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11.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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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10.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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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26. 00:44
"아, 춥다."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든다. 떨리는 몸을 가볍게 움직여 진정시키고는 고개를 조금 더 옷 속에 묻은 란포는 품에 손을 넣어 주섬주섬 담뱃갑을 찾았다. 군데군데 흠집이 있는 조금 낡은 은색의 케이스를 열어 그 안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문 란포는 손을 옮겨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어라, 어디갔지. 또 없어졌나. 작게 혀를 찬 란포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흩어놓고는 필터를 잘근거렸다. 일부러 비싼 걸 들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어째 이놈의 라이터는 사고 나서 몇 번 쓰기만 하면 금세 사라져버린다. 이따 돌아가는 길에 하나 사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불도 붙지 않은 담배를 손가락으로 옮겨들고 의미 없는 숨을 뱉는데, 옆에서 익숙한 손이 불쑥 들어와 라이터를 내민다.

"여기요, 란포씨."
"…다자이."
"마침 찾고 계셨죠?"
"너였냐."
"아, 잠깐 빌린다는 게 그만."
"그건 빌리는 게 아니고 훔치는 거잖아? 절도범이라니까."
"말씀 드린다는 걸 깜박했어요."
"진짜 말이나 못하면."

제 앞에서 유유자적하게 웃는 다자이를 노려보던 란포는 작게 혀를 차고는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다자이가 라이터를 눌러 불을 올렸다. 익숙하게 담배 끝을 대고 불을 붙인 란포는 가볍게 필터를 빨아들였다 놓는다. 후우, 이제 조금 살 것 같네. 난간에 팔을 걸치고는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줄창 연기를 들이마셨다 내쉬는 란포를 보던 다자이는 난간에 등을 대고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물고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불이 붙어있는 란포의 담배 끝에 자신의 담배를 가져다댔다. 오래 지나지 않아 불씨가 옮겨붙은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 손에 들자, 란포가 그제야 담배를 입에서 떼고는 불만을 표했다.

"내 라이터 갖고 있으면 그걸로 붙이면 되잖아."
"뭐, 그렇긴 하지만요."
"일일이 번거로운 행동이나 하고."
"하하, 손을 또 빼기가 싫어서요."

주머니에 넣지도 않았던 주제에. 그렇게 말하며 다시 담배를 입에 무는 란포를 보던 다자이는 손을 움직여 그의 입에서 담배를 뺏고는 짧은 키스를 했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서로 다른 맛의 연기가 오갔다. 콜록, 독한 다자이의 담배 연기에 고개를 돌리고 숨을 뱉은 란포는 손을 뻗어 다자이에게서 자신의 담배를 빼앗아 다시 입에 문 채로 투덜거렸다. 네가 피는 담배, 너무 독해. 란포의 말에 다자이는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들이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힌 채 연기를 내뿜었다. 폐부에 스며드는 익숙한 연기의 느낌에 저 혼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다자이는 대답했다.

"이러면 금방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Posted by 스위스무민
2017. 1. 20.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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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9.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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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6. 01:08

[다자란]

불사(不死)와 사도(死導)


==========================


"오늘도 죽지 못했군."

"아아, 그러니까 빨리 죽어버리면 좋을텐데."

"자네의 그 힘으로 어떻게 안 되나?"

"그게 통했으면 벌써 죽였을 거라고."


알겠어? 한심한 인간아. 그렇게 말하며 검은 머리의 청년은 제 머리를 대충 쓸어넘기고는 눈 앞에서 기중기에 끼어있는 남자를 보았다. 보통 인간이었으면 즉사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멀쩡하게 누워있다. 아니, 정확히는 기중기가 그에게 닿기도 전에 녹슬어버렸다. 세계는 이 남자를 배제하고 있었다. 이레귤러(irregular), 통칭으로 그렇게라도 부르면 될까. 세계의 법칙을 벗어난 남자이다. 세계의 법칙을 바른 길(正道)이라고 한다면, 그는 절대적인 사도(邪道)였다. 뭐, 애초에 옳고 그른가따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지만. 남자가 녹슬어버린 기중기를 슬쩍 밀어내자, 기중기는 금세 굉음을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시끄럽게."

"이런, 귀가 아팠나?"

