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스트레이독스
아야츠지 유키토 & 에도가와 란포
공허한 살의의 윤무곡(輪舞曲)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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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안에 들어선 란포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옆에서 츠지무라가 하는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무엇이 불만인지 미간을 좁힌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츠지무라는 바로 그를 쫓아 나갔지만, 아야츠지는 그저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츠지무라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니, 물론 스스로 명탐정이라고 칭하고 있는 저 사람이 기분이 좋지는 않은 상태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본인이 입으로 거듭 말한 것처럼 다른 탐정이 내던진 사건을 의뢰한 것이기도 했기에 그 점은 나중에라도 충분히 사과할 생각이었다. 그 전에 이 사건은 해결해주어야 했다. 아야츠지 선생님이 던져버린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란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저…."
"조용히."
"네?"
"츠지무라군, 자네는 말이 너무 많아."
그 사실을 알고는 있나? 그렇게 말하며 란포는 삐딱하게 서서 잠시 그녀를 쳐다보았다. 츠지무라는 할 말을 잃은 채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니, 물론, 아야츠지 선생님한테도 시끄럽다는 얘기를 아주 들은 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눈 앞에서 비슷한 말투로 비슷한 취급을 받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츠지무라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것을 본 란포는 한숨을 내쉬고는 사당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볼을 긁적이다가 쪼그려 앉아있는 츠지무라를 불렀다. 저기, 츠지무라군. 이거 급한 사건인가? 그 말에 츠지무라는 다시 한 번 눈을 깜박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급하지 않으면 부르러 가지도 않았을 거라고요. 이 분은 또 무슨 말을 하는 거람? 표정에 명백히 드러난 츠지무라의 불만을 보던 란포는 입술을 비죽이 내밀고는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거든."
"시간이요?"
"하루."
"…어, 하지만 란포씨의 이능력은…."
"그래, 내 이능력은 초추리. 어떤 사건이든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지."
"그럼, 뭐가 문제인가요? 지금 당장 해결하시면 되잖아요!"
"사람에게는 사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지."
사정? 무슨 사정이요? 츠지무라는 목 끝까지 튀어나온 불만을 애써 누르면서 그러다 범인이 도망가면 어쩌냐는 말로 사건 해결을 독촉했다. 하지만 그 시도도 조금 뒤에 유유자적하게 걸어나온 아야츠지의 말에 완벽하게 막혔다. 범인은 도망가지 않을 거네. 아야츠지는 그렇게 말했다. 츠지무라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따져 물으려다 멈칫했다. 범인은 도망가지 않을 거라고? 선생님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아시는 거지? 이미 진상에 도달하셨다는 건가? 그런데 포기 선언을 하셨다고? 아니, 그야 뭐 선생님이 트릭을 밝혀버리면 곤란하니까. 곤란해지기는 하는데…. 주저앉은 채 복잡해지는 머리를 감싸는 츠지무라를 보던 란포는 어깨를 으쓱이곤 그럼 긍정의 의미로 알겠다고 말하고는 우선 잘 곳으로 안내해달라며 그녀를 채근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알았다고요."
"대답은 한 번이면 족하네."
"…으윽."
란포의 말에 앓는 소리를 내고 비틀거리며 일어난 츠지무라는 처연한 눈빛으로 아야츠지와 란포를 한 번 보고는 그들을 료칸으로 안내했다. 이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처럼 사건을 해결할 정도로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츠지무라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뿐이었다. 란포는 료칸의 규모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눈치였지만, 이 마을에는 그 곳을 제외하면 외부인이 묵을 만한 시설이 없었다. 여장이라고 할 것도 없는 간단한 짐을 대충 방에 던져놓은 란포는 느긋하게 료칸의 주인이 준비해 준 요리를 먹고 온천욕을 즐겼다. 츠지무라는 그런 란포의 행동을 보며 입이 바짝 타들어가는 느낌이었지만, 부디 내일은 란포씨가 사건을 해결해 줄 마음이 들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자신에 새삼스럽게 좌절했다. 그런 츠지무라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란포는 느긋하게 방의 장지문을 열어놓고 조금 일찍 떠오른 달을 감상하고 있었다. 조금 뒤에, 노크소리도 없이 문이 열렸지만 란포는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암묵적인 방 주인의 동의에 아야츠지는 성큼성큼 걸어와 낮은 상에 곡차를 올려놓고는 맞은 편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달은 어떤가, 란포군?"
"아직 완벽하지 않네."
"역시 절정에 오르기엔 이른 시간이었나보군."
"뭐, 대화는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그것도 그렇군."
"이능력을 쓰기 전에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이 있었거든."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달을 보고 있던 시선이 그제야 아야츠지에게 향했다. 아야츠지는 차광안경을 손 끝으로 가볍게 건드려 고쳐쓰고는 란포를 마주보았다.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이라. 말해보게, 자네의 추리를 듣고 싶군.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그렇게 말하는 아야츠지를 보던 란포는 미간을 찌푸린 채 결론부터 말했다. 이 사건은 자살이네. 타살이 아니야. 다만, 그렇게 보이게 꾸며졌을 뿐. 그리고 자네는 그것을 알고 있지, 아야츠지 탐정. 긍정의 대답을 이끌기 위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필요없었다. 긍정도 할 필요 없고, 부정도 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아야츠지는 조용히 앞에 놓인 잔에 곡차를 따를 뿐이었다. 말이 끊긴 방에는 말간 액체가 잔을 채우는 소리만이 반복해서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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