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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07.16 [센티넬버스] 각인
  3. 2016.07.15 [센티넬버스] Connection.
  4. 2016.07.13 And I wonder.
  5. 2016.07.09 결함을 가애(可愛)하다
  6. 2016.07.08 바다와, 밤과, ―.
  7. 2016.07.03 칠석(七夕)
  8. 2016.07.02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9. 2016.07.02 헌화(獻花)
  10. 2016.06.30 선의와 공포의 경계에서
2016. 7. 26. 01:45

[문호스트레이독스]


If.


다자이 오사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나카하라 츄야

(Gender swap Version)


※ 젠더스왑(성전환) 주의

※ 호칭, 말투 등에서 다소 달라질 수 있음 주의


==============================



"있잖아, 아쿠쨩. 조금 더 빨리 움직일 순 없어?"

"죄, 죄송합니다."

"정말이지, 이러다 다 놓치게 생겼네."

"하지만 결계는 확실히 쳐 놨어요."

"지키는 사람은?"

"…츄야씨요."


뭐, 그러면 결계는 문제 없겠네. 다자이는 기지개를 켜며 마을에서 날뛰고 있는 검은 그림자들을 바라보았다. 어디, 저 녀석들을 어떻게 몰아넣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다자이는 옆에 서있는 작은 소녀를 보며 히죽 웃었다. 소녀가 다자이의 미소에 당황하며 그녀를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소녀의 어깨를 잡았다.


"아쿠타가와."

"네, 네?"

"…네 차례야."

"…네?"

"잘 다녀와☆"

"자, 잠깐만요, 선배!?!?!?!"


다자이는 생긋 웃으며 아쿠타가와의 어깨를 강하게 뒤로 밀쳤다. 그 반동으로 몇 걸음 물러나던 아쿠타가와는 그대로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아쿠타가와의 눈에 비친 것은 웃으며 손을 흔드는 자신의 선배였다. 아니, 선배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원망스런 눈빛으로 제 선배를 쳐다보던 아쿠타가와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착지할 때의 반동으로 살짝 뒤로 밀려난 아쿠타가와는 다시 자세를 잡으며 주머니에서 몇 장의 부적을 꺼냈다.


"진짜 싫다…."

"크르르…."

"이쪽은 안 봤으면 좋겠는데. 너희들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나거든."


아쿠타가와는 긴장한 표정으로 부적을 꼭 쥐고는 천천히 그림자들의 등 뒤로 걸어갔다. 하지만 어느 새 냄새를 맡은 건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그림자에게 둘러싸인 뒤였다. 아, 맙소사. 이를 악문 아쿠타가와는 자기에게 손을 뻗어오는 녀석들을 가지고 있는 부적으로 하나 둘 해치웠지만 혼자서 처리하기엔 너무 수가 많았다. 최대한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하며 걸음을 뒤로 옮기던 아쿠타가와는 그대로 벽에 부딪혔다. 설상가상으로, 부적주머니에 남은 부적도 지금 방어용으로 쓰고 있는 세 장이 전부였다.


"…어라?"


이러면 안 되는데. 넉넉하게 갖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지금 당장은 방어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어어, 하는 울음소리가 방어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그림자들이 여럿 달라붙어 방어벽을 찍어내리고 있었다. 계속 쏟아지는 광기에 가득찬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방어벽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당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 바닥에 석장이 꽂히는 것과 동시에 몇 개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오래 기다렸지?"

"선배!!!"


늘씬한 다리를 뽐내며 가장 앞에 있던 그림자를 짓밟은 다자이는 위풍당당하게 포즈를 잡은 채-츄야가 봤다면 당장 그녀의 엉덩이를 걷어찼을 것이다. - 아쿠타가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곧 뒤를 돌아 그림자를 한 마리씩 확실하게 제거해나갔다. 이제 살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쿠타가와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자이는 그런 아쿠타가와를 보다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마지막 한 마리를 석장으로 후려치고는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마주했다.


"아직도 멀었네."

"그, 갑자기 그렇게 떨어트리는 게 어디있어요!"

"여기. 그리고 다음에도 할 거야."

"뭐라고요!?"

"아쿠쨩은 아직도 준비가 미흡하니까. 익숙해질 때까진 몸으로 굴러야지?"


그렇게 말하던 다자이는 곧 옆에서 날아온 발차기를 맞고 바닥에 엎어졌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아쿠타가와가 눈을 깜박이며 쳐다본 곳에는 주황머리를 다부지게 묶어올린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엎어진 다자이에게 성큼성큼 걸어가 멱살을 잡아올리고는 사정없이 그녀를 흔들며 윽박질렀다.


"몸으로 굴러? 신입을 누가 그렇게 굴리래, 인마!"

"…아하하하하하."

"웃을 일이 아니거든? 아까부터 다 지켜봤어. 너 오늘은 가만히 안 둘 줄 알아!"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안 구해줬단 말야? 매정한 선배네, 츄야도."

"이!! 네년이 밖으로 쫓아낸 놈들을 없애느라 바빴단 말이다, 다자이!!!"

"이야, 핑계를 대는 건가요, 지금?"

"…아쿠타가와."

"네?"
"…눈 감아."


아쿠타가와는 이를 악물고 말하는 츄야를 보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다자이의 비명소리가 츄야의 잔소리 사이에 섞여서 들렸다. 차마 소리도 들을 수 없던 아쿠타가와는 그대로 손을 들어 자신의 귀를 막았다. 잠시 뒤에 손을 두드리는 느낌에 눈을 뜨자, 얼마나 맞은 건지 바닥에 드러 누워있는 다자이가 츄야의 너머로 보였다. 츄야는 앉아있던 아쿠타가와를 일으켜 옷을 털어주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갔다.


"저, 저어…. 츄야 선배."

"응?"

"다자이…선배는요?"

"놔둬. 자기가 알아서 오겠지."

"네,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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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7. 16.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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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5. 01:12

[문호스트레이독스 /센티넬버스AU]


다자이 오사무 & 나카하라 츄야


Connection.