"이런 상황에도 멀쩡한 네가 이상하다고."

"쿠후후 …. 아무래도 나는 사신에게도 미움을 받은 모양이라."

"이 짓도 몇 년째인지 기억해?"

"글쎄, 얼추 백년은 넘은 듯 하군."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셈이야?"

"누가 들으면 일부러 길을 어긋나게 하는 것 같잖아, 란포군?"

"…아니라는 거야?"

"당연히 아니라네."


그저 나는 지독하게 미움받고 있을 뿐이야. 죽음에게도 말이지. 란포는 남자의 말에 그를 들고 있던 커다란 낫으로 쿡쿡 찔러댔다. 그러자 남자가 움찔거리며 몸을 피한다. 그를 찌른 부분은 그에게 닿자마자 형체가 흩어졌다 다시 모였다. 이승의 물건이 아니라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히 녹이 슬어서 부서져버렸을 거다. 이 남자의 정체는 아직도 모른다. 이름도 묻지 않았다. 이레귤러는 이레귤러이니까. 란포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곤 남자의 목덜미를 쿡쿡 찔러대면서 가장 실현 불가능한 말을 했다.


"빨리 죽어버려,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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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
2017. 1. 12. 00:23
*문스독 2쿨 21화 쌍흑 이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날조 주의

==============

신께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

"아으…. 그 새끼 진짜."

차가운 흙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츄야는 미간을 찌푸렸다. 전신이 저리다.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다. '오탁'을 쓴 반동이었다. 오탁은 양날의 검이라, 파괴력이 있는 기술이지만 사용자인 츄야 자신조차도 파괴해버리는 무서운 녀석이다. 츄야는 오탁을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날아가버리는 이성과 함께 찾아오는 기억의 상실이 싫었다. 언젠가 소중한 것도 이 손으로 부숴버릴 것만 같다. 츄야는 가만히 장갑으로 싸맨 손을 내려다 보았다. 유일한 제어장치가 세상에서 제일 죽여버리고 싶은 다자이 놈이라는 것도 싫었다. 이 놈이 없어지면 똑같은 능력자가 없는 이상 이 기술을 쓸 수가 없으니까 함부로 죽일 수도 없다. 그리고 오탁을 쓰고 난 다음의 통증이 싫었다. 부들거리는 몸을 일으켜서는 대충 옷에 묻은 흙을 턴 츄야는 다자이가 잘 개어두고 간 코트를 펼쳐들고 모자를 눌러썼다. 팔랑, 펼쳐든 코트에서 나뭇잎이 한 장 떨어졌다. 작게 구멍이 나 있는 나뭇잎을 석양에 비추자 '바보'라는 글씨가 보인다. 쓸데없이 정성들여서 놀리긴. 그에게 믿는다, 고 말했고 맡겨두라고 답한 다자이는 '바보'라는 쪽지 하나만을 남긴 채 돌아가버렸다. 츄야는 괜히 발치에 놓인 돌부리를 걷어차며 기지로 향했다. 기지에 도착한 츄야는 의자에 걸터앉아선 상대가 받지도 않을 전화를 걸었다. 뭐라도 불만을 토로해야 성질이 풀릴 것 같았기에, 츄야는 음성사서함에 다자이를 향한 다양한 욕설을 녹음하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음성사서함 1통]

다자이는 제 폰에 뜬 알림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음성사서함에 연결해 내용을 듣지도 않고 지웠다. 어차피 듣지 않아도 뻔했다. 다양한 욕과 함께 다음엔 몇 배로 갚아주겠다고, 또 널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는 츄야의 메시지일 것이다. 츄야는 바보다.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자이는 오랜만에 마시는 위스키 잔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퉁겼다. 자신의 옛 파트너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했다. 조금만 함께 한 것으로도 그의 행동습관, 호흡, 생각 패턴, 동작의 간격을 읽어낼 수 있었다. 다자이에게 그런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다자이는 츄야가 거북했다. 그것은 츄야가 다자이에게 무의식 중에 보내고 있는 신뢰의 말들 때문이었다. 믿음, 파트너, 간부, 보스가 아끼는 녀석. 성격은 마음에 안 들지만 실력은 확실한 녀석. 그런 말들이 전부 형태 없는 사슬이 되어 다자이를 옭아매고 있었다. 마피아를 등지고 나온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신뢰받는 건 질색이다. 다자이는 그래서 츄야가 싫었다.

