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스트레이독스
아야츠지 유키토 & 에도가와 란포
공허한 살의의 윤무곡(輪舞曲)
6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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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츠지무라는 다나카 리에를 연행해 간 군경에게서 새로운 소식을 받았다. 그 순간 그녀는 뒷골까지 소름이 돋는 경험을 했다. 정말 오싹하다고 해야 할 지, 놀랍다고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에도가와 란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대단한 사람-본인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츠지무라는 내내 그를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이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나카 리에는 살인죄로 형을 살게 되었다. 자살교사나 자살방조죄가 아니고 살인죄가 적용이 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군경은 그녀가 자백을 했다고 말했다.
"자백…이요?"
[네, 그렇습니다.]
"뭘 자백한 건가요?"
츠지무라의 물음에 군경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다나카 리에가 다나카 레이코를 죽였다고 자백했습니다.' 라고 했다. 살해과정은 란포가 추리했던 것과 똑같았다. 다만 이어지는 군경의 말에 츠지무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레이코에게 자살을 하는 방법이 적힌 쪽지를 준 것이 리에였고, 그조차도 원래부터 자살을 하게 만들 생각이 아니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점점 신사를 멀리하는 것이 느껴져서 일종의 쇼를 하자며 허울 좋은 말로 그녀를 설득했다고 한다. 레이코는 사촌동생인 그녀의 말을 아무 의심 없이 믿었고, 그 뒤로 두 사람은 틈이 나는 대로 타이밍을 맞추며 각종 조작을 시작했던 것이다. 사건 당일, 레이코는 뒤를 부탁한다며 자신의 방에서 약을 먹고 잠들었기에 리에가 작업을 하기는 더욱 쉬웠다고 한다. 츠지무라는 전화기 너머의 군경에게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떨떠름하게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야츠지는 자신의 자리에서 느긋하게 신문을 보다가 츠지무라가 소파에 앉는 소리에 그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드디어 진실을 알아낸 모양이군."
"…네…."
"평소 자네들의 태도를 존중해 이번엔 특별히 그에게 사건을 풀도록 했네."
"…그, 그것 참 감사하네요…. 언제부터 알고 계셨어요?"
"처음부터 어느 정도 눈치는 챘었네. 정확하게 알게 된 건 자네가 란포군을 데리러 간 사이였지만."
"네?"
서고에서 안 나오셨던 것 아니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츠지무라를 흘끗 쳐다본 아야츠지는 어깨를 으쓱이곤 피식 웃으며 한 김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넘기고 가볍게 의자를 돌렸다. 내가 저격수가 있다고 못 빠져나갈 것처럼 보이나? 그 말에 츠지무라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보다가 잔소리를 시작했지만 아야츠지는 전혀 듣지 않은 채 그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가 적은 단어는 단 네 글자, [예상대로] 였다. 어디론가 메일을 전송한 그는 자기 말을 듣고 있느냐고 묻는 츠지무라의 말이 두 번 정도 들리고서야 의자를 돌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을 쳐다보는 츠지무라를 보던 아야츠지는 아침이나 먹자며 부엌으로 커피잔을 들고 들어가버렸다.
「♪♩」
메일이 왔음을 알리는 착신음이 조용한 사무실 내에 퍼졌다. 모처럼 바쁜 날들이 지나고 한가한 사무실 내에 울리는 메일 착신음은 사원들의 신경을 집중하게 했다. 란포는 자기 자리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신문을 보다가 도착한 메일의 내용에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는 아츠시의 말에 란포는 그를 쳐다보다가 며칠 전의 일이 잘 해결되었다고 말하고는 다시 신문을 볼 뿐이었다. 웬일로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지 않는 모습에 아츠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타니자키의 부름에 그를 도와주러 자리를 떴다. 란포는 신문의 십자말풀이에 해답을 적어나가면서 교토에 강제로 갔던 날 밤의 일을 떠올렸다.
자신의 방에 찾아온 아야츠지는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은 채 곡차를 몇 잔 연달아 들이켰다. 그리고 술잔을 가볍게 내려놓으며 란포의 맞은 편의 벽에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아야츠지의 추리도 자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애초에 진실은 하나 뿐이었으니까. 리에가 레이코를 죽이고자 마음을 먹은 계기는 뻔했다. 유산 상속이겠지. 실제로 아야츠지가 별도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다나카 레이코 앞으로 상당한 양의 유산이 상속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리에의 집은 어릴 때부터 양친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도벽이 심해 가산을 탕진한 상태에서 그녀가 의지할 것은 어머니와 조부모 뿐이었다. 하지만 기껏 잘 보여놨더니 가업을 이어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1상속자를 레이코로 정했으니, 리에의 입장에서는 분할 수 있는 일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지만."
"그렇지. 사람의 목숨은 돌이킬 수 없는 거고."
"흠, 이런 건 말해도 '사고사'가 발동되지는 않는 모양이지?"
사고사―. 그것은 아야츠지의 이능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특1급 위험 이능력자로 분류되게 만든 이능력. 란포의 날카로운 시선에 아야츠지는 덤덤하게 곡차를 마저 따라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주변의 일을 조사한 것만으로는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에 란포는 식어가는 녹차를 마시고는 가볍게 콧소리를 냈다. 그 사이 하늘 높이 떠오른 달을 잔에 담은 채 가만히 바라보던 아야츠지는 달과 곡차를 한번에 들이키고는 잔을 내려놓으며 란포를 쳐다보았다. 차광안경 너머로 란포를 한참 쳐다보던 아야츠지는 잔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만히 쓸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일은 자네가 나 대신 쇼를 좀 해줘야겠는데."
