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2. 01:27

[문호스트레이독스] 쿠니키다 돗포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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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키다 돗포의 아침은 규칙적이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일정한 시간 동안 샤워를 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내에 단장을 마치고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 단장의 마지막은 언제나 안경이었다. 시력이 썩 심각하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안경을 벗어도 어느 정도 거리까지는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의 시야는 언제나 '가정'의 상황처럼 흐릿하기만 할 뿐이었다. 쿠니키다 돗포는 자신의 안경을 좋아한다. 안경은 시야를 명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이상을 바라는 그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물건이었다.


자신의 미래 계획이 전부 들어있는 수첩을 품에 넣고 쿠니키다는 집을 나섰다. 아직 찬 새벽의 공기가 제법 좋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길을 걸으면 생각이 좀 더 명확하게 정리가 된다. 코를 간질이는 습한 공기가 이제 이 시기도 곧 끝날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사무실의 문 앞에 도착하는 것은 정확히 8시. 문을 여는 시간에 오차는 필요 없다. 오늘도 사무실이 난장판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예정된 범위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 좋은 아침."


아직까진 별 일이 없는 사무실의 모습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 사람이 늘어날 수록 어수선해지는 날이 많았으니까. 돗포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전원을 켰다. 보고서를 써내려 가는 건 막힘이 없었다. 여유롭게 이어지는 타자소리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이 여유가 얼마나 갈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계획대로였다.


"야-옹."

"…뭐냐, 이건."

"고양이에요~. 귀엽지?"


눈 앞에 불쑥 들이밀어진 분홍색 젤리에 쿠니키다는 인상을 썼다. 작은 발이 안경을 꾹꾹 누른다. 물론 고양이 자신의 의지는 아니다. 뒤에서 붙잡고 있는 건 다자이였으니까. 저 인간을 그냥 확. 쿠니키다는 손을 뻗어 다자이의 얼굴을 최대한 자신에게서 멀리 떼어내고 안경을 벗었다. 젠장, 자국이 남았잖아. 어차피 닦으면 사라질 것이었지만, 작은 생물의 발자국은 안경에 확실하게 남아버렸다. 얼굴이 눌린 채 무어라 웅얼거리는 다자이를 지긋이 노려보다가 그를 밀어낸 돗포는 안경을 닦으며 말했다.


"그거, 당장 주워온 자리에 돌려놔."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5. 21. 00:43

[문호스트레이독스] 다자이 오사무의 '그것'


 ※ 다소 날조가 있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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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의 공기는 언제나 습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뜨뜻미지근한 바람을 느끼며 목과 팔에 둘둘 감았던 붕대를 끊었다. 그리고 새로운 녀석을 손에 쥐고 다자이 오사무는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안에는 창백한 혈색의 남자가 있었다. 이어서 약간 구불구불한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에, 그것보단 조금 밝은 색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오래된 상처들이 보였다. 거친 밧줄에 긁혀 이미 딱지가 앉은 낡은 상처를 감추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더라? 새 붕대로 천천히 목을 감아나가면서 다자이는 새삼 옛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언제부터 죽기로 결심했는 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애석하게도 자살시도를 계속하는 것은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삶을 계속 이어가게 했다. 가끔 이대로 붕대로 목을 졸라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부러지지 않는 목이 죄어오는 것은 그렇게 달갑지 않았다. 손가락을 천천히 옮겨 목에 감긴 붕대를 마무리 하고는 손으로 옮겨갔다. 손은 혼자서 하기에는 조금 버겁지만 이미 익숙해진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붕대낭비장치 녀석아!!]


언젠가 쿠니키다가 외쳤던 말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새로운 붕대의 비닐을 벗겨내며 다자이는 피식 웃었다. 그때는 다소 과장되게 받아치긴 했지만 새삼 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풀어낸 붕대만 얼추 세 뭉치, 새로 묶는 붕대가 세 뭉치. 합이 여섯 뭉치. 가끔 전투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몇 개는 더 썼던 것도 같다. 천천히 엄지손가락을 지나 꼼꼼히 팔꿈치까지 붕대를 둘렀다. 가만히 움직임을 체크하고는 반대쪽도 감아나갔다. 새로운 린넨의 촉감이 가만히 팔에 감겼다.