"다음에도 너는 날 믿어줄건가, 츄야?"

대답할 상대도 보이지 않는 말을 허공에 뱉으며 다자이는 조금씩 묽어져가는 술을 넘겼다. 신뢰, 좋은 말이지. 그만큼 무섭고. 다자이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천천히 바의 테이블에 얼굴을 댔다. 비어있는 스툴이 가볍게 돌아갔다. 다자이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흐려지는 초점을 애써 맞춰보았다. 보이지 않을 것이 보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삼색고양이일 뿐이었다. 뭐야, 선생인가. 다자이는 남은 술을 마저 비우고는 고개를 젖혀 천장의 노란 조명을 끔벅이는 눈으로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열여덟 소년의 지루한 환청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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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12. 31.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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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16. 01:33
"란포씨 올 업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이제 철야도 없으니 실컷 자야지."

란포의 진심이 섞인 농담조의 말에 촬영장에는 웃음 꽃이 피었다. 란포는 스탭들이 준비한 꽃다발을 한아름 안아들었다. 여름에 시작했던 드라마도 어느새 반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종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란포의 마지막 씬의 촬영이 끝난 날은 눈이 내리는 12월의 어느날이었다. 사실 날짜는 전부터 어림짐작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날이 되니 란포는 새삼스럽게 마음이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크게 다를 것도 없었는데. 주차장으로 내려오면서 핸드폰이 울리는 걸 느꼈지만 품에 가득한 꽃다발에 전화는 잠시 미뤄두었다. 이걸 버릴 수도 없고. 일단 차에 넣어두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품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보니 다자이가 제 꽃다발을 하나 빼앗아 들고 있었다.

"흐응, 많이도 받았네요. 선배 앞이 안 보일텐데."
"뭐?"
"이것 때문에 전화도 못 받은 거예요?"
"아, 너였어?"
"그럼 또 누가 있는데요."
"그것도 그러네."

다자이에게 꽃다발을 몇 개 넘기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빼들어 차 문을 연 란포는 뒷좌석에 대충 꽃다발들을 쌓았다. 저번의 연기가 전파를 탄 이후로 촬영장에서도 란포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진 데다 팬들도 조금 늘어 예전보다도 많은 꽃다발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대로 운전석에 앉은 란포는 다자이가 조수석에 앉은 걸 보고 조용히 차의 시동을 걸었다. 다자이는 피곤하지 않냐며 제가 운전하겠다고 말을 했지만 란포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 날, 그러니까 란포가 항복선언을 한 이후로 둘은 평소와 다를 바 없어보이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나날들을 보냈다. 둘이 오프가 겹치는 날이면 몇 번인가 드라이브를 나가기도 했다. 처음에 다자이가 집에 데려다 준 날은 철야때문에 금세 잠들어버려 몰랐지만, 다자이의 운전솜씨는 상당히 형편없었다. 그 뒤로 란포는 단 한번도 다자이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았다.

"아, 진짜. 선배. 저 못 믿어요?"
"운전만큼은 절대."
"자주 안 해서 그런 거라니까.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았어요?"
"너 때문에 차 보험처리 할 뻔 했던거 기억 안 나?"
"…으윽, 그렇게 나오시면 할 말이 없네요."
"어디로 갈 건지나 말해."
"음, 어디가 좋을까요?"
"생각 안 해놨어?"

글쎄요, 선배 집도 좋고, 우리 집도 좋고. 그렇게 말하며 다자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란포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없이 차를 몰았다.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지도 않느냐는 다자이의 말에 라디오를 트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란포는 그대로 고속도로를 탔다. 그렇게 한시간 반 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펜션이었다. 다자이는 눈을 가만히 껌벅이며 주변을 둘러보다 차에서 내렸다. 시동을 끄고 나온 란포는 짧게 춥다고만 말하고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난방이 틀어져 있는 펜션 안은 따뜻했다. 현관에 서서 제 옷에 묻은 눈을 털어내고 슬리퍼로 갈아신은 다자이는 란포에게 쪼르르 걸어가 가만히 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선배, 여기가 어디에요?"
"내 별장."
"응? 별장도 갖고 있었어요?"
"몇 년 됐어. 사람이 토 나오게 싫어질 때면 오던 데야."
"그리고 일이 끝나고도요?"
"뭐, 그렇지. 혼자 쉬기엔 제일 좋거든."