=================================


장갑차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시끄러운 엔진소리가 서서히 꺼지면서 문이 열렸다. 갑자기 쏟아진 빛에 눈을 찌푸리자 군인이 목에 달린 우악스런 줄을 끌어당긴다.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과 동시에 인상을 썼다. 빌어먹을, 아프잖아. 그렇게 투덜거리며 노려보자 군인이 주춤하며 손을 놓는다. 한심하긴. 츄야는 앞으로 굽었던 몸을 서서히 펴며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를 거점으로 삼을 셈이라면 그다지 현명한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츄야는 말을 더하지 않았다. 이러다 멍청한 상사의 판단으로 전멸해버리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에게 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카하라 츄야. 센티넬. 현재 국가에서 최강의 센티넬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위험한 인자로 분류가 되어있다. 얼마 전까지 그는 제대로 각인한 가이드가 없었으며, 복잡한 각인 절차를 선호했었다. 그렇게 각인을 끝낸 가이드들도 종종 폭주하는 그를 견디지 못하고 망가져갔다. 그 덕분에 츄야는 강제로 구속복을 입고 목줄을 차야만 했다.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서 폭주한다면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그는 사육되었다. 그러던 중에 새 가이드가 배속되었다. 그의 이름은 다자이 오사무. 그가 어떻게 츄야를 구슬렸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단기간에 각인을 마쳤다. 그럼에도 그의 구속은 풀리지 않았다. 다자이에게 목줄을 잡힌 채 영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츄야는 가만히 상사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여기를 새로운 도시로 만들기 위해 너희들이 청소를 좀 해야겠다."

"…청소?"

"그래. 청소. 여기는 위험한 변이종들이 많으니 말이다."


변이종. 말이 좋아 변이종이지 그것들은 모두 인간이 낳은 괴물이었다. 온갖 핵폐기물과 산업쓰레기들이 모인 곳에서 태어난 유전자 변이종들은 인간의 몇 배는 커다란 크기를 가졌으며, 장정 한둘쯤은 씹어먹을 수 있는 단단한 이빨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중에는 인간들이 실험용으로 쓰다 버린 동물들의 변이종이 있는데, 이 녀석들은 어느 정도 지능이 있으며 짧은 언어를 구사할 줄 알고, 힘이 보통의 변이종들보다 강했다. 이번에 나오는 녀석들이 그런 놈들이라면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츄야는 가만히 시선을 돌려서 옆의 센티넬들을 보았다.


나카지마 아츠시, 타니자키 준이치로, 그들의 가이드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일반 병력인가. 아무리 일당백을 하는 인물들이라지만 이런 지역에 어떤 놈들이 있을 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소수로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병사가 와서 목줄과 구속복을 벗기는 것과 동시에, 아주 기가 막히게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변이종이 인간이 있음을 알고 접근한 모양이다. 한 둘도 아니고 수십명이 몰려있으니, 그들에겐 파티가 되는 셈이었다. 츄야는 심호흡을 하며 자기 키의 절반정도 되는 날이 무딘 칼을 빼들었다.


"헤에, 제법 큰 칼을 쓰네. 그거 잘 들 것 같지도 않은데."

"…너무 잘 드는 녀석을 쓰면 폭주할지도 모른다고 말야. 위에서."

"그것 참 곤란하네, 완전히 찍혀있잖아?"

"누가 아니래."

"알고보면 별 거 없는 어린애인데 말이지."

"…너부터 죽인다?"

"아, 나 없이도 제어할 수 있으면 해 봐."

"…콱."


츄야는 짜증을 내고는 돌아서서 변이종들을 베러 나갔다. 다자이는 츄야가 자신이 없이는 능력 제어가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빠른 각인이 가능했던 이유는, 사실 다자이 오사무 본인이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폭주해서 죽어버린다면 그 또한 운명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넘어갔었다. 이렇게 능글맞은 놈인 줄 알았다면 평소처럼 한 달은 투자해서 계약을 맺었을 거다. 츄야는 짜증이 섞인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땅을 내려다보다 칼을 내리꽂았다. 조금 뒤에 땅은 짙은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츄야는 망토에 붙어있던 마스크를 쓴 채 그대로 칼을 쥐고 땅과 함께 변이종을 그어버렸다. 츄야의 칼이 지나간 자리는 점점 검게 변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신호로 오아시스 주변은 전쟁터가 되었다. 다자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츄야가 변이종들을 베어버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운도 좋지."

"다자이씨, 여기 떨어져 있어도 괜찮아요?"

"아, 괜찮아. 아직까지는. 나오미쨩은 어디 다친 데 없고?"

"전 오라버니가 지켜주시니까 괜찮아요~♡"

"그건 다행이네. 모쪼록 몸 조심해. 이 녀석들은 시체마저도 독하니까 말야."

"그럼요! 감사합니다! 다자이씨도 조심하세요!"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나오미는 자신의 센티넬이자 오라버니인 타니자키의 뒤를 쫓아갔다. 저 멀리에서는 아츠시가 변이종들을 날려버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때, 목 뒤가 욱신거리는 느낌에 다자이는 급히 츄야에게 달려갔다. 이번 전투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분명히 그런 계산이었다. 그리고 츄야의 모습을 본 다자이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뒤에서 다가오는 변이종을 미처 보지 못했던 건가. 아마 변이종의 공격에 마스크가 벗겨졌던 것 같다. 독을 얼마나 마셨을지 모르겠다. 마스크를 지지하던 한쪽 끈이 떨어진 것을 가끔씩 숨을 참아가며 망토로 누르는 덕분에 움직임은 둔해졌고, 자연스럽게 츄야의 주변에는 많은 변이종이 몰렸다. 그에 따른 그로기, -아니, 그로기라기보다는 광분에 가까웠다. 아주 곤란하게도 다자이의 센티넬은 매우 호전적이었다.- 상태에 빠진 츄야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변이종을 쳐내고 있었다.


