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9. 00:43

[문호스트레이독스] 미련, 그 지독한 향기에 취해


나카하라 츄야 x 다자이 오사무


키워드 [그래도 다시 한 번]


For Sistina(@sistinan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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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Tu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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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또냐. 츄야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술의 기운을 빌려서 전화를 해도 도무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그 놈은 오늘이 자기 생일인지 알고나 있을까. 이제와서 예전 파트너이자 배신자인 놈의 생일을 챙기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어쩐지 그래도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는 하고 싶은 마음에 츄야는 가만히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손가락을 놀렸다.


축하, 아니, 빌어먹을, 빨리 죽어버려라. 다자이. 완성되지 않은 문장을 몇 번이고 쓰다 지웠던가. 좋아하는 와인을 느긋하게 마시며 화면을 흘끗 보던 츄야는 잠시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까지 느른하게 취했던 술이 한꺼번에 깨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히 아까까지는 커서가 깜박이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언제 누른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보낸 내용을 본 츄야는 미간을 찌푸리고 미묘한 한숨을 내쉬었다. 덜렁 [다자이]라는 이름만 보내서 천만 다행이었다. 지금까지 썼던 쓸데없는 내용이 보내지지 않은 것만 해도 그게 어디인가.


"술 마시면서 핸드폰 보는 버릇을 고치든지 해야지, 원."


작게 혀를 차며 츄야는 적당히 소파에 핸드폰을 던져두었다. 어차피 그 녀석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를 기대를 하는 자신이 참 서글펐다. 저 놈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 기대를 하고 있는가. 그건, 아마도 미련이 아닐까 싶었다. 둘이 함께 하던 시절에 대한 미련. 그 때는 오히려 즐겁게 활개치고 다녔던 것 같은 기분인데. 빈 잔을 내려놓은 츄야는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어쩐지 근육이 뻐근해지는 느낌에 작게 한숨을 쉬는데 문고리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시간에 누구야…."


조용히 한 손에는 주머니칼을 빼어들고 현관문쪽을 바라보자, 오래 지나지 않아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츄야는 문을 연 인간을 벽으로 밀어붙이고 목에 칼을 들이댔다. 지극히 조건반사적인 행동에 문을 연 사람은 피식 웃었다. 여전히 훌륭한 솜씨네, 사람 보는 눈은 없지만. 그 목소리에 츄야는 미간을 찌푸리다 눈을 크게 뜨며 상대를 똑똑히 보았다.


"다자이, 네놈!"

"…친히 보러 와줬는데 이런 대접하기야?"

"왜 여기까지 왔지?"

"그냥, 네가 나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서."

"…누가."


속을 들킨 것 같은 기분에 츄야는 칼을 집어넣고 다자이를 밀어붙인 팔을 뗐다. 가만히 제 목을 만지며 태연하게 츄야가 앉아있던 맞은편 소파에 앉은 다자이는 그를 보며 손님 대접은 안 해주는 거냐고 물었다. 뻔뻔한 놈. 츄야는 혀를 차며 찬장에서 글라스를 하나 더 꺼내와 와인을 따라주었다.


"이것만 마시고 꺼져버려."

"너무하네, 자기가 불러놓고는."

"내가 언제!"

"이거, 기억 안 나?"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가 내민 것은 [다자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메시지였다. 츄야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아무래도 이건 꿈이 아닐까 싶었다. 이 놈이 이렇게 순순히 부름에 응답할 리가 없었다. 그래, 이것은 옛날에 대한 향수가 짙어진 채 술에 취해 꾸는 꿈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편해져 츄야는 자신의 잔에 새로운 와인을 따라서 홀짝였다. 이 꿈이 얼른 끝나버리길 바랐다.


"아아, 네가 눈 앞에 있으니 술도 맛없잖아."

"그럼, 이만 돌아갈까?"

"……."


불만을 표하는 자신의 말에 다자이는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 가버려. 아니, 가지 마. 상충되는 의견이 츄야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 생각의 충돌 끝에 츄야는 한숨을 내쉬고 다자이의 멱살을 잡아 짧게 입을 맞췄다. 마지막은 어쩐지 심술이 나서 입술을 물어뜯고 놔줬지만. 다자이는 뜯긴 입술을 가만히 혀로 핥고는 피식 웃었다. 아직도 날 잊지 못해서 어쩌나, 하는 말에 츄야는 가만히 베고 있던 쿠션을 그의 얼굴에 집어던졌다.


"볼 일 끝났으면 꺼져버려. 왜 아직도 있는거야?"

"하하, 정말 가면 아쉽지 않겠어?"

"전-혀. 네가 없어도 잘 살고 있거든?"

"그래? 그건 다행이지만."


퍽이나 다행이겠네. 그렇게 투덜거리며 츄야는 다자이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눈을 감았다. 자신을 향해 손을 휘젓는 츄야를 보던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곤 다음에 만날 때까지 잘 지내라고 말하고는 츄야의 방에서 나갔다. 그 모든게 꿈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건,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였다. 제 앞에 놓인 빈 잔과, 어쩐지 입술에 남아있는 조금 비릿한 느낌에 츄야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꿈이었다면 나았을텐데."


아직 입술에 남아있는 온기가 미련을 더해주는 날이었다. 게다가 그 놈은 왜 들렀다 갔는지도 모르겠고. 빈 와인잔에 물을 채워 대충 싱크대에 놓은 츄야는 어쩐지 당장 정리할 기분이 내키지 않아 다시 소파에 드러누워선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습관적으로 켜버린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미련과 함께 방 안을 가득 채웠다.


fin.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