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19. 01:52
[문호스트레이독스]
~과거 날조 스토리~
Schlecht Melody
[나쁜 선율]
#0. 검은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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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그가 그만둔다고 했단 말이지?"
"네. 어떻게 할까요?"
"뭐, 그냥 둬도 상관 없네."
"…알겠습니다."
"그의 후임을 찾는 쪽에 전력을 다하게."
"네, 보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꽤 유용하게 써먹었던 부하 하나가 갑자기 살인을 그만 둔다고 했다. 심경의 변화가 생기는 건 드물지는 않지만 아주 없는 일도 아니므로 그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가지 문제점은, 지금 조직 내에서는 그의 실력에 견줄 만한 상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공백을 메우려면 최소한 그와 비슷하거나, 비슷해질 가능성이 있거나, 그를 뛰어넘는 실력이 있어야 했다. 모리는 턱을 괸 채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바닥에 앉아 스케치북에 낙서를 하고 있는 금발 머리에 붉은 옷을 입은 소녀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고보니 정당한 의뢰비만 입금하면 살인을 해주는 남자가 있다고 했던가? 최근 정보상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했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고, 얼굴도 모른다. 하지만 특정 메시지를 넣어 신문 광고를 올리면 그에게서 연락이 온다고 했다. 모리는 느긋하게 의자에서 일어나 금발 소녀의 곁으로 가서 그녀의 옆에 놓인 크레용을 집어들었다.

"앗, 린타로! 뭐하는 거야!"
"음, 초대장을 쓸까 싶어서 말이야?"
"초대장?"
"응, 파티의 초대장."
"파티?"

소녀의 파란 눈은 가만히 모리를 올려다보았다. 모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종이에 글을 써내려갔다. 그리고는 부하를 하나 불러 신문에 작은 광고를 내게 했다. 광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배견, 검은 신사님. 당신을 만나길 원합니다. 시곗바늘이 360도를 그리기 전에. C2, 220-0012, 1600, ^^] 지극히 짧은 내용의 광고는 다음날 조간신문에 실렸다. 모리는 신문에 실린 광고를 확인하고는 다자이를 호출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자신의 방에 도착한 다자이에게 모리는 미리 잘라둔 신문 광고를 내밀었다. 다자이는 흥미롭게 그것을 쳐다보았다.

"보스, 이것은?"
"초대장이네."
"…초대입니까?"
"가능하면 정중하게 모셔오게."
"…과연, 그렇군요."

신문의 메시지를 본 다자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문 조각을 접어 품에 넣었다. 만약 필요하다면 사람을 더 데려가도 좋네. 그는 조심성이 많기로 소문이 나있으니까 말이야. 모리의 말에 다자이는 빙긋이 웃으며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답하고는 그의 방을 나섰다. 모리는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소녀를 자기 옆에 앉히고는 그녀를 사랑스럽게 쳐다볼 뿐이었다. 모리의 방에서 나온 다자이는 다시 한 번 메모를 살폈다. 최대한 간결하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광고가 조간에 실리고 24시간이 되기 전에 당신을 만나고 싶다. 보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친절하게 장소에 시간까지 지정해서. 다자이는 굳이 이런 일에 간부까지 나서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광고에서 보스가 지정한 장소는 제법 커다란 극장 앞이었다. 관광도시의 커다란 극장이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 그 틈에 누가 섞여들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 틈에 적당히 가벼운 옷차림으로 섞여든 다자이는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3시 59분. 약속한 시간까지 1분이 남은 그때, 다자이는 소름이 돋는 느낌에 눈에 띄지 않게 시선을 옮기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등에 선명하게 닿은 소음기의 느낌에 그는 피식 웃으며 양손을 하늘 위로 들었다. 무기는 없다는 표시에 다자이의 등을 툭 밀어낸 사람은 그에게서 두어 걸음 떨어져 그를 쳐다보았다. 상당히 독특한 차림이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검정 일색. 그래서 검은 신사라고 부르는 건가? 다자이는 그를 가만히 훑어보다 입을 열었다.

"자네가 검은 신사인가?"
"…응."
"우리 보스가 자네를 만나길 원하네."
"그렇다면 직접 오라고 해."
"호오? 그건 제법 배짱이 두둑한 제안인데?"
"내가 너희들 본거지로 들어가서 살아온다는 보장이 없거든."
"그냥 의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않나?"
"아니, 너희 보스는 의뢰를 한 게 아니야."

거기까지 꿰뚫고 있단 말인가? 검은 신사는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자였다. 아무래도 그는 이 메시지의 뒤에 숨겨진 모리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낸 것 같았다.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회유에서 협박으로 태도를 바꿨다.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 부드럽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 지금 여기서 거절하고 돌아가면 자네도 힘들어질거야. 그렇게 말하며 짙은 미소를 띤 다자이를 보던 검은 신사는 순식간에 소음기와 총을 분리해 품에 총을 넣고, 가방에 소음기를 넣고는 그에게 앞장을 서라는 턱짓을 했다. 다자이는 내심 그의 얼굴이 궁금했으나, 다자이가 서있는 위치에서는 빛이 시야를 방해하는 데다 그가 쓰고 있는 검은 캡과 후드가 그의 눈을 거의 가리고 있어 식별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턱선과 입 정도였다. 남에게는 얼굴조차 보이기 싫은 건지, 그는 빛이 들어오는 각도마저 정확하게 계산을 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조심성이 많다더니, 그냥 뜬소문은 아닌 모양이었다.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포트마피아의 본부 건물로 향했다. 검은 신사는 그 뒤를 그림자처럼 조용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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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