아이고, 머리야. 점점 강하게 울리는 머리를 짚으며 다자이는 츄야에게 한 걸음씩 걸어갔다. 변이종들의 공격이 그에게 쏟아졌지만 그는 여유롭게 그 사이를 지나 츄야에게 도착했다. 츄야는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피도 많이 흐르고 있었으며, 이미 어느 정도 독이 퍼졌는지 시야가 흐릿한 것 같았다. 그는 눈 앞에 자신이 있는데도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위험하다. 그렇게 판단한 다자이는 그의 망토를 잡아내린 채 그를 끌어안아 입술을 겹쳤다. 의식도 없이 얽어내는 혀 사이로 천천히 숨을 불어넣으며 눈을 감았다. 혈관이 아프게 뛰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는 점점 더 뇌를 부술듯이 아파왔다. 하지만 다자이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다자이와 접촉을 한 뒤에야 정신이 들었는지 바짝 붙어있는 다자이를 밀어낸 츄야는 칼을 들고 그대로 다자이의 뒤를 노리던 변이종에게 집어던졌다. 비명소리와 함께 쓰러진 변이종은 그대로 부들거리다 명을 다했고, 다른 변이종들은 금세 자신의 몫을 처리하고 온 아츠시와 타니자키가 처리를 도와주었다. 츄야는 가볍게 그들에게 예를 표하고는 자신의 칼에 비틀거리며 기댄 다자이를 부축하고 칼을 다시 칼집에 꽂은 채 오아시스로 향했다.


"…츄야."

"말 하지 마."

"…다리가 끌리는데."

"넌, 이 상황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냐?"

"…이 상황이니까 나온다고 생각해."

"업어줄까, 안아줄까."

"둘 다 싫은데."

"그럼 그냥 끌려라."

"…걷기 불편해."

"아, 진짜."


제 가이드의 투덜거림에 츄야는 짜증을 내고 그대로 그를 안아들고는 그대로 모래밭을 성큼성큼 걸어갔다. 생각보다 무겁지도 않은 무게에 츄야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의무반까지 그를 옮겼다. 간이 침대에 그를 눕히고 의무병에게 진통제를 받아와 건네면서 간이 의자에 앉은 츄야는 그가 약을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별 생각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생각보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그대로 목숨에 위협을 느껴 폭주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대로 감옥에 갇혔을 것이다. 더 이상의 운은 없다는 상사의 말이 귀에 괜히 맴도는 기분이라 가만히 자기의 귀를 털어낸 츄야는 약을 삼키고 누운 다자이의 손을 잡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의 말을 들은 다자이는 피식 웃고는 손을 들어 그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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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7. 13. 23:24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2bGvq


BGM - Fool's Garden [Lemon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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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I wonder


다자이 오사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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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꾸었다. 아니, 악몽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저 아주 오래 된 꿈을 꾼 것 같다. 그 꿈에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참 이상하다고 느꼈다.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던 건 제법 오래 전의 일이었는데. 언제나처럼 아침에 일어나서는 천천히 씻고, 여유롭게 나갈 준비를 했다. 문득 눈에 띈 셔츠를 보다 씁쓸하게 웃고는 머리를 정리했다.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트렌치코트를 걸치고는 느긋하게 거리를 걷는다. 사무실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은데, 오늘따라 어딘가 달라보였다. 아니, 다른 것은 나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

"늦었군."

"아아,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말이야."


그렇게 답하고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열었다. 사실 딱히 의욕은 없다. 언제는 의욕이 있는 상태였느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었지만, 오늘은 조금 더 들뜬 느낌이었다. 턱을 괴고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며 힘없는 손가락으로 타자를 누르자 쿠니키다군의 잔소리가 들린다. 아아, 아. 듣고싶지 않아. 가만히 손을 들어 귀를 막자, 새로운 목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뭐랄까, 평소하곤 조금 다르시네요. 다자이씨 답지않게.


"…내가?"


아니야, 나는 별로 다를 게 없는데.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뭐랄까, 소년의 육감이란 제법 날카로운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그 말이 내 안의 무엇을 뒤집어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다자이씨 다운' 것은 무엇이며 '다자이씨 답지 않은'것은 무엇인가? 나, 다자이 오사무는 어떤 사람이지? 가만히 눈을 감고 딴청을 피우며 떠올려본다. 제법 장신의 키에, 응, 조금 지저분해 보일 수도 있는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에. 그렇지. 그리고, 그리고?


내가, 어떤 표정이었더라?


떠오르지 않았다. 어라, 원래 나는 웃고 있었나? 무표정? 찡그렸나?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나? 입은? 눈은 어땠지? 옛날엔 조금 더…. 아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옛날의 나는 어땠더라? 너는 내게 뭐라고 말했지? 그렇게 생각하며 옆을 보았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 이런. 그랬지, 지금은 '옛날'이 아니었지. 친구들을 볼 거라고 기대라도 했던거냐, 다자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빙글빙글 돌리던 의자를 멈췄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뭐냐, 다자이."

"음, 쿠니키다군?"

"…말해라."

"잠시 여행을 다녀오겠네."

"뭐?"


이 놈이 뭐라는거야, 넌 어째서 항상 그렇게 매사를 갑작스럽게 결정짓는거냐, 따위의 말들이 귀를 스쳐간다. 하지만 그걸 들어줄 여유는 없었다. 나는 지금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일의 최우선순위에 들어왔다. 나는 나여야지만 내가 맡은 바를 다할 수 있었으므로, 나는 나를 찾아야만 했다. 내가 나를 찾지 못해 내가 나로 있지 못한다면 그것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오, 죽어도 가치가 없는 인생이었다. 어디부터 가는게 좋을까. 나는 어디서 시작했지? 질문은 끊임없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한 단어, 한 음절이 분리가 되어 머릿속을 기어다닌다. 아아, 뇌에 벌레가 들어찬 기분이다.


"…죽을 것 같아."


입에서 나온 말에 의문을 가져본다. 죽을 것 같아. 죽고싶어가 아니다? 왜? 살아있지만 죽을 것 같다고? 그럴 바에야 죽는게 낫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강의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가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중간에는 인간들의 길을 사용하지 않아 온갖 경적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그러나 결국 강에는 뛰어들지 못했다.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어렵지 않았던 것인데. 나는 망가진걸까? 아니, 원래 망가져 있었으니 지금이 제정신인가?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저 고개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볼 뿐이다. 하늘을 향해 들어도 보고, 바닥에 바짝 붙어도 보았지만 도통 행동의 의미를 알수가 없다. 이럴 때엔 뭘 하는 게 좋더라? 가장 좋아하는 것? 친구, 술. 친구는 지금 없으니 다음은 술인가. 좋아, 마시자.


