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21. 02:37
문호스트레이독스

아야츠지 유키토 & 에도가와 란포

공허한 살의의 윤무곡(輪舞曲)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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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의 탐정 사무실은 제법 고풍스러운 아이보리색의 시멘트와 붉은 벽돌로 벽을 세운 건물의 4층이었다. 또 다른 탐정씨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츠지무라는 괜한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사람도 탐정이라고 했으니 보통의 관찰력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츠지무라는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똑, 똑. 그리고 작게 숨을 들이쉰 그녀는 날숨을 뱉으며 문을 열었다. 손님의 등장에 꽤나 많은 시선들이 문을 향해 쏠렸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 의자가 하나 있었다. 이래봬도 탐정사무실에 드나든 지 2년 째다. 그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자기가 찾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탐정들은 다 이런가? 그렇게 생각하며 츠지무라는 똑바로 그 의자로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특무과의 츠지무라입니다."

탐정은 대답이 없었다. 못 들었을 리는 없다. 작은 목소리로 말한 것도 아니고, 충분히 들릴 만한 목소리였다. 크흠, 흠. 츠지무라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능력 특무과의 츠지무라입니다. 당신을 모시러 왔습니다. 그러자 그제야 의자가 빙글 돌아간다. 의자에 앉아있는 그는 나이를 가늠하기가 조금 힘든 앳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야츠지 선생님과 종류는 조금 다르지만 짙은 갈색의 헌팅캡에, 갈색의 외투를 걸치고 있는 그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츠지무라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라, 뭔가 실례되는 말이라도 한 건가? 소속을 밝히면 안 됐나? 하지만 사카구치 선배가 말해둔다고 했는데? 표정도 영 내키지 않는 듯한 느낌이라 츠지무라는 그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하고 혼자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자네가 날 데리고 갈 사람인가?"
"네, 네!"
"원래 남이 버린 건 안 줍는 데 말이야. 그런 거 실례라고. 알아? 명탐정에게 부탁하는 거잖아? 그럼 좀 더 깨끗한 사건을 들고 와주면 좋겠는데."

그는 눈썹 끝을 살짝 치켜올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조금은 어린아이의 투정을 듣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이 못 푼 사건이라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인데도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츠지무라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미묘하게 입꼬리를 비튼 채 그녀를 보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자네의 표정이 꼭 배라도 찔린 사람 같으니 이번엔 특별히 따라가주지. 선심을 쓰는 듯한 말투에 츠지무라는 살짝 짜증이 일었지만,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쪽 보다는 그래도 가준다고 나서는 것에 감사를 표하고 그를 태우고는 차에 올랐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그에게 안전벨트를 매준 그녀는 시동을 걸면서 말했다.

"일단 똑바로 앉아계시지 않으면 혀를 깨무실 수도 있고요, 개요는 가면서 설명하겠습니다."
"뭐?"
"출발합니다! 시간이 없어서요!"

그의 대답은 듣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통성명도 아직이었지. 일단 기어를 넣고 엑셀을 밟아 탐정사의 주차장을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츠지무라는 옆을 흘끗 보았다. 명탐정씨는 안전벨트에 의지한 채 모자채로 머리를 꾹 누르고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너무 갑자기 속력을 높였나 싶어 조금 부드럽게 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츠지무라는 통성명을 시도했다. 이능력 특무과의 츠지무라 미즈키입니다. 사실은 다른 직함을 댔어도 됐지만, 이미 상부에서 연락이 갔을 테니 그가 모를 리는 없다는 생각을 해서 소속은 숨기지 않기로 했다. 명탐정은 한참을 아무 말이 없다가 조용히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만을 툭 뱉고는 시트를 조금 뒤로 젖히며 기댔다. 그의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츠지무라군, 자네…. 운전이 상당히 난폭하구만."
"죄송합니다. 일각을 다투는 사건이어서 그만…."
"사건이 문제가 아니겠지."

