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05.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中-
==========================================
다음날 아침, 아츠시는 어째서인지 노골적으로 다자이를 경계했다. 단지 어제의 일을 오해한 게 아닌 것만 같았다. 아츠시의 행동이 평소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했는지, 쿠니키다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아츠시는 잠시 멈칫했다가는 조용히 어제의 일을 말했다. 그 소동을 겪고 씻고 나왔더니 두 사람이 그러고 있었다고. 그 말을 들은 쿠니키다의 눈빛은 당혹스러움에서 경멸로 바뀌었다. 변명을 할 틈 조차 없었다.
"아니, 오해야, 쿠니키다군…."
"오해라니, 명백한 상황에서 오해의 여지가 있는지 난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아니래도?"
"아니라는 증거를 가져와라."
쿠니키다의 날이 선 말에 다자이는 가만히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마리아는 다자이를 마주보며 눈을 깜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제발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해주세요. 그렇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자 마리아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를 외면해버렸다. 절대 어제 방으로 쫓겨난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이대로 가다간 얘기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침묵이 계속되자 쿠니키다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뭐, 됐다."
"…쿠니키다군?"
"네가 함부로 어린아이를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안다."
"……."
다자이는 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 감동을 받았다. 그래도 자신이 그렇게까지 엉망인 인간으로 비춰지지는 않는구나, 라는 생각을 살짝 했다. 하지만 정작 쿠니키다가 더 캐묻지 않은 것은 시간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걸 조금 지나서 그는 알게 되었다. 쿠니키다는 노트북의 화면을 조금 들여다보더니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마리아양."
"…응?"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냐?"
"그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는 겁니까?"
마리아는 입을 다물었고, 쿠니키다는 노트북에 사진을 띄워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가 갑자기 찾아와 의뢰를 한 다음부터 남몰래 조사했던 결과물이었다. 사진 속에 있는 것은 지금의 마리아가 조금 더 성장했다면 동일인이라고 믿을 만한 얼굴이었다. 머리색도, 머리모양도, 이목구비도 굉장히 닮아있었다. 마리아는 별 감흥 없이 사진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아무런 동요도 없자 쿠니키다는 노트북을 덮고 그녀에게 물었다.
"이건 당신이죠?"
"…그래, 맞아."
"네?!"
사무실에 있던 사람 중에 가장 놀란 건 아츠시였다. 오히려 아츠시의 입장에서는 다들 어째서 놀라지 않는지가 신기할 뿐이었다. 분명히 어린아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저 사진의 여인이 마리아 본인이라는 말에 아츠시의 사고회로는 멈췄다. 사실 그 사진의 여인이 마리아 본인이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다자이나 자신에게 그런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저 일본어가 서툰 외국인이기에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어린애인데.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한가?
"…이 사진은 아무리 봐도 성인으로 보입니다만,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부작용이야."
"부작용…이요?"
"말도 안되는 이능력에 대한 패널티."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이능력은 명칭 외에는 전부 불명이더군요."
"…알았어."
마리아는 의외로 순순히 대답했다. 그리고 조금 오래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남다른 능력이 있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능력이 처음으로 발현된 것은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였다. 누가 방법을 알려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났더니 분명히 죽었던 개가 살아서 깨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고, 있었다고 해도 그런 능력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 뻔했기에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을 방법을 찾으면서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았다. 실험을 한 백 번쯤 반복하자 어느 정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감이 왔다고 했다.
"내 이능력,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는 죽은지 이틀 이내의 사체라면 누구든지 살릴 수 있어. 어떻게 죽었든지."
"…그게…가능합니까?"
"지금 당장 보여줄 방법은 없어. 하지만 사실이야. 그건 다자이도 알고있어."
"…그녀의 말이 맞다네. 여러가지로 조사했었으니까 말이지."
"다만 상처까지는 회복을 하지 못하고, 능력 사용으로 인한 패널티도 크니까."
"…패널티?"
쿠니키다의 반문에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생명을 되살리는 데에 필요한 조건은 세가지. 죽은지 이틀 이내의 사체, 그 사람에 대해 가장 강한 기억을 가진 사람, 그리고 마리아 자신의 수명. 정말 지독한 패널티였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수명을 바쳐야만 한다니. 하지만 본인이 가진 생에 대해 큰 미련이 없던 그녀는 가끔 돈을 받고 자신의 수명을 팔았다. 적어도 누군가에겐 자신의 삶이 쓸모있길 바랐다. 그제야 아츠시는 마리아가 다자이를 피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자이씨는 보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가볍게 자신의 몸을 던지는 사람이었고, 마리아는 자신의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나눠주었지만 다자이는 유일하게 그 생명을 의미없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자이씨를 피한 이유가…그것 때문이었군요?"
"응. 처음부터 느껴졌으니까."
"…못 당하겠다니까, 진짜로."
"네가 너무 드러내놓고 사는거야."
"…음, 그런데…. 지금은 왜 쫓기고 있는 거예요?"
아츠시의 질문에 마리아는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았다. 새삼스럽게 잊고 있던 것을 떠오르게 했던 질문이었던 걸까, 마리아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평온을 되찾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예전부터 받은 구두(口頭) 의뢰가 하나 있었는데, 막상 그게 내키지 않아서 도망쳐왔다고 말이다. 선금도 받지 않아서 그냥 포기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을 데려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곤란하던 차에 다자이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네 녀석."
"아니, 곤란에 빠진 여인을 혼자 둘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 그거야…."
"정말 귀신같은 타이밍이어서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믿어보기로 한 거야."
"아아…."
"저런 남자이지만 얘기할 때 느낌은 그렇게 나쁘진 않았거든."
저런, 이라는 단어에 조금 강조를 한 느낌이었지만 다자이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쿠니키다는 애써 주의를 환기시키고는 계속 신경쓰였던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구두의뢰를 한 사람은 누구였냐고 말이다. 그녀가 도망친 곳까지 금방 찾아내서 사람을 보내고 잡아오려고 할 정도면 보통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마리아는 대답하기 싫은지 고개를 돌리고 침묵해버렸다. 딱히 억지로 캐물을 생각은 없었기에 쿠니키다는 머리를 긁적이곤 질문을 관뒀다. 한참의 침묵 후에 입을 연 그녀는 단 한 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이제, 열 두 시간 남았어."
'문호스트레이독스 > 별 헤는 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 헤는 밤. 07. (0) | 2016.05.31 |
---|---|
별 헤는 밤. 06. (0) | 2016.05.29 |
별 헤는 밤. 04. (0) | 2016.05.28 |
별 헤는 밤. 03. (0) | 2016.05.28 |
별 헤는 밤. 02. (0) | 2016.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