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4. 23:06

[문호스트레이독스]


츄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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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가라앉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선은 언제나 빛을 쫓고 있지만 내게 있어 빛은 사실 없어진 지 오래다. 그래, 차라리 이 곳이 심해라면 얼마나 좋을까. 담배를 빼어물고 불을 붙이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스읍, 느긋하게 빨아들인 연기가 익숙하게 폐 속을 가득 채워간다. 후우, 연기를 길게 뱉어내며 가늘게 눈을 뜬다. 습관적이지만 이미 고칠 수는 없다. 그럴 생각도 없다. 씁쓸한 연기가 입안을 채우니 괜히 허한 기분에 슬쩍 혀를 내어 공기를 머금고 입술을 훑어본다. 퉤, 하고 있지도 않은 공기를 내보내듯 허무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차라리 네 놈이 있었다면 핀잔이라도 주련만.


"아-아,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해버렸네."


일부러 큰 소리를 내어 떠오르는 네 모습을 지운다. 그래, 이미 시간은 흘러버렸다. 그 누구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겠지.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게 나다. 후회는 없다. 모든 것은 내가 원해서 한 일이니까. 조금 상념에 잠긴 사이에 손가락 끝에 불이 닿았다. 아, 뜨거워. 재털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가만히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홧홧한 느낌이 꼭 네 놈이 놀려먹은 뒤의 목덜미 같았다. 생각하니 또 화가 나지만 화풀이를 할 네 놈이 없다.


"아, 진짜 최악. 정말 최악이다."


입버릇처럼 네놈이 했던 말을 투덜거린다. 무엇이 최악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지워지지 않는 네놈이 최악이라고 하겠다. 함께 있던 동안 별로 유쾌했던 기억도 없건만 너는 이리도 지독하게 남아 사람을 괴롭힌단 말이냐. 죽여도 죽지 않을 놈이 미련은 질식할 만큼 잘도 남기고 떠났구나. 다음에 만나면 이 지독한 그리움까지 담아 널 내 손으로 죽여주마고 혀를 차며 다짐한다. 빌어먹을.


"오늘은 일찍 자긴 글렀네."


차라리 어디서 한 판 날뛸 일이라도 생긴다면 좋겠다. 최악의 기분으로 오늘도 술이라도 마실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데, 기가 막히게도 연락이 온다. 아아, 감사합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해주셔서. 전화를 끊고서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는 말을 중얼거리며 머리를 정리하곤 언제나처럼 모자를 가볍게 얹었다. 그리곤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옷걸이에 던져두었던 코트를 들고 문을 열었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비가 와서 조금 젖은 공기마저도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럼, 가볼까."


오늘도 나는 네 놈을 잊기 위해 일을 한다.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을.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