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19. 17:27
[문호스트레이독스]
~과거 날조 스토리~
Schlecht Melody
[나쁜 선율]
#1. 협상

------------------------------

포트마피아 본부 빌딩의 최상층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죽은 듯이 조용했다. 검은 신사도, 다자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정장의 사내들도 다자이의 모습을 보고는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최상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다자이는 커다란 나무 문을 두어 번 두드리고 문을 열었다. 포트마피아의 보스, 모리 오가이는 어두운 방 안에서 어스름한 노란 조명만을 켜둔 채 두 사람을 맞았다. 검은 신사가 다자이의 뒤를 따라 들어오자, 칼같이 문이 닫혔다. 하지만 그는 동요하는 모습 없이 다자이의 조금 뒤에 서서 모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모리는 웃으면서 턱을 괸 채 손을 내저었다.

"이야,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괜찮네. 어서 오게, 검은 신사님."
"…마피아가 내게 무슨 용건이지?"
"음, 그런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모양이지?"
"단순한 의뢰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굉장한 실력이군."

모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낮게 웃고는 말을 돌릴 필요가 없어졌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마침 얼마 전에 우리 쪽 청부업자 하나가 일을 그만 두겠다고 선언해서 말이야. 실력이 좋은 사람을 찾고 있던 와중에 신사님의 소문을 들었거든. 그래서, 그 실력을 사고 싶은데. 모리의 제안에 검은 신사는 입술을 비틀며 생각에 잠겼다. 암살 의뢰라면 돈만 준다면 충분히 할텐데. 어차피 입을 연 적은 없고, 의뢰에 실패한 적도 없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저 남자는 자신의 실력을 사겠다고 했다. 나를 전속으로 만들어서 이들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가? 아무리 뒤에서 판을 움직이는 자들이라고는 해도 고작 청부업자 하나를 사들일 필요가 있나? 단순한 입막음용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나를 사는 이유는―. 그렇군, 그런 얘기인가. 생각을 마치고 작게 한숨을 내쉰 검은 신사는 조건을 듣겠다며 자리에 앉았다. 모리의 허가도 없이 멋대로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자 당황한 부하들이 총을 들이댔지만, 그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입을 열었다.

"나와 협상을 하려면 이 자리에 너무 많은 목격자는 필요없지 않겠어?"
"…하하,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자네들은 나가있게."
"…알겠습니다."

모리의 손짓으로 부하들이 물러가자 검은 신사는 의자에 몸을 더 깊이 묻었다. 모리는 깍지를 낀 손 위에 턱을 괴고 가만히 그를 보다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이마께를 톡톡 두드렸다. 그의 태도에 검은 신사는 꽉 조이고 있던 끈을 풀고 후드를 벗었다. 그가 쓰고 있던 모자를 살짝 들자,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그늘에 가려져 있던 녹색 눈이 드러났다. 그를 가만히 훑어보던 모리는 흐음, 하고 낮은 숨소리를 내고는 다자이가 내민 차트를 받아서 가만히 넘겼다.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종이가 침묵을 가르는 소리만이 몇 분 동안 공간을 채웠다. 얼마 안 가 차트를 전부 살핀 모리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피아노치듯 가볍게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굉장한 성공률이군. 실패한 적이 없다니."
"머리가 좋아서."
"과연. 자네 정도의 머리라면 정계나 재계에 진출했어도 됐을 것 같은데."
"누구와 살갑게 지내는 건 무리거든."
"하하, 그렇군. 좋아, 자네의 실력을 지금 보수의 두 배에 사겠네."
"조건은?"
"전속 계약 이후에는 다른 의뢰를 받지 말 것."
"그리고?"
"자네의 의식주는 우리가 전부 책임지지. 이 정도면 나쁜 조건은 아니지 않나?"
"검은 신사를 독점했다는 걸로 위협을 하려면 좀 더 써도 될텐데."
"하하, 수배범이라는 폭탄을 안고 가는 리스크도 생각을 해 줘야지."
"농담도 잘 하네. 당신들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잖아, 수배 전단이라는 건."
"이대로 익명으로 군경에게 자네의 소재를 제보할 수도 있는데 말이지?"
"하지 않겠지."

