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스트레이독스]
뱀파이어 AU
망향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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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남아서 그곳 하늘에 뜨고
구름 멀리서 고요히 눈을감고
보낸뒤에도 남은 서러움
살아도 눈을 감아도 또 너를 묻게하고
자우림, 망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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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가 여유롭게 발을 들여 놓은 곳에는 인간의 사체가 주욱 늘어서 있었다. 마치 정육점의 고기처럼 사슬에 매달린 시체들을 보던 다자이는 손가락으로 시체를 슥 밀고는 그 너머로 한 발짝 발을 옮겼다. 그러다 묘한 위화감에 슬쩍 발을 떼자, 앞의 바닥이 무너져내렸다. 아무 생각 없이 내딛었다면 그대로 함정에 빠질 뻔 했다. 다자이는 낮게 휘파람을 불며 무너진 바닥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멀쩡한 바닥에 발을 딛은 그는 그대로 지그재그로 바닥을 밟으며 나아갔다. 그 끝에는 모니터로 구울과 한참 전쟁이 붙은 정원을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아아, 누군가 했더니…."
"이야, 다자이씨. 백 년 만입니다?"
"그만큼은 안 되지 않았나?"
"더 됐죠. 제가 여기에 자리를 잡은 게 백하고도 삼십년 전이니까요."
"헤에, 그 뒤로 처음인가?"
"아마도 그렇죠. 당신이 폭주했대서 돌아가지 않았거든요."
"호오, 그건 현명한 판단이었네. 아니었다면 그때 죽었을 테니까."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 다자이는 그의 옆에서 모니터를 함께 지켜보았다. 그 공간에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둘은 그저 한참을 위에서 인간들이 분투하는 모습만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먼저 손을 움직인 건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자였다. 그는 아주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품에서 칼을 꺼내 그대로 다자이에게 꽂으려고 했지만 그 공격을 피한 다자이는 여유롭게 그의 손목을 잡아 뒤로 꺾었다.
"아야야야, 아파요, 아픕니다!"
"카지이. 이런 수는 나한테 안 통하는 거 알잖아?"
"하하, 그랬죠, 참. 너무 오랜만이라 잊었네요."
"언제까지 시체를 갖고 놀 셈이지?"
"뭘 새삼스럽게 물어보십니까?"
당연히 제가 만족할 때 까지죠. 그렇게 말하며 카지이는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다자이는 그의 말에 작게 한숨을 쉬고는 카지이에게서 뺏은 칼을 들어 가만히 그의 심장을 향해 겨누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걸 전부 없애던지, 당하던지. 그 외의 선택지는 주지 않았다. 그저 물 흐르듯 손을 놀려 그대로 그의 심장을 향해 칼을 움직일 뿐이었다. 카지이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이였다. 다자이가 유예를 주지 않고 내리꽂은 칼 끝이 심장에 닿기 직전에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카지이가 만들었던 구울들은 시체로 되돌아가 바닥에 늘어졌다.
"자, 됐죠? 이제 그만…."
"아아, 그럴까?"
덤덤하게 웃으며 다자이는 그대로 칼을 카지이의 심장에 찔러넣었다. 내가 순순히 칼을 거둘 리가 없잖아? 나지막이 들려온 목소리에 카지이는 당했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두어 걸음 물러났지만, 심장에 타격을 받은 채로 이어지는 다자이의 공격을 받아낼 수는 없었다. 아츠시와 쿠니키다, 켄지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카지이는 바닥에 쓰러진 채 천천히 스러지고 있었다. 그 뒤에서 정육점의 고기마냥 걸린 시체들을 보던 아츠시는 몰려오는 역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빈 속을 게워내고 있었고, 쿠니키다는 그런 그를 보더니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고 무너진 바닥 너머로 발을 내딛었다.
"아, 거기 조심해. 함정이 있으니까. 오른발부터 지그재그로 뛰면 돼."
"…번거롭게 해놨군."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야."
"상당한 악취미를 가진 자였나보네. 네놈과 아는 사이냐?"
"뭐, 그렇지. 내가 모르는 녀석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애들 뿐인걸?"
다자이의 말에 쿠니키다는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고는 카지이가 남긴 흔적을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대단한 수확은 없었다. 카지이는 그저 인간의 공상으로 쓰인 책 몇 권과, 자신이 실험한 것에 대한 결과를 하루하루 기록한 일지만을 남겼을 뿐이다. 쿠니키다는 그 일지를 빠르게 넘기며 문장들을 읽어내려갔다. 그 안에는 카지이의 각종 실험과 그에 대한 실패담들이 전부 적혀있었다. 쿠니키다의 눈에 들어온 페이지를 제외하고는. 그 페이지에는 몇 줄의 문장이 적혀있었다.
[각 사체에서 궁극의 부위를 적출해 봉합시켜보았다. 하지만 반혼술을 써도 혼은 깃들지 않았다. 퍼펫도 통하지 않았다. 심장이 필요하다.]
그 문장을 읽은 쿠니키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그를 본 다자이는 따라오라며 고개를 까닥이고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가 커다란 철문을 열어젖혔다. 철문 너머에는 기다란 수술용 침대가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어느 유명한 소설의 한 장면과 닮은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있는 시체가 누워있었다. 쿠니키다는 대놓고 인상을 쓴 채 다자이를 노려보았고,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네놈들은 이런게 취미인가?'
"아니, 카지이 녀석이 이상한거야. 보통 이렇게까지 안 한다고."
"…어느쪽이든 최악이군."
"뭐, 저 녀석이 움직이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잖아?"
확실히 그랬다. 그 사체에 붙은 몸들은 제법 건장한 근육질이었기에 그것이 일어나 움직인다면 제법 버거웠을 것이다. 쿠니키다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품에서 성수를 꺼내어 가볍게 엄지를 적셔 사체의 이마에 긋고는 기도문을 읊으며 성수를 적신 천으로 가만히 사체를 닦아 내려갔다. 그 장면을 잠시 지켜보던 다자이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그 방에서 나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카지이가 쓰던 기구를 둘러보던 그는 카지이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쿠니키다가 기도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만 돌아가지."
"아, 할 일은 다 끝났어?"
"…그래."
썩 유쾌하지 않은 표정으로 답한 쿠니키다는 먼저 지상으로 올라가버렸다. 다자이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낮게 휘파람을 불며 손을 움직여 경고문이 적혀 있는 붉은 버튼을 누르고는 지상으로 올라갔다. 다자이까지 올라탄 차가 산길을 빠져나갈 때였다.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낡은 리조트가 무너져 내렸다. 의외로 별 다른 추궁을 하지 않은 쿠니키다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차를 몰아 공항으로 향했다. 그들이 공항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