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9. 00:57

[문호스트레이독스]

해시태그 정리.

다자란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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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러 왔어."

붉은색이 감도는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는, 조금 흐릿한 초점의 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청년을 보며 말했다. 그 남자의 목소리에, 청년의 눈에는 빛이 잠깐 돌았던 것도 같다. 그러나 청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애달픈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돌아올까?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에는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슬픔이 담겨있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된 걸까.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늦은 후회만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남자는 어떤 벽보다도 차갑게 굳어버린 청년을 가만히 끌어안아본다. 자기보다 좁은 어깨에, 더 가느다란 팔. 그 팔과 다리로 미루어 알 수 있는 마른 몸. 새삼스럽게 품에 안겨있는 작은 몸이 더 마음을 아프게 찔러온다. 남자는 가만히 손을 들어서 멋대로 뻗어있는 청년의 머리카락을 들어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고개를 조금 더 숙여 청년의 눈을 마주보다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손을 꼭 잡은 채 손등을 가만히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돌아와주세요. 제발."
"…누구."
"…! 정신이 들어요?"
"…엄마, 아빠?"
"…."

남자의 말에 반응하듯이 청년은 입을 열었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주변을 둘러본 청년의 녹색 눈에는 눈물이 가득찼고, 곧 그는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제 부모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본 남자는 당황하면서도 청년을 품에 안아 어르고 달랬다. 울지 마, 금방 돌아오실거야. 응? 착하지. 한참을 울던 청년은 그 말에 울음을 그치고는 남자를 밀어냈다. 그의 눈빛은 조금 전까지 불안에 떨던 어린아이와는 달랐다. 인격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냉정하게 남자를 바라보다 그를 있는 힘을 쥐어짜서 밀어냈다. 하지만 남자는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청년은 이를 악문 채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단단하게 버틴 몸에 꽂히던 매가리 없는 주먹질은 오래 지나지 않아 멈췄다. 청년은 몸을 그에게 기댄 채 앙다문 잇새로 중얼거렸다.

"왜, 돌아왔어?"
"데리러 왔다고 했잖아."
"필요없어!"
"이대로는 네가 위험해."
"그 정도는 알아!"

안다고, 그러니까 더이상 내게 얽히지 말라고. 청년은 목청껏 소리쳤다. 모를리가 없다. 자기 몸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 청년의 정신연령은 기껏해야 열여덟살 정도다. 몸은 그것보다는 더 나이를 먹었을 거라고, 청년은 짐작하고 있다. 남자는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이미 자신의 옆에 있었다.

"란포씨, 정신이 들어요?"
"…? 누구야?"
"…엑, 저 모르시겠어요?"
"기억에 없는데. 그보다, 날 알아? 게다가, 아니 뭐, '씨'를 붙이는 건 꽤 기분 좋지만."
"하하…."

남자는 어색하게 웃고는 호구조사를 하듯 자신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탐정사에 관한 일이라던가-란포는 이 남자가 어떻게 탐정사를 알고 있는지 몰라 경계했지만, 곧 남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지금 자신도 그곳에 속해있다고 말했다. -기타 주변 사람에 대한 것이라던가. 대부분이 사장님의 신상에 관한 것이었지만. 란포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쉬고 손을 내저었다.

"저기 말야, 난 너 같은 사람 몰라."
"너-가 아니고 다자이, 입니다. 란포씨."
"…좋아, 다자이. 그래서? 결론은?"
"결론이요?"
"나한테 이미 알고 있는 걸 확인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아, 란포씨는 못 속이겠네요. 정신연령이 어려져도 똑같구나."
"하아? 무슨 바보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어려져?"
"네. 대략 8년 분의 기억이 없으신데요."
"…뭐?"

그럼, 지금 내가 스물 여섯이라고? 그럴 리가. 난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사무실에 들락날락 했는데? 평소처럼 과자도 사러 다녀오고. 란포는 녹색 눈을 깜박이다 고개를 돌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달력을 확인했다. 맙소사. 저 다자이라는 남자가 한 말이 사실이라니.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기억이라도 있으면 그걸 토대로 초추리라도 쓰련만, 애석하게도 미래의 기억따위는 편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무 단서도 없었다. 사장님, 사장님을 만나게 해줘. 그 말에 다자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무리예요. 무리? 무리라고? 사고가 멈춘다. 볼 수 없다니. 무슨 소리야. 그 말에 다자이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적의 공격으로 탐정사는 지금 와해 직전이에요. 란포씨를 빼오는 게 겨우였어요."
"그럼 사장님은?!"
"사장님은…."

