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스트레이독스]
원작 x Schlecht Melody Crossover
Paradox.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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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흔적은 확실하게 남았다. 갑자기 달려든 란포가 후쿠자와를 밀쳐내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의 머리에 총탄이 박혔을 것이다. 란포는 안경을 치켜올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저격수를 쳐다보았다. 본래 저격이라면 더 먼 곳에서 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저격수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암살자인가. 자신을 막아선 란포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후쿠자와의 말은 듣지 않은 채 란포는 시선을 저격수에게서 떼지 않았다. 소음기가 부착된 총구-현명한 생각이었다. 시가지에서 총성이 울린다면 금세 군경이 들이닥칠 테니까. -가 란포의 이마를 향했다. 물러나지 않으면 다음은 너다. 그의 눈빛은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란포는 물러나지 않고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죽이고 싶다면, 해 보는 게 어때?"
"란포!?"
"내가 거슬릴텐데. 그렇지 않나? 암살자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화가 난 후쿠자와의 외침과 동시에 암살자는 총을 쏘았지만, 그 총알은 궤도를 한참 빗나가 엉뚱한 벽에 박혔다. 이 거리에서 빗나가다니, 무슨 일이지 싶어 고개를 들어 암살자를 보자 옆에 익숙한 인영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늘씬한 키에, 베이지색의 코트, 하늘색 스트라이프 셔츠에 녹색 보석이 박힌 루프 타이. 그 아래로 드러난 몸에 감고 있는 붕대까지. 그를 막은 것은 다자이였다. 다자이는 빗나가서 벽에 박힌 총알을 보더니 낮게 휘파람을 불며 바로 칼을 빼들고 찔러 들어오는 암살자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칼의 궤도를 따라 피한 다자이에게 총구를 들이댄 암살자는 그대로 그에게 총을 쐈지만 다자이는 간발의 차로 피하고 그의 손을 강하게 내리쳤다. 암살자가 통증에 손을 붙잡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암살자의 머리를 꾹 누른채 말했다.
"그만해. 이 이상 죄를 늘릴 셈이야?"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다자이."
"그렇게 말하면 서운한데-."
"배신자가 잘도 그런 말을 지껄이네. 귀찮게 굴면 저녀석들 보다 널 먼저 처치하겠어."
"아아, 그래? 여태껏 나한테 이긴 적도 없으면서."
"그랬지."
그렇다고 지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암살자는 허리춤에서 총을 하나 더 빼들어 란포와 후쿠자와를 겨눴다. 다자이가 그 움직임에 가볍게 움찔한 사이, 암살자는 그의 허벅지를 노리고 총을 쐈다. 퓩, 소리도 없이 날아간 총알은 그대로 다자이의 허벅지를 관통했고, 다자이는 그대로 비틀거리다 암살자의 발길질에 옥상 아래로 떨어졌다. 건물의 배관을 타고 그를 쫓아 내려온 암살자는 허벅지를 붙잡은 채 신음을 흘리던 다자이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 란포와 후쿠자와를 쳐다보고는 그대로 한 걸음씩 걸어왔다. 근거리의 대결이라면 후쿠자와에게도 승산은 있었다. 하지만 란포는 여전히 후쿠자와의 앞에서 비키지 않았다.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것도 드문 일인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암살자의 총이 란포의 이마에 닿았다.
"란포!!"
"당겨봐, 그 방아쇠를."
"…너."
"그만둬!!"
"…네겐 무리겠지."
"너는 뭐지."
"나? 알고 있잖아? 시치미를 뗄 건가?"
"―이름을 말해."
"내 이름은, 에도가와 란포."
