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스트레이독스]
뱀파이어 AU
망향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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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남아서 그곳 하늘에 뜨고
구름 멀리서 고요히 눈을감고
보낸뒤에도 남은 서러움
살아도 눈을 감아도 또 너를 묻게하고
자우림, 망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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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돌아온 아츠시는 훈련을 하느라 엉망이 된 옷을 벗어 던지고 가볍게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내내 옷장에 걸어두었던 코트를 꺼냈다. 그렇게 무거운 천이 아니었는데도 새삼스럽게 옷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쿠니키다 신부님은 분명히 처음에 정식으로 일을 맡으려면 백 일 정도는 지나야 할 거라고 하셨는데.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실전의 기회에 아츠시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신축성이 좋은 바지를 입고, 단정한 셔츠를 입고는 거울을 보며 단추를 채우는 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단추를 채우고 문을 열자 쿄카가 그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쿄카?"
"임무…가는 거야?"
"응, 생각보다 빠르지?"
"그러네."
고개를 끄덕인 쿄카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말없이 아츠시의 코트 안주머니에 넣으면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츠시가 영문을 몰라 그녀를 마주 내려다보자 쿄카는 그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고는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말하고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쿄카가 돌아가고 나서 한참 문을 쳐다보다가 시계를 본 아츠시는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짐을 마저 챙기고는 코트를 걸쳤다. 서둘러 쿠니키다의 집무실로 가자, 먼저 도착한 켄지가 인사를 건넸다.
"왔어요?"
"네, 저…신부님은요?"
"아, 잠시 확인할 게 있으시다고 해서요."
"그렇군요."
"식사는 했어요?"
"아뇨, 아직…."
"음, 차라리 빈 속이 나을거예요. 뭘 먹는 것 보단 말이죠."
켄지의 말에 아츠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그에게 물었다. 현장에 가본 적이 있냐고. 켄지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볼을 긁적였다. 가본 적이야 있죠. 그 틈에서 살아남기도 했고. 켄지의 말에 다소 놀란 아츠시는 조심스럽게 그를 토닥여주었다. 켄지는 이미 다 지난 일이라며 웃었지만 평소의 쾌활한 웃음과는 어딘가 달랐다. 어쩐지 어색해진 공기를 깬 것은 문을 열고 들어온 쿠니키다와 다자이였다.
"준비는 다 된 모양이군. 그럼 출발하지."
"네!"
세시간 여를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곳은 휴양지의 느낌이 물씬 나는 한가한 섬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도 평화로운 곳이라 아츠시는 이 곳의 어디에 구울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쿠니키다가 수배해 둔 차에 올랐다. 쿠니키다는 차를 몰아 목적지로 향하면서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이 근처에 잠들어 있던 뱀파이어가 깨어나서 인간을 잡아먹고는 그 시체를 갖고 놀고 있다며 그는 혀를 찼다. 사람은 함부로 갖고 놀라고 있는 게 아닌데 말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쿠니키다는 증오의 눈초리로 다자이를 노려보았다. 다자이는 쿠니키다의 시선에 말없이 웃고는 그의 말을 받아 설명을 이어갔다.
"저 안쪽에 지금은 쓰지 않는 리조트가 있거든. 거길 근거지로 삼았다나 봐."
가끔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을 잡아먹은 것 같다고 해. 실제로 목격된 구울들 중에 그나마 형체를 알아볼 만한 것들은 실종자 리스트에도 올라와 있었다고 하더라고. 다자이의 말에 아츠시는 어쩐지 속이 울렁거렸다. 형체를 알아볼 만한 것이 있다고 하면 역시 그렇지 않은 것도 있겠지?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츠시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걸 본 켄지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그를 가만히 토닥여주었고,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사이, 차는 낡은 리조트 앞에 멈췄다.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자물쇠도 제대로 걸려있지 않은 녹슨 문을 열자,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밀려났다. 아츠시는 부들부들 떨면서 품에 있는 성수병을 점검하고 총을 꺼내어 안전장치를 풀었다. 예전엔 화려했을 정원도 지금은 잡초가 우거진 숲으로 변해있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몇 개의 낡은 테이블만이 이 곳이 예전엔 사람들이 여유롭게 차를 마시곤 했던 곳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만히 공기를 들이마시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비릿한 냄새와 썩은 냄새가 풀냄새와 함께 들어왔다. 결국 아츠시는 구석으로 달려가 위액을 뱉었다. 켄지가 빈 속이 나을 거라고 했던 말을 그제야 뼈저리게 느낀 그는 가만히 입가를 닦고 숨을 고르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으아아악!!"
눈이 마주쳤다. 구울이란 이렇게 흉측한 것이었던가. 이미 눈알이 빠져 함몰된 거죽에서는 구더기들이 기어다녔고, 뼈는 기이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려왔다. 흐어어어, 그어어어, 그 소리를 신호로 여기저기서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광기에 찬 눈빛을 한 구울들이 나왔다. 쿠니키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두 자루의 총을 꺼내 손에 쥐었고, 켄지도 말없이 너클을 손에 쥐었다. 아츠시는 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구울에게 총을 쏘았다. 탕, 탕. 엉망인 조준 덕에 그 놈은 팔만이 겨우 날아갔을 뿐이다. 남은 팔을 내밀며 필사적으로 기어오는 구울을 걷어찬 것은 다자이였다. 다자이는 태연하게 놈의 두개골을 밟아 부수면서 말했다.
"있잖아, 아츠시군?"
"네, 네!"
"구울에게 물려서 감염되면 자네도 구울이 되거든?"
"…뭐라고요!? 그런 중요한 건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죠!!"
"깜박했어. 그래도 지금 말했잖아?"
"하, 하아…."
"뭐, 그래서 내가 할 말은 알겠지? 나야 원래 인외(人外)니까 괜찮지만, 너희들은 어쨌든 조심하는 게 좋아."
"…저 놈의 말대로다. 물린 부분은 도려내거나 끊어내지 않으면 계속 퍼져서 네가 죽게 될테니 조심해라."
다자이와 쿠니키다의 말을 들은 아츠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켄지도 담담하게 대답은 했지만 제법 긴장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리고 다자이가 밟아버린 구울이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구울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다자이는 자신에게 덤벼드는 구울들을 한 마리씩 제거하면서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그의 행동을 눈치 챈 쿠니키다가 어딜 가느냐고 다그쳤지만, 다자이는 웃음을 띠고는 자기는 맡은 임무가 있으니 먼저 안을 둘러보겠다고 말하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쿠니키다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구울들에게 총을 쏘며 투덜거리고는 아츠시와 켄지에게 말했다.
"최대한 빨리 이 곳을 정리하고 다자이의 뒤를 쫓는다. 알겠나?"
"네!"
"그럼, 신의 가호가 있기를."
"신의 가호가 있기를."
서로의 안녕을 비는 신호와 함께, 세 사람은 맞대고 있던 등을 떼면서 구울들을 향해 돌진했다. 비명소리와 총성이 빈 정원을 가득 메웠다. 다자이는 그 소리를 뒤로 하고 여유롭게 리조트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서 지도를 발견한 그는 가만히 지도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곤 휘파람을 불며 지하로 내려갔다. 리조트의 지하는 위에 그 낡은 건물이 있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과연, 방공호로 쓸 예정이었던 모양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위치가 있는 벽에 다다른 그는 가만히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부드러운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실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