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가득했던 길을 빠져나와 다자이가 사는 골목에 도착한 란포는 빨리 내리라며 다자이를 툭툭 밀었다. 다자이는 네, 네. 하고 대답하고는 안전벨트를 풀다가 란포를 가만히 끌어당겨 손으로 눈을 덮고는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삐익-. 당황해서 손이 미끄러진 란포가 누른 클랙션의 소리가 마음의 소리를 대신 전하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다자이가 란포에게서 떨어져 눈에서 손을 뗄 때까지 계속 됐다. 다자이가 손을 떼자 란포는 입술을 꾹 다물고 말없이 주먹을 들어 그를 때렸다. 다자이는 힘없이 웃으면서 손을 펴서 가만히 그의 주먹을 받아냈다.
"그렇게 제가 싫으세요?"
"시끄러워."
"...적어도 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는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선배."
"...다른 줄 찾으랬잖아."
"그렇다고 여태껏 내친 적도 없으면서 말이죠."
"...빨리 들어가기나 해!"
"알았어요. 내일 봬요."
"...그래."
문을 열고 나가서도 한참을 자기를 쳐다보던 다자이에게 란포는 춥다고 핀잔을 주며 문을 닫으라고 했다. 잘 자요. 다자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닫고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란포는 다자이가 사라지고도 한참을 핸들에 머리를 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이 멎을 뻔했다. 가벼운 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자이와는 5년 전에 드라마를 하면서 처음 만났다. 다들 그가 싹싹하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지만 란포의 평가는 단 하나였다. '배우로는 성공하겠네.' 감독이 물었을 때, 란포는 정확하게 그렇게 답했고 그 자리에는 다자이가 있었다. 그 뒤로 다자이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란포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인연인지 악연인지, 이번이 세 작품째 함께 하는 것이었고 그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란포는 그걸 알기에 그를 전보다 강하게 내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솔직히, 더 이상은 그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생각대로는 되지 않는 법이다. 두 사람은 어쨌든 같은 작품을 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시간은 가고 해가 밝아, 란포가 썩 내키지 않아서 싸우기까지 했던 그 장면을 촬영할 시간이 왔다. 대사를 외우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감정을 어떻게 잡아서 표현할 것인가였다. 연애만이 사랑의 형태는 아니라고 했던 후쿠자와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어제의 입맞춤은 일부러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으니까. 사랑했습니다. 당신을. 그 말을 혼자 한참 웅얼거리던 란포는 큐 사인에 심호흡을 하고 카메라를 보며 연기에 들어갔다.
"당신을...사랑했습니다."
현장은 그대로 침묵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란포가 지은 적이 없던 표정을 본 사람들은 다시 정신을 차린 감독이 컷사인을 내릴 때까지 화면을, 혹은 란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란포는 살짝 당기는 볼을 제 손으로 누르며 자리로 쪼르르 돌아가 앉았다. 얼마 안 가 방영된 그 장면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아역으로 데뷔해 12년이라는 연기 세월동안 그가 단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던 그 표정은 온갖 기사와 캡처화면 등을 통해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전보다 작품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차분한 사람은 란포 본인이었고, 가장 불안해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다자이였다.
란포의 연기가 화제가 된 며칠 뒤, 한참 늦은 시간에 촬영을 끝내고 집에 가기 위해 차에 오르던 란포를 잡은 다자이는 그를 그대로 끌고 사람이 잘 오지 않는 구 소품실로 끌고 갔다. 이미 지친 상태라 란포는 있는대로 짜증을 냈지만 다자이는 전혀 듣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래? 벽에 란포를 몰아붙인 채 그가 하는 말을 들은 다자이는 그대로 몸을 조금 낮춰 시선을 맞추고 물었다. 당신은 누굴 보고 있었죠? 다자이의 말에 란포는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다자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 란포의 턱을 꾹 잡아 시선을 고정시키며 다시 말했다.
"그 장면, 사랑을 고백하던 그 때, 선배는 누굴 보고 있었냐고 물었어요."
"저기, 아프거든? 손에 힘 좀 빼봐."
"대답부터 해줘요. 카메라 감독도 아니고, 팬도 아니었어. 당신의 시선은 어딜 향해있던 거예요?"
"..네가 신경쓸 것 없잖아."
"신경쓰이니까 이러잖아요. 역시 후쿠자와 선생님이에요?"
"........"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네."
선배가 연기 막히면 가장 먼저 조언을 받으러 가는 거, 그분인거 알아요. 선배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가장 의지하고 있는게 그 분이라는 걸 모를 줄 알았어요? 이번에도 그랬겠지. 듣자하니 데뷔할 때 같이 작품을 하면서부터 많이 챙겨주셨다면서요. 그래서 그렇게 애틋했어요? 정말 사랑에 빠진 줄 알았잖아. 착각도 적당히 시켜야지. 다자이가 쏟아내는 말을 들으면서 란포는 미간을 찌푸렸다. 질투, 그렇지. 이런 감정을 질투라고 하는 거겠지. 다자이는 지금 질투를 하고 있는 건가? 후쿠자와 선배에게? 왜, 아니, 왜라는 질문은 어리석었다. 그렇게 나를 좋아한다고? 누군가에게 질투를 할 정도로? 란포는 가만히 그의 눈을 마주보다가 살짝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고 다시 눈을 떴다.
"다자이."
"왜요?"
"...왜 그렇게까지 나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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