란포의 말에 다자이는 작게 그렇구나, 라고 말하고는 몸에 힘을 빼고 란포에게 조금 더 기댔다. 장난기가 섞인 그의 행동에 란포는 제 어깨에 걸쳐진 팔을 툭툭 치다가 반응이 없자 제가 힘을 줘서 한쪽씩 풀어내고는 부엌으로 걸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얼마 전에 미리 부탁했던 식재료들이 들어가있었다. 이 정도면 며칠 지내는 데에 문제는 없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란포는 적당히 재료를 꺼냈다. 탁, 탁. 익숙하게 테이블에 올라오는 재료를 보던 다자이는 슬쩍 옆으로 다가와서 재료들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토마토소스에 양파, 버섯, 펜네. 메뉴를 대충 눈치챈 다자이는 옆에 와서 도마를 들고 칼을 들었다. 란포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 물었다.

"요리는 할 줄 알아?"
"선배는요?"
"예전에 요리프로그램 한 적 있어."
"아, 그랬지. 그때 앞치마 입은거 귀여웠는데."
"…앞치마는 잊어버려."
"왜요, 노란 병아리 같아서 귀여웠어요."
"…다자이."
"네?"
"나 칼 들었다."
"아하하하, 죄송해요."

란포의 협박 아닌 협박에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옆에서 재료손질을 도왔다. 조금 뒤에 냄비를 불에 올리고 소금을 한꼬집 집어넣은 란포는 다른 팬에 다자이가 썰어둔 재료들을 넣고 볶기 시작했다. 다자이는 란포가 시키는 대로 끓는 물에 펜네를 넣었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2인분의 요리가 완성되었다. 제법 고급스러워보이는 접시에 요리를 덜어낸 란포는 테이블에 요리를 옮겼다. 이 별장에서 다른 사람하고 같이 밥을 먹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아마 몇 년 전에 처음 이 별장을 샀을 때, 후쿠자와를 잠시 초대했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거다. 그 뒤로는 늘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조용히 주변의 경치를 즐기다 갔다. 식사를 하면서 감상에 잠긴 란포를 다자이는 턱을 괴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란포가 눈을 깜박이자 다자이는 피식 웃고는 입술을 비죽이 내밀었다.

"아아, 애인을 앞에 두고 다른 남자 생각이라니."
"그런 적 없는데."
"거짓말."
"정말이야."
"또 그런다. 선배, 그거 후쿠자와 선생님 생각하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인거 알죠."
"…내가 그랬어?"
"네, 매번. 이제 그만 좀 생각해요. 눈 앞에 있는 건 난데."

다자이의 불만 섞인 말에 란포는 볼을 긁적이고 머쓱하게 웃고 말았다. 그러네, 실례겠지. 선배는 선배일 뿐이니까. 다자이는 란포의 웃음을 보다가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흩어놓고는 란포가 불만을 표시하며 머리를 정리하는 사이에 그의 차로 가서 조그만 케익 상자를 가지고 왔다. 저걸 손에 들고 있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생각한 란포가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다자이는 손가락을 란포의 입술에 대곤 빙긋이 웃었다. 비밀이에요. 그 말에 란포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다자이의 무릎을 걷어찼다. 상자를 손에 꼭 든 채 절뚝거리며 급하게 테이블로 걸어가 상자를 놓은 다자이는 무릎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아야, 왜요. 왜, 이번엔 아무 것도 안 했다고요?"
"누가 멋대로 내 차키 복사하래."
"그치만 저번에 핀으로 땄을 때 선배가 하지 말랬잖아요."
"당연하지! 그건 범죄라고! 그전에, 내 소중한 차를 망가뜨리지 마!"
"선배 차가 망가지면 제 차에 타면 되잖아요."
"네 차에 타도 운전은 내가 할 거지만, 싫어."
"아, 진짜 너무하시네. 모처럼 좋은거 사왔는데."
"뭔데?"

