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4. 00:28

[문호스트레이독스]


환상여우기담

(幻狀狐記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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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포가 오고 나서 탐정사의 이름은 전보다 조금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지만 언제나 란포가 현장에서 보여주는 추리-다른 사람들 눈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는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그 날도 란포는 복잡한 사건을 하나 해결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앉아 뒤로 도는 모습이 제법 지쳐서 낮잠이라도 자려나 싶어서 그는 두고 할 일을 하던 때였다. 조금 뒤에 돌아온 다자이가 쿠니키다에게 물었다.


"쿠니키다군, 란포씨는?"

"응? 자리에 있을텐데?"

"…자네와 함께 돌아온 것 맞나?"

"분명히 자리에 앉아서 의자를 돌리는 것까지 봤다고."


의심하는 다자이의 눈초리에 살짝 울컥한 쿠니키다는 고개를 들어 란포의 자리를 보았다. 분명히 아까까진 의자 너머로 살짝이라도 보였던 모자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새 어디로 간 거지 싶어 당황한 쿠니키다는 벌떡 일어나 그의 의자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전혀 상상해본 적도 없는 상황에 할 말을 잃었다. 란포가 늘 쓰고 있던 모자를 뒤집어 쓰고 있는 건, 커다란 한 쌍의 귀를 가지고 있고 탐스러운 세 개의 꼬리를 가진 한 마리 여우였다.


"…여우?"

"…으음, 뭐야…시끄럽게. 한참 낮잠 자던 중이었는데."


쿠니키다는 눈 앞에서 일어난 일에 기함을 토했고, 다자이의 눈은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여우의 목소리는 분명히 란포의 목소리였다. 믿기지 않지만 이 여우는 란포가 맞는 것 같았다. 란포는 시선이 달라진 느낌에 그의 녹색 눈을 크게 뜨고 깜박이다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는 곧 앞발을 들어 눈을 가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힘이 풀렸을 줄이야…."

"저, 그러니까…. 란포씨가 맞습…니까?"

"응."


쿠니키다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한 란포는 가만히 주저앉아 귀 뒤를 긁고는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하품을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곧 꼬리를 만지작 거리는 손길에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꼬리를 움직여 자신을 만지는 손을 쳐낸 란포는 그대로 몸을 돌려 꼬리로 얼굴을 때리고는 쿠니키다의 어깨에 올라탔다. 다자이는 란포에게 얻어맞은 얼굴을 감싸고는 쪼그려 앉았고, 쿠니키다는 제 어깨에 정착해버린 란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응? 뭔가 문제라도 있어?"

"아니, 그…음. 그래서 보이신건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아…그거 말이지? 응, 그런거야."


그렇게 말한 란포는 가만히 쿠니키다의 볼에 머리를 부볐다. 그리고는 다자이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고 남의 꼬리를 함부로 만지면 안된다며 투덜거렸지만, 다자이의 시선은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움직이고 있는 그의 꼬리를 향해 있었다. 란포는 뭐라고 말하려다 말고는 책상 위로 내려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궁금한 건 그게 다야?"

"……네?"

"뭐…이미 들킨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안 들키겠다는 약속이었지만."

"사장님과의 약속입니까?"

"응, 그렇지 뭐."


제 발바닥을 습관처럼 낼름 핥은 란포는 느른하게 기지개를 켜고 다시 몸을 동글게 말았다. 사실 묻고 싶은 건 산더미만큼 쌓여있었지만 무엇부터 물어야 할 지 몰랐다. 쿠니키다가 어물거리는 사이, 란포는 귀를 쫑긋하게 세우더니 급하게 책상 아래로 내려갔다.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싶어 그를 쳐다보는데, 곧 문이 열리고 사장님이 들어왔다. 다자이와 쿠니키다가 사장님을 보고 인사를 하자, 란포도 슬쩍 책상 밑에서 기어나왔다. 란포를 흘끗 본 사장님은 조용히 한 마디를 더했다.


"란포."

"응?"

"…귀, 보인다."

"…!!"

"오늘은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지?"

"뭐어…그랬지."

"애썼다."


덤덤한 사장님의 말에 란포는 활짝 웃었다. 그와 동시에 미처 가리지 못한 귀가 가볍게 쫑긋거렸다. 모자는 그 귀를 감추기 위해 쓰고 있던건가. 쿠니키다는 의자에 놓여있는 란포의 커다란 모자와 그의 귀를 번갈아 보았다. 란포는 그 시선을 느꼈는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퍼뜩 떠올랐다는 듯 자기 귀를 만지고는 아쉬운 듯 투덜거렸다.


"이 귀 말이지? 아직 한참 부족한 지 완전히 감출 수가 없더라고."

"…인간,으로 보이고 싶으십니까?"

"설마. 인간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저 지금은 은혜를 갚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인간들 틈에서 일을 하려면 인간처럼 보이는 게 가장 좋으니까. 여우가 말을 하면 그 순간부터 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서 어디 멀리 가버리게 되는게 아닐까? 그렇게 말하며 란포는 처음 온 그날처럼 의자에 앉아 의자를 빙그르르 돌렸다. 란포의 말은 어느 하나 틀린 구석이 없었기에 쿠니키다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그 날부터, 새삼스럽게도 여우와의 동업이 시작되었다.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