란포씨만 있다면 탐정사는 다시 처음부터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시고는 잡혀가셨어요. 그 말에 란포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웃기지 말라고 해. 나 혼자서는 안돼. 나는 그 사람이 필요해.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돼? 다자이는 그 말에 사원 몇 명의 리스트를 건넸다. 그 리스트를 훑어본 란포는 옆에서 사장님과 현재 인원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보면서 책상에 앉아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란포는 손가락을 놀려 감시카메라의 영상들을 띄우면서 다자이에게 속사포로 지시를 내렸다. 생략도 많고 말도 빠른 문장이었지만 다자이는 어렵지 않게 그의 뜻을 눈치채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꽤 무모한 작전이네요."
"누가 지시를 내린다고 생각해? 날 믿어."

언쟁을 할 틈은 없으니 불만사항은 접수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다자이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이길 수 없네요. 분부대로 하죠. 란포씨는 이제 어쩌실 건가요? 어쩌긴. 이 사태를 만든 놈을 찾을거야. 전부 뒤져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일반인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이능력자의 소행이지. 어딘가에 내게 이능력을 쓴 사람이 있을거고, 매개체가 있겠지. 다자이는 다시 한 번 란포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그는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 그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린 다자이는 인이어 마이크를 꽂고 문을 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성공하기 전까진 돌아오지 마."
"이야, 뭐랄까, 어린 란포씨는 상당히 공격적이네요."
"…지금 그런 걸 신경쓸 때야?"
"네이, 네이."

슬겅슬겅 대답을 하고 나가는 다자이를 본 란포는 한숨을 쉬었다. 다자이는 란포를 두고 나온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란포의 작전을 성공시키거나, 그나마 공방의 밸런스가 좋은 쿠니키다를 란포가 있는 곳으로 보내 불의의 습격에 대비하는 수밖에는. 다자이가 가장 먼저 찾아 나선 것은 쿠니키다였다. 쿠니키다도 이쪽을 찾아 나섰기에 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자이는 그가 매뉴얼 맨이지만 수동적이지는 않은 점에 감사를 표하며 란포와 있었던 일을 전했다. 다자이의 설명을 들은 쿠니키다는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가 사장님을 부탁한다고 말하고는 다자이가 알려준 란포의 소재지로 향했다.

 그 시각, 란포는 시내의 감시 카메라망을 살펴보다가 어지럼증을 느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뇌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식은땀이 이마에 맺혔다. 도대체 이게 뭐지? 독은 아닌데. 정신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이능력인가? 그래서 다자이에게 닿아도 효과가 없었나? 란포는 이를 악물고 버티려고 애썼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다. 그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인이어 너머에서 들리는 잡음에 당황한 다자이는 그를 거듭 불렀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를 어쩐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던 다자이는 곧 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돌아가서 란포를 돌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사장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사장님이 없다면 그가 버티지 못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쿠니키다에게 간단한 메일을 보낸 다자이는 홀로 적진으로 들어갔다.

경비인원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인력부족 이라기보단, 어서 들어오라는 초대장 같은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함정이라 이건가. 놀아날 거라고 생각했나? 다자이는 품에 넣어두었던 연막탄의 핀을 뽑아 복도 안으로 굴려넣었다. 매캐한 연기가 복도를 가득 채우자 몇 명이 급하게 달려 나왔다. 연기 속으로 숨어 그중 한명의 허리춤에서 열쇠를 낚아챈 다자이는 그대로 안으로 직행했다. 아무리 시설이 낡고 인력이 허접해도 우리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운 조직이다. 그런 그들이 조직의 수장을 빼내기 쉬운 곳에 둘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사장님은 그 낡은 감옥의 제일 안쪽에 위치한 감옥에 있었다. 의자에 묶인 채, 허공에 떠서.사장님을 허공에 띄운 건 저 밑에 있는 녀석의 이능력인가. 그 정도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자이는 열쇠로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방안의 구조를 살폈다. 그리고 빠르게 이능력자에게 다가가 그의 손목을 잡고 얼굴에 스트레이트펀치를 날렸다. 다자이의 주먹을 맞고 비틀거리며 이능력자가 몇 걸음 물러나는 사이, 사장이 앉아있는 의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장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진 의자 파편 사이에 고고하게 선 채 옷을 가볍게 털었다.