결론이 내린 뒤의 행동은 빨랐다. 임대아파트에 술과 게 통조림을 잔뜩 사갖고 들어갔다. 다만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알콜이 내 정신을 흩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신이 너무 멀쩡해져서 곤란하다. 한 병, 두 병. 속이 알콜로 채워지는 만큼 뇌도 소독이 되는 기분이었다. 벌레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데, 문제는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곤란하다. 다자이 오사무가 다자이 오사무가 누구인지를 모르면,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정의는 누가 내려주지?


방문객이 온 건, 한참 생각과 술이 실갱이를 벌이던 그 때였다. 이 조용한 곳에 찾아주신 분은 누구신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자마자 가볍게 코를 막은 둥근 갈색 베레모를 쓴 사람이 보였다. 어라, 웬일이지. 어서와요. 그렇게 말하며 일단 그를 안으로 들였다. 들어오자마자 멋대로 바닥에 앉은 그는 턱을 괴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아, 잠깐. 그렇게 보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싶어 손을 뻗어 그의 눈을 가리려고 했다. 지금 그는 평소보다 날카로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있다. 속까지 뚫리는 느낌은 좋아하지 않는다. 내 안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나? 음, 그래도 역시 보여주는 건 별로다.


"…다자이."

"네?"

"뭘 그렇게 고민해?"


와, 잠깐. 보여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았다. 아니, 저 사람에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는 내 표정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곤 손가락을 들어 내 이마를 가볍게 튕겼다. 음, 조금 따끔한데. 이마를 가만히 문지르자 그는 한숨을 내쉬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더니 대뜸 말했다.


"억지로 찾을 필요 없잖아."

"…무슨 말씀이세요?"

"자네가 누군지."

"…어."

"일일이 설명해줘야 해? 착하면 척하고 알아들어야지."

"…오늘은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렇게 말하며 웃자 그는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쉬고 말을 한다.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같은 걸 떠날 필요가 있느냐고. 그의 질문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해본다. 과연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금방 떠오른 답은 '알 수 없다' 였다. 나는 그게 필요한지, 아닌지 판단할 최소한의 기능마저 망가져버렸다. 그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어깨를 으쓱이다 결론을 내려주었다. 그럴 필요는 없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도대체 내가 왜 일부러 귀한 걸음을 여기까지 해서 자네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하도 시끄러워서 그냥 둘 수가 없었다고 말한 그는 내 이마를 꾹 누른채 말했다.


"이 안에, 되고 싶은 것만 있으면 돼."

"…되고 싶은 것?"

"이상향. 거창하지 않아도 상관없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정도의 목표라도 충분해. 인간은 상식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니까."


아니, 우리 탐정사에서 가장 상식을 따지는 사람 중 한 분이면서 그렇게 말해도 되는거예요? 이 사람도 참 알 수 없네.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보고 웃자 그는 미묘하게 표정을 구기며 내 이마를 밀었다.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리지 그래? 되고 싶은 것 정도는 있을 거 아냐? 아니면 지켜야 할 것이라던가. 아, 아아. 그의 말에 떠올랐다. 내가 지켜야 할 것. 그것은, 그래. 친구의 마지막 말. 이제야 조금 정신이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었다. 오래 전의 꿈을 꾼 것이 조금 혼선을 가져온 모양이었다. 이렇게 크게 흔들려 본 건 처음이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내 앞에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란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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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9. 23:30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ycGHl


BGM - 마리오네트의 마음 (호시이 미키)


----------


결함을 가애(可愛)하다.

가애(可愛)하다 : 사랑할 만 하다.


다자이 오사무 x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To. 모기 (@monoxi)님 


※인형사 AU. 다소의 캐붕이 있을 수 있습니다.


------------



「 이건, 결함품이네. 」


당신에게 가장 먼저 들은 소리였다. 나의 아버지, 나의 창조주. 당신은 내게 생명을 주고서 눈을 뜬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내는 법을 몰랐다. 그렇게 나는 [결함품]이 되었다. 당신이 준 머리카락과 눈을 가지고 내가 하는 일이라곤 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당신과 당신의 공방에 오가는 사람들을 살피는 것 뿐이었다. 당신은 차례로 아름다운 인형들을 만들어냈다. 손님들의 요구에 맞춰서, 때로는 당신이 원해서.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다. [아름답다]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 미웠다. 처음으로 설 수 있게 된 것도 그 때였을까. 당신이 원하는 [완벽함]이란 무엇인가? 나에게는 무엇이 부족한가. 그 질문을 수백번도 더 던졌다. 아버지, 아버지. 당신을 애타게 부르는 내 목소리는 언제나 당신에게는 닿지 않았다. 형제들이 하나 둘씩, 당신과 눈을 마주치고 당신에게 인사를 하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나갔다. 당신은 빛조차 닿지 않는 내게 와서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며 가끔 먼지를 털어줄 뿐,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 …아버지. 」


돌아보지 않는 당신의 등 뒤에 애타는 이름을 불러본다. 조심스럽게 몸을 당겨 올리고 팔을 뻗어본다. 그리고, 그리고.


아아, 아버지.


                           결함을.


                                                     ―깨달았습니다.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단단한 고무줄에 의지했던 몸은 힘없이 휘어 혼자서는 일어날 수 없었다. 아픔은 없다, 통증도 없다. 만들어진 인형이니까. 아아, 차라리 아무 의지도 없이 당신의 실에 매달려 움직이는 편이 나았을텐데. 그런 인형이라면 항상 당신이 나를 봐줬을텐데. 나는 지금 당신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어디서 뭘 하고 있나요.


「 그 새를 못 참고 움직인건가. 」

「 ―아버지. 」


커다란 손이 몸을 바로 잡았다. 능숙한 손길이 무너진 다리를 만져 나를 고쳐놓는다. 당신은 인형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웃고 있는 당신의 눈에 비치는 것은 온전히 나인가요, 나의 아버지. 나의 창조주여. 당신에게 힘없이 손을 뻗자 당신은 내 손을 가만히 잡고 웃는다.


「 너는, 완벽하지 않은 쪽이 더 아름다워. 」


아아, 아버지는 지독하게 비틀어진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 비틀어진 사랑마저 사랑합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창조주여. 나는 이제야 나의 결함마저 가애(可愛)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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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7. 8. 19:01

[문호스트레이독스]


츄다자 연성교환2

to. Sistina(@sistinanzu)님


다자란 힘내서 쓰시라고 ㅋㅋㅋㅋ

키워드가 기억이 안나네요..


