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6. 00:15
문호스트레이독스

아야츠지 유키토 & 에도가와 란포

공허한 살의의 윤무곡(輪舞曲)

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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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옷자락이 하늘을 덮는다.
기원의 춤은 북소리의 장단에 맞춰 시작된다.
신에게 기도하는 이는 사뿐히 한 발짝씩 걸음을 옮기며
하늘을 향해 춤을 보낸다. 
하늘을 덮은 옷이 홀홀히 떨어진다.
인간의 기원도 땅에 떨어진다.
옷자락이 흩어진다.
하늘로 보낸 기원은 복과 함께 하늘에 흩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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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가을로 넘어가기 시작하는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짜는 확실하지 않다. 으레 이맘 때가 그렇듯 폭풍이 몰아치고, 비가 내린 다음 날이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은 츠지무라는 간단한 대답만을 했다. 통화가 끝나고 츠지무라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아야츠지를 돌아보았다. 가만히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아야츠지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의뢰인가?"
"네."

고개를 끄덕인 츠지무라는 사건의 개요를 설명했다. 얼마 전 폭우로 다리가 잠겼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무녀가 죽었는데, 자살이라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사당의 서까래에 목을 달고 죽었다는데 그 위치가 보통 사람의 키보다 높아서 아무나 닿지 못하는 곳이라고 한다.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도 사체를 내릴 방도가 없어 이능력자의 소행은 아닌가 싶어 특무과에 남몰래 연락이 닿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아야츠지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 하여튼 체면은 되게 차린다니까. 뭐, 그럼 일할 시간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야츠지는 읽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츠지무라를 보았다. 차광안경 너머로 자기를 쳐다보는 시선에 츠지무라는 살짝 움찔하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아야츠지는 한숨을 내쉬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츠지무라군."
"네?"
"자네덕분에 한참 집중하고 있었는데 흥미가 깨졌네."
"그래서요?"
"뭐, 특무과의 지시니 일은 해야겠지만 일단 커피를 좀 타주게. 집중력을 다시 높일 필요가 있으니까."

아야츠지의 말에 츠지무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내리고는 설탕 두 개를 집어넣고 가만히 잔을 휘젓다가 퍼뜩 자신은 메이드가 아니라며 그를 다그쳤다. 아야츠지는 그런 그녀를 곁눈질로 보고는 참 빨리도 눈치챈다고 말하며 그녀가 탄 커피를 가볍게 마실 뿐이었다. 따뜻하게 입안에 감도는 설탕과 카페인이 조금 정신을 들게 했다. 느긋하게 비운 잔을 그녀에게 건네고는 그는 먼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츠지무라는 여유로운 그의 행동에 당황하며 급히 그를 따라 나섰다. 이미 그녀의 차에 올라 무심하게 창밖을 보고 있는 아야츠지를 보며 한숨을 내쉰 츠지무라는 운전석에 앉아 벨트를 매고 시동을 걸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곳은 교토의 시골 마을이래요."
"교토? 제법 먼 곳에서 일어났군."
"네. 그 마을에 하나 뿐인 무녀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차는 빠르게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츠지무라는 이어서 경찰의 의견을 설명했다. 무녀는 딱히 원한을 산 적도 없고, 마을 사람들 누구에게나 친절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도 전부 그녀의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아무 문제가 없던 평화로운 마을에서 갑자기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며 츠지무라는 유감이라는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리어뷰 미러로 아야츠지를 쳐다보며 혹시 외부인의 소행은 아닐까, 하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아야츠지는 그런 그녀를 무심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자네는 여전히 발전이 없군."
"…그, 그냥 그런 건 아닐까 하고!"
"그 점이 발전이 없다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아야츠지는 조용히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 지긋지긋한 녀석이 어느새 옆에 앉아있었다. 요술사 교고쿠.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은 돌아보지도 않고 창밖을 쳐다보는 아야츠지의 모습을 보고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이번에 자네를 기다리는 사건은 보기 드문 사건이 될 걸세.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아야츠지는 작게 혀를 차고는 그의 말을 애써 무시했다. 자신을 무시하는 모습에 바짝 그에게 다가온 교고쿠는 손을 뻗어 창문에 무한(∞) 기호를 그리며 말했다.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자네를 괴롭힐 것이네. 아야츠지는 한숨을 내쉬고 교고쿠를 향해 짜증이 섞인 손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진 교고쿠는 다음 순간 창 밖에서 아야츠지에게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날 부르게. 자네의 요청이라면 기꺼이 응하지."
"…꺼져라."

쿵. 아야츠지는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두드렸다. 교고쿠는 그 자리에서 없어졌다. 갑작스런 아야츠지의 행동에 운전을 하던 츠지무라가 리어뷰미러로 다시 한 번 그를 쳐다보며 괜찮냐고 묻는다. 아야츠지는 신경쓰지 말라며 고개를 내젓고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에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차는 교토부의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시골길을 지나 한바탕 태풍이 쓸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콘크리트 다리를 지난 차는 폴리스라인이 둘러져있는 사당에 도착했다.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