 "다자이,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 란포는?"
"일단은 무사합니다."
"일단은?"

사장은 이능력자가 품에 안고 있던 자신의 검을 빼앗아 들고는 나가는 길을 안내하는 다자이의 뒤를 따랐다. 복도를 걸어가며 어떻게 말해야할까 고민하던 다자이는 볼을 긁적이며 란포의 상태를 보고했다. 기억이 조금 날아간 것만 빼면 건강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는요. 문장을 맺으며 섬광탄을 적들의 앞에 내던진 다자이는 비상구의 문을 힘껏 걷어찼다. 적진을 빠져나와 사장과 함께 란포가 있는 곳으로 향하던 다자이는 위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걸음을 멈췄다. 먼지가 가득 낀 창문 너머로 누군가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저 녀석인가. 그렇게 생각한 다자이는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사장은 이어지는 전화를 받고는 안색이 변해 그대로 란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쿠니키다가 도착했을 때, 란포는 이미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고 한다. 일단은 침대에 옮겨두었지만, 열이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단다. 체온은 41도. 숨이 넘어갈 지도 모른다고, 쿠니키다는 참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란포씨가 사장님을 찾고 있습니다. 계속. 타니자키가 없어서 지금은 손쓸 방도도 없어요.

그 말을 들은 사장은 끓는 소리를 내며 곧 가겠다고 답하고는 걸음을 서둘렀다. 제발, 무사해다오. 란포에게 가는 내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 한 문장이었다. 란포를 잃을 수는 없다. 그가 있으면 탐정사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건 결코 가볍게 한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뒤집으면 그가 없이는 탐정사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내야 한다. 란포에게 향하면서 사장은 요사노의 위치를 물었다. 요사노라면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낼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쿠니키다의 연락을 받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던 요사노는 사장과 거의 동시에 란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얼굴이 벌개져서 숨만 겨우 쉬고 있는 란포의 옷을 튿고 쿠니키다에게 물과 수건을 준비하라고 했다. 그녀의 지시를 듣고 쿠니키다가 움직이는 동안, 란포의 상태를 살피던 요사노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자연적으로 생긴 병이 아녜요, 이건."
"…그런가."
"란포씨가 두뇌라는 걸 알고 고의적으로 노린 거겠죠."
"그렇겠지."
"이런 짓을 한 녀석을 날려버리면 일단 똑같은 일은 안 생길 거예요."
"그거라면 다자이가 할 거다."
"그런가요?"
"아까, 란포에게 이런 짓을 한 녀석을 발견했다."
"…제대로 한 방 먹여주길 바라야겠네요."

사장의 말대로, 건물 안으로 돌아간 다자이는 창문에서 그들을 쳐다보던 이능력자와 대치하고 있었다. 형광으로 빛나는 벌레가 그와이능력자의 사이에 들끓고 있었다. 다자이는 천천히 그것들을 발로 짓이기며 이능력자에게 한걸음씩 다가갔다. 이능력자는 그저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자네인가? 벌레를 심은 게."
"응? 벌레가 아냐. 친구야. 소개해줄까?"
"아니, 그보다 네 친구 때문에 내 친구가 아픈데. 그..친구를 꺼내줄 수는 없을까?"
"아, 그건 무리야."
"뭐?"
"내 친구들은 숙주가 죽을 때까지는 나오지 못하도록 훈련받았거든."

그렇게 말하며 이능력자는 웃었다. 이 녀석을 날려버려도 란포씨가 원래대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해제가 불가능한 이능력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 방에 가득했던 벌레는 다자이가 발을 내딛은 만큼만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숙주의 안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다자이는 그 놈을 단단히 묶은 채 방에서 끌고 나왔다. 도대체 무슨 속셈이냐고 바락 거리면서 버티는 그 놈을 확 끌어당겨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땅에 엎어진 녀석의 머리를 지그시 밟아 비비며 다자이는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네를 죽여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고 나면 자네의 친구를 꺼낼 수 없어 살려둘 뿐이라네. 그걸 알아두길 바라."
"…크윽."
"이제야 자신의 처지를 좀 이해한 것 같군."