==============================


모처럼 받은 휴가였다. 딱히 어딜 가서 밤을 새고 올 생각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본의 아니게 그러고 있다. 탄자쿠에 소원을 빌게 만든 장본인과 함께. 아아, 진짜 싫다. 턱을 괴고 한숨을 내쉬며 나카하라 츄야는 말없이 술을 한 모금 삼키고는 별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왜 이 상황까지 오게 됐느냐, 라고 묻는다면 운이 없어도 지독하게 없어서라고 그는 망설임 없이 답할 것이다. 옆에서 태연하게 사케를 병째 들이키고 있는 작자를 보고 있자니 속이 끓어오른다. 아, 짜증나! 모자를 벗어 제 가슴께에 얹으며 잔디밭에 드러누운 츄야는 별이 빼곡히 박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문득 취한 술도 깨는 것 같았다. 하늘이 잠을 깨웠다는 말이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있지, 츄야."

"왜."

"왜 날 구했어?"

혈압이 오르는 질문이다. 장담하건대, 오늘 이 녀석은 죽을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그랬을 것이다. 아니면 거기서 그랬을 리가 없다. 몇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대체 이 놈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필 그 곳까지 왔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여기는 그 놈도 모를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그 놈이 거기에 있었다. 여기란, 해상절벽이 장관을 펼치고 있는 바닷가였다. 고속도로를 통해 와야 하는데다, 대부분 그저 스쳐지나갈 정도의 샛길이라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여유롭게 혼자서 지는 해를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 놈을 보기 전까지는.


[어라, 츄야 아냐?]

[…다자이.]

[여기까진 무슨 일이야?]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설마 뛰어내릴 생각이냐?]

[어,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기는. 네 놈이 펜스 밖으로 나가있으니까 알았지. 다자이는 안전 펜스 밖에 몸을 걸치고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바닷가의 절벽이란 으레 그렇듯 파도도 제법 높게 치고 있었다. 다자이는 바다를 내려다본 채 혼자서 상념에 잠겨있었다. 그래, 그대로 생각이나 하고 있어라. 입을 열지 않으면 저 녀석이 옆에 있다는 것도 신경쓰이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눈이 마주쳤다. 뭐지, 왜 갑자기? 이 녀석이 왜 나를 보는가 싶었는데 다자이가 그 뒤에 취한 행동이 가관이었다.


[안녕.]


…생각할 틈이 없었다. 중력에 저항하지 않는 181cm라는 키가 주는 무게는 제법 무거웠다. 다자이는 제가 원하는 대로 떨어지지 않자, 고개를 돌려 위를 보았다. 그리곤 제 코트 끝자락을 잡고 있는 손을 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제법 힘겨운 모양이다. 하지만 손을 놓는 일은 없었다. 곧 놀라운 힘으로 다자이는 펜스 너머로 집어던져졌다. 그대로 굴러 커다란 나무에 등을 부딪혔지만, 다자이는 멍하니 눈 앞에서 진을 뺀 채 펜스에 기대어 걸터앉은 자신의 옛 파트너를 보았다. 숨을 몰아쉰 채 그는 옆에 있던 돌을 아무거나 주워 집어던지며 화를 냈다.


[미친새끼야, 죽으려고 환장했냐?]

[응, 나 그런거 알고 있잖아?]

[…빌어먹을. 내 눈 앞에서 죽을 거면 그런 식으로 죽지 말란말야!]

[…그런 식이라니?]

[일부러 눈 마주쳤지! 일부러 인사했지!]

[응.]


그래야 좀 더 괴로운 기억으로 남을테니까. 나 때문에 망가지는 츄야도 볼만한데. 그 말을 하는 순간 날아온 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가까이 다가온 츄야의 주먹이었다. 강렬하게 복부에 꽂힌 주먹에 이를 악물자 츄야가 멋대로 멱살을 집어올리며 말했다. 어차피 네 놈이 죽을 생각이라면 최후의 만찬이라고 생각하고 어울리라는 말에 다자이는 가만히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최후의 만찬은 내가 즐겨야하는 것 아닌가? 끌려가면서 의견을 제시해 보았지만, 그가 하는 말은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그렇게 차를 몰아 조금 먼 곳으로 온 게, 지금까지의 이야기다.


"…그런 식으로 뒈져버리면 뒷맛이 씁쓸하니까."
"어라, 내가 그렇게 소-"

"닥치고 술이나 마셔. 술병이나 나서 죽어버려라."


다자이의 입에 멋대로 술병을 물리고 바닥을 들어 말을 못하게 한 채 츄야는 다시 드러누워 다리를 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쏟아질 것 같은 별이 아름다워서 츄야는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떴다. 그 하늘을 전부 눈에 담으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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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7. 3. 02:44

[문호스트레이독스]


칠석(七夕)


나카지마 아츠시의 이야기


==========================


"읏차, 들어갑니다!"


아침부터 사무실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쳐다본 아츠시는 커다란 화분을 들고오는 타니자키에 놀랐다. 타니자키가 들고 온 화분에는 풍성한 대나무가 꽂혀있었다. 응접실의 옆에 화분을 내려놓은 타니자키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위치를 다시 한 번 체크했다. 그런데 웬 대나무?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오미가 준비해 온 종이와 끈을 옆에 내려놓고서야 아츠시는 며칠 뒤가 칠석이라는 걸 깨달았다.


"…칠석이구나."

"응, 맞아요. 해본 적 있어요?"


나오미의 질문에 아츠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칠석에 대한 건 동화책을 잠깐 본 정도고, 말로만 들었었다. 고아원에서 이런 걸 했던 기억은 없었다. 이런 걸 한다더라, 하고 어렴풋이 얘기야 들어본 적 있지만 그런 행사를 해 줄 정도로 그 사람들은 인정이 많지 않았다. 나오미는 아츠시에게 길게 자른 종이와 펜을 건넸다. 그가 영문을 몰라 그걸 물끄러미 보자 나오미는 배시시 웃곤 말했다.


"소원을 적으시면 돼요. 그리고 그 종이를 나무에 묶는 거랍니다?"

"그렇군요…."

"아츠시씨는 어떤 소원을 빌 건가요?"

"나오미, 소원은 비밀이잖아?"

"에에, 어쨌든 달고 나면 다 보이게 되는 걸요?"


