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8. 01:33
문호스트레이독스

아야츠지 유키토 & 에도가와 란포

공허한 살의의 윤무곡(輪舞曲)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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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라인이 둘러져 있는 사당은 제법 낡은 것이었다. 족히 육십 년은 되었다고 했던가. 예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곳이었지만,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사가면서 사당을 찾는 발걸음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당의 대도 끊겨, 지금 유일하게 이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이 싸늘하게 시체가 되어 서까래에 매달린 채 발견된 그녀, 다나카 레이코(田中 靈子)였다. 아야츠지가 도착했을 때에 그녀는 이미 바닥에 내려와 있었다. 차광안경을 가볍게 고쳐쓴 아야츠지는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한 서까래를 보았다. 어지간히 키가 큰 성인 남성도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녀를 매달 수는 없을 것이다. 옆에서 가만히 시체와 서까래를 번갈아 쳐다보던 츠지무라가 입을 열었다.

"외부인이 아니라면, 자살일까요?"
"…자네 머리는 평화로워서 좋겠군."

옆에서 볼을 부풀리는 츠지무라를 무시하며 아야츠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한 이분법으로 끝낼 수 있는 사건이라면 연락조차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야츠지는 시선을 내려 가만히 마룻바닥을 보았다. 특별히 무언가가 놓였던 자국도 없고, 주변에 나뒹굴고 있는 물건은 없었다. 지나치게 깨끗하다. 츠지무라도 그걸 눈치 챘는지 자살이라기엔 너무 주변이 얌전하네요, 라고 말했다. 대개 자살, 특히 목을 매달게 되면 발판을 걷어차거나, 시간이 지날 수록 몸에 힘이 빠지면서 각종 분비물들이 흘러내리기 마련이다. 물론 후자는 타살일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이든, 이 자리에서 살인이 있었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깨끗했다.

"여기가 최초의 현장이 아닌 것 같네."
"그, 그 말씀은?"
"주변에 다른 장소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네. 주변 탐문은?"
"그거라면 선생님이 이 주변을 보고 계실 때 제가 물어봤습니다."

츠지무라는 제법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수첩에 적은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이 마을은 스무 명이 채 되지 않는 장년, 노년들이 모여있단다. 태풍이 몰려오기 전에 자식들을 보기 위해 마을을 떠났던 5쌍의 노부부를 제외하면 나머지 10명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 중에 허리가 굽어서 제대로 거동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두 명, 마을 회관을 수리하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이 한 명, 특별한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이 7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사당 근처에는 얼씬도 한 적이 없었다고 대답을 했단다. 사당 근처에 오지 않은 이유인 즉, 한달 쯤 전부터 사당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마을을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좋은 소문?"
"네. 새벽 두시쯤 되면 망치질 하는 소리랑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네요."
"―축시의 참배인가."

축시의 참배. 축시의 참배란 원한을 품은 상대방을 저주로 죽이기 위해 축시(새벽 1시 반에서 2시 반 사이)에 절에 참배해서 신목에 짚으로 만든 인형에 못을 박아서 기원하는 것을 7일간 계속하면 상대방이 죽는다는 오래된 구전 신앙이다. 별로 망설임 없이 아야츠지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에 츠지무라는 마른 침을 삼키고 아야츠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아야츠지 유키토는 저주나 신앙과 관련이 있는 것을 입에 담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요술사인가?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설마, 교고쿠가 관련이 있다고 말씀하시려는 건가요? 그런건가요, 선생님? 츠지무라의 불안한 감정을 뒤로 하고 아야츠지는 생각에 잠겼다. 축시의 참배에는 신목이 필요하다. 아무리 낡은 곳이라도 사당은 사당이다. 신목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본당의 문을 열고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끼가 잔뜩 낀 오래된 우물과 그 옆에 있는 반쯤 타버린 나무가 스산한 기운을 더하고 있었다.아야츠지는 나무의 상태를 보고 가볍게 혀를 찼다.

"꽤 심하게 타버렸군."

"이걸로 쓸 만한 조각이 하나 망가져버렸나, 아야츠지."


귓가에 울리는 음산한 목소리에 아야츠지는 가볍게 혀를 찼다. 교고쿠는 그가 단서를 잃어버린 것이 즐거운 지 낮게 키득대며 웃었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나, 이번엔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여전히 영문 모를 말을 뱉는 교고쿠를 노려보던 아야츠지는 가만히 혀를 차고는 타버린 신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서고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했다. 삐걱거리는 거대한 빗장을 들어서 한 쪽으로 밀어낸 다음 문을 열자, 문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열렸다. 잠시 서고의 바닥을 바라보던 아야츠지는 창틈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에 반사되는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었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선을 돌린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고의 문을 닫은 채 뒤를 돌았다.