란포가 자신의 말에 반응을 보이자 다자이는 씨익 웃으며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 안에는 초코로 만든 스펀지 롤케익에 마롱크림이 올라가 슈가파우더를 예쁘게 입고 있는, 귀여운 장식이 주변에 놓여있는 케이크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쉽게 떠올릴 만한 그런 케이크였다. 부쉬 드 노엘. 이런 건 언제 준비했대. 그렇게 생각하며 란포는 살풋 웃고는 까치발을 들어 다자이의 머리를 가만히 쓸어주었다. 다자이는 그런 란포의 허리를 잡고는 고개를 틀어 천천히 입을 맞췄다. 쪽, 가볍게 맞닿았다 떨어진 입술은 이내 서로를 찾아들며 뜨거운 숨을 얽었다. 조금씩 중심을 잃어가는 란포의 몸을 단단히 받친 다자이는 입술을 떼고는 여유롭게 웃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그 말에 란포는 그제야 머릿속으로 날짜를 세어보았다. 아, 그렇구나. 란포의 웃음을 신호로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창 밖에는 한참 전부터 내린 눈이 소복히 쌓여 세상을 하얗게 물들여가고 있었다.


Oh the weather outside is frightful

But the fire is so delightful

And since we've no place to go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크리스마스 캐롤, Let it snow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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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
2016. 12. 15. 00:27
"왜냐고요?"

란포의 질문을 받아친 다자이는 그의 턱을 잡았던 손을 놓고 가만히 그의 어깨에 기대서는 오래된 얘기를 시작했다. 그건 란포도 익히 기억하고 있는 만남이었다. 당시 17세의 다자이는 소위 연기의 엘리트코스라고 불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오디션을 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란포가 작업하던 드라마 감독의 눈에 띄어 그 자리에서 단역으로 캐스팅되었다. 그 자리에서 만난 건 몇 명의 대선배님, 그리고 티비에서 가끔 봤던 선배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다자이는 사람의 환심을 사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도 어렵지 않게 녹아들 자신이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호감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그 사람은 자신을 이따금씩 굉장히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항상 느꼈던 비수같은 시선은 모두 그의 것이었고, 그 앞에서는 가면을 쓸 수 없다는 걸 다자이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심지어 그 사람은 아주 정확한 판단을 했다. 촬영 중에 잠깐 휴식을 하는 동안, 감독은 그에게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모양이다. 감독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배우로써는 성공할 것'이라고. 다자이는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를 그렇게 전부 꿰뚫어 본 건 선배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날 그렇게 따라다녔다고?"
"네, 당신이라면 절 더 키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처음부터 말했잖아요. 연줄은 상관없다고."
"....바보냐, 진짜."
"뭐라고 말해도 상관없어요."
"동경심이랑 연심을 착각하는 거 아냐?"
"내가 그것도 구분 못할 바보로 보여요?"
"응."

와, 진짜 너무하네. 처음부터 끝까지. 다자이는 벽을 짚고 있던 손을 그러쥐고는 이를 세워 란포의 목덜미를 물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다자이의 머리를 때리려던 란포는 그대로 한쪽 손목이 잡힌 채 다자이의 눈을 마주했다. 언제부터 다자이는 이렇게 진심이 된 걸까. 그 눈빛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받아줄 수는 없었다. 그래, 다자이는 배우로 장성할 것이다. 그것은 그 자신이 비어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새로 들어오는 물질의 성질이 어떤 것이든지 온전히 제 안에 담을 수 있다. 그 성질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온전히 덮어쓸 수 있다. 그리고 분명히 다시 비울 수 있다. 걸리는 시간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다시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면 또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게 된다. 가장 공허하고, 허무하기에 다른 사람을 연기할 수 있다. 란포가 처음에 다자이에게서 발견한 것은 그것이었고, 그것은 다자이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 자신의 본질이었다. 란포는 다른 손을 들어 가만히 다자이의 뺨을 어루만졌다.