입술을 비죽이 내밀며 투덜거리던 나오미는 금세 타니자키와 둘만의 대화에 빠져버렸다. 이미 그들의 기행(?)에도 익숙해진 아츠시는 그들을 뒤로 하고 종이를 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소원, 소원이라. 뭘 빌어야 하지? 지금까지 사는 것에만 급급해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되고 싶은지 따위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갑작스럽게 그걸 종이에 적으라고 하니 머릿속은 점점 새하얘져갔다. 뭐, 칠석날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좀 더 생각해봐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츠시는 잠시 적기를 미뤄두었다.


"아, 그렇지. 근처 강가에서 칠석 축제도 할 거예요. 칠석이 가까운 주말엔 항상 하거든요."

"헤에, 재미있겠네요."

"다 같이 놀러갈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라,버,니?"

"어? 응, 괘, 괜찮지 않을까…? 허락만 받으면 말이야."


곤란한 웃음을 짓던 타니자키는 곧 슬쩍 시선을 돌려서 쿠니키다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일을 하면서도 얘기를 다 듣고 있던 쿠니키다는 머리를 긁적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주말이고 하니 괜찮겠지. 그렇게 말하자 작은 환호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쿠니키다는 그런 사람들을 보다 물론 일은 하고 가야한다며 강조했지만, 이미 들뜬 사람들은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결국 그들은 일은 잠시 미뤄둔 채 강가로 조금 빠른 걸음을 했다. 축제를 하는 강가는 준비로 떠들썩했다. 간이무대에서는 사람들이 음향을 확인하고 있었고, 축제장소의 시작임을 알리는 현수막은 이미 걸려있었다. 그 너머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준비해 온 즐길 거리를 매대에 전시해놓고 자기들끼리 분주하게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츠시는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우와-, 굉장하네요, 축제라는 거!"

"…축제도 가본 적 없는거냐? 아츠시."

"에, 뭐…, 딱히 그런 걸 보여주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니까요."


그것 참 팍팍한 시설이었군 그래. 축제만의 각종 즐길거리에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아츠시를 보며 쿠니키다는 어깨를 으쓱였다. 오늘 하루 정도는 하고 싶은대로 하게 둬도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쿠니키다는 또 한 명의 어린이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칠석 축제라 구색을 갖춰 입은 것 같은 기모노의 소녀의 눈은 새로운 것을 발견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니 조심해라."

"…네."

"아츠시는 바보니까 네가 잘 챙겨주고."


그렇게 말하자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츠시의 손을 덥썩 잡고 인파 속으로 향했다. 쿠니키다는 조금 뒤에서 느긋하게 그들을 따라가며 그 나름의 방법으로 축제를 즐겼다. 란포는 과일사탕을 잔뜩 사서 천천히 설탕조림의 달콤함과 과일의 새콤함을 즐기고 있었고, 사장님과 요사노는 어느새 언덕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간단한 안주거리와 함께 맥주를 잔뜩 마시고 있었다. 조금 뒤에 간이무대 근처에서 물에 빠져있는 지금까지 어디있는지 알 수 없던 자살매니아도 약 1명 구조했으며, 아츠시와 쿄카는 어느새 금붕어 건지기에 열중하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건진 건 한 마리도 없었다. 나오미는 타니자키가 사격으로 따낸 커다란 곰인형을 안은 채 걸어다니고 있었다. 땅거미가 지고 하늘에 별이 잔뜩 뜰 때까지 그들은 축제를 즐겼다.


"사람이 정말 많긴 하네요."

"뭐, 축제니까."


사장님과 요사노가 잡아둔 자리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탐정사의 인원은 제법 많았다. 노느라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먹거리 장터에서 음식들을 사와 늘어놓자, 너나 할 것 없이 그 주변에 빙 둘러앉았다. 타이밍 좋게도 그들이 둘러앉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폭탄인가 싶어 놀랐던 아츠시와 쿄카도 어느새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새를 못참고 선심을 써서 쿄카에게 건넨 과일사탕을 다시 먹어버린 란포는 나오미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비죽이 내밀었고, 나중에야 사탕이 없어진 걸 본 쿄카는 나오미가 새로 사 온 사탕을 받았다. 달달한 설탕과 함께 포도알을 가만히 입안에서 굴리던 쿄카는 그 단맛이 기분좋은지 배시시 웃었고, 그 웃음을 본 나오미는 쿄카를 와락 끌어안아버렸다. 갑작스런 스킨십에 당황하던 쿄카는 곧 적응했는지 가만히 포도알만을 입에서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불꽃놀이도, 다같이 먹는 저녁식사도 끝나고 정리를 하고 기숙사에 돌아온 아츠시는 씻고 자리에 누워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다 쿄카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지문 너머에서 이부자리를 펴고 있던 쿄카는 아츠시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아츠시는 볼을 긁적이다가 아침의 일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응접실 옆에 놓인 탄자쿠(短冊)에 소원을 쓰면 된대. 쿄카는 어떤 걸 쓰고싶어? 그렇게 말하자 쿄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곧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답하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아츠시는 닫힌 장지문을 보다가 너무 갑작스럽게 물었나 싶어 머리를 긁적이고는 천장을 바라보고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사무실에 놓인 대나무에는 이미 몇 장의 종이가 걸려있었다. 언제 쓴 거지, 이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며 아츠시는 종이를 들고 펜을 잡아서 글씨를 써내려갔다. [여기에 오래 있을 수 있게 해주세요.] 조금은 애틋한 소원이었지만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그것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에 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사람들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동료였다. 그래서 더 오래 함께 하고 싶었다. 그 소원을 담아 아츠시는 탄자쿠를 가만히 대나무 줄기에 묶었다.


오래, 오래.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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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7. 2. 21:56

[문호스트레이독스]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히구치 이치요


전력 60분 주제 : 우산


===================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일기예보같은 건 원래 신경쓰지도 않았기에 하늘을 보던 아쿠타가와는 가만히 걸음을 옮겼다. 마음에는 언제나 비가 내리고 있었으니 크게 상관 없었다. 언제쯤 그칠지도 모르는 비를 끌어안고 사는데 몸이 조금 젖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딱히 걸음을 서두르지도 않았다. 서두를 필요도 없었기에. 주변에선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이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지만 아쿠타가와는 그 안을 유유자적하게 걸어다녔다.


