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스트레이독스]
뱀파이어 AU
망향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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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남아서 그곳 하늘에 뜨고
구름 멀리서 고요히 눈을 감고
보낸뒤에도 남은 서러움
살아도 눈을 감아도 또 너를 묻게하고
자우림, 망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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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야.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훈련생들은 사육장 앞에 모여있었다. 한 훈련생의 보고를 받은 쿠니키다가 급하게 사육장 쪽으로 달려왔다. 사육장 안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닭은 목을 전부 비틀려 죽어있었고, 바닥에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핏자국이 이동한 흔적은 없었으나, 다른 동물들도 몇 마리가 사라져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쿠니키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훈련생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하고는 다자이와 루시를 불렀다. 쿠니키다의 호출에 나온 둘은 사육장을 보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쿠니키다는 한숨을 내쉬며 둘에게 물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나?"
"…인간의 짓은 아니군."
"자, 그럼 둘 중 누구지?"
"우리를 의심하는 거예요?"
"여기서 내가 아는 인외의 존재는 다자이놈과 루시 자네, 그리고 아츠시와 꼬마 계집 정도야."
"그래서, 하프가 아니니까 우리를 의심한다?"
"그렇다."
"아아, 란포씨를 향한 충성심 만큼이나 쿠니키다군의 머리가 돌아가면 좋을텐데."
"뭐라고?"
다자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언성을 높이는 쿠니키다를 손을 가볍게 들어 저지하고는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쉿, 이라고 말했다. 목소리가 커지면 다른 사람들이 들을 염려가 있어. 이어지는 그의 말에 쿠니키다는 끓는 한숨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다자이는 차분히 그의 얘기에서 나오는 맹점들을 짚어나갔다. 첫째, 자신은 이미 계약자가 있는 상태라 굳이 동물의 피를 섭취할 필요가 없으며, 둘째, 루시는 피를 동물용 수혈팩으로 공급받는다. 그러니 적어도 우리 둘은 아니라는 말에 쿠니키다는 역성을 냈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저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다자이의 말이 계속되는 동안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던 루시는 가만히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쿄카가 아닐까요?"
"…그 꼬마가?"
"각성이 시작됐을 수도 있죠."
"…각성이라니?"
"뭐야, 다자이씨. 말 안 했어요?"
"…아차."
"아차? 아차라니. 그럼, 그 꼬마는 하프가 아니란 말이냐?"
"그렇다네. 이즈미 쿄카는 뱀파이어야."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왜 말하지 않았나!"
"말했다면 자네가 그녀를 평범하게 대할 수 있었을까, 쿠니키다군?"
다자이의 질문에 쿠니키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인외, 그것도 뱀파이어를 가장 싫어하는 자신이 이 둘과 일을 하고 있는 건 전부 자신을 거두어 준 란포씨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태도가 호의적인가, 라고 하면 그건 빈말로라도 그렇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그들에게 지켜줄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는 가장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쿠니키다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요령 좋게 숨기지 못했다. 확실히 이즈미 쿄카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자신의 태도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눈치챘을 수도 있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쿠니키다는 그들의 결정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생각에 잠긴 쿠니키다를 보던 다자이는 눈웃음을 짓다가 루시를 쳐다보았다.
"루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뭐지?"
"그게 말이죠. 누구도 그 애가 진짜 몇 살인지 모르잖아요?"
그랬다. 이즈미 쿄카는 겉으로는 열네살 정도의 외모를 가진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성장을 멈춘 시기를 알려주는 지표일 뿐이었다. 누구도 이즈미 쿄카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는 알지 못했다. 운이 좋게도 각성을 하기 전이라 다자이가 조금씩 각성을 지연시킬 수 있었지만, 그 잠금장치는 얼마 전에 방문했던 츄야때문에 부서져버렸다. 루시는 한숨을 내쉬면서 어깨를 으쓱이고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각성을 할 때는 엄청난 열과 함께 갈증을 느끼고, 그래서 주변에 있는 생물의 피를 갈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 쿄카가 훈련 중에 몇 번인가 쓰러진 적이 있다는 말까지 들은 쿠니키다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다자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 번 사육장 안을 둘러보다가 깨달은 것이 있는 듯 피식 웃었다.
