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10. 14:40

특촬 뱀파이어 합작 – 가면라이더 위자드 / 코요미


*검은 장미의 소녀


그 집은 아마 작은 2층 집이었다. 소녀는 자신이 처음 그 곳에 도착했던 때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누군가에게 항상 온기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누군가도 언제부턴가 볼 수 없게 되었다. 차가운 어둠 속에 소녀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햇빛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집 안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하루, 이틀, 얼마를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눈앞에서 빛이 사라지는 걸 보며 소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달콤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움찔, 소녀의 코끝이 향기에 반응했다. 온 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눈을 떴을 땐 입가에 따뜻한 액체가 닿아있었다. 저도 모르게 혀를 내밀어 액체를 핥았다. 새로운 생명을 받은 기분이었다. 아, 아아. 어쩜 이렇게도 달콤한가. 입가에 조금씩 떨어지는 감미로운 생명수를 소녀는 갈구했다. 생명수를 받은 소녀의 눈은 그 물의 색처럼 붉었다.


“오랜만에 깨어난 기분은 어때?”

“…누구…?”

“널 깨운 사람. 아니, 사람은 아닌가?”


너의 마법사라고 해두자. 그렇게 말하며 그는 손을 거뒀다. 소녀가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는 사이, 마법사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집의 곳곳에 은은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빛이 들어오면서 어렴풋한 그림자는 점점 뚜렷이 눈에 들어왔다. 마법사는 제 손에 조금 남아있는 핏방울을 가볍게 핥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내 피는 맛이 없네.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이내 웃음을 띠우고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가실까요?”

“어디로…?”

“배가 고프진 않아?”


마법사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가 고프진 않았다. 그저 목이 마를 뿐이었다. 달콤한 물을 또 한 번 마시고 싶어 소녀는 자신을 쓰다듬는 마법사의 손을 입에 가져갔다. 날카로운 이가 마법사의 손에 닿았다. 마법사는 소녀를 바라보다 피식 웃고는 손을 떼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닿을 듯 닿지 않은 물에 소녀는 날카롭게 울었다. 마법사는 그런 소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걸어갈 뿐이었다. 잠들기 전에는 그렇게 넓지 않았던 것 같은데. 소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마법사를 따라갔다.


“자, 다 왔다.”

“여기는…?”

“아가씨한테 주는 선물이야. 구하느라 꽤 힘들었다고?”

“…선물….”

“다시 태어난 기념 선물.”

그렇게 말하며 마법사는 문을 열었다. 문의 너머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풍겨왔다. 소녀는 거침없이 발을 옮겼다. 문의 너머에 펼쳐진 것은, 새빨간 천국이며 지옥이었다. 꼴깍, 소녀는 마른 침을 삼켰다. 마법사도 그녀의 갈증을 이해한다는 듯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소녀를 안내했다. 소녀는 천국에 발을 들여놓은 듯, 정신을 놓고 생명을 탐했다. 마법사는 그런 그녀를 팔짱을 낀 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소녀의 식사가 끝날 때 까지 움직이지 않던 그는 소녀가 조용히 고개를 들자 그녀에게 다가가 손수건으로 입을 닦아주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왜….”


왜 나를 이렇게 챙겨? 소녀는 자신을 데리고 걸어가는 마법사를 보며 물었다. 마법사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약속을 지키러 왔다고. 약속? 무슨 약속 이었더라…. 소녀는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듣고 보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같다. 눈을 감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렴풋이 기억나는 온기가 있었다. 그 온기가 이 사람의 것일까? 소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 느낌을 안은 채 그를 따라갔다.

마법사는 달빛이 살포시 내려앉은 방으로 소녀를 인도했다. 소녀는 그가 안내하는 대로 방에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소녀의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은 마법사는 오래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와 다시 함께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노라고, 그는 운을 띄웠다. 만들어진 소중한 것을 혼자 두고 늙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란 참 덧없는 것이다. 마법사는 인간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미 인간이 아닌 것을 품고 있었지만 성질을 바꿔야 했기에 더욱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소녀를 떠나야만 했다는 말에 소녀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역시 그때의 그 느낌은 마법사였던 걸까.


“지금은 성공한 거야?”


소녀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떠오르는 질문을 던졌다. 마법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네 앞에 있는 거야. 이제부터는 인간과는 다른 시간을 걷고 다른 길을 갈 거지만 내가 네 옆에 있으니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야. 그 말에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퍽 안심이 됐다. 잠들기 전부터 그 말을 기다렸던 것만 같다. 소녀는 마법사를 보며 웃었고, 마법사는 소녀를 마주보며 웃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건 꽤나 행복한 기분이었다.

소녀가 몸의 변화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건 며칠이 지나서였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유독 힘들다고 느껴졌지만, 그 날은 웬일인지 일찍 눈을 떴다. 그리고 커튼을 여는 순간 소녀의 움직임은 멈췄다. 마법사가 미리 상황을 살피러 오지 않았다면 소녀의 다른 생명은 끊겼을지도 모른다. 마법사는 급하게 소녀를 빛에서 떨어트리고 그녀의 팔을 감쌌다. 아직도 빛에 닿은 곳이 아팠다. 마법사는 커튼을 다시 치고는 소녀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정말 놀랐잖아.”

“…하지만…왜…?”

“말했잖아. 인간과 다른 시간을 걷고 다른 길을 갈 거라고.”

“그게 이런 거라고는 하지 않았잖아.”

“우선 치료부터 하자.”

그렇게 말한 마법사는 칼을 들어 제 손목을 그었다. 마법사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소녀는 잠시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에게서 나는 달콤한 향기는 참을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솟아난 날카로운 송곳니에 놀랄 틈도 없이 그녀는 그의 손목에서 흐르는 피를 소중하게 마셨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햇빛에 닿았던 상처가 사라졌다. 소녀의 눈에서는 원인 모를 눈물이 가만히 흘렀다.


“정말로 달라졌구나, 나….”

“응,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내가 앞으로도 네 옆에 있을 거니까. 약속이잖아? 코요미.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다정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코요미, 그게 내 이름? 새삼스럽게 귀에 들어온 단어에 소녀는 단어를 따라 읊으며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마법사는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물었다.


“내 이름은 기억해?”

“…….”


소녀는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마치 잠겼던 문이 열린 것처럼 소녀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기억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기억 속에서 소녀는 마법사를 찾았다.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당신의 이름을. 소녀는 마법사를 쳐다보다가 웃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루토. 마법사는 커다란 손으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날, 버려진 저택에는 검은 장미가 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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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