"아쿠타가와 선배!"

"…히구치인가."


급하게 자신에게 우산을 들이미는 여자를 아쿠타가와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밝은 노란색의 머릿결이 태양과 같은 여자였다. 이름은 히구치 이치요. 이 음습한 세계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딱히 필요없는 오지랖도 잘 부릴 정도로 무른 사람이었다. 일례로 이미 젖은 이에게 우산은 필요없음에도 그녀는 자신에게 우산을 들이밀고 있었다. 쓸데없는 친절이다. 받을 필요도 없다. 어설픈 친절은 짜증만을 불러올 뿐이다. 아쿠타가와는 언제나처럼 그녀에게 호통을 쳤다.


"필요없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많이 약해지셔서 위험해요!"

"이깟 몸이 무슨 대수란 말이냐!"


아쿠타가와의 일갈에 히구치는 말을 멈췄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쿠타가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을 두려워 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하는 말에 분노를 품는가. 어느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해도 아쿠타가와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문제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의 태도가 조금 달랐다. 눈빛에서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고 주먹을 쥐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아쿠타가와 선배."

"…?"


짝.


화려한 소리와 함께 아쿠타가와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디서 감히, 이 계집이! 화가 치민 아쿠타가와는 그대로 라쇼몽을 그녀의 목에 바짝 들이댔다. 하지만 히구치는 물러서지 않았다. 상사를 때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그녀는 눈을 돌리지 않았고, 그를 똑바로 쳐다본 채 입을 열었다.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말씀은 하지 말아주세요, 선배."

"…건방지구나, 히구치."

"화가 난다면 이 자리에서 절 죽여버리셔도 상관없어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목숨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 스스로의 목숨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저도, 검은 도마뱀도 전부 당신을 경외해서 모였고 그래서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아쿠타가와 선배가 무너져버리면 우리도 있을 곳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부디, 몸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주세요. 무리하지 말아주세요.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지 말아주세요. 저에게 기대어달라는 주제 넘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발 부탁드립니다. 혼자 걸어가지 말아주세요. 함께 걸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네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이라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거냐?"


만약 그렇다면 정말 건방진 여자였다. 그 말에 히구치는 고개를 저었다. 가로젓는 고개와 함께 세차게 돌아갔다 마주한 눈에는 슬픔이 가득차있었다. 아까는 증오, 지금은 슬픔. 여러가지 감정에 쓸려가느라 바쁜 여자였다. 한심하게 그녀를 쳐다보고 있자, 히구치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제가 바라는 건, 그저 선배가 뒤를 돌아봤을 때 한 걸음 뒤에 제가, 그리고 검은 도마뱀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아쿠타가와 선배.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건방지구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확실히 그랬다. 마음을 먹고 라쇼몽을 제대로 휘두르면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녀의 실종은 포트마피아가 알아서 덮을 것이었고, 특별히 문제될 것도 없었지만 아쿠타가와는 그녀의 손에서 우산을 빼앗아들고 말했다.


"이번 일은 불문에 부치겠다. 하지만 다음은 없다."

"…!!! 감사합니다, 아쿠타가와 선배!"


그 사이에, 그렇게 요란했던 빗줄기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변덕스러운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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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7. 2. 01:09

[문호스트레이독스]


헌화(獻花)


다자이 오사무 & 나카하라 츄야


==========================


야습에 당했다―.


그게 가장 처음 받았던 통보였다. 다자이는 부하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야습에 당해? 누가? 소식을 전하러 온 부하는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답했다. 츄야씨가, 당했습니다. 그 말에 다자이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츄야가? 죽을 때가 됐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츄야가 누워있는 방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함께 해오면서 그보다 강한 사람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아니, 아마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그런 츄야가 당했다고? 그런 일을 할 정도면 꽤나 뛰어난 암살자인가. 턱을 문지르며 혼자 머리를 굴리다 문을 열자 침대에 누워있는 파트너가 보였다.


"이게 무슨 꼴이람…."


아직 정신은 돌아오지 않은 듯 했다. 의료반이 신속하게 치료는 했지만 아마 신경계에 작용하는 독이 칼날에 발라져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과연, 야습에 독이라. 정신을 못 차릴 만도 하네. 팔짱을 끼고 가만히 그의 침대를 바라보던 다자이는 걸음을 돌려 방을 나섰다. 부하를 대동하고 건물을 나간 그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츄야가 습격을 당한 곳이었다. 야심한 시각에 실력이 좋은 녀석을 습격하려면 방법은 두 가지. 그의 움직임을 상회하거나, 그의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하지만 츄야의 움직임을 상회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녀석들은 츄야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방법을 썼겠지.


"과연, 그렇군."


전투의 흔적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충격으로 떨어져 뒹구는 낡은 파이프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칼 한 자루. 아마도 그 칼에 독이 발라져 있던 거겠지. 다자이는 장갑을 낀 손으로 가만히 칼을 들어 손수건에 감싼 다음 부하에게 건넸다. 칼을 건네받은 부하는 곧바로 의료반으로 향했다. 칼을 떨어트린 것으로 보아 그 놈도 성한 상태로 돌아가진 못한 것 같았다. 뭐, 상대가 상대니까. 어지러이 찍힌 발자국을 보던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곤 골목을 나갔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의리는 다 한거겠―지?"


혼자 중얼거리던 다자이의 눈에 띈 것은 그 골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꽃가게였다. 마침 국화철이었기에 그 곳에는 크고 탐스러운 국화가 잔뜩 놓여있었다. 문득,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자이는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꽃집으로 걸었다. 꽃집의 아가씨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음, 국화꽃을 좀 사고 싶은데요."

"몇 송이나 드릴까요?"

"흠…. 네 송이요. 하얀 것으로."