"과연, 그렇군."
"다자이씨?"
"다자이?"
"이건 외부인의 소행이야."
"어떻게 장담하지? 이 곳은 결계가 쳐져있다."
"쿠니키다군, 우리는 인간들보다 오래 사는 존재네. 결계를 깨는 방법 하나도 모를까."
"…설마!!"
"얼마 전에 자네가 만났다던 그 뱀파이어가 뭐라도 해두었겠지."
"…빌어먹을!!"
"지금이라도 엑소시스트들을 불러서 수도원을 샅샅이 뒤지고 결계를 다시 치는 게 좋지 않을까?"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흩은 쿠니키다는 곧 등을 돌리고 성큼성큼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다자이는 그가 가고도 쪼그려앉아 한참을 사육장 바닥에 있는 지푸라기들을 손으로 흩었다. 루시는 그런 그를 보다가 그의 옆에 쪼그려 앉아 그의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다자이는 그런 그녀를 보다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쿠니키다에게는 하지 않았던 말들을 꺼냈다. 이즈미 쿄카는 살해된 뱀파이어의 뱃가죽을 찢고 나왔네. 다자이의 말에 루시는 바닥을 훑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처음 듣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태어난 뱀파이어는 없었다. 뱀파이어라고 해도, 인간인 상태에서 뱀파이어의 피를 주입받아 변화하지 않는 이상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장을 거친다. 물론, 개체차도 엄연히 존재하기에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죽은 이의 뱃가죽을 찢고 나왔다니, 그 말은 이미 나왔을 때부터 어느 정도 성장해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게 말이 돼요?"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네. 뒷조사를 좀 했거든."
"그럼, 그 애 때문에 죽은거예요? 엄마는?"
"아니, 그건 아니네."
"…죽은 엄마의 몸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았다?"
"그렇지."
"이 애가 돌아서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되면 더 위험해지기 전에 내가 처리할 생각이야."
"아츠시군은요?"
"위험요소가 된다면 마찬가지지."
"참 아무렇지 않게 말하네요."
루시는 다자이의 말에 질린 표정으로 그를 보다 고개를 돌려 다시 바닥을 뒤적거렸다.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는 발을 옮겨 그 자리를 구둣발로 몇 번 짓이겼다. 그러자 조금 뒤에 파인 흙 사이에서 작은 손가락 뼈가 나왔다. 그것을 손으로 집어든 다자이는 대충 상황을 알겠다는 듯 콧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시는 여전히 쪼그려 앉은 채 그를 올려다보다 조금 뒤에야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좋은 거라도 찾았어요?"
"나쁜 짓을 하는 놈들이 있다는 증거를 찾았지. 누군지는 뻔하지만."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네요."
"그렇지? 쿄카 쪽은 맡겨둘게. 잘 좀 감시해줘, 루시."
"뭐어,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 지는 몰라요."
"너무 걱정은 마. 대책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
"대책이요? 뭐가 있어요? 각성 중에는 이성도 자주 날아가는데."
"…설득해야지."
조금 전에 한 말은 귓등으로 흘려넘겼나? 하는 표정을 짓는 루시를 보던 다자이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발로 흩어진 지푸라기들을 정리하고 수도원으로 향했다. 루시는 입꼬리를 내리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수도원의 결계를 깨지 않고 들어와 닭을 전부 비틀어 죽이고, 닭의 서식지에 손가락 뼈를 심어두었다. 그건 일종의 주술이자 경고였다. 주술으로써의 목적은 실패했지만, 경고는 충분히 먹혀들었다. 쿠니키다는 전국에 흩어져 있던 엑소시스트들 중 몇명을 불러들였고, 결계를 강화할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도원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