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2. 00:53

[문호스트레이독스]


환상여우기담

(幻狀狐記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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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여름 날이었다. 사장님이 그를 데리고 온 것은. 사장님은 그를 란포라고 불렀다. 란포는 그다지 키가 크지 않고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였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가장 안쪽에 있는 의자에 들어가서 앉았다. 사장님은 그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는 자기 집무실로 들어가버렸다. 란포는 사장님이 들어간 곳을 한 번 쳐다봤을 뿐, 의자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는 회전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저…. 란포…씨?"

"응?"

"…그 자리는…."

"나, 여기가 마음에 드는데."


그렇게 말하며 란포는 샐쭉 웃었다. 물러설 마음이 없는 표정에 쿠니키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보다 사장님은 어째서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일까.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데려왔는 지 조차 쿠니키다는 알 수 없었다. 란포는 때로는 멍하니 천장을 보다 혼자 웃고, 가끔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젓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어딘가 아픈 게 아니냐는 얘기도 퍼지고 있었다. 소문을 막을 방법은 없었고, 확인할 방법 또한 없이 시간은 흘러가기만 했다. 쿠니키다는 여전히 그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가 궁금했다.


그가 오고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쿠니키다의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가고 있었다. 의문을 풀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란포는 쿠니키다의 질문에 아주 철저히 회피를 했다. 어떤 것에도 제대로 된 대답은 주지 않은 채 딴청을 피우거나 다른 곳에 집중을 하느라 못 들었다는 정도의 대답만을 주었다. 그리고 그 날은, 쿠니키다와 란포가 우연히 사고를 함께 목격한 날이었다. 현장에 있는 경찰들은 사고사라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그걸 본 란포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란포씨?"

"흠, 아무래도 사고가 나서 죽은 사람의 표정이 아닌데."

"…네?"

"아까부터 피투성이가 되어서 여길 보고 있거든, 봐, 저기."


란포는 손가락으로 사고현장을 가리켰지만 쿠니키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렇다면 란포씨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는 여유롭게 사고 현장에 다가갔다. 경찰이 말렸지만 그는 전혀 듣지 않은 채, 가만히 쪼그려 앉아 타이어 자국을 손으로 만졌다. 그러면서 허공을 보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부외자의 침입에 경찰은 곤란한 표정으로 그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란포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건 사고가 아니야."

"네? 도대체 무슨 말을…."

"위장. 차의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고 오일이 샌 건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야. 공작을 한 증거가 있을 걸?"

"…무슨 헛소릴 하는 겁니까. 그럼 우리 경찰이 오판하기라도 했다고?"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지."


그래서 내가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란포는 하나씩 설명을 했다. 처음에는 코웃음을 치며 무시하던 경찰도 란포의 말이 계속 되면서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결국 뭔가 걸리는 느낌에 견인해 간 차를 조사한 뒤에 경찰은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금 경찰은 분주해졌고, 그 모습을 보며 란포는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경찰은 차에 그 공작을 한 범인을 검거했다. 헤어지자는 말에 그녀를 다른 놈에게는 보낼 수 없다고 주장하던 남자는 란포의 한 마디에 침묵했다.


"먼저 신의를 저버린 건 네 쪽이잖아, 인간."

"…뭐?"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

"……."

"정답이었네."


란포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경찰은 란포에게 감사인사를 하고는 범인을 연행해갔다. 그 뒤에 란포는 한참 허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끄덕이는 행동을 반복하다 손을 흔들었다. 쿠니키다는 그 때 확신했다. 란포의 눈에는 일반인들은 볼 수 없는 무언가가 보이는 것이라고. 허공에 한참 손을 흔들던 그는 여유롭게 쿠니키다의 곁으로 돌아왔다. 쿠니키다는 란포를 물끄러미 보다 물었다.


"란포씨, 방금 뭘 하신 겁니까?"

"음? 뭐가?"

"아니, 굉장한 추리였습니다."

"아아, 그거 말이지. 나는 들어준 것 뿐이야."

"…들어요?"

"응, 듣고 전해줬어. 그게 내 역할이니까."


도대체 그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란포의 말은 쿠니키다에게는 아직도 수수께끼 같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그가 말한 것들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는 그에게 습관처럼 솜사탕을 사준 쿠니키다는 생각에 잠긴 채 탐정사로 돌아왔다.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