"음, 이 정도면 됐어. 좋아, 그럼 오늘도 활기차게 자살해볼까?"


바닥에 늘어있는 붕대를 모아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옷을 하나하나 걸쳤다. 붕대에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기분이 좋다. 이럴 때 만큼은 이 도시의 습한 공기도 기분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여가며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5. 20. 01:36

문호스트레이독스 : 어느 오후의 의미없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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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세상이 한 번쯤 뒤집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음악이 나오지 않는 헤드폰을 목에 걸고 있던 다자이가 천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타닥, 타닥. 헤드폰과 귀의 비어버린 틈새로 규칙적인 타자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내는 사람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쿠니키다 돗포. 사소한 것까지 철저하게 계획적인 자신의 파트너. 물론, 조금 쓸데없이 열을 내는 경향은 있다. 다자이는 그의 '몰두'를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몰두 중인 그의 파트너에게 다시 한 번 대답을 요구했다.


"어떻게 생각해, 쿠니키다 군?"

"어엉?"


집중하느라 한 박자 늦게 나온 반문에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곤 곧 속사포로 말을 내뱉는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다니, 우리 사이가 그 정도 밖에 안 됐어? 그렇게 말하며 노트북 너머로 쿠니키다를 바라보자 짜증이 섞인 한숨이 들리고 시선이 그를 잠시 향했다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탁, 타닥. 신경질적인 타자소리가 잠시 정적을 채웠다. 그 끝에 나온 말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저번 사건의 보고서나 쓰지 그래."

"…네이, 네이."


한 치의 예상도 빗나가지 않는 완벽함이었다. 언제나 예정이 빗나간다고 투덜거리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남자가 할 일을 하지 못한 적은 없다. 어떻게든 끝내고 만다. 예외가 있으면 그 예외를 넘어서 해낸다. 완벽에 대한 집착도 이 정도면 병이었다. 뭐,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깨끗한 자살을 신조로 삼는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조금 늘어진 대답에 바로 이어 날아오는 날카로운 시선에 다자이는 자세를 고쳐앉고 노트북을 열었다. 하지만 딱히 의욕 없는 사람이 화면에 쓰는 것이라 곤 아까 내뱉었던 시답잖은 문장이었다.


[이 세상이 한 번쯤 뒤집어진다면 어떨까.]


산 사람은 죽고, 죽은 사람이 산다 수준의 천지개벽까진 아니어도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돌아버린다면 그로 인한 자신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따위의 의미없는 생각이 시간과 함께 다자이의 머릿 속을 지나갔다. 조금 뒤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란포가 자신의 문장을 발견할 때 까지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호오, 다자이. 갑자기 감상에 빠지기라도 한 거야?"

"아, 란포씨."


어떻게 생각해요? 말은 하지 않은 채 다자이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란포는 흠? 하고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는 이내 빈 책상에 걸터올라 라무네에서 빼낸 구슬에 햇빛을 투과시키며 말을 덧붙였다.


"그런 가정은 나한테는 별로 의미가 없는걸?"

"하하, 그런가요?'

"탐정이 하는 일은 진상을 밝히는 거잖아?"

"그렇죠."


그러니 나한테는 의미 없는 가정이라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란포는 느긋하게 구슬 감상에 빠졌다. 란포의 말을 듣고 가만히 화면을 보던 다자이는 손가락을 들어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빠른 속도로 한 자씩 사라지는 노트북의 화면을 보고 있자니 쓸데없이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 처음부터 의미 없는 가정이었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니까. 하얗게 비워진 화면을 보던 다자이는 그대로 손을 들어 노트북을 덮었다. 참, 나른하고 조용한 오후다.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5. 19. 00:20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5. 18. 01:12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