그리고 너도 그렇지. 암살자씨. 그렇게 말하며 란포는 암살자의 총을 가만히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암살자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란포의 뒷목을 수도로 내리치려고 했다. 그것을 막은 것은 후쿠자와였다. 후쿠자와는 암살자의 공격을 흘려내고는 그대로 그에게 천지뒤집기를 걸었다. 휙, 암살자의 몸은 가볍게 허공에 떴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바람에 검은 마스크도, 그가 쓰고 있던 모자도 원래 자리에서 흐트러졌다. 암살자는 작게 혀를 차고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그의 얼굴을 몰라볼 수는 없었다. 그는, 후쿠자와가 알고 있고, 지금 눈 앞에 있는 그. 에도가와 란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어 미간을 찌푸리는데 뒤에서 앓는 소리와 함께 벽을 짚고 일어난 다자이가 걸어와 바닥에 누워있는 란포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에 있는 붕대가 풀려있는 걸 보니, 급한 대로 그걸로 지혈을 한 모양이었다. 다자이는 란포에게 다정한-이걸 보고 있던 두 명의 란포는 똑같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란포."
"…귀찮게 굴지 말라니까."
"그러지 말고."
"잠깐 기다리게."
"…?"
다자이의 손을 잡고 일어나 앉은 란포는 멀뚱히 눈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후쿠자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암살자인 란포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란포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결심을 굳힌 듯, 그들을 탐정사로 초대했다. 후쿠자와의 초대에 서로를 멀뚱히 보던 다자이와 란포는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후쿠자와와 란포를 따라갔다. 그 둘이 도착하자마자 탐정사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도 그럴 게, 사무실 안에 있던 다자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데다, 란포가 두 사람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탐정사원들은 얘기를 하러 응접실로 들어간 네 사람을 주변에서 둘러싸곤 저마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란포씨가 쌍둥이라던가? 다자이씨도 그런가? 따위의 말들이 오가며 웅성거렸다. 암살자인 란포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볼일인데?"
"자네는 정말로 란포인가? 그리고, 자네는…."
"멍청한 말을 하네. 둘 다 진짜야. 그쪽도 눈치 챈 거 아니었나?"
"…뭐라고?"
"눈치채지 못했으면 그런 도발을 할 리가 없지."
"―역시 알고 있었군."
"역시 일부러 그랬던 거냐, 란포?"
"응. 이 녀석은 나고, 나는 이 녀석이야. 그렇다면 함부로 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란포, 그걸 어떻게 알았지?"
"첫 눈에 알았지. 내가 나를 몰라볼 리가 없잖아?"
"…그런가."
란포의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쉰 후쿠자와는 오랜만에 생각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느낌에 한숨을 쉬었다. 암살자인 란포에게 왜 그렇게 됐는지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다. 이 둘의 말은 사실이겠지. 적어도 란포는 이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럼, 그 세계의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가. 란포를, 저런 길에 빠지게 그냥 두었단 말인가? 머릿속에서 점점 꼬여가는 생각과 알 수 없는 자괴감에 후쿠자와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암살 의뢰를 한 사람은 누군지 뻔했다. 모리겠지. 저들이 온 세계와 이쪽의 대립구도가 같다고 가정한다면, 저쪽의 란포는 지금 포트마피아에 몸을 담고 있다고? 후쿠자와는 깊은 한숨을 내쉬다 결심을 했는지 암살자인 란포를 보며 물었다.
"란포. 지금은 어디에 있지?"
"포트마피아."
"―왜 그런 길을 걷는 거냐."
"댁은 왜 그런 걸 신경쓰지?"
"―대답해주게."
"한 번 사람을 죽이면 편히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야."
"…사람을 죽였나?"
"수도 없이."
"대체 왜!!"
부들거리며 책상을 내리친 후쿠자와를 빤히 보던 란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했다. '살기 위해서.' 그 대답에 후쿠자와는 속이 쓰려오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살기 위해서라고? 살기 위해서, 도대체 언제부터?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한 질문에 란포는 손가락을 꼽다가 열 네살, 이라고 답했다. 열 네살. 그 어린 나이에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고?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짐작컨대 쉬운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점점 심각해지는 후쿠자와의 표정을 보던 란포는 옆에서 내내 미소만 짓고 있던 다자이의 허벅지를 꾹 찔렀다. 다자이가 격한 통증에 허벅지를 붙잡고 부들거리는 것을 본 란포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이곤 주변에서 벙쪄있는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이 바보를 치료해야할 것 같은데, 혹시 의사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