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02.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中-
=============================================
호위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아츠시는 새삼스럽게 그런 기분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호위란 건 그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이 가는 곳을 따라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맞는 거겠지? 아츠시는 그 질문을 아침부터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마리아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건지, 마리아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선은 아무데서나 재울 수 없어 방으로 데려간 것 까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정도 불편함은 의뢰를 위해서라면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딘가를 가고 싶다거나, 무언가를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침에 태연하게 일어나서 어제와는 다른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츠시의 출근길을 따라나섰을 뿐이다.
"저기, 마리아…?"
"응, 왜?"
"아니, 음, 가고 싶었던 곳이라던가… 없어?"
있으면 함께 가 주겠다는 의미로 말했지만, 마리아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없다고 말한 그녀는 사무실의 빈 자리에 앉아서 창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행동은 다자이가 다가와서 그녀를 쓰다듬으려고 시도할 때 까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언제쯤 다자이가 다가올 지 알고 있었던 것 처럼, 그녀는 기막히게 의자를 다시 돌려앉았고 그 덕분에 의자와 부딪힌 다자이는 턱을 부여잡고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마리아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를 쳐다보다가 아츠시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마리아, 마리아?"
"…응?"
"저, 혹시… 다자이씨랑 싸웠어?"
"아니."
"그럼…왜 피하는 거야?"
아츠시의 질문에 사람들 사이를 서둘러 걷던 마리아의 걸음이 멈췄다. 아츠시를 가만히 바라본 그녀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는 조금 걸음을 늦춰 사람들 사이로 걸어들어갔다. 그녀가 가장 먼저 아츠시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옷가게였다. 하지만 옷에는 관심이 없는지 걸려있는 예쁜 옷들을 지나쳐 간 그녀가 손에 잡은 것은 베이지색의 모자였다. 머리카락을 한데 말아서 모자를 뒤집어 쓴 그녀는 가만히 아츠시를 쳐다보았다.
"어때?"
"…음, 색이 조금 밝지 않아?"
"…그런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마리아의 태도를 보면 그녀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었다. 눈치는 아직 멀었고 경험도 적었지만 그 정도의 육감은 있었다. 아츠시는 진열된 모자들 중 다른 사람들의 모자들보다도 튀지 않고 그녀의 옷과 어울리는 색의 모자를 골라 그녀에게 씌워주었다. 거울을 본 마리아는 그게 마음에 드는지 빙긋이 웃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온 그녀는 아까보다 조금 편안해진 표정으로 거리를 걸었다. 아츠시는 왠지 뿌듯한 기분으로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나카지마 아츠시."
"그냥 아츠시로 괜찮아."
"…고마워, 아츠시."
"응? 뭐가?"
아츠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마리아는 조금 슬프게 웃으며 그냥 여러가지로, 라고 말하곤 걸음을 옮겼다. 문득 보인 그녀의 웃음은 어린 아이가 짓기엔 너무도 아파보였지만 그녀의 걸음에 맞추느라 그걸 파고 들 틈은 없었다. 사람이 제법 많은 길임에도 마리아는 그녀의 작은 체구로 여기저기에 잘 파고 들었다. 오히려 뒤에서 따라가는 아츠시가 힘에 부쳐 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느새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버린 그녀를 한참 찾다 지친 아츠시가 바닥에 쪼그려 앉을 즈음, 눈 앞에 불쑥 화려한 물체가 들어왔다. 갑작스런 물체의 등장에 놀라 조금 물러나다 엉덩방아를 찧자,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리아? 한참 찾았잖아."
"미안, 여기는 워낙 신기한 게 많아서."
"…아까는 가고 싶은 데가 없…으읍."
마리아를 향한 반문은 곧 그녀가 강제로 입에 물려버린 그 물체에 막혔다. 반사적으로 물체를 씹은 아츠시는 입 안에 퍼지는 단맛에 살짝 늘어졌다. 마리아가 가져온 것은 크레페였다. 부드러운 크림에 차가운 아이스크림, 그 위를 장식한 초콜릿 시럽과 진득한 치즈케이크가 얇은 크레이프와 함께 입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맛있다…. 아츠시가 볼이 터지도록 오물거리는 모습을 본 마리아는 그제서야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자기 몫의 크레이프를 베어물었다. 입 안에서 터지는 체리가 기분 좋았다.
"다 먹으면, 이 도시에서 제일 높은 곳에 가보고싶어."
"그럴까?"
"응."
아츠시는 마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높은 곳이라고 해도 퍼뜩 떠오르는 건 랜드마크 타워 정도였지만. 관람차와 랜드마크 타워, 둘 중에 어느 곳을 가는게 좋을까 고민하던 아츠시는 일단 랜드마크 타워에 가보기로 했다. 만약 거기에서 마리아가 다른 곳을 원한다고 하면 그 곳으로 가면 그만이니까. 아직 낮은 끝나지 않았다.
'문호스트레이독스 > 별 헤는 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 헤는 밤. 05. (0) | 2016.05.29 |
---|---|
별 헤는 밤. 04. (0) | 2016.05.28 |
별 헤는 밤. 03. (0) | 2016.05.28 |
별 헤는 밤. 01. (0) | 2016.05.27 |
별 헤는 밤. 프롤로그. (0) | 2016.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