단언하는 검은 신사를 보며 모리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미 거기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는 도대체 어디까지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모리는 옆에 서있는 다자이를 흘끗 쳐다보았다. 다자이도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는 인재였다. 실제로 그가 포트마피아에 들어온 뒤로 마피아에 안겨준 부는 지난 날의 성과를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 그 실적을 높이 사서 간부자리에 앉혀둔 것이지만, 눈 앞에 있는 남자는 그 다자이보다도 더 놀라운 머리를 갖고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목적따위는 금방 눈치챘으며,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역으로 협상을 걸어왔다. 이 정도의 인재가 재야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나 하고 있다니. 정부는 역시 바보라니까. 이 사람을 이용하면 지금보다도 더 많은 발전을 거둘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턱을 문지르던 모리는 다자이를 통해 계약서를 전달했다. 검은 신사는 다리를 풀지 않은 채 다자이가 내려놓은 계약서를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한 얘기는 전부 그 계약서에 실려있네."
"아직 말하지 않은 게 있군."
"이런, 그것까지 눈치 챈 건가."
"머리는 좋으니까."
"하하, 정말 자네를 속이려면 고도의 전술이 필요하겠네."
"무리야. 어떻게 머리를 굴려도 전부 알아낼테니까."
"그런가?"
"그렇지. 예를 들면."

잠시 말을 멈춘 검은 신사는 품 안에서 총을 꺼내 모리의 이마를 겨눴다. 그와 동시에 다자이가 검은 신사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댔다. 검은 신사는 녹색의 눈으로 모리를 쳐다보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다시 품에 총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처럼 당신이 거절하면 나를 죽이라고 이 남자에게 총을 준 것도 전부 예상 범위 내거든. 그 말에 놀란 쪽은 다자이였다. 모리에게 총을 건네받기는 했지만, 그건 이 남자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였고, 자신은 원래 무기를 들고 다니는 버릇이 없다. 이 남자는 여기까지 오는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에 그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말인가? 다자이가 총을 거두자마자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검은 신사를 본 모리는 박수를 치면서 유쾌한 웃음을 웃었다.

"하하하하! 정말 대단해!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군!"
"뭐, 당신들의 조건이 나쁘지 않으니까 받아들이기로 하지."
"좋아, 잘 생각했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가 계약관계라는 건 잊지 마."
"잊지 않겠네. 그러니 자네도 계약한 만큼만 간섭해주길 바라네."
"댁들의 내부사정은 크게 관심 없으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럼 빠른 시일 내로 살 곳을 마련해주지. 다자이군, 그를 데려다주게."
"알겠습니다."

검은 신사가 서명한 계약서를 모리에게 건네면서 다자이는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알았다. 익명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계약. 그렇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 모리는 계약서를 받아들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배웅했다. 다자이와 검은 신사가 나란히 방을 나가자, 모리는 심통이 나 있는 금발의 소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파티라고 하더니, 아무 것도 없잖아. 이런 파티가 어디있어! 그렇게 말하고 볼을 부풀리는 소녀의 기분을 달래기 위해 각종 케이크를 준비하며 모리는 그의 이름을 곱씹었다. 에도가와 란포. 비상한 머리를 가진 사내. 그를 얼마나 더 써먹을 수 있을지, 어디까지 써먹을 수 있을지가 기대되는 만남이었다. 검은 신사가 포트마피아의 전속 업자가 되었다고 하면 세상은 얼마나 긴장할까. 그 상상만으로도 이미 자신이 원하는 세계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기분이 드는 모리였다.


'문호스트레이독스 > Schlecht Melody' 카테고리의 다른 글

Schlecht Melody #5. 답지 않은  (0) 2017.03.15
Schlecht Melody #4. 오다 사쿠  (0) 2016.12.11
Schlecht Melody #3. 환대  (0) 2016.11.22
Schlecht Melody #2. 마중  (0) 2016.11.20
Schlecht Melody #0. 검은 신사  (0) 2016.11.19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