"이건…. 공범이 있어."
"아야츠지 선생님! 혼자서 사라져버리시면 어떡해요!"
"아, 츠지무라군. 마침 잘 왔네."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내려는 그녀의 입을 가볍게 손가락을 들어 막은 아야츠지는 그녀를 데리고 와 서고의 문을 닫았다. 갑작스럽게 둘만 남은 상황이 되자 츠지무라는 어쩔 줄을 몰랐고, 그런 그녀를 가만히 보던 아야츠지는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잡은 채 뒤로 돌렸다. 서고의 닫힌 문을 보던 츠지무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뻐끔거리며 문을 손가락질 할 뿐이었다. 문 뒤에는 악의를 담았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 짚인형이 한가득 매달려 있었다.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상관 없었다. 그저 이 신사 전체가, 사당 전체가 거대한 악의의 소용돌이였다. 아야츠지는 서둘러 나가는 츠지무라를 보다가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시선을 돌려 팔짱을 낀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교고쿠를 노려보았다. 교고쿠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자네라면 이미 모든 걸 다 알았을텐데."
"―시끄럽다."
"뭐, 이번엔 제법 재미있을 것 같으니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할까."

귓가에 들리는 거슬리는 웃음소리에 아야츠지가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내질렀을 때 교고쿠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재미, 재미라고? 네 녀석은 이런 끔찍한 일을 해놓고도 그게 그저 재미일 뿐이란 말이냐. 제 손을 더럽히지 않으니 재미가 있다는 거냐. 교고쿠. 소리없는 분노가 아야츠지의 눈에 깃들었다 사라진다. 그 사이에 츠지무라는 탐문조사를 마쳤는지 그에게 달려와 알아낸 사실들을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신사의 관리직이었던 남자가 비교적 최근까지 일하고 있었다던가, 새벽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그래도 제법 성황이었는지 아르바이트 무녀를 고용했었다는 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신사가 사람들에게서 외면을 받고 난 뒤에도 남몰래 공물을 가져다 주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아야츠지는 그들의 신상을 듣고는 경찰에게 아르바이트 무녀를 데려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경찰들이 그의 지시를 받고 떠나자, 츠지무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아르바이트 무녀인가요?"
"왜냐니?"
"아니, 신사의 관리인이나 공물을 주던 사람이 좀 더 친밀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아직도 멀었군. 그래서 나중에 범인이나 제대로 잡겠어?"
"―윽."

아야츠지의 말에 츠지무라는 분한 듯 입술을 꾹 물었다. 왜 아르바이트 무녀인가,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야츠지는 서고의 책장 앞에 말라붙어 있는 흙을 가리켰다. 흙은 찍힌지 제법 시간이 지난 것 같았지만, 어렴풋이 발자국 모양임을 알 수 있었다. 가만히 바닥의 흙을 바라보고 있는 츠지무라에게 아야츠지는 친절하게도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흙자국으로 미루어보아 발의 크기는 대략 235mm정도이며,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면 먼지가 일정한 폭으로 쓸려나간 자국이 있었다. 그 자국들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던 츠지무라를 보던 아야츠지는 피식 웃으며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뒤늦게 말했다.

"이런 서고의 청소를 관리인이나 참배객에게 맡기진 않겠지. 열쇠도 말이야."
"―아!!"

이제야 깨달은 건가? 자네도 참 생각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는군. 그렇게 말하자 츠지무라는 뭔가 반박할 거리를 찾는 듯 했지만 딱히 대단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조금 뒤, 경찰이 다소 초라한 행색의 머리카락이 허리쯤까지 내려오는, 그야말로 만화 등에서나 묘사되는 전형적인 무녀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아이를 연상케 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녀의 이름은 다나카 리에(田中 里枝)로, 죽은 다나카 레이코의 사촌동생이라고 했다. 그녀는 잔뜩 긴장한 채 두 사람의 앞에 섰다. 아야츠지는 그녀를 보다가 손가락을 들어 서고의 문을 가리켰다.

"저 문에 있는 짚인형들은 자네가 한 건가?"
"네, 네. 그, 자꾸 신목에 꽂혀있는 게 신경 쓰여서 그만…."
"언제부터 언제까지, 며칠에 걸쳐서 옮겼지?"
"그, 한 이주일 쯤 전부터 였어요."

방학을 맞아 사촌언니의 일을 도우러 잠깐 내려온 그녀는 신사에서 먹고 자며 잡일을 도왔다고 한다. 처음으로 그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정말 놀라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서 우선 레이코가 발견하기 전에 옮겨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급한대로 레이코는 잘 들어오지 않는 서고에 그것을 놔두었는데, 그 인형은 그 다음 날도 신목에 꽂혀있었다고 한다. 리에는 축시의 참배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야츠지가 축시의 참배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 인형이 거기에 쓰인 물건이라고 하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이제 자신은 죽는 것이냐며 울었다. 츠지무라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그녀를 달래주면서 아야츠지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아야츠지는 그저 덤덤하게 사실을 확인해 나갈 뿐이었다.

"짚 인형은 전부 열 두개가 맞나?"
"아뇨? 열 세개…였는데요?"
"뭐라고?"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