"―쇼라니, 듣기 불쾌하네."
"아닌가, 명탐정?"
란포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눈 앞에 있는 다른 명탐정을 바라보았다. 짙은 녹색의 눈과 차광안경에 색이 가려진 눈이 말없이 서로를 탐색했다. 직감적으로 란포는 알 수 있었다. 이 사람 앞에서는 '할 수 있는 척'을 해도 소용 없을 것이라는 걸. 아야츠지는 딱히 란포가 말하지 않고 있는, 아니,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실을 들춰내지는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란포가 구미가 당길만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생각보다 그는 협상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아야츠지는 자신이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이상, 입을 열고 사건을 해결해버리면 이 자리에서 그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사고사'를 당할 것이지만 자네가 약간의 쇼를 해준다면 지금 자네의 실력을 의심하고 있는 츠지무라에게도 멋지게 자네의 대단함을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츠지무라―. 란포는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그녀의 이름을 읊조렸다.
"확실히 그녀는 지금 내 실력을 의심하고 있지. 아주 불쾌한 일이야."
"뭐, 그래도 말 몇 마디로 착실히 움직여주는 사람이네."
"흐음, 이번 일은 여러가지로 내키지 않았는데 잘 됐네."
"그럼 제안을 받아주는 건가, 명탐정?"
"좋아! 깜짝 놀라게 해 주지!"
긴 시간의 협상이 이뤄낸 결과물은 썩 나쁘지 않았다. 결국 란포는 츠지무라에게 제대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범인은 얌전히 감옥으로 들어갔다. 이것으로 한 건 해결이었다. 란포는 아츠시가 냉장고에서 꺼내다 준 라무네를 마시면서 새로운 유희거리를 찾아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한편, 한참 식사를 준비하려는 아야츠지에게 핫케이크 가루를 건네며 츠지무라는 새삼스럽게 떠오른 의문을 제기했다. 리에씨는 왜 갑자기 자백한 걸까요? 란포씨는 그녀가 자백을 할 것도 알고 계셨죠? 그건 어떻게 안 걸까요? 아야츠지는 츠지무라를 가만히 보다가 핫케이크 가루를 체에 걸러내며 입을 열었다.
"초추리는 나나 자네같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잡아내는 모양이지."
"엑, 그럼 선생님도 모르세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나. 자, 이걸 좀 저어주게."
"아, 네!"
적당량의 우유를 더한 보울을 거품기와 함께 츠지무라에게 건넨 아야츠지는 곁들일 만한 것을 찾기 위해 냉장고를 뒤졌다. 한참 열심히 휘젓던 츠지무라는 퍼뜩 이건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며 그를 다그쳤지만, 아야츠지는 핫케이크가 먹고 싶다면 그냥 열심히 저으라고 말하며 냉장고에서 몇 가지 과일의 마멀레이드와 잼을 꺼냈다. 츠지무라가 의문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그 자리에서는 이미 도망을 갔어야 한다. 사고사로 보이게 꾸몄다면 더더욱. 유산을 받기 위해서는 군경에 잡혀들어가야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도망을 가서 차라리 사건이 조용히 가라앉을 때까지 숨어 지냈다면, 어쩌면 유산을 받아서 완벽하게 인생을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파악하기 위해 수고를 해야 하는 귀찮은 존재였다. 아마도 일말의 죄책감이라는 것이 그녀를 그 장소에 묶어두었던 것이겠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얼마 없는 혈육을 죽였지만, 그 혈육은 자신을 아껴주던 사람이었고, 아무 의심도 없이 자기를 믿어주었다는 것이 다나카 리에를 옭아매었다. 교고쿠가 말했던 대로다. 죄책감과 증오가 얽힌 뫼비우스의 띠는 결국 모두에게 어떤 해결방안이 되지 못했다. 귓가에서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번 사건은 재미있었나, 아야츠지."
"―혼자가 아니라서 말이지."
"뭐, 자네들의 분투는 보는 쪽도 즐거웠지."
두뇌가 둘이 모이니 조언도 필요없었고. 그렇게 말하며 교고쿠는 낮게 웃었다. 아야츠지는 그곳을 조용히 노려보다가 냉장고의 문을 거칠게 닫았다. 그 반동으로 그릇이 흔들리는 소리에 츠지무라가 놀랐는지 아야츠지를 쳐다보았다. 아야츠지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그렇게 물어오는 그녀에게 아야츠지는 손이 미끄러졌다고 태연히 말하고는 그녀가 반죽을 끝낸 보울을 받아들고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조금 잘라낸 버터를 얹어 녹여내는 소리가 고소한 버터의 냄새와 함께 부엌을 채워갔다. 그 너머에서 교고쿠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린다. 다음엔 더 재미있는 사건으로 놀아주겠네. 기대하게, 아야츠지. 연기처럼 조용히 스러져가는 목소리를 듣던 아야츠지는 말없이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버터의 위에 핫케이크 반죽을 부었다. 동그랗게 퍼지며 익어가는 냄새가 새삼스럽게 위를 자극해온다. 이미 기대에 가득한 츠지무라의 시선을 느끼며 아야츠지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다음에도 질 생각은 없다, 교고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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