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스트레이독스]
뱀파이어 AU
망향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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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남아서 그곳 하늘에 뜨고
구름 멀리서 고요히 눈을 감고
보낸뒤에도 남은 서러움
살아도 눈을 감아도 또 너를 묻게하고
자우림, 망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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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마오 영감님이 아주 짜증나게 구는데 말이지."
집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모자와 영대를 벗어던진 란포는 전용 의자에 몸을 푹 묻고 앉아 사탕을 하나 꺼내 물었다. 그리고는 달콤함이 퍼지기 전에 신경질적으로 사탕을 깨물었다. 정확하게 하마오 추기경이 수도원에 왔다 간 이후였다. 그는 그 이후로 묘하게 신경이 거슬리는 발언들을 하며 회의가 있을 때마다 란포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 자리에서 물의를 일으킬 수는 없기에 란포는 태연하게 받아치거나 무시해버리곤 했지만, 신경줄을 살살 긁어오는 기분은 참을 수 없었다. 일부러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사탕을 씹어삼킨 란포는 그대로 사탕막대를 자근자근 물면서 책상을 가만히 두드렸다.
"그 영감님 혼자선 나이를 먹어서 머리가 그렇게 잘 돌아가진 않을거란 말이야? 역시 그 남자인가? 그렇지?"
누군가에게 대답을 바란 말은 아니었다. 그저 란포는 혼자서 정신 나간 사람마냥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마오 에이스케의 옆에 어느날 부터인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그 남자가 하마오가 자신을 번거롭게 만들도록 하고 있음은 틀림이 없었다. 그 전까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노려보기만 하던 사람이 그 남자가 붙은 이후부터 야금야금 제동을 걸어왔다. 둘을 떼어놓아야 했다. 그리고 그건 시간이 빠르면 빠를 수록 편해질 것이다. 빈 종이에 깃펜을 들어서 의미없이 선을 긋던 란포는 펜을 내려놓고는 아까부터 소파에 앉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다자이를 보았다.
"다자이."
"응?"
"다음 회의에는 너도 가자."
"어라, 그래도 괜찮아? 종교재판 이후로 안 데리고 다녔으면서."
"네가 확인해야 할 게 있어."
"뭐, 란포씨의 지시라면야."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는 사탕상자에 손을 집어넣는 란포의 입에 생강쿠키를 물려주었다. 입에 퍼지는 알싸한 생강의 맛에 미간을 찌푸린 란포는 슬쩍 혀로 과자를 밀어내며 거부의사를 보였지만, 다자이는 물러나지 않았다. 결국 억지로 담백하고 알싸한 과자를 다 먹어치운 란포는 등 뒤에 있던 쿠션을 꺼내서 다자이에게 집어던지고는 방으로 연결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평소보다 더 짜증이 나있는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다자이는 가만히 그를 따라 들어가 머리맡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는 이미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 란포를 보았다.
"란포씨?"
"왜."
"왜 이렇게 짜증이 나있어."
"다 들었잖아. 하마오 에이스케."
"뭐, 주된 원인은 알았지만, 그 옆에 누가 붙어있는데?"
"아마도 아츠시가 봤다던 그 뱀파이어겠지. 인상착의가 비슷했어."
"…호오."
"그리고 하마오 영감보다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더라."
이불 속에서 웅얼거리던 란포는 화가 뻗친 듯 고개를 다시 불쑥 내밀며 짜증을 냈다. 다자이는 손을 들어 가만히 그를 토닥여주다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이제 그만 자는게 내일을 위해 좋겠어.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가 란포의 이마를 두어 번 두드리자, 란포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방의 불을 전부 끄고 조금 떨어진 자신의 자리에 놓인 간이 테이블의 램프를 켠 다자이는 다리를 꼬고 앉아 두꺼운 교양서적을 넘기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란포의 말대로라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츄야일 것이다. 며칠 전에 수도원에 방문했던 것도 그 녀석일 것이다. 란포는 일부러 그때 스케줄을 잡아 자신을 대동해 나가버렸지만, 그가 있던 자리에는 희미하나마 좋아하지 않는 냄새가 남아있었다. 그러고보니 쿄카를 보고 갔다고 했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다자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긁적였다.
"이 이상 건드리면 망가질텐데…."
쿄카에게 더이상 손을 쓸 수는 없었다. 생각 외의 곳에서 한 대 맞은 기분에 다자이는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순순히 당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에게 이 빚을 돌려주는 게 효율적일까? 결론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란포가 생각하는 것만큼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저 그가 몸에 익힌 것이라면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과 요령 좋게 상대를 구워삶는 처세술 정도겠지. 그 덕분에 하마오는 겨우 그를 지지대 삼아 주저앉아 있던 늙은 몸을 일으켜 란포에게 삿대질을 해대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지지대가 스스로 늙은이를 떠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다자이는 읽던 책을 덮고는 램프를 끄고 눈을 감은 채 빙긋이 웃었다.
"다음에 만날 때가 기대되는걸, 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