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란]
添い寝(소이네)
*소이네 : 상대에게 기대어 잠을 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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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촬영 끝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응, 수고-."
란포는 체력 보충을 위한 엑기스가 담긴 포를 입에 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촬영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았다. 피곤해서 아무데도 가기 싫다. 그게 지금 그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집에는 가야지, 집에 가자, 집. 스스로에게 타이르듯이 중얼거리며 그는 걸음을 옮겼다. 아, 졸려. 조금만 잘까. 다 먹어가는 엑기스를 마저 짜넣고는 빈 포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그는 촬영장에 놓인 침대를 보았다. 아직 뒷정리를 하는 것 같으니 조금만 저기서 자고 가면 안될까. 그렇게 생각하며 스르륵 걸음을 옮기던 란포를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아무리 졸려도 세트장에서 주무시면 안돼요, 선배."
"…다자이."
"저번에도 그랬다가 감기 걸리셨잖아요?"
"…하지만 밤샘 촬영은 몇 번을 해도 힘들다고."
"하하, 그러니까 평소에 운동 좀 하시라니까요."
"시끄러워."
제 옆에서 조잘거리는 후배에게 갖고 있는 엑기스를 한 포 뜯어서 자비없이 물리고 그대로 엑기스를 짜넣은 란포는 후배가 갑자기 입안에 퍼지는 씁쓸한 맛에 켈록거리는 모습을 보다가 피식 웃고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다자이는 공기를 머금고 가볍게 가글을 하고는 곧바로 란포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이 녀석하고는 벌써 세 번이나 같은 작품을 했다. 참 독특한 녀석이다. 실력은 좋다. 분위기 파악도 잘 하고, 호흡을 어디서 끊으면 좋을지도 금세 알아챈다. 재능도, 센스도 있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줄을 잘못 선다는 것이다.
연예계는 실력 말고도 운, 아니 운을 넘어선 연줄이 있어야 하는 곳이다. 란포는 실력에 비해 들어오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타인에게 얽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에게 있어 학연은 그저 졸업장이고, 지인은 같이 작품을 했던, 혹은 현재진행형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며 그마저도 작품이 끝나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남는다. 그나마 란포가 지금 인정을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대선배인 후쿠자와가 그의 재능을 칭찬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후쿠자와 덕분에 조금이나마 살아남아 이름을 알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 출세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 이 녀석은 곧죽어도 자신에게 얽혀들어온다.
"다자이."
"네?"
"나쁜 말은 안 할게. 너, 다른 연줄 찾아."
"에이, 또 그러신다. 전 선배가 좋은데요?"
"나 따라다녀도 너 출세 못 해."
"저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출세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그럼 뭔데?"
"그냥 선배가 좋은데요."
"그것부터가 이상해."
에엑, 어째서요? 선배는 꽤 좋은 사람인데. 입술을 비죽이며 말하는 다자이를 보던 란포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서 차키로 문을 열었다. 다자이는 그런 란포를 보다가 제가 운전석에 잽싸게 타버리고는 빙긋 웃었다. 이 녀석이. 어디 건방지게 선배가 할 일을 가로채고 있어? 날카로운 란포의 말에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곤 지금 졸린 것 아니냐며, 그러다 사고가 나면 안되니 본인이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이 정도는 잠깐만 눈 붙이면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란포는 조금 험한 표정으로 다자이를 봤지만 다자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그의 고집에 두 손을 든 란포는 얌전히 조수석에 가서 앉았다. 다자이는 란포에게 벨트를 매주고는 여유롭게 차를 몰아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부드러운 엔진소리에 란포는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보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졸리다.
"…배, 선배."
"으음…."
"다 왔어요. 일어나세요."
"아, 응. 고마워."
"방까지 데려다 드릴까요?"
"걸어서 갈 수 있거든…?"
"뭐, 아직 잠은 덜 깨신 것 같은데요."
쳇, 다자이의 말에 란포는 작게 혀를 찼다. 하지만 서른여섯시간만에 풀린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하릴없이 란포는 다자이에게 몸을 맡기고 나른하게 기댔다. 란포를 아기처럼 안아든 다자이는 익숙하게 그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어, 잠깐. 나 비밀번호 알려준 적 없는데. 쏟아지는 잠 속에서 물끄러미 다자이를 쳐다보던 란포는 곧 침대에 눕혀졌다. 아, 옷 갈아입어야 하는데. 씻어야 하고…. 메이크업도 지워야 하는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잠은 쉽게 란포를 놔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잠깐 고민하던 란포는 이만 가보겠다던 다자이의 옷자락을 잡았다.
"왜요, 선배?"
"…할…말 있으니까. 자고 가."
"어, 저 바쁜데요."
"…스케줄 비어있는 거 알아."
"…어라, 어떻게 아셨어요?"
"됐고, 이리 와."
"네, 네."
란포의 침대는 혼자 자기에는 충분히 넓고, 둘이 자기에는 조금 모자란 사이즈였다. 잠에서 쉽게 깨지 못하는 란포의 외투를 벗겨 옷걸이에 걸어놓고 외투를 벗은 다자이는 그새 잠이 든 란포를 보다가 가만히 그의 옆에 누웠다. 옆에 놓인 온기를 느낀 란포는 가볍게 몸을 돌려 그대로 다자이를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참,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애 같은데 말이지. 촬영만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된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던 다자이는 품에서 새근거리며 잠든 란포를 토닥이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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