번 결계를 펼쳤다. 후에 쿠니키다의 메모를 건네받은 다자이는 낯익은 모양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건 츄야가 자주 쓰는 소환진이야."
"츄야?"
"자네가 만났다던 그 주황색 머리의 뱀파이어 말이지. 좀 독특한 버릇이 있거든."

다자이는 소환진 끝에 그려진 문양을 가만히 보다가 종이를 접어서 그대로 태워버렸다. 쿠니키다는 모처럼 발견한 증거에 무슨 짓이냐고 했지만, 다자이는 덤덤하게 재를 허공에 날려보내며 이 소환진은 형태가 보존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침입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말했다. 누가 이 소환진을 이용해서 오갔느냐가 중요한 거지만, 애석하게도 사육장에는 피비린내만이 남아있었다. 단서가 될 만한 향기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을 찾아야 하는가?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다자이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쿠니키다군, 덫을 준비하지."
"하아? 갑자기 무슨 소리냐."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범인을 잡아들이자는 거야."
"…방법이 있나?"
"뭐, 백퍼센트 통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없지는 않지."
"믿어도 되나?"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있고? 어차피 타깃은 여기 만이 아니야."

아마 츄야라면 하마오 영감님을 구워삶아서 란포씨가 후원하고 있는 곳의 리스트 정도는 손에 넣었겠지. 다자이의 말에 쿠니키다는 팔짱을 낀 채 그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퍼뜩 떠오른 것이 있는 듯 급히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쿠니키다가 돌아가고 나서 다자이를 찾아온 건 요사노였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란포도 더이상 고집은 부리지 못했다. 얼마 만에 집무실로 돌아가는 건지. 물론, 돌아가자마자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다자이, 상황은 어때?"
"쿠니키다군이 보고하지 않았어?"
"종이 위의 보고는 언제나 늦잖아. 네가 파악한 걸 말해."
"아마 여기 말고 다른 곳에도 소환진이 뿌려졌을거야."
"최악의 경우는?"
"이즈미 쿄카의 각성으로 이쪽이 정신 없는 틈을 타서 동시다발적으로 수도원들을 습격하는 것."
"가능성은?"
"80퍼센트 정도."
"…이즈미 쿄카는 내가 맡을게."
"그럼 나는?"

란포는 다자이를 물끄러미 보다 지시를 내렸다.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서 전투에 임하라고. 자신의 몸을 건 명령이었지만 다자이는 그것을 어길 수 없었다. 부디 몸 조심하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다자이는 조용히 연기가 되어 란포의 집무실에서 빠져나갔다. 란포는 다자이가 사라진 자리를 한참을 보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것은 다분히 원망이 섞인 투덜거림이었다.

"망할 놈들. 쉴 시간은 줘야 할 것 아냐."

―.

이즈미 쿄카는 요즘들어 자신의 몸 상태가 예전과는 다른 것을 느끼고 있었다. 루시가 온 이후로 전투훈련의 강도가 세지긴 했지만 체력이 붙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충분히 그 정도는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신을 차리면 의무실에 누워 있는 날이 늘었다. 그럴 때면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목은 바짝 타들어갔다. 미친 듯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그녀가 앓는 소리를 내면 요사노가 달려와 그녀에게 물과 붉은 알약을 주었다. 그것을 받아먹으면 서서히 속이 가라앉았고, 정신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요즘은 어쩐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삼키기 직전에 입 안에 퍼지는 옅은 비린 맛은 가끔 상처가 났을 때 저도 모르게 입에 물었던 손가락에서 났던 그 맛과 닮아있었다. 피. 신기하게도 자신을 진정시키는 것은 피였다.

왜 피를 먹으면 진정이 될까? 아츠시는 한 번도 혈액을 섭취한 적이 없다. 적어도 쿄카가 아는 한은 그랬다. 그런데 자신은 왜?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이유는 알 수 있었다. 그녀, 이즈미 쿄카는 나카지마 아츠시와는 다른 종족이었던 것이다. 그저 아츠시가 자신은 하프이며 너도 그런 것 같다고 말해서 그 말을 믿었을 뿐이다. 단 하나의 확률에 기댔을 뿐이다.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이가 하나 더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진정되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츠시의 그 말이 오히려 쿄카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아츠시는, 하프, 같은 처지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사실은, 똑같지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아츠시는 자신을 어떻게 대할까?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쿄카는 더없이 불안해졌다. 하루라도 빨리 이 능력을 컨트롤 해야했다. 아츠시에게, 자신이 그를 위협하던 그 종족이라는 것을 알려서는 안 됐다. 하지만 쿄카의 그런 결심을 비웃듯, 본능은 무서운 속도로 그녀를 잠식해갔다.

'문호스트레이독스 > 망향(望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망향 26.  (0) 2016.10.17
망향 25.  (0) 2016.10.10
망향 23.  (0) 2016.09.10
망향 22.  (0) 2016.09.08
망향 21.  (0) 2016.08.13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