"넌,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야."
"선배는 도망가고 있죠."
"그런 적 없어."
"지금 하고 있잖아요."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선배는 나에 대해 뭘 아는데요?"
"그만하자."
"그만할 수 없어요."
"다자이."
"선배."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란포는 끓는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왜 이렇게 몰라줘요. 다자이는 애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란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모르지 않아. 잘 알고 있어. 그래, 처음 시작은 그게 아니었다고 해도 그가 지금 갖고 있는 감정은 확실한 연심이었다. 앞길을 막고 싶지 않다. 내가 저 빈 그릇을 채워버리면, 그래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멈춰버리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만이 가득했다. 다자이는 싸늘한 표정으로 눈을 감는 것으로 자신을 피해버린 란포를 보다가 그의 입술에 가만히 입술을 겹쳤다.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란 란포는 강하게 얽어들어오는 혀에 당황해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바둥거리며 눌린 소리를 내는 란포가 지칠 때까지 진득하게 키스를 하던 다자이는 란포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지자 그제야 혀를 떼고는 엉망으로 붉어진 얼굴을 마주했다. 울 것 같은 란포의 표정에 다자이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손목을 잡아두었던 손을 놓고 란포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선배."
"왜."
"찬 사람이 그런 표정을 지으면 어떡해요. 차인 건 난데."
"...그러니까 처음부터 말했잖아. 다른 사람 찾으라고."
"이런 것까지 내다보고 있었어요?"
"맹목적으로 따르다보면 그런 일도 생기니까."
"그건…. 경험담이죠?"
"…그래."

사람이 사람을 좇다 보면 존경하는 감정이 애정과 혼동되기도 한다. 자신도 그랬던 적이 있다. 한참이나 위인 선배였다. 그가 나만 봐줬으면 했고, 나만 챙겨주었으면 했다. 그런 멋진 사람이 이미 자신을 챙겨주고 있는 것 부터가 특별하게 여겨져서, 정말로 이 사람과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 날의 감정일 뿐이라는, 그런 냉정한 말을 들었다. 한 순간의 감정이라면 이렇게 아플리가 없잖아. 그렇게 혼자 목놓아 울던 날이 있었다. 그 상처는 시간이 조금씩 무디게 만들어주었다. 일부러 일에 몰두했다. 누군가와는 필요 이상의 관계를 만들지 않았다. 까칠하다고 소문이 파다해져 일은 많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사람이랑 얽힐 일은 많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대환영이었다. 열일곱살의 다자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게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란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에게서 옛날의 자신을 보았다. 그제야 그는 선배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그건 정말 한때의 감정이다. 그 감정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가는 후배를 잡아주는 게 그 선배에게 배운 선배로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절할 수밖에 없다. 그래, 이걸로 됐어. 란포는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다자이의 등을 가만히 토닥였다. 다자이는 그대로 한참을 떨어지지 않았다. 갑갑함을 견디다 못한 란포가 벗어나려고 하자 다자이는 그를 조금 더 세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런 말로는 포기 안해요."
"대체 왜."
"그거 알아요? 선배랑 나는 많이 닮았어요."
"...웃기지 마."
"이미 느꼈잖아요? 그래서 더 도망가고 있잖아."
"...집에 데려다 줄게."
"말 돌리지 마요. 그리고 대답해."
"...자꾸 말 끝이 짧아지네?"
"선배인 척 하지 말아요. 좀 더 솔직해지라고요."

내가 사고쳤다는 말에 왜 그렇게 급하게 달려온 건데요? 선배 그때 옷도 뒤집어 입었던 거 알아요? 다자이의 말에 란포는 입술을 꾹 다물 뿐이었다. 언제부터였더라,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끈질기고 귀찮은 후배라고만 생각했다. 그가 좋아한다는 말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어차피 진심일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수려한 용모를 가진 그에게 들어오는 역할이란 대개 인기가 많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역이었고, 그만큼 사랑에 보답하는 역할이 많았다. 그런 역할 때문에 습관이 몸에 배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가는 길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그가 비어있다는 걸 아니까. 마음에도 없는 자신을 연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몇 번이고 겪었다. 지쳐서 죽고싶었던 적도 많다. 그래서 그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자기도 모르는 곳에서 죽어버릴까봐.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마음을 받아줄 생각은 없었지만서도. 하지만 밀어낸 만큼 들어오고, 들어온 만큼 밀어내는 사이에 그에게 시선을 들켰던 걸까? 란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지않은 채 작게 말했다. 내가 졌어. 그건, 다자이에게만 들린 항복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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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스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