도망갈 틈은 없다. 이능력자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꼈다. 자신을 데리고 가는 이 남자는 생각보다 위험한 존재였다. 일견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지만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면 금세 눈치채고는 그걸 저지할 것이다. 이 줄을 끊고 도망을 가는 건, 아니, 아니야. 그래봤자 아프기만 할 뿐이다. 아픈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그럼 주변 사람을 써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리는 순간, 그 남자가 손목을 잡았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자기소개가 아직이었지? 내 이름은 다자이. 그리고 나는 이능력을 무효화 시킬 수 있지."

이능력을 무효화하는 이능력? 그래서 아까 친구들이 전부 없어졌었던 건가. 이렇게 잡혀있어서야 능력도 쓸 수 없을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능력자의 몸은 축 처졌다. 이제야 겨우 저항하기를 포기한 건가. 다자이는 잡은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란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란포의 열은 이미 내려있었다. 다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그것은 아니란다. 다만, 눈에 초점이 없고 어떤 말에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자이는 요사노에게 잡아온 이능력자를 넘기고 란포에게 갔다. 문을 열고 그가 본 란포는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다자이는 그에게 가만히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너를 데리러 왔다고.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그리고는 가만히 손을 뻗어 란포의 이마에 손을 대어보다 그를 끌어안았다. 더 일찍 돌아오지 못한 것이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된 걸까. 제발, 돌아와주세요.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건지 란포는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는 이미 없는 사람들을 찾았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존재를 울면서 찾는 그를 보는 마음은 좋지 않았다. 사실 누군가를 달래주는 방법조차 모른다. 그렇다고 이렇게 애달프게 우는 어린아이를 그냥 둘 수도 없었다. 그래서 다자이는 손을 뻗어 가만히 그를 안았다. 울지마, 금방 돌아오실거야, 응? 착하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는다. 돌아올 사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데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자이의 말에 란포의 울음이 그쳤다. 그리고 란포는 다자이를 있는 힘껏 밀어냈다.

"왜, 돌아왔어?"
"데리러 왔다고 했잖아."
"필요없어!"
"이대로는 네가 위험해."
"그 정도는 알아!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 두라고!"
"그건 곤란해."
"왜? 이대로 있다간 전부 잊어버릴거야. 너도 잊혀져!"
"그러지 않기 위해서, 라고 하면 될까. 란포씨?"
"무리야, 어떻게 해서?"

네 능력으로는 나를 구해줄 수 없어. 이미 실감했잖아. 이 벌레는 내 머릿속에서 나가지 않아. 나는 또 다시 이 벌레에게 머리를 파먹힐거야. 제발, 그러니까 나 혼자서 사라지게 해줘. 고개를 숙인 란포는 겨우 짜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혼자서, 조용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면 나 혼자 끌어안고 사라지게 해줘. 마지막 목소리는 물에 젖어있어, 다자이는 가 울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그런 무모한 작전을 세웠는지도 알 것 같았다. 란포의 작전은 사실 성공확률이 아주 희박해, 도박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다자이 한 사람만이 움직이는 작전이었다. 이의제기는 받지 않겠다고 못박아 말하는 바람에 더이상 반론을 말하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전부 맡겨두고 사라질 생각이었다면 납득이 갔다. 자신의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할 사람을 바쁘게 만들어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그 틈에 자신은 조용히 사라진다. 그래, 당신이라면 생각할 법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수도 전부 들켜버렸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요, 란포씨? 다자이는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은 채 란포와 시선을 맞췄다.

"지금, 네게 이능력을 사용한 사람을 잡아왔어."

그 말에 녹색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의외의 수확이라는 표정이었다. 이런 표정도 짓는구나. 조금 더 빨리 만났어도 괜찮았을 뻔 했는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다자이는 란포에게 조금 세게 이마를 부딪쳤다. 이마에서 전해지는 통증과 열에 란포는 미간을 찌푸린 채 뭐하는 짓이냐고 따졌지만, 다자이는 한숨을 내쉬고 손을 뻗어 그의 볼을 쭉 늘이고는 말했다.

"이건 멋대로 떠나려한 벌이야."
"...건방지게."

란포는 지지 않겠다는 듯 손을 뻗어 다자이의 볼을 꼬집으려 했지만 다자이는 여유롭게 몸을 일으키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허공에서 멈춘 손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며 다자이는 피식 웃었다.

 "조금만 기다려, 구해줄테니까."

이런 말을 하다니 나도 많이 변했네. 다자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잡고 있던 손목을 내린 채 가만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절대 죽게 두지 않을게. 그 말에 란포는 내내 찌푸렸던 표정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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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