흰 국화, 검은색 양복, 붕대투성이인 얼굴을 본 그녀는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며 꽃을 꺼내들었다. 소중한 분을 잃으셨나봐요. 그녀의 말에 다자이는 애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특별히 예쁜 꽃으로 골라주겠다며 꽃이 가득 담긴 통을 부드러운 손길로 뒤적였다. 그 녀석에게 그런 정성까지는 필요 없다고 하려다, 이왕 하는 거 좀 더 정성이 들어간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기에 그만두었다. 곧, 네 송이의 국화가 정성스럽게 검은 리본에 싸여 다자이에게 건네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위험했다. 하마터면 웃을 뻔했어. 값을 치르고 나와서 가볍게 국화꽃으로 어깨를 두드리면서 다자이는 작게 웃었다. 방에 돌아와 국화를 시들지 않게 하려고 적당한 그릇에 물을 담아 꽂아놓은 그는 그 중 한 송이를 들고 츄야가 잠들어있을 방으로 향했다. 방 주인이 잠들어있으니 노크는 필요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연 다자이는 안의 상황에 조금 놀랐다. 그 새 깨어난 츄야는 소파에 늘어져있었고, 바닥에는 반쯤 쏟아진 물병과 컵이 뒹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체력인거야? 신경계 독이라고 했는데. 혈청이 그렇게 금방 나왔을 리는 없고. 그렇게 생각하며 츄야에게 다가가 그를 가만히 흔들었다. 츄야는 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찔거렸다.


"…누구야."

"츄야, 정신이 들어?"

"…물."


사실은 놀려주고 갈 생각이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니 의욕이 반쯤 죽어버린 다자이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물병과 컵을 주워 탁자 위에 올려놓고 다른 컵에 수돗물을 받아서 건넸다. 그 물을 받아마신 츄야는 다시 늘어진 채 기절해버렸고, 다자이는 이를 어쩔까 하고 고민하다가 이불을 가져와서는 그에게 덮어주고 잠시 그를 쳐다보다 나갔다. 품에는 아까 사온 꽃 한 송이를 놓은 채.


그 다음날이었다. 뒤에서 유난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등에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얻어맞은 몸을 웅크리던 다자이는 고개를 돌려 배짱도 좋게 저를 친 사람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얼굴에 날아온 건, 어제 정성스럽게 골라온 그 꽃이었다. 다자이는 꽃을 손에 들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화가 난 표정의 츄야를 쳐다보았다. 츄야는 부들부들 떨더니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난, 아직, 안, 죽었어! 이 자식아!!"

"하하, 그렇지?"

"멀쩡한 사람을 죽이다니, 무슨 수작이냐!"

"아니, 난 그냥 네가 빨리 깨어났으면 해서."


뭐가 어째? 그런 놈이 그 꽃을 들고 와? 그렇게 말하며 버럭대던 츄야는 곧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의료반에게 강제로 붙잡혀 끌려갔다. 다 나으면 너부터 팰 줄 알아!! 끌려가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츄야를 보던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빨리 깨어났지만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건 나쁘지 않았지만 나머지 꽃이 쓸모없게 됐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다자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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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6. 30. 18:47

[문호스트레이독스]


선의와 공포의 경계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이야기.


=======================



날이 더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옷차림이 바뀌는 건 아니었지만 거리의 풍경은 많이도 바뀌었다. 아쿠타가와는 아직도 거리의 분위기에 적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으며, 적응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조용히 한 걸음 떨어져 이방인처럼 도시를 바라볼 뿐이었다. 도시는 화려하고 적적했으며, 조용하고 시끄러웠다. 그리고 그 어느 곳에도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도시를 바라보던 그는 걸음을 옮겼다. 사무실로 돌아가니 히구치와 히로츠가 뭔가를 급히 숨겼다.


"…뭘 하고 있었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쿠타가와 선배!"

"…히구치."


조용히 그녀를 부르자 히구치는 시선을 피한다. 그동안 이런 적은 없었는데, 웬일이지 싶어 조금 더 추궁하려고 했다. 아마 보스의 부름이 없었다면 그랬을 거다. 전화를 받으며 등을 돌리는 뒤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여튼 숨기는 건 정말 못하는 녀석이다.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그렇게 생각하며 통화를 마친 아쿠타가와는 보스를 만나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히구치는 그의 뒤를 바로 따라왔다.


"부름을 받으신 겁니까?"

"…그래."

"이번엔 어떤 임무일까요?"

"…네가 신경 쓸 게 아니다."


그 한마디에 히구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정말 귀찮은 여자다. 딱 잘라버리지 않으면 옆에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재능도, 적성도 아무리 봐도 마피아에는 맞지 않는 인간이다. 그래, 차라리 유치원 선생이라도 하면 모를까. 아쿠타가와는 입을 가리고 가볍게 콜록거리다 보스의 집무실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오, 그래, 들어오게."

"…부르셨습니까."


아쿠타가와는 긴 테이블 너머의 보스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보스는 그를 보다가 빙긋이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곧 요란한 폭죽소리가 들리고 주변이 밝아졌다. 아쿠타가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따라가지 않아 그저 멀뚱히 테이블을 보고만 있었다. 테이블에는 각종 음식이 차려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검은 도마뱀의 일원들이 모여있었다. 남몰래 얘기하고 있던 건 이것이었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보스가 태연하게 자리를 권했다.


"자, 이건 자네를 위한 연회일세. 그 쪽에 앉게."

"……."

"뭐 하고 있나? 어서 앉지않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거부할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는 거부권이 없다. 그 사실을 아쿠타가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보스, 모리 오가이의 선량한 눈빛 뒤에는 그 어느 것보다 무서운 이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에게 맞설 만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하물며 자신은? 이 곳이 아니면 갈 데가 없는 그저 가련한 한 마리의 개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부정하면서까지 그의 호의를 거절할 정도로 배짱이 있지도 않은 인간이었다. 아쿠타가와가 자리에 앉자, 모리가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고? 그러니 즐기게, 제군들."

"예에~!!"


이 사람의 공포를 아는 지 모르는지, 아래 녀석들은 신이 나서 먹고 즐기고 있었다. 하여튼 한심한 족속들. 그러니 평생 위로는 올라가지 못하는 거다. 고개를 가볍게 저은 아쿠타가와는 말없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마음에 들면 좋겠네. 그렇게 말하는 모리에게 그는 상투적으로 맛있다고 말하고는 식사를 이어나갔다. 이렇게 갑작스런 선의와 그 뒤에 도사리는 음험한 기운 사이에서 갈등하는 음식은 도대체 맛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단단한 무언가를 살기 위해 씹어삼킬 뿐이다. 그래,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언젠가 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자신을 다잡으며 아쿠타가와는 아슬아슬한 연회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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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