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 00:48

별 헤는 밤. 08.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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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시는 제 품에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마리아를 구급차에 올라서도 놓지 않았다. 보호자 명목으로 구급차에 함께 오른 것은 요사노 선생이었으므로 다자이는 자연스럽게 뒤처리를 하게 되었다. 할 일 이라곤 쿠니키다가 잡아온 암살자를 처리하는 것 정도였지만 어쩐지 썩 내키지 않아 그의 처리는 쿠니키다에게 맡겼다. 그리고 엉망이 된 바닥을 살펴보던 다자이의 눈에 띈 것은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있는 토끼 인형이었다. 원래부터 그렇게 나온건지 딱히 더러워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독특한 취미네, 그렇게 생각하며 다자이는 무심하게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한참을 만지작거리다 인형의 솜 안에 스위치가 있음을 깨달은 다자이는 가만히 그걸 눌러보았다.


딸깍,


 ─치익.


 [아, 아…잘 들리나…?]


인형에서 노이즈와 함께 들리는 건 마리아의 목소리였다. 수신인은 그걸 듣고 있는 사람, 다자이 오사무. 아마도 헤어질 때 주려고 했던 것일까. 다자이는 가만히 노이즈 너머의 작은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녀는 아마도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미안해, 약속은 못 지킬 것 같아. 그렇게 시작한 작은 목소리는 그렇게 오래 가진 않았다. 몇 번을 멈췄다 이어지는 목소리는 작게 떨렸다.


[무섭지는 않아, 하지만…. 너무 늦게 만난 것 같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처음으로 더 이상 살 수 없는 게 후회되고 있어. 그래도,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이야. 고마워.]


미안해, 고마워. 그 모든 감정을 단 몇 분의 짧은 시간에 실어보낸 마리아의 메시지가 괜히 다자이의 귀에 꽂혔다. 참 얄궂은 일이었다. 그녀는 그저 만약의 경우를 위해 사귀어 둘 필요가 있는 사람이었을 뿐인데. 그녀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이상은 마음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대에게 감사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왠지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녀의 또 다른 유품을 챙기고서야 다자이는 아츠시가 도착한 병원으로 갔다.


아츠시는 요사노 선생이 설득해 겨우 마리아를 품에서 놓았다고 했다. 호랑이는 피에 젖어있었다. 말라붙은 피를 닦을 생각도 못하고, 옷에 엉겨붙은 피를 가만히 내려보며 있는 모습이 꼭 버려진 강아지 같았다. 자신의 목숨에 가치를 두지 않은 사람과, 만나는 목숨마다 가치를 두는 사람. 서로 상반된 가치를 가진 이들의 만남이 가져온 상실감이란 그런 것이었다. 다자이는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지 않는 아츠시에게 걸어가 가만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제야 아츠시는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그 잠깐 사이에 몇 년은 늙은 것 같은 얼굴에 새어나올 것 같은 웃음을 예의상 가만히 눌러둔 채 다자이는 그에게 그녀의 또 다른 유품을 전했다.


"…이건?"

"마리아의 마지막 선물이야."

"……."


다자이의 말에 아츠시는 가만히 그녀의 유품을 받아들었다. 촉감이 부드러운 게 꽤 기분 좋은 인형이었다. 아츠시는 멍하니 인형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다자이는 인형의 가슴에 달린 장식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가벼운 노이즈가 들리고 나온 건, 속삭이는 듯한 노래소리였다. 「쉿, 작은 아가야, 아무 말 말거라. 엄마가 너에게 지빠귀를 사줄게…♪.」 그 노래를 들은 아츠시의 눈에서는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렀다.


[아빠도 너를 사랑하고, 나도 사랑한단다…♪]


마리아의 노래가 끝나고 아츠시는 그 인형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옛날 꿈을 꾸기도 한다는 말에, 자장가를 불러주겠다고 하기에 괜찮다고 사양했었는데. 그녀는 그 말을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자이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고, 아츠시는 그저 가만히 그 노래의 끝에 아주 짧게 담겨 있는 감사의 말을 들을 때 까지 반복해서 재생을 할 뿐이었다. 그녀는 아츠시에게도 같은 말을 남겼다. 「고마워.」라는 짧은 인사를 들은 아츠시는 입술을 꾹 물고 잇새로 작게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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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