다른 원인이 있는 것 아냐? 그렇게 말하며 그, 에도가와 란포는 그녀를 쳐다보다가 다시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그랬다. 사건은 이미 발생했으니 서두를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시역인 자신이 빠져나온 지금, 과연 아야츠지 선생님이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실까? 하는 생각만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 수많은 감시망을 두고도 태연하게 산책을 다녀오는 분이다. 자신이 옆에 눈을 뻔히 뜨고 있는데도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신마저 다른 탐정을 데리러 나온데다, 고작 저격수 몇 명이 감시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정도의 눈을 못 빠져나올 사람이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서 아야츠지 선생님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츠지무라는 사무적인 말투로 란포에게 사과를 하고는 사건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오래된 신사의 사당에서 혼자 남아 있던 무녀가 목을 매달아서 죽었어요. 하지만 그 무녀가 목을 매단 곳이 웬만한 성인 남자도 키가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은 곳인데다 주변이 지나치게 깨끗해서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부른 게 당신이 지켜보던 탐정씨란 말이지?"
"…네."

란포는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사실은 거절할 생각이었다. 사장님의 부탁, 아니, 회유가 아니었다면 절대 맡지 않았을 사건이다. 미해결 사건이나 난제는 싫어하는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좋아했지만 이런 취급은 사절이었다. 이런 취급이란, 마치 무언가의 대체재로 자신을 끼워넣는 취급을 말한다. 특무과에서 오는 사건들 중에는 종종 그런 것이 있어서 란포는 그들의 의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왕이면 순수하게, 누구도 도전하지 않은 과제를 원했다. 게다가 이번에 사건을 맡았던 건 아야츠지 유키토라고 한다.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다. 특무과에서 감시 중인 특1급 위험 이능력자라고 했던가. 범인을 밝히는 족족 그 범인들이 '사고사'로 죽어버리는 바람에 지정된 위험도라고 들었다. 그 말은, 한 두건의 사건을 해결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사람이 고작 이런 사건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모양이네."
"…!!"

그게 정말인가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친 타이어 음을 내며 자동차가 움직임을 멈췄다. 츠지무라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려서는 란포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서고로 향했다. 그 사람, 아야츠지 선생님이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고로 성큼성큼 걸어간 그녀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안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나, 츠지무라."
"네."
"뭐, 자네가 우려한 것과 달리 도망은 가지 않았네."
"…!!"
"자네의 생각은 깊이 고찰하지 않아도 알기 쉬우니까 말이야."

분하다. 분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가끔은 스스로도 너무 알기 쉬운 성격이 아닐까 할 정도였으니까. 아야츠지는 그제야 느긋하게 서고의 문을 열고 나와 그녀의 애마(임시)에서 내려 비틀거리다 땅바닥에 주저앉은 란포를 보았다. 그렇군, 저 쪽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에게 다가간 아야츠지는 란포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란포는 멀뚱히 그 손을 보다가 태연하게 그의 손을 마주 잡고는 그것을 지지대삼아 바닥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털었다. 아야츠지는 그런 그를 보다가 차광안경을 살짝 올려 고쳐 쓰고는 짧은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갑네."
"…으응? 아, 자네인가. 그 위험인물인 탐정씨가."
"뭐, 그렇지. 아야츠지 유키토다."
"에도가와 란포. 그나저나 자네 부하 말이야. 운전면허 제대로 딴 거 맞아?"
"일단은 그렇겠지. 뭐, 운전솜씨가 좀 화려하긴 하지만."
"…용케도 저런 차에 타고 다녔구만, 자네."

란포는 기지개를 켜며 츠지무라의 운전솜씨에 대한 불평을 아야츠지에게 늘어놓았다. 처음 보는 사이 치고는 친화력이 좋은 것 같지만 그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자신의 운전 솜씨라는게 그녀는 못마땅했지만, 아야츠지가 도망갈까봐 전력을 다해 현장에 돌아왔기 때문에 그 사실에 대해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사실 중간에 감시카메라에 몇 번인가 찍혔을지도 모른다. 곧 주소지로 날아들 청구서와 벌금을 생각하면 속이 쓰렸지만, 아야츠지가 어디론가 도망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그녀는 만족하기로 했다. 한참 불평을 쏟아내던 란포는 눈 앞에 우뚝 솟아있는 작은 장지문이 달린 회벽을 물끄러미 보았다.

"여